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스] 日강제동원 진상규명기관 없앤 건 일본 혀 안에 가시 빼준 격

[오뉴스] 日강제동원 진상규명기관 없앤 건 일본 혀 안에 가시 빼준 격

2020.02.21. 오후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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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최형진의 오~! 뉴스]

□ 방송일시 : 2020년 2월 21일 금요일
□ 진행 : 최형진 아나운서
□ 출연 :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의 연구위원

- <반일 종족주의> 반론 펴낸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
- '강제동원', 역사성을 담은 포괄적 용어
- 일제 강제 동원 인력, 일본 공식 780만(실제 200만) 추정
- 노인, 아이, 여성 등도 강제노역장으로...
- 식민지에 대한 차별 없었다는 <반일종족주의>의 논지는 몰상식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형진 아나운서(이하 최형진): 2부는 '오! 인터뷰'로 이어집니다. 코로나19에 온 신경이 쏠려있는데요. 다음 주 일요일이 3·1절입니다. 최근까지도 한일갈등 문제가 심각했는데요. 몇 달 전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이 논란이 됐을 때 저희 프로그램에서 한 번 모셨는데, 그때 <반일종족주의>를 비판하시면서 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책을 준비 중이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책이 드디어 나왔습니다. 그래서 오늘 다시 한 번 모셨는데요.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의 정혜경 연구위원과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의 연구위원(이하 정혜경): 안녕하세요.

◇ 최형진: <반일종족주의> 지난해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낸 책인데요. 이 교수가 '한국인이 일본을 원수로 보고 온갖 거짓말을 만들어내 퍼뜨리는 집단 심성'이란 의미를 담아 반일 종족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감정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이렇게 이해가 되는데요. 책에서는 자료를 근거로 여러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대중의 입장에서는 학자의 자료에 대해 세세한 반박이 어려웠던 분들도 많으셨을 것 같아요.

◆ 정혜경: 예, 그렇습니다. 그럴 듯하게 자료도 배치하고. 그런데 자료 내용에 대한 설명은 많이 틀려요. 그렇긴 하지만 자료도 배치하고 그러니까 일반 분들이 보시기에는 그럴 듯해 보이죠. 그래서 이번 기회에 저희도 많이 반성하게 된 게, 저희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가 대중서를 20권을 냈는데 여전히 좀 노력이 부족했구나, 시민사회와 이런 역사 문제에 대해서 나누려는 노력이 부족했구나. 이런 반성도 하게 됐습니다.

◇ 최형진: 그 반성의 일환으로 책이 나온 거군요. 이번에 박사님께서 활동 중인 일제강제동원 평화연구회에서 낸 책 역시, 자료를 바탕으로 <반일종종주의>에 담긴 내용을 짚어보는 책입니까?

◆ 정혜경: 저희가 아주 실증적으로 하나하나 짚었는데요. 그런데 <반일종종주의>는 다섯 가지 주제로 돼 있어요. 노무동원, 병력동원, 위안부 동원, 식민지 근대화론, 그리고 한일협정 문제 다섯 가지인데 저희는 그중에서 노무동원, 병력동원, 한일협정 문제에 대해서 조목조목 한 번 짚어봤습니다.

◇ 최형진: 그중에서 오늘 강제동원과 관련된 내용 짚어보려고 하는데요. 먼저 지난번에 나오셨을 때 강제동원, 강제징용, 강제노역 다양한 용어 중에 강제동원이 포괄적인 표현이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오늘 처음 듣는 분들을 위해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 정혜경: 그럴까요. 강제징용은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민중들이 줄곧 사용하던 용어예요. 또 강제노역은 그중에서 노동실태, 열악한 노동실태를 강조하는 건데 두 가지 용어 다 공식적인 용어는 아니고 특히 열악한 노동실태를 강조하는 의미고요. 거기에 비해서 강제동원은 출발할 때부터, 끌려가서 일하고 돌아올 때까지 모든 과정을 포괄적으로 담고 또 한국의 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식적인 용어이기도 합니다. 

◇ 최형진: 더 크고 포괄적인 내용을 담은 용어군요. 당시 일본에 동원된 인력은 어느 정도나요?

◆ 정혜경: 지금 일본 정부의 공식통계가 있는데요. 그 통계에 의하면 연인원, 한 사람이 여러 번 간 경우도 있으니까. 연인원이 780만명이라고 보고요. 그중에 학자들이 실제 인원이 얼만가라고 추산을 해보면 200만명 정도라고 보는데요. 그렇게 해도 당시 인구의 10% 정도니까 상당히 많은 숫자죠. 

◇ 최형진: 일본 정부의 공식통계인데 사실이라고 봐야 할까요?

◆ 정혜경: 일본 정부가 그것을 공식적으로 내놓은 것이기 때문에 가장 공신력은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최소의 숫자라고 봐야 하는 거죠.

◇ 최형진: 그렇죠. 아이들과 여성, 또 소수 약자도 있었습니까?

◆ 정혜경: 그게 원래 전쟁이 일어나면 아이들과 여성, 노인 이런 분들은 보호해야 할 대상인데 오히려 일본에서는, 특히나 조선인 여성, 아이들, 노인들은 강제노역장으로 내몰았어요. 그러니까 철도공사장, 수력발전소, 탄광사 이런 데서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일을 했는데요. 이러다 보니까 아이들은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없고, 여성이나 노인들도 마찬가지로 자기를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어서 주로 사망하거나 사고가 굉장히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에서는 아까 말씀드린 공식통계에 이런 분들의 이야기는 담지 않았어요.

◇ 최형진: 그건 왜일까요?

◆ 정혜경: 그러니까 아이의 그것은 그냥 공식적으로 자기네가 동원하지 않은 걸로 치부한 거죠.

◇ 최형진: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 일부 학자들이 <반일종족주의>라는 서적을 통해서 일제 강제동원에는 '강제성이 없었다' 이런 주장을 하고 있잖아요?

◆ 정혜경: 예. 이분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이 논지 자체가요. 일제시기 자체가 민족차별이 없는, 동등한 국가였다는 그런 것에서 출발해요. 그렇기 때문에 당시에 같은 나라였는데 자기 나라 전쟁에 나가서 도와주는데 뭐가 그것이 강제성이냐, 라고 주장하는 거죠. 출발 단계부터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죠. 강제병합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주장이 아닌가 싶습니다.

◇ 최형진: 식민지에 대한 차별이 없었다는 것 자체가 사실,

◆ 정혜경: 예, 몰상식한 거죠.

◇ 최형진: 이미 2015년에 일본 역시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태평양전쟁의 강제동원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잖아요. 이 또한 부정하는 겁니까?

◆ 정혜경: 예, 아이러니한 게 뭐냐면, 아이러니보다 완전히 모순이죠. 2015년에 독일 본에서 열린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 대표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는데 그 다음 날 일본 정부가 바로 부인을 해요. 그러니까 이게 한 나라인데 다른 의견이 나오는 것은 알 수 없는 거죠,

◇ 최형진: 참 정말 이해가 안 됩니다.

◆ 정혜경: 자기네들도 좀 낯뜨거웠을 것 같아요.

◇ 최형진: 몇 가지 주장을 짚어보겠습니다. 노무동원, 강제가 아닌 합법적인 것이었습니까?

◆ 정혜경: 그러니까 이 주장은 뭐냐면 법에 의해 동원했기 때문에 합법이라는 건데요. 법 자체가 강제로 동원하도록 만든 법이고, 국제노동기구의 규정에도 어긋난 것이었어요. 이게 1938년 4월에 국가총동원법이라는 법을 내는데 이게 전시수권법이에요. 그러니까 의회의 승인도 받지 않고 무단으로 인력, 물자, 자금을 다 동원할 수 있게 만든 법이거든요. 그런데 일본은 1932년에 국제노동기구 ILO에서 만든 강제노동협약에 자기네가 비준을 했어요. 그러니까 비준을 해놓고 스스로는 강제동원을 하는 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 법 자체가 문제가 있는 거죠. 그러니까 이 법에 의해서 한 거니까 합법이다, 라고 말하는 것은 또 이것 역시 전제가 잘못된 것이다. 저희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 최형진: 강제 연행설도 왜곡이라는 주장입니다.

◆ 정혜경: 그게 저희가 이 책에서도 상세히 다뤘는데요. 강제 연행설도 왜곡이라는 주장인데요. 당시에는 강제동원을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회유해서 데려가거나 아니면 강제로 연행하거나. 그런데 초기에는 회유해서 데려가는 방법도 됐습니다. 그런데 조금 진행된 다음에는 강제연행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공식 자료에 나와요. 예를 들면 업무 담당자들이 모여서 애로사항을 청취하는 자리가 있어요. 거기에 나온 걸 보면 우리는 강제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밤에 새벽에 낚아채지 않으면 이 사람들 다 도망가버리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지만 할당을 할당을 채우기 위해서는 우리도 강제로 해야 한다는 문구를 자기네들이 스스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강제연행설 자체에 대해서 없었다라고 하는 것은 자료를 열심히 보지 않은 그런 불성실한 학자의 태도라고 봅니다.

◇ 최형진: 일단 일본 정부의 공식 문서에서 인정하고 있으니까요. 아까 전에 회유라고 말씀하셨는데, 돈을 많이 벌 수 있다, 이런 식으로 회유하는 겁니까?

◆ 정혜경: 그렇죠. 일본에 가서 돈을 벌 수 있다. 이건 1939년에 먹혔어요. 첫 해에.

◇ 최형진: 그 이후에는 안 됐고요. 그러다 보니까 강제로 동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요. 일본인, 조선인 차별 없이 임금도 정상적으로 지불된 겁니까?

◆ 정혜경: 아까 말씀드린 대로 식민지 운영이란 자체가 차별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요. 이제 <반일종족주의>에서 차별이 없었다고 하면서 제시한 자료가 있어요. 에무카에 탄광의 임금대장인데 여기에도 보면 금액의 차이가 있습니다. 이건 왜 그러냐면 차별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설정해요. 탄이 많이 나오는 갱은 일본인에게 주로 들어가게 하고, 조선인을 탄이 잘 안 나오지 갱을 들어간다거나. 또 일본인은 들어갔을 때도 앞에서 선탄이라고 해서 고르는, 결정하는 이것을 하는 기술직이었어요. 기술직은 일본인이, 기술이 없는 직종은 조선인이 하기 때문에 당연히 차별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요. 일본인 자체가 다 그 당시 군대에 나갔기 때문에 기술직 몇 명 외에는 거의 사람이 없었죠. 대다수는 조선인이 일하고 있었는데 이 사람들에게 동등한 페이를 주면 그것이 운영될 수가 없죠.

◇ 최형진: 지금 탄광 이야기하셨는데, 공장이나 다른 부분에서도 차별이 많았겠네요.

◆ 정혜경: 그렇습니다.

◇ 최형진: 당시 조선인 청년들에게 일본은 하나의 로망이었다, 이렇게 주장을 하고도 있는데. 사실이 아닌 거죠?

◆ 정혜경: 그게 누구나 봐서 상식적으로 의심이 가는 게 뭐냐면 로망이었는데, 왜 부산에서 출발할 때 벌써 반 가까이가 탈출했는가 하는 거예요. 일본 정부의 공식 통계입니다. 사법성 통계에 보면 1939년에는 5.2%만 탈출했어요. 첫 해니까 모르고. 그런데 그다음 해는 37.2%, 계속 40% 가까이 탈출합니다. 로망이면 빨리 일본에 가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로망이 아니니까 부산까지 갈 동안에 기차를 타고 갈 동안에 다 탈출해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로망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본 정부의 공식 자료입니다, 역시.

◇ 최형진: 1943년 같은 경우에는 탈출한 분이 40%에 이르는데 그 정도면 빨리 도망가고 싶었다, 이거 아닙니까?

◆ 정혜경: 그다음에 일본에 도착해서도 탈출률이 거의 50%에 달합니다.

◇ 최형진: 그렇군요. 근로환경 역시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는데 이건 또 어떻게 보십니까?

◆ 정혜경: 당시에는 근로환경을 신경 쓸 여지조차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딱 이렇게 목표량을 설정해놓고 그것을 할당하는데, 그걸 맞추려면 여유가 없는 거죠. 예를 들면 사고가 나면요. 사람들을 구조하는 게 아니라 사고가 난 탄갱을 묻어버려요. 그다음에 옆의 탄갱을 얼른 파도록 하는 겁니다. 거기에는 일본인도 있었어요. 그랬고 물자가 부족하니까 탄광의 경우에 보면 나무를 갱목이라고 해서 파서 들어갈 때 버팀목을 세우는 게 있는데요. 버팀목을 세워야 하는데 나무가 부족하니까 앞에 있는 버팀목을 빼내서 굴이 무너지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다음에 <반일종족주의> 필자들은 이제 전기가 있어가지고 자동 컨베이어 시스템을 했다고 하는데 말이 안 되는 게, 전기가 부족해서 거기서 빼내야 하는 가스를 빼내질 못해서 가스 폭발 사고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안전사고에 신경을 쓸 여유 자체가 없었죠.

◇ 최형진: 우리 박사님 말씀을 듣다 보니까 <반일종족주의> 같은 책이 나오면서 오히려 반론할 기회도 생기고 관심을 국민들이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학자들 생각은 어떻습니까?

◆ 정혜경: 학자들은 이제 일부는 논평할 가치도 없다, 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저희 같은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논평하는 것이 시민들에 대한 예의라고 해서 대응하고, 이러고 있습니다.

◇ 최형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드립니다. 

◆ 정혜경: 제가 감사드립니다.

◇ 최형진: 일본이 실시하는 신친일파양성정책의 일환으로 이런 책이 쓰이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도 사실 듭니다. 책 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유튜브 채널에서도 이런 기조의 채널들이 인기를 끌고 돈벌이를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앞으로 우려가 되거든요.

◆ 정혜경: 그게 원래 역사는 거울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거울에 먼지가 덕지덕지 낀 것을 보고 있으면 저희가 제대로 된 모습을 못 보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책이 나오면 저희가 제대로 된 모습을 못 볼 수 있다는 게 있고요. 또 하나는 역사란 기능이 시비곡직, 옳고 그른 것을 가릴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거거든요. 그런데 왜곡된 역사를 접하다 보면 우리 시민들 스스로가 판단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어요. 그래서 객관적인 역사에 접하시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최형진: 사실 유튜브를 통해서 그릇된 역사관을 생성하는 그런 청소년들도 많거든요. 효과적인 대처방법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 정혜경: 제가 많은 분들에게 말씀드리는 건데요. 책이든지 드라마든지 어떤 역사콘텐츠든지 볼 때는 항상 기본적으로 필요한 게 ‘의심하라’입니다. 저게 맞아? 진짜야? 다른 걸 찾아보는 거죠. 찾아봐서 자기 생각을 가지고 판단하시는 능력. 그걸 키우시는 게 지금은 가장 우선적으로 시급할 것 같습니다.

◇ 최형진: 혹시 이런 극단적인 책이 나옵니다. 의심하면서 보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반대편 생각을 위해서는 어떤 행동을 하는 게 좋을까요? 반대 의견이 나온 책을 보든지, 아니면 다른 유튜브를 보든지 이런 게 좋을까요?

◆ 정혜경: 그렇죠. 그다음에 그렇게 왜곡된 것을 퍼뜨리는 데에는 댓글이라도 적극적으로 달아주시고, 이건 자료가 잘못되지 않았는가, 이런 문제제기도 하셔서 경각심도, 다른 분들 보시는 분들에게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 최형진: 실제로 자성의 목소리도 나오고 반성을 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런 책이나 자료가 나올 때 반박하는 어떤 자료나 책들이 많이 안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까?

◆ 정혜경: 지금 <반일종족주의>도 그렇고요. 지금 각종 유튜브에 대해서도 대응을 하려면 똑같이 유튜브를 만들어서 해야 하는데, 학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자기 연구에 아주 그냥 치밀하게 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대중적 활동을 좀 안 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대응이 좀 늦고요. 그래서 <반일종족주의>에 대한 것도 아직 반론서가 저희가 낸 <반대를 논하다> 이것 한 건 외에는 지금 나오지 않은 상황입니다.

◇ 최형진: 서두에 말씀하실 때 <반일종족주의>는 크게 5가지 주제라고 말씀하셨는데, 반박을낸 책은 3가지 주제로 낸 반론서라고 하셨습니다. 추후에는 나머지 2가지 반론에 대한 책을 더 내실 계획은 없으십니까?

◆ 정혜경: 지금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에서는 낼 계획은 없는데, 다른 연구자 분이 지금 위안부에 대한 것은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고요. 식민지 근대화론을 포함한 일제시기 전반에 대한 것도 지금 또 다른 연구자 분께서 준비하고 계신다고 들었어요. 그다음에 또 동북아역사재단에서는 전체 식민지 시대, 일제강점기 전체에 대한 연구총서와 교양서, 이런 것 등을 낼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최형진: 그렇군요. 그런 노력이 많이 필요해 보입니다. 실제로 <반일종족주의> 같은 책들은 왜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 정혜경: 그러니까 이분들은 학문 외적인 의도로써 이걸 하는 것이죠. 연구자란 이름은 갖고 있지만 연구 목적 이외의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여기서 주장하는 ‘종족주의’라는 것이 친일을 했으면 종족주의라고 붙이지 않았겠죠. 그런데 반일을 했기 때문에 종족주의라고 붙이는 거고요. 그다음에 우리 책에서도 그것을 강조했지만, 나치가 했던 홀로코스트의 잔학한 것에 대해서 1980~1990년대 유럽에서 굉장히 그것을 부정하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면 그때는 이제 홀로코스트의 피해자들이 돌아가시고 계셨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너희가 증거가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해서 반론을 그쪽에서 반박하는 역사 부정을 하는 것이거든요. 여기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우리 피해자 분들 거의 다 돌아가시고 계시거든요. 그러니까 이제는 너희가 증거가 없잖아, 이렇게 생각하고 역사를 부정하는. 그러니까 굉장히 연구자로서 해서는 안 될 행위라고 생각해요. 더군다나 당당하다면 일본의 자금을 받는 그런 행위는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데 그런 것까지 하면서 반일을 주장하는 것은 참 문제 같다고 보죠.

◇ 최형진: 그렇군요. 조금 우스갯 질문인데, 만약에 반박서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또 다시 이 반박에 대한 반박을 하는 책을 낸다면, 또 다시 반박할 생각이 있으십니까?

◆ 정혜경: 그럼요. 저희는 반박을 준비가 다 돼 있습니다.

◇ 최형진: 강제동원 진상 규명이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정치적으로 변형됐다, 이런 지적도 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 정혜경: 예, 그게 정치적 변형이라는 표현보다는 정치적 외풍을 좀 타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하지 못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을 해요. 아까 홀로코스트 말씀도 드렸지만 이스라엘에서는 1953년부터 야드바셈이라고 하는 정부기구를 만들어서 지금까지 강제노동과 홀로코스트에 대해서 진상규명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진상규명기관 설립한 것도 2004년인 데다가, 계속 이렇게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침이 달라졌어요. 그러다 보니까 실제로 진상규명을 하게 된 기간은 2~3년이고 나머지는 다 민원처리 기관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좀 정치적 외풍에서 독립적인 활동을 못한 것이 안타깝고요. 그나마 또 2015년에는 문을 닫았거든요. 그러니까 일본에게서 보면 혀 안에 있는 가시를 빼준 거죠, 우리 스스로가.

◇ 최형진: 그렇군요. 지금 진상규명 작업이 2~3년 정도밖에 하지 못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계속 지침이 달라지고 사라진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정혜경: 그래서 제가 여러 번 강조하는 것이 지금이라도 진상규명을 할 수 있는 법은 살아있습니다. 다만 이제 진상규명의 기간을 중간에 놓은 것이거든요. 법 개정 두 가지만 하면 되는데 그게 국회에서 지금 법안이 나와 있어요. 김동철 의원과 여러 의원들께서 법안을 내셨는데. 지금이라도 법안을 통과시켜서 진상규명기능을 회복하면 이것은 이제 우리에게는 피해자성을 회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고요. 일본은 일본대로 자신들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가는 일본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에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최형진: 지금 정부, 그리고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고요.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이는데. 국민들은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 정혜경: 아까 말씀드린 대로 지금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자체가 저는 큰 노력이라고 생각해요. <반일종족주의>라는 책 이상한 것 같아, 라는 정도라도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그러면 여기에 대한 것의 반론은 뭐가 있지? 하면서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 자체가 크게 저는 도움이 된다고 보고요. 그다음에 저는 <반일종족주의>라는 책을 처음에 봤을 때 가장 가슴 아팠던 것은 지금 있는 피해자와 유족 분들에게 어떻게 그렇게 상처를 드릴 수가 있는가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이 기회에 아직도 많은 피해자와 그 아픔을 같이 하시는 유족이 있다는 걸 한 번만 기억해주신다면 더 큰 노력을 하고 계시는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 좀 더 나아간다면 동네 지역에 있는 박물관 같은 데 가셔서 지역에 있는 강제동원의 실상도 확인해주신다면 더 감사하겠습니다.

◇ 최형진: 정말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짧게 여쭙겠습니다. 청소년들에게도 한마디 해주시죠.

◆ 정혜경: 청소년들에게는 저는 늘 드리는 말씀이, 아까도 의심하라고 했는데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것보다는 왜 그래? 그런 항상 의문부호를 가지고 사회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서 생각하는 힘을 키웠으면 좋겠습니다.

◇ 최형진: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죠. 감사합니다.

◆ 정혜경: 감사합니다.

◇ 최형진: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의 정혜경 연구위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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