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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1년 8월 9일 (월요일)
□ 진행 : 최형진 아나운서
□ 출연 :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형진 아나운서(이하 최형진): 여름이면 옷장에서 꺼내는 '반팔티셔츠', 지금도 입고 계신 분들 많으실 텐데요. 매일 아무렇지 않게 써오던 '반팔'티셔츠 속에 차별적 표현이 들어 있다고 합니다. 다들 쓰는 말인데, 아무렇지 않게 써 오던 말인데 어떤 차별 표현이 들어 있다는 걸까요? 슬기로운 언어생활, 오늘도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 신지영 교수(이하 신지영): 네, 안녕하세요.
◇ 최형진: 반팔이라는 게 우리가 요즘 매일 입는 반팔 티셔츠를 말하는 거죠? 여기에 어떤 차별적 표현이 들어 있다는 건가요?
◆ 신지영: 저는 팔 다 있죠. 반팔,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 최형진: 저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전혀 없었는데요.
◆ 신지영: 팔이 반팔이라면, 팔이 반이라는 뜻 아니에요?
◇ 최형진: 그렇죠.
◆ 신지영: 사실 제가 입고 있는 것도 지금 사실 소매가 반이지 팔이 반인 건 아니잖아요. 소매의 길이에 대한 얘기인데, 팔의 길이로 이야기 하니까 조금 불편해지지 않네요?
◇ 최형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 신지영: 우리가 보통 반바지라고 표현하는 거 있잖아요. 바지 길이가 반이란 뜻이죠. 반다리, 이런 말 안 쓰잖아요.
◇ 최형진: 듣고 보니까 그렇습니다.
◆ 신지영: 그러니까 사실은 반팔이 아니고 반소매라고 표현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사실 자료를 찾아보니까 60,70년대는 물론 80년대 초반까지 반소매라는 말이 반팔이라는 말보다 훨씬 더 많이 쓰였더라고요.
◇ 최형진: 예전에는 반소매라는 단어로 많이 사용이 됐군요.
◆ 신지영: 그렇죠. 그러다가 한 84년, 90년대에 압도적으로 갑자기 반팔이라는 말이 훨씬 더 많이 쓰이게 됐던 것 같아요.
◇ 최형진: 반팔 티셔츠 같은 경우에 사실 환자나 장애를 희화화한다기보다는 사실 잘 몰라서 사용하는 것 같거든요. 문제인지 저도 잘 몰랐어요.
◆ 신지영: 맞습니다. 저도 사실은 인식을 못했어요. 그런데 어떤 글을 읽다가 신체장애를 가지신 분께서 반팔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지고 깜짝깜짝 놀라고 상처가 된다는 이야기를 쓴 걸 봤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아, 반팔이라는 말을 우리가 쓰는 거 자체가 누구에게는 상처가 되고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겠구나. 그런데 우리는 반소매라는 말을 가지고 있잖아요. 반소매라는 말을 쓰면 되지 왜 우리가 반팔이라는 말을 써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 최형진: 말씀을 들어보니까 차별적인 표현 같네요.
◆ 신지영: 그렇죠. 사실은 말이라는 건 저는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두 사람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말하는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쓸 수 있지만, 듣는 사람이 불편하다면 그건 그 거리를 좁혀가야지 우리가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는 거 아닐까요? 그러니까 누군가가 반팔이라는 말을 들어서 좀 불편하다, 이런 생각을 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조금 불편해도 안 쓰던 말이니까 고쳐야겠죠. 게다가 우리는 반소매라는 말을 갖고 있으니까 반소매라는 말을 쓰는 게 좋겠죠.
◇ 최형진: 오늘 굉장히 의미 있는 주제를 교수님께서 가져오셨으니까, ‘슬기로운 언어생활’에서 사실 이런 부분 선도하고 있지 않습니까. 딱 오늘부터 반팔 버리고 반소매로 하시죠.
◆ 신지영: 네, 그렇게 써 가면 우리가 조금 불편해도 계속 의식하면, 말이라는 건 계속 쓰면 굉장히 익숙해지면서 문제가 없어지거든요. 반소매는 세 음절이고 반팔은 두 음절이니까 짧은 말을 써야지 하는 생각이 아마 무의식중에 있어가지고 그렇게 써왔던 것 같은데요. 그냥 우리가 반소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왜냐하면 반팔이라는 말은 팔이 온팔과 반판이 있다는 정상성, 그러니까 우리가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팔이라는 건 이래야 되는데 그것에 미치지 못하니까 반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정상성에 기초한 거기 때문에 소외를 가져올 수 있고, 자연스럽게 차별과 연결되는 거고요.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표현이니까 반소매라는 표현으로 바꿔서 이야기해보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 최형진: 좋습니다. 이제부터 저도 무의식중에 그냥 반팔이라고 했었는데, 앞으로는 반소매라는 단어로 표현하겠습니다. 또 이런 비슷한 사례가 있나요?
◆ 신지영: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우리 주변에 있는 말들이 차별적이고, 우리가 원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 그 전에 사람들이 아무 의식 없이 썼던 단어들을 우리가 그냥 배운 거기 때문에 배운 대로 쓴 단어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 말들을 고쳐나가는 거, 이게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는, 우리가 좀 불편해도 고쳐서 물려주면 후대 사람들은 덜 불편해지니까요. 이런 말들이 우리 주변에 굉장히 많은데요. 반팔처럼 외발자전거도 비슷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 최형진: 바퀴 하나 있는 거.
◆ 신지영: 외바퀴자전거, 한바퀴자전거, 이렇게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외발자전거라고 하면 누군가는 굉장히 듣기가 불편해질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그런 말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가진 것 자체가 우리 생각의 진보를 가져온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 최형진: 외발자전거 같은 경우는 외바퀴자전거, 혹은 한바퀴자전거 이렇게 표현하면 되겠네요. 그런데 이렇게 일상 속에서 알게 모르게 사용하는데 고쳤으면 하는 단어가 많지 않을까요? 생각을 못하고 있다가요.
◆ 신지영: 많을 것 같은데요. 청취자 의견을 들어봐도 좋을 것 같아요.
◇ 최형진: 반팔과는 다른 상황이지만 그런 상황도 있잖아요. 결정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두고 ‘결정장애’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걸 고쳐보자는 의견을 들었어요. ‘반팔’, ‘결정장애’처럼 일상 속에서 고쳤으면 하는 단어 있으면 애청자 의견 받아보겠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서 고쳐볼까요.
◆ 신지영: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노력하고 공부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이런 거 아닐까요.
◇ 최형진: 교수님, 애청자 의견이 왔는데요. 벙어리장갑.
◆ 신지영: 맞습니다. 좋은 의견이에요. 벙어리장갑도 우리가 무심코 썼는데, 그건 차별표현이죠. 그래서 벙어리장갑이라는 말을 쓰지 말고, 손모아장갑, 이런 식으로 쓰는 게 어떨까, 이런 얘기를 하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게 어떠한 이름을 갖더라도 벙어리장갑보다는 낫지 않을까 더 좋은 이름으로 바꿔 나가보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슬기로운 언어생활’ 청취자의 자세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 최형진: 앞서도 말씀 드렸지만, 결정장애, 습관처럼 사용하지만 누군가에겐 상처를 주는 말이잖아요. 장애, 질병과 관련된 용어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
◆ 신지영: 결정장애 같은 경우는 장애를 희화화하죠. 사실은. 너 결정장애야,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희화화시키는 거거든요. 그러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굉장히 불편해집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 안 쓰는 게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해보고요. 습관적으로 장애라는 말을 남발하는 거 오용하고 남용하는 거 별로 안 좋은 것 같고요. 그리고 사실은 우리가 일상에서 굉장히 많이 쓰는 말이 있어요. 치매라는 말을 쓰는데, 병명으로도 치매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그리고 ‘너 치매니?’, 이런 식으로 말을 하는데요. 사실은 이 치매라는 단어가 어떤 의미를 가지냐면, 치(癡)자가 어리석다는 뜻이고, 매(呆)자도 어리석다는 뜻이에요. 사실은 인지증에 문제가 생기는 거거든요. 인지저하증, 이렇게 이름을 바꿔불러야 되지 않을까, 그 사람이 어리석고 둔하다, 이런 뜻으로 말하는 것은 병의 이름으로도 적당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실제로 한자 문화권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하고 거의 다 병의 이름을 바꿨습니다. 대만은 2001년 ‘실지증(失智症)’으로, 일본은 2004년 ‘인지증(認知症)’으로 이름을 바꿨어요. 그 다음, 홍콩과 중국은 2010년 ‘뇌퇴화증(腦退化症)’이라고 이름을 바꿨는데요. 우리나라에서도 2006년 치매 명칭을 변경하자고 하면서 인지저하증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있었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50% 정도 바꾸자, 전문가들은 70% 이상 문제의식을 갖고 개정을 하자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병명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안타까운 일이고요. 조만간 우리도 치매라는 말 대신에 인지저하증이라는 말로 바꿔야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 최형진: 이런 단어를 바꾸는 게 필요해보이고요. 애청자께서 질문 주셨는데요. ‘장애우라고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맞나요?’
◆ 신지영: 장애우라는 말은 누가 누구에게 할 수 있는 말인가, 이런 생각을 해보면요. 그리고 ‘우’라는 게 친구라는 말인데, 친구는 일방적으로 정하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어떤 분은 장애우라고 표현하면 그 사람 입장에서는 ‘난 저 사람 아직 친구 아닌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 다음에 장애인이 스스로를 지칭할 수가 없어요. 장애우는. 그러면 이상한 말이죠. 그러니까 그 말을 왜 쓰시 시작했는지는 알겠지만, 장애인들이 장애인을 스스로 지칭할 수도 없고 친구라는 것은 일방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닌데, 이런 것을 생각한다면 장애우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최근에는 장애우라는 말을 쓰지 않죠.
◇ 최형진: 그럼 가장 적합한 용어는 뭘까요. 애청자 분들께 소개해주시죠.
◆ 신지영: 장애인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고요. 장애인들이 장애인이라는 말이 좋다고 하니까요. 스스로를 이야기 할 때도, 장애인단체, 장애인협회, 이런 말을 쓰니까 장애인이라고 하면 좋은데, 문제는 장애인에 상대되는 사람들은 뭐라고 지칭할까라고 했을 때, 비장애인이라는 말을 쓰면 좋겠고요. 일반인, 심지어는 정상인, 이런 말을 쓰는데 그 말은 차별적인 거죠. 그러니까 비장애인이라는 말을 쓰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번 나눠봤으면 좋겠습니다.
◇ 최형진: 애청자님이 의견 주셨습니다. ‘앉은뱅이책상도 차별적인 언어였네요’라고 하셨고요. 이 주제와 부합할지 모르겠습니다만, ‘함부로 당 떨어진다고 말하는 사람 많은데 듣는 당뇨 환자들에게 불편해요’, 라고 하셨거든요.
◆ 신지영: 그럴 수 있네요. 당 떨어진다는 말,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하는데 그 말도 사실은 당뇨병 환자들한테는 굉장히 상처가 될 수 있죠. 사실은 이건 절박하고 목숨이 달린 일인데, 결정장애랑 똑같은 선상에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또 배우는 거죠. 언어감수성은 이렇게 서로 배울 수 있는 거죠.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세상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기 때문에 듣는 사람 입장에서 어떻게 들리느냐를 함께 나누면서, ‘아, 불편하게 들려? 그럼 우리 그렇게 말하지 말자’, 이렇게 하는 게 우리가 원하는 사회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최형진: 또 이런 의견도 있습니다. ‘택시 잡는다’는 표현이 마치 범죄인으로 묘사하는 것 같다는 말씀도 주셨네요.
◆ 신지영: 그렇네요. 택시 기사님들 입장에서는 ‘택시 잡다’ 그러면 ‘내가 잡히는 거야?’,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우리는 택시라는 건 물건이니까 잡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지만 택시를 잡다는 말보다는 다른 말이 더 좋겠다고 하면, 그거 가지고 우리가 더 사회의 물결을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최형진: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 ‘눈 뜬 장님도 바꾸었으면 합니다’, ‘절름발이라는 용어도 순화해서 써야 하지 않을까요’, ‘주린이라고 해서 어린이를 차별하는 말인 것 같아요’, 라고 하셨습니다.
◆ 신지영: 저희 방송 열심히 들어주신 분들인 것 같습니다.
◇ 최형진: 또 의견 많이 보내주시는데요. ‘듣고 보니 진짜 차별이 있는 단어였어요. 또 하나 배웠습니다. 아이 앞에서 반소매 셔츠라고 말해야겠어요’
◆ 신지영: 박수 쳐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아까 절름발이라는 이야기 우리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이야기하셨는데요. 사실 우리가 원치 않지만, 그런 말을 언론에서 신문지상에서 혹은 정치평론가들 사이에서 이런 말 굉장히 많이 쓰고 있는데, ‘레임덕’이라는 말 있잖아요.
◇ 최형진: 그게 본뜻이 다리를 저는 오리라는 뜻 아닌가요?
◆ 신지영: 맞습니다. 절뚝거리는 오리라는 뜻이고요. 그 다음에 파행을 겪고 있다, ‘국회가 파행을 겪고 있다’, 이런 말 있잖아요. 국회가 열릴 때마다 우리가 굉장히 많이 들어서 마음이 불편한데, 사실 파행이라는 말 그 자체도 절뚝거리는 걸음을 의미해요. 레임덕에 대해서도 외래어고, 파행은 한자어고, 그렇기 때문에 외래어, 한자어는 우리에게 감각이 별로 없죠. 그렇다 보니까 우리가 원하지 않는 그런 표현들을 쓰게 되어요. 레임덕이라는 말을 쓰면서 절뚝거리는 오리라는 뜻을 알았다면, 진즉 없어질 말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는데요. 우리 일상에서 절름발이 국회, 이런 말 없어졌거든요. 더 이상 그런 말 안 쓰죠. 그런데 얼마 전까지 이런 말을 썼단 말이죠. 우리의 민감도가 높아지고 언어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이런 말 쓰지 말자고 했던 우리니까, 레임덕이나 파행이라는 말이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쓰지 말자고 했을 거예요. 그런데 외래어도 어려운 한자어다보니까 이런 걸 잘 몰라서 원치 않는 말을 막 해왔던 거죠. 따라서 우리가 외래어나 어려운 한자말, 이런 거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의미가 바로 그 뒤에 숨어있는 거죠. 우리가 모두 다 알 수 있는 말을 쓰자, 우리도 원치 않는 말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쓰는 것보다는 이런 말을 안 써서 우리가 원하는 말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는 거죠.
◇ 최형진: 사실 아까도 어느 애청자 분께서 주셨지만 앉은뱅이책상 같은 경우는 사용이 많이 줄어들었는데, 사실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계속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 신지영: 맞습니다. 마무리하는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어요. 우리가 말을 왜 할까, 말이라는 건 들리기 위해서 하는 거죠. 상대에게 들리기 위해 하는 게 말이에요. 상대가 불편하고 원치 않는다면, 우리가 말을 바꿔야죠. 들리는 사람이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면 내 말을 바꾸는 게 당연한 거 아닐까요? 우리가 이렇게 생각한다면 내 말이 불편하다고 하는 상대에게 내 말을 바꿀 수 있는 당연한 용기가 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 최형진: 함께 이야기 나눠본 단어들, 같이 바꿔서 사용해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신지영: 고맙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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