[노영희의출발새아침] 전우용 역사학자 “명문고 개념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돼”

[노영희의출발새아침] 전우용 역사학자 “명문고 개념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돼”

2019.11.14. 오전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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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희의출발새아침] 전우용 역사학자 “명문고 개념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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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노영희의 출발 새아침]

□ 방송일시 : 2019년 11월 14일 (목요일)
□ 출연자 :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

-60년대 경제성장 과정에서 교육열과 진학열 굉장히 높아져
-사교육비 절감 위해 시작된 중학교 평준화
-명문고에서 맺는 인간관계 평생 간다는 기대심리 존재
-60년대 강남개발, 사람 모으기 위해 명문고 강남 이전
-강남을 향한 한국인 욕망 학군 통해 압축적으로 표현 돼
-정시확대하면 사교육 시장 몰려있는 강남권 학생 유리할 것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노영희 변호사(이하 노영희): 뉴스를 각별한 시선으로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뉴스 탐구생활. 오늘은 바른 역사 시간이고요. 사실 역사에 대해서 제대로 우리가 공부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데올로기가 수많은 역사 공부를 방해하는 상황도 있었죠. 하지만 지금은 역사 프리즘 아예 방송에서 우리가 따로 코너를 만들어서 배울 정도로 환경이 좋아졌습니다. 오늘 그래서 저희가 뉴스를 똑바로 들여다보는 시간,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 모시고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이하 전우용): 안녕하세요.

◇ 노영희: 오늘은 어떤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시나요?

◆ 전우용: 오늘 수능 시험일이죠. 또 입시제도 개편과 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서 다들 대학이 목표인데 대학 가기 좋은, 좋은 대학 갈 수 있는 선택은 뭘까. 이런 얘기 하면서 명문고, 명문 학군 이런 이야기들 나와서요. 명문고의 역사, 명문고가 무엇인가. 이런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 노영희: 명문고의 역사, 좋습니다. 그러면요. 지금 우리 사회의 화두 중의 하나가 바로 교육의 공정성인데, 명문고라고 하는 것은 그러면 이 교육의 공정성과 어떻게 연결되는 건지 궁금한데요.

◆ 전우용: 공정을 논할 때 생기는 학교는 아니죠. 그때는 교육의 공정성 이전에 워낙 신교육 근대교육에 대한 수요가 적을 때 시작했고요. 또 그런 와중에 하나둘씩 생겨난 근대적 교육기관들에 대해서 그 당대에는 그런 이름을 안 붙였어요. 1960~1970년대 대학 진학이 늘어나면서 이른바 특정 국립대학, 특정 국립대학 하나였어요. 특정 국립대학 하나, 거기에 학생 많이 입학시키는 그런 학교들을 명문고, 역사가 있으면서 그런 학교는 명문이라고 불렀고. 이제 억지로 수를 맞추느라 그랬을 거예요. 공립 5개, 사립 5개 합해서. 5대 공립 5대 사립 그랬죠.

◇ 노영희: 5대 공립은 어떤 학교인가요?

◆ 전우용: 국립 5개는 잘 아시지만 대한민국을 거의 해방 이후에 1980~1990년대까지는 쥐고 흔든 두 학교죠. 경기고 서울고 둘이었고요. 그다음에 순서 잘못 부르면 혼나는데. 그래도 어쨌든 불러야 하니까. 경기·서울·경복·용산·경동 이렇게 5개를 불렀는데, 이 5개의 공립 중에서 경기·경복, 그다음에 한국인 학교, 일제강점기에 경성고, 제일고보, 경성제이고보라고 불렸던 한국인 다니던 학교였고요. 학제가 일제강점기 식민지 시대에는 일본인 학제와 조선인 학제를 차별했기 때문에 중학교에 해당했어요. 경기·경복고는 한국인 학교, 서울·용산은 일본인들만 다니는 학교였고요. 경동은 1940년께 들어와서 이른바 내선일체를 강화한다고 해서 한일 공동학교로 만들었던 그런 학교였고요. 5대 사립은 대개 사립이니까 선교사가 만든 학교 아니면 한국인들 스스로 만든 학교였죠. 일본인이 만든 학교는 없고. 그래서 배제·양정·휘문·보성·중앙 5개를 5대 사립이라고 불렀죠.

◇ 노영희: 그랬군요. 그러면 이런 명문고라는 개념이 결국 일제강점기 때부터 시작된 건데. 사실 교육의 기회가 그 당시에는 많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 전우용: 그렇죠. 말씀드렸듯이 일제강점기에는 명문고라고 부르진 않았어요. 그냥 전문학교, 고보죠. 고등보통학교이고 특히 공립 중에서 서울·용산은 당시 경성중학교 또는 경성제이중학교였거나 용산중학교 이름이 바뀌는데요. 이렇게 돼서 일본인들만 다니는 학교였기 때문에 그런 걸 따질 이유는 없었죠. 물론 그때도 경성고보라는 것은 제일 뛰어난 학교다. 이렇게 생각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런 걸 따질, 지방에서 거기까지 유학 오는 경우는 적었어요. 그런데 다만 이런 차이는 있었죠. 일제강점기에는 관선사후라고 하는 원칙이 있었어요. 관립학교 입학시험을 먼저 보고, 거기서 떨어진 학생들이 사립학교 시험을 보기 때문에 관립학교가, 앞서 말씀드렸던 공립학교가 사립학교보다 좋은 학교로 평가를 받았고요.

◇ 노영희: 또 좋은 학생들을 유치하니까.

◆ 전우용: 예, 그리고 대학도 마찬가지로 대학과 전문학교도 마찬가지로 관선사후 원칙을 취했어요. 일본인들이 주로 선교사나 한국인들이 만든 학교보다 일본의 총독부 학교조합에서 하는 학교들을 더 좋은 학교다라고 하는 그런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 입시제도 자체를 그렇게 만들었던 거죠. 

◇ 노영희: 그랬군요. 그러다가 박정희 정권 때 이른바 평준화 정책이 시작된 것 아닙니까? 이건 왜 하게 된 거죠?

◆ 전우용: 원래 이제 중학교 평준화가 먼저 시작되었고, 그다음에 뒤이어서 고등학교 평준화가 78년도에 시작이 됐죠. 평준화는 이걸 안 했더니 그동안 특히 60년대 경제성장 과정에서 교육열과 진학열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인구도 물론 베이비붐 세대로 급증해버렸고. 학교 시설을 거기에 맞춰서 늘릴 수가 없는 상황이 되다 보니까 경쟁이 굉장히 치열해졌고. 지금도 그런 이야기 나오지만 그때도 초등학생들이, 그 당시에는 국민학생이라고 했죠. 4학년 때부터 중학교 입시 때문에 밤잠을 못 자는 그런 아이들을 고생시키는 게 너무 심했고. 사교육비 문제가 또 부모들 등골을 휘게 만들었고.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 명분 취지는 그랬어요. 물론 다른 사적인 계기들이 들어가 있었다는 건 충분히 여러 가지 경로로 이야기가 되고 있지만. 그래서 아이들한테 쉴 시간을 준다. 불필요한 사교육비를 절감한다. 이런 취지로 먼저 중학교 평준화, 이어서 고등학교 평준화를 했죠.

◇ 노영희: 그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자제분의 학교 입학을 도와주기 위해서 이렇게 만들었다, 이런 이야기도 있는데.

◆ 전우용: 당연히 그런 이야기들이,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었고 그 전부터 평준화 이야기는 나왔었어요.

◇ 노영희: 부수적인 효과였군요. 그런데요. 그렇게 하다가 그것 때문에 사실은 강남 8학군이라고 하는 것이 시작된 게 아닌가. 이렇게 이야기가 되는데요.

◆ 전우용: 평준화 때문은 아니고요. 평준화됐을 때 지금 종로 중구 대부분의 5대 공립 5대 사립이라고 불렸던, 당시 명문고라고 불렸던 학교들이 서울 중심부에 있었어요. 왜냐하면 이 학교들이 설립될 당시에는 서울이 한양도성 안이었거든요. 그다음에 60년대 들어와서 서울이 외곽으로 확장된 것이라서 학교들이 중앙부에 있었고 이 학교에 가려는 욕심들이 굉장히 컸죠. 욕망이 컸기 때문에. 이것은 사실 학맥이라고 하는 것은 단지 잘 가르친다, 그래서 상급학교 진학하기에 유리하다뿐만이 아니라 그 학교에서 맺어진 인간관계가 평생을 간다고 하는 기대심리 이런 것들이 있어요. 고등학교 동창, 중학교 동창이 되면 자기가 꼭 명문대에 진학을 못한다 하더라도 친구만 잘만 사귀면 평생 덕을 볼 수 있다. 이런 것들이 본인들에게도 부모들에게도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역사가 오래되고 동문이 많은 학교에 가려고 하는 사회적 욕망이 컸죠. 그래서 이런 학교들을 공동학군으로 묶어두고 평준화 초기에는, 그리고 외곽에 있는 지역만 학군으로 나눠서 추첨, 집에서 가까운 거리로. 그러니까 이 중앙에 있었던 명문고들은 집에서 좀 먼 아이들도 공동학군으로 해서 당첨되는 경우들이 많았죠. 그러다가 1960년대 말부터 강남개발이 시작되는데, 강남개발 시작 초기 1970년까지는 서울의 한강에 교량이 한강대교 하나하고 1966년에 완공된 그 당시 제2한강교 양화대교, 다리가 두 개밖에 없었어요. 한강에 다리가 두 개밖에 없는데 강남개발을 하니까 어떻게 서울에 직장을 다니면서 강남에 집을 두고 살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잘 안 가요. 정부에서 극약처방을 한 것이 명문고들을 강남으로 이전시킨다라고 하는 것이었고요. 특히 명문고와 입시학원. 그때도 그랬지만 교육에 대한 열망, 그리고 또 이른바 계층이동의 사다리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하는 기대, 이런 것들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에 이건 굉장히 큰 유인효과가 되죠. 그래서 그야말로 명문 중의 명문으로 꼽히던 두 개 학교, 경기·서울. 그리고 사립학교 중에서는 외곽 쪽입니다만, 강남의 본진은 아니고. 이렇게 말씀드리면 또 거기서 혼날지 모르겠는데. 배제·양정·휘문. 그다음에 한강 이남으로 이전했고요. 이게 학부모들을 끌어들인 효과가 커서 서울·경기·휘문을 중심으로 해서 이른바 강남 8학군이라고 하는 신흥 명문 지대가 과거 그 이전에 서울 중앙부에 있었던 공동학군을 대신해서 신흥 명문 교육지대가 탄생한 것이죠.

◇ 노영희: 그러면 오히려 그 학교들은 더 좋아졌네요. 강남 가서 땅값 엄청 오르고 부자 됐잖아요. 학생들도 엄청나게 공부 잘하는 학생들 많이 오고.

◆ 전우용: 공립학교야 어차피 공공재산이니까 문제가 될 건 없고요. 그렇게 돼버리니까 학교가 좋아서 학생들을 계속 좋은 학교에 보냈다기보다는, 대략 중산층 이상 교육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높고 열정이 크고, 또 사교육비로 상당한 돈을 지출할 수 있는 그런 부모의 자제들이 그 학교에 모이게 되잖아요.

◇ 노영희: 그러니까 그 점이 바로 우리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점점 사라지게 되는 계기가 아닌가.

◆ 전우용: 그렇죠. 이렇게 되다 보니까 학원가도 그쪽으로 모이게 되고. 그러니까 교육특구라는 이름이 붙게 되고. 마치 그 학교를 보내야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것처럼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생기고. 

◇ 노영희: 특권의식이 생겨나고, 그 동네 있는 사람들은.

◆ 전우용: 자기들끼리 모이게 되고요. 이런 문제가 생겼어요. 쉽게 말하면 강남을 향한 한국인들의 욕망이라고 하는 것이 학군을 통해서 압축적으로 표현이 되었고요. 이게 그 아이들에게 더 좋은 학교에 갈 기회를 부여했느냐. 당연히 그런 아이들이 모여서 그렇게 경쟁을 하다 보면 좀 나아지죠. 나아지는 것도 있는 데다가 이렇게 됨으로써 강남과 비강남의 이른바 차별의식, 특권의식, 서로 간에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의식. 국민이란 이름을 우리가 쓴다면, 또는 시민이란 이름을 쓴다면 이 내부에 분열의식의 씨앗을 뿌린 굉장히 부정적인 역할들을 한편에서 많이 해왔죠.

◇ 노영희: 그러면 그렇게 됐다가 전두환 정권 때는 또 과외도 금지시키고 내신을 도입하기도 하면서 오히려 명문고 신화가 깨졌다. 이런 평가도 있던데요.

◆ 전우용: 꼭 그렇진 않죠. 지금 말씀드렸듯이 전통적인 명문이 아니라 강남 8학군을 중심으로 신흥 명문이 형성되는 과정인데. 지금 이게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어요. 박정희 정권 때까지는 과외 허용을 하고 그래서 돈 있는 집 아이들이 과외 공부하고 그러니까 강남에서 굳이 안 해도 됐어요. 그런데 과외를 오히려 폐지하고 나니까 강남권 학생들이 그런 조건 하에서 더 두드러진 성적 향상률을 보였던 것이죠. 그러니까 바로 제가 그때 강남권 고등학교를 갔어요. 저는 8학군에 살아서 간 게 아니라 제가 갈 때만 해도 강남에 학교가 거의 없었어요. 그러니까 저는 강북에 살았는데 강제로 끌려갔어요. 사람이 없으니까 강남에 학생이 없으니까 강북까지 학군을 확대해서 끌어왔는데. 그쪽에는 여러 부류의 학생들이 있었죠. 그런 상황에서 하다 보니까 오히려 이런 경쟁에서 강남 쪽 아이들이 더 유리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정시확대다, 예를 들어서 이런 요구들을 하면서 이게 공정한 입시교육의 방편이다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시확대를 하게 되면 결국은 사교육 시장이라든가 학원들이 몰려 있고 학생들, 부모들 되레 균질적인 강남 쪽 학교들이 훨씬 더 유리하게 될 것이고요. 이렇게 되면 그동안 수시를 통해서 진학했던 지방 학생들이라든가 서울 변두리 지역 학교라든가, 이런 쪽이 불이익을 겪게 되는 것이어서 공정성 문제에 대해서 다른 화두를 아마 던지게 될 것 같다라고 생각합니다.

◇ 노영희: 맞습니다. 그래서 지금 또 나오는 게 그 고비를 넘었더니 이번에 나오는 게 바로 정시확대, 자사고 폐지 지금 요즘 나오는 이야기가 그런 건데요. 정시 확대는 입시제도 자체를 손본다는 것이고, 자사고 폐지는 평준화로 간다는 것 아니냐. 그런데 과연 이렇게 가는 게 맞느냐. 왜냐하면 그게 안 좋다고 해서 다른 거 한 번 했다가 다시 돌아온 것 아니냐. 이렇게 이야기하거든요.

◆ 전우용: 그러니까 입시에서 정시 확대에 대해서는 여러 이야기가 있을 수 있어요. 이것들이 수시를 통해서 수능성적과 관계없이 수능성적을 좀 덜 고려하고 뽑는 그런 아이들에 기회를 열어준다고 하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는 것이고요. 자사고 문제는 사실은 이건 굉장히 애초에 평준화의 문제 때문에 만든 학교는 아니었다고 저는 봐요. 입시의 문제는 아니었고요. 이른바 고등학교 때부터 경로를 다양화하고 고등학교 교육을 다양화한다고 하는 건데 이건 보면 미국이나 남미 쪽 입시제도를 벤치마케팅 했던 거거든요. 고등학교 때부터 신분차별을 표시하겠다고 하는 대단히 신자유주의적인 발상이었어요. 굉장히 심각한 문제거든요. 예를 들어 자사고나 특목고 같은 것들을 따로 평준화된 학교 외에 설정하는 것은 의료보험으로 치자면 공보험 위에 사보험을 만들어냄으로써 의료보험을 무력화하는 이런 제도와 유사한 것이었어요. 그때도 그런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예컨대 정시와 수시 중에 어떤 것을 중시할 것이냐라고 하는 논란하고, 자사고·특목고를 폐지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논란은 다른 차원에서 진행해야 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 노영희: 그렇죠. 그런데 사실 어제 뉴스 나온 것 중의 하나가 바로 대원외고 출신의 법조인들이 대원외고도 특목고니까 특목고 없어지는 것에 대해서 단합을 해서 거기에 대해서 반대하는 이런 걸 하겠다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런 건 어떻게 보세요?

◆ 전우용: 당연히 학교가 이른바 학맥이라고 하는 인맥쌓기의 수단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자기 후배들이 줄어드는 것이 힘이 줄어든다고 느끼는 것이죠.

◇ 노영희: 그렇군요. 그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군요.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 전우용: 감사합니다.

◇ 노영희: 지금까지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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