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극단적 선택 이후, 나는 관심병사가 되었다

어머니의 극단적 선택 이후, 나는 관심병사가 되었다

2019.11.18. 오전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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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라디오 YTN]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방송일 : 2019년 11월 16일 (토요일)
■ 진행 : 김양원 PD
■ 대담 : 조재훈 스텔라재단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어머니의 극단적 선택 이후, 나는 관심병사가 되었다"

- 자살유가족, 조재훈 스텔라재단 대표





◇ 김양원 PD(이하 김양원)> 보통 사람보다 자살 위험은 8배, 우울증은 7배 이상 높은 분들. 바로 자살 유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자살은 파급효과를 가지고 있어서 자살한 사람과관계가 있는 모든 사람은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는 해마다 10만 명 내외로 자살 유가족이 생기고 있는 나라입니다. 특히 오늘은 ‘세계 자살 유가족의 날’이라고 하는데요. 오늘 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스텔라재단의 조재훈 대표 나와 계십니다. 안녕하세요?

◆ 조재훈 스텔라재단 대표(이하 조재훈)> 안녕하세요.

◇ 김양원> 스텔라재단, 이름이 아주 예쁜데요, 무슨 뜻인가요?

◆ 조재훈> 스텔라는 먼저 라틴 말로 별을 의미해요. 그래서 스텔라 파운데이션은 정신 건강에 대해서 우울증 예방이나 자살 예방을 적극적으로 캠페인이나 그런 활동을 하는 단체인데요. 사람들이 정신 건강이나 자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게 굉장히 두렵고, 무서워하는데 오히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용기 있는 일이고, 그런 사람들이 더 밝게 빛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짓게 된 이름입니다.

◇ 김양원> 스텔라, 별처럼. 라틴어로 별을 의미하는데, 이렇게 별처럼 사람들이 두려움 피하고, 용기 있기 별처럼 빛나기를 바란다, 이런 뜻에서 스텔라재단이라는 이름을 지으셨다고 하고요. 스텔라재단에서는 앞서서 우울증 개선 캠페인, 이런 것을 하고 계신다고요? 조금 더 자세히 소개를 해주시겠어요?

◆ 조재훈> 사람이 언제 만족감이나 이런 것을 느낄까, 했을 때 많은 요소가 있겠지만 그거를 저희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추려봤을 때 운동과 그리고 스피킹이라고 생각을 해서 주로 월 단위로 같이 뛰는 행사를 마련하고요. 그리고 스텔라 갈라라고 해서, 갈라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이 턱시도를 입고, 드레스를 입고, 이런 것을 생각하는데요. 그 갈라파티가 저는 스텔라에서 꼭 이뤄내고 싶은 저의 목표 중 하나에요. 왜냐하면 갈라쇼에는 사람들이 옷을 멋있게 입고, 드레스업을 하는데 그곳은 마치 시상식처럼 성공한 사람들이 올라가는 자리로만 여겨지는데, 특히 우울증이나 자살에 관한 인식 개선은 말하는 사람들이 수치심과 그런 것을 느끼는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용기 있는 자리이고, 그리고 그만큼 성스러워야 하는 자리라고 표현을 하고 싶어요. 그래서 그런 행사를 기획하고, 준비하고 있는 단체입니다.

◇ 김양원> 지난 9월 10일이 세계 자살예방의 날이었는데, 이때 이 스텔라재단에서 한국 최초로 ‘알 유 오케이(RUOK)’라는 행사를 진행하셨더라고요. 어떤 행사였습니까?

◆ 조재훈> 말 그대로 너 괜찮아? 하는 말이었어요. 이거는 호주에서 시작된 행사였는데, 알 유 오케이 행사의 취지는 우울증이나 자살을 겪을 그런 사람들만을 위한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을 위해서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더 강조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만약에 제가 힘들 때 제 주변 친구들이 저를 위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그러니까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그 사람을 도울 수 있고, 의사나 전문가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그 주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가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것을 알려주는 그런 행사였기 때문에 되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인식개선 활동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 김양원> 너무 좋은데요? 보통 우리나라의 자살예방 정책이나 이런 것들의 문제점이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다 보니까 우울감을 느끼십니까? 그러면 이렇게 하십시오, 그 개인한테만 자꾸 어떻게 대처하라는 말을 하잖아요.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주변 사람이 조금 이상한데? 하고 느낄 때 가족이나 친구, 그 주변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손을 잡아주느냐, 어떻게 말을 한 마디 해주느냐가 그 사람을 정말 지옥에서 구할 수도 있고, 아니면 손을 놓쳐버릴 수도 있는 그런 상황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거든요. 지금 말씀하신 것을 들어보니까 참 좋은 컨셉인 것 같아요.

◆ 조재훈> 네, 오늘 저는 유가족으로서 나왔는데요. 저는 6년 전에 어머니께서 우울증으로 자살을 하셨어요. 그런데 그거에 대해서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돌아가신 분을 제가 이 방에서 1000일을 울더라도 그분이 다시, 어머니께서 살아나시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하고 제가 억만장자가 돼서 100억의 자산이 있더라도 죽은 사람을 다시 살려내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학생이었고, 개인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생각했었는데요. 그런 알 유 오케이 데이 같은 경우에는 민간인들이 직접적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의미여서 전문가나 상담 직종이 아닌 개인도 충분히 주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하는 그런 희망을 조금은 보게 됐던 것 같아요.

◇ 김양원> 제가 여쭤보려고 했는데, 먼저 말씀을 해주셨어요. 나는 자살 유가족이다, 먼저 말씀하셨어요. 어머니가 6년 전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고, 그때 학생이었고, 그런 일을 겪었다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때 얘기, 제가 여쭤봐도 될까요?

◆ 조재훈> 제가 유가족이다, 이렇게 먼저 말씀을 드린 건 이거에 대해서 표현을 해야 한다고 하면 빨리 표현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해요. 감출 수 없다면 미리 얘기를 하고, 거기에 대해서 약점은 드러낼수록 강해진다고 생각하거든요.

◇ 김양원> 잠깐만요. 지금 감출 수 없다면, 또 약점이라면,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어머님이 그렇게 돌아가신 게 감춰야 하거나 약점이라고 생각해보신 적이 있는 거예요?

◆ 조재훈> 그럼요. 예를 들면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공부를 못한다고 도움을 구해야 잘하는 사람이든, 선생님이든 도와줄 텐데, 아픔이 있는데 그것을 감출 수밖에 없는 그런 환경이다 보니까 그 아픔을 가지고 살게 되더라고요. 그러면 그 아픔은 어디론가는 표현이 될 텐데, 그게 내면으로 잠적된다면 끊임없이 아플 테고, 그게 다른 식으로 표출이 된다면 또 사회적으로 이상하게 보일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거는 개인이 먼저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 김양원> 그때, 군에 계셨다고. 군인이셨잖아요. 군에 계시다가 그 소식을 듣고, 어머니 소식을 듣고 장례식에 가신 거죠?

◆ 조재훈> 네. 군에서 그때 당시에 장병들이 북한에 어떤 모습에 대해서 비판적인 발표를 하는 날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저의 단의 대표로 갔고, 3박4일 휴가가 보장될 수 있는 그런 자리였는데, 제가 다른 발표자들을 미리 봤어요. 이 정도면 입상은 할 수 있겠다는 부푼 마음으로 발표를 하려고 했었고, 그 전전날에 부모님한테 이제 나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발표 연습 잘하고 있다고 그렇게 어머니와 통화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갑자기 발표 제 앞 순서를 앞두고 갑자기 대장님께서 재훈아, 이렇게 부르는 거예요. 뭘 주셨는데, 휴가증인 거예요.

◇ 김양원> 발표도 안 했는데?

◆ 조재훈> 네, 벌써 휴가를 받는구나, 발표 들어보시지도 않고 휴가를 주시네, 하고 어리둥절하면서 이게 뭐에요? 하니까 대장님께서 빨리 짐 싸고 나오라고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느낌이 이상해서 나가 보니까 어머니께서 굉장히 편찮으시다고, 빨리 지금 병원으로 가보라는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어머니께서 왜 편찮으시지? 그리고 왜 휴가를 주는 거야? 너무 이상한 거예요. 그래서 가봤더니 어머니께서 돌아가셨고.

◇ 김양원> 그렇게 어머님을 보내고 비통한 심정으로 다시 군 복무를 하신 거예요?

◆ 조재훈>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고 전역이다, 이럴 수는 없는 거잖아요.

◇ 김양원> 사실 이게 사고로 가족을 한 순간에 잃는다는 게 굉장히 큰일인데, 군에서는 어떤 식으로 도움을 조금 받으셨어요? 그 당시에 제가 이런 표현을 써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멘붕’이라는 표현을 하잖아요. 완전히 무너졌을 그런 상황이었을 텐데.

◆ 조재훈> 특히 같은 병사들은 대부분 20대 초반 친구들이고, 어머니께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에 대한 얘기를 병사들도 잘 물어보지 않더라고요. 왜 돌아가셨는지. 그 친구들도 당황한 거죠. 그리고 잘 챙겨주시기는 하지만, 부대일지나 이런 게 있어요. 거기서 봐서는 안 될 것을 봤는데, 제가 관심병사로 표시가 되어 있더라고요. 괄호 해가지고. 거기서 제가 되게 뭔가 충격을 받았었어요. 왜 내가 관심병사지? 자살 유가족이라면 오히려 더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인 커버를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낙인을 찍은 느낌을 받았고요.

◇ 김양원> 어머님 돌아가시고 그렇게 군에 복귀했을 때 괜찮니? 하고 물어보기보다는 나를 관심병사로 낙인 찍었다.

◆ 조재훈> 그렇다고 저희 병사들이 저한테 못한 거는 아니에요. 저는 되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그 친구들이 너무 큰 힘이 되었어요. 하지만 그 사건이 있었을 때 조금 더 군에서 전문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다면, 그 친구들도 덜 당황하지 않았을까. 그 당황한 모습에 제가 덜 상처받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어요.

◇ 김양원> 그래서 군을 제대하고 이 스텔라재단은 언제 만드신 거예요?

◆ 조재훈> 2년 뒤에 네덜란드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중에 시작을 하게 됐어요.

◇ 김양원> 극복이라는 말을 제가 감히 말씀드려도 되나, 아직도 극복했다고 사실은 말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그런데 극복이라고 이야기할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렇게 조재훈 대표처럼 갑작스러운 그런 가족의 죽음이나 이런 일로 힘들어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고 싶으세요?

◆ 조재훈> 사실 극복은 지금도 하고 있는 중이고요. 유가족은 사실 평생 이거를 안고 가지 않을까 생각을 해요. 하지만 슬픔을 슬프다고 슬퍼만 하면 너무 슬프잖아요. 그렇게만 끝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특히나 자살로 잃은 가족이 있다고 하면 그 사람을 잃은 심정은 너무나도 참담해요. 그런데 우리가 그 사람을 위해서 1000일을 울고, 100억을 번들 그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그 죽음을 저는 받아들이는 게 되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리고 그 죽음을 통해서 배운 그 아픔을 앞으로 본인의 삶과 남은 가족의 삶을 위해서 더 행복하게 살 노력을 하는 게 돌아가신 분과 그리고 본인을 위해서도 더 건강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양원> 네, 지금까지 스텔라재단의 조재훈 대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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