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사망자의 공영장례. 현장 자원 활동가로 직접 취재한 대학생들 이야기(남궁현, 이승우)

무연고사망자의 공영장례. 현장 자원 활동가로 직접 취재한 대학생들 이야기(남궁현, 이승우)

2021.12.22. 오후 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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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3:00~14:00)
■ 진행 : 김혜민 PD
■ 방송일 : 2021년 12월 22일 (수요일)
■ 대담 : 남궁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이승우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김혜민의 이슈&피플] 무연고사망자의 공영장례. 현장 자원 활동가로 직접 취재한 대학생들 이야기(남궁현, 이승우)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미래 교육이 열리다, <런어스> 이 시간에는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며 꼭 생각하고 배워야 하는 주제들을 연세대학교와 함께 배워보는 시간입니다. 어제 제가 오프닝에 우리 청년들의 이력서에 행복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겼으면 좋겠다, 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오늘 런어스에서는 멋지게, 그리고 의미 있게 이력서 한 줄을 담아낸 두 청년과 함께 합니다. 제10회 디지털 저널리즘 어워드에서 대학 언론상을 수상한 두 분입니다. 직접 자기소개를 드릴게요. 누구부터 해주실래요.

◆ 남궁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이하 남궁현)> 저부터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남궁현이라고 합니다. 이번 <애도의 지역격차, 공영장례> 기사에 보도팀장으로 기획 및 현장 취재를 담당했습니다.

◇ 김혜민> 반갑습니다. 그러면 제가 남궁현 팀장님이라고 해야 할까요.

◆ 남궁현> 그렇게 말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 김혜민> 알겠습니다. 그리고요.

◐ 이승우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이하 이승우)>네 안녕하세요. 저는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재학 중인 이승우입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기획, 취재를 담당했습니다.

◇ 김혜민> 그러면 우리 승우 씨는 이승우 기자님으로. 두 분 사칭하시는 거 아니고요. 분명히 팀장과 기자로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셨으니까 제가 그렇게 부르는 걸로 하겠습니다. 두 분 다 지금 재학 중인 대학생이시고. 이번에 받은 상이 제10회 디지털 저널리즘 어워드예요. 이게 어떤 상이에요.

◆ 남궁현> 이게 한국 온라인 편집기자협회에서 주최하는 디지털 저널리즘 어워드라는 상인데 저희 기사는 대학생하고 대학 언론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 언론상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이 되었습니다.

◇ 김혜민> 아. 두 분이 함께 한 거예요.

◆ 남궁현> 저희 둘이 취재랑 기획을 맡았고 그다음에 홈페이지 개발, 인터렉티브 페이지 개발자 분이 있고 그다음에 전체적인 콘텐츠 기획을 해준 디자이너 친구가 한 분 있습니다.

◇ 김혜민> 예전에는 그냥 기사라 하면 취재 수첩 하나 들고 가서 취재하고, 쓰고, 녹음하고 이 정도였는데 지금은 홈페이지 개발자도 있어야 되고. 이 모든 사람들이 같이 기사 하나를 만들어내는 거군요.

◐ 이승우> 아무래도 조금 무거운 주제이다 보니까 저희가 어떻게 하면 독자들한테 잘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 김혜민> 어떻게 하면 이걸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을지 시각적으로도 그렇고 좀 다양한 데이터들도 쓰고 싶고 그래서 팀으로 움직였군요. 이 팀에 대해서 조금 소개를 해주세요. ‘포브’라고요.

◐ 이승우> 저희 팀 이름이 포브인데요. 사실 저희가 같은 학교 사진동아리 출신이에요. 연세대학교 사진동아리 출신인데 사실 시사나 보도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현 팀장이 저한테 보도 사진 찍으러 가자, 이렇게 해서 둘이서 보도사진을 찍으러 다니다가 이제 한 사람 두 사람 모이다 보니까 사진으로는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년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이렇게 기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 김혜민> 그렇군요. 그러면 사진 동아리에서도 풍경 사진이나 뭐 이런 선형적인 사진을 찍었던 게 아니라 좀 보도 사진을 찍었군요. 삶의 현장 가운데 문제점들을 드러낼 수 있는.

◐ 이승우> 그런 다큐멘터리 사진이나 보도 사진 같은 경우가 약간 무겁다 보니까 이제 다른 친구들한테 이렇게 해보자 하기가 좀 조심스럽게 부분이 있어서, 이제 따로 이렇게 좀 살짝 살짝 관심 있을 것 같은 친구들한테 제안을 했습니다.

◇ 김혜민> 그렇군요. 포브라는 팀이 이번에 <애도의 지역격차, 공영장례> 라는 보도를 준비했고 그 결과 큰 상을, 너무 영광인 제10회 디지털 저널리즘 어워드에서 대학 언론상을 수상을 했어요. 오늘 우리 연세대 학생 두 명과 함께하고 있는데요. 그러면 구체적으로 좀 어떤 주제로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는지 궁금해요.

◐ 이승우> 최근에 되게 무연고 사망이나 고독사 같은, 어떻게 보면 외로운 죽음이 사회적 문제로 많이 떠올랐는데 기존 보도는 대부분 그 죽은 분. 죽음 자체에 주목을 많이 했는데 저희는 이 부분을 좀 보다 보니까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해서 관심이 좀 많이 가고. 사실 이 죽음 이후의 문제를 기성 언론이 다루기에는 시간이 없는데 저희는 대학생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좀 시간과 열정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있어서 공영장례 제도를 중심으로 고인 곁에 있었던 유족과 지인들의 애도할 권리와 또 그와 관련된 격차들을 중심으로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 김혜민> 그렇죠. 기존 언론들은 어떻게 죽었는지, 이 사람들이 죽었을 때 상황이 어떤지. 거기에만 집중하는데 우리 대학생들은 그 사망 이후에 이분들이 어떻게 이 세상을 정리하는지, 그리고 그 정리를 바라보는 또 지인들의 반응까지 관심을 갖게 되셨어요. 특별히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으셨어요.

◆ 남궁현> 저희가 이 주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게 처음에 한 인터넷 언론사에서 올린 그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부고라는 걸 접하게 됐어요. 사실 언론사 홈페이지에 그런 부고가 올라오는 것도 되게 특이했는데 거기에 이제 거의 매일 두 분이나 고인의 성함, 거주지, 생년월일, 사인 같이 되게 자세한 개인 정보를 담은 부고가 올라오더라고요 저희가 그걸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뭔가 궁금증이 사실 생겼어요.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식은 어떻게 진행되는지 부고를 보고 찾아오는 분은 계신지, 이런 걸 좀 알아보고 싶어서 저희가 직접 공영장례 관련 업무를 진행하는 공영장례 지원 상담센터에 연락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제가 직접 교육을 받고 3개월 동안 공영장례 현장 자원 활동가로 활동하면서 취재를 진행했습니다.

◇ 김혜민> 직접 교육을 받고 활동까지 했어요?

◆ 남궁현> 네. 자원활동가의 자격으로 제가 20여 차례 정도 공영장례에 참여했는데요. 때로는 공영장례에 유족들이 참석하시는 경우에는 거기 활동가분들을 도와서 유족분들을 안내하거나 아니면 함께 관을 운구하기도 하고. 아니면 장례에 참석하시는 분이 안 계실 때는 제가 사회를 보거나 아니면 직접 대리상주가 돼서 고인의 장례를 치른 적도 있었습니다.

◇ 김혜민> 아니, 그냥 취재해도 되잖아요. 굳이 교육까지 받고 활동가로 활동한 이유가 있었어요.

◆ 남궁현> 아무래도 저희가 처음에는 인터넷으로 자료를 많이 찾아봤는데 그러다 보니까 이게 현장에서 직접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활동가분들이나 아니면 장례에 참석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 저희가 직접 현장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 김혜민> 와, 정말 기성 언론인으로 부끄럽네요. 사실 가장 마음 아픈 취재가 이제 고인의 유족들을 취재할 때거든요. 가서 제일 미련한 질문이 심정이 어떠십니까. 뭐 어떻겠어요. 슬프죠. 근데 전혀 모르는 분들한테 가서 그 질문하기가 쉽지 않은데 직접 교육을 받고 본인이 활동가로 활동하면서 그분들에게 마음을 여쭙고 그 숨은 이야기들을 끌어낸다는 건 그들을 향한 예의거든요. 정말 대단합니다. 어떤 교육들을 받아요. 그러면.

◆ 남궁현> 예를 들어서 장례 현장에서 어떻게 활동을 해야 되는지, 아니면 영구 사망자의 처리 절차에 어떤 게 있는지 다양한 교육을 받았고요. 활동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말이 있다면 그분들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애도하지 못할 때 그만둬야 된다는 말씀을 항상 하시거든요. 그와 같은 마음으로 계속 취재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 김혜민> 이게 그냥 너무 일상이 되어 버리고 건조한 일이 됐을 때에 이 활동을 그만둬야 한다. 그분들이 얼마나 투철한 직업의식과 윤리의식을 갖고 일하는지 느껴집니다. 어떤 기사들이 나왔을까요. 이 두 분과 팀을 통해서. 궁금해지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무연고 사망에 대해서 우리가 좀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무연고 사망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시죠.

◆ 남궁현> 무연고 사망자라는 말씀을 딱 들으면 사실 연고자가 없어서 돌아가신 분들만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무연고 사망자분들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이 되거든요. 첫째는 명칭 그대로 연고자가 없는 고인이 계시고요. 둘째는 연고자가 알 수 없는 고인이라고 해서 사망자의 신원이 확보되지 않아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연고자가 있지만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인데요. 사실 작년의 경우 전체 무연고 사망자 분들 중 70%에 해당하는 분들이 연고자가 있지만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한 경우에 해당되었습니다.

◇ 김혜민> 셋 다 너무 슬퍼요. 아니, 연고지가 없는 사람은 없죠. 세상에. 그런데 연고자가 아예 없는. 그러니까 출처가 불분명한. 그러니까 예를 들면 제가 기사에서 봤는데 우리 신생아 아동 중에 아픈 아동들인데 연고자가 없어서 계속 병원에 있다가 사망하는. 그런 친구들도 이 예가 되겠죠. 그리고 연고자를 알 수 없는 고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고자가 있지만 시신 인수를 거부하거나 기피하는 경우. 보통은 경제적 문제겠죠. 시신 인수를 포기하는 건.

◆ 남궁현> 네. 저희가 서울시에서 집계한 자료를 따로 봤는데요. 무연고 사망자의 가족들이, 연고자들이 이 시신 인수를 포기하는 사례가 대표적으로 관계 단절, 경제 문제 등이 언급되는데요. 그 중에서 울시의 경우에는 절반 가량이 고인의 시신을 포기하며 경제 관련 사유를 언급했습니다.

◇ 김혜민> 그렇네요. 또 그분들의 사연에 대해 함부로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참 마음이 아픈데. 무연고 사망에 대해서 우리 남궁현 팀장께서 설명을 해주셨고. 공영장례라는 건 뭘까요.

◐ 이승우> 공영 장례라는 건요. 기존에 일단 원래 무연고 사망자분들이 어떻게 이제 다뤄지셨는지를 알아야 되는데 원래 무연고 시신 처리 절차라는 게 있었어요. 이게 저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장례랑은 좀 다른데요. 보통 저희가 장례를 치른다고 하면 부고를 알리고 빈소를 마련해서 조문을 받는 이런 과정을 떠올리잖아요. 근데 무연고 사망자의 시신은 기존에는 장례 의식 없이 안치실에서 바로 화장되는, 일종의 처리되는 방식으로 그렇게 절차가 진행됐습니다.

◇ 김혜민> 처리, 그 단어가 너무 슬프네요.

◐ 이승우> 네. 이게 사실 매뉴얼에 나와 있는 단어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빈소 없이 바로 화장장으로 옮겨서 화장한다는 걸 무빈소 직장이라고 불렀는데요. 이게 이제 무연고 사망자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유족에 애도할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한계를 보완하고자 공영장례라는 걸 도입하기 시작했는데요. 서울시가 공영장례가 가장 활성화돼 있는데 서울시가 이걸 어떻게 정의하냐면, 무연고 사망자나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도 장례식 없이 처리되지 않도록 빈소와 장례의식 등을 지원하는 걸 공영장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김혜민> 그렇군요. 그래요. 이 땅에 다 목적이 있이 태어났다고 저는 믿는데, 물론 살면서 그 목적대로 다 이루고 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무 과정도 애도도 없이 세상을 떠나는 건 너무 슬픈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사회의 그런 문제에 대해서 이 두 청년들이 기사를 써서 우리에게 알려줬습니다. 그러면 취재하면서 발견한 가장 큰 문제점은 뭐였어요.

◐ 이승우> 저희가 이제 아까 현 팀장이 말을 하신 것처럼 장례 현장에도 20번 정도 가고 이제 여러 자료들도 분석을 해보니 문제점을 한 세 가지 정도로 정리를 할 수 있는데 첫 번째로는 무연고 사망자 유족들이 대부분은 사실 유족이 있는 거여서 돈이 없어서 시신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많이 발생을 하고 있는데. 이런 포기된 시신은 애도 기회 없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무빈소 직장으로 처리가 됩니다. 사실 기초생활 수급자의 경우에는 장제급여가 80만 원 정도 지급이 되는데 사실 우리나라 평균 장례비용이 2021년 기준으로 1380만 원 정도 되거든요.

◇ 김혜민> 턱이 없군요. 그럼.

◐ 이승우> 사실상 이 80만 원은 화장 비용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화장만 하고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사실은 무연고 사망자의 처리를 지원하는 것에 있어서도 무연고 사망자만 처리를 할 수 있게끔 되어 있어서 저소득층은 처리를 안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가족의 시신을 무연고 처리를 해야 되는 상황이 발생을 해요. 시신을 포기해서. 그래서 그런 경우에는 돈이 없어서 가족의 시신을 포기하는 경우가 생기는 거죠. 그런 경우가 있고. 이제 두 번째 문제는 공영 장례가 도입된 지자체가 있고 도입되지 않는 지자체가 있는데 전국의 지자체가 226곳인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제주도를 포함해서 228곳이라고 산정을 했는데, 그중에 133곳만, 59% 정도만 조례가 있는데. 그중에서 133 곳 중에서도 제대로 되는 데도 있고 안 되는 데도 있지만 어쨌든 조례가 적용되지 않는 기초자치단체의 경우에는 안치실에서 화장장으로 바로 가는 무빈소 직장 방식으로 처리가 되고. 세 번째 경우에는 시행되는 곳 중에서도 지역 격차가 좀 많이 발생을 합니다.

◇ 김혜민> 지역격차가 여기서도 발생하는군요.

◐ 이승우> 저희 같은 경우에 사실 장례식을 치른다는 것의 기준이 되게 모호하다 보니까 이제 저희가 일일이 133개 중에서 이미 파악되고 있는 25곳, 서울 제외하고 108곳에 한 곳 한 곳에 다 담당자한테 연락을 했어요. 전화로.

◇ 김혜민> 아, 대단하네요.

◐ 이승우> 그래서 확인을 해보니까 지자체마다 시행의 기준이 달랐는데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조례는 있지만 시행이 보류된 지자체가 있고, 그다음에 대상자가 발생을 하지 않아서 시행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곳이 있는데 이 같은 경우에는 인구수가 적어서 무연고 사망자가 없거나 아니면 도입 초기여서 발생하지 않은 경우였고. 세 번째는 이게 제일 많았는데 예산이나 인력이 부족해서 우리는 도저히 식을 취해줄 여건이 안 된다, 라고 호소하시는 분들이 있었고 네 번째는 무빈소 직장하고 장례 의식을 병행하는, 고인의 사정이나 아니면 지자체의 사정에 따라서 어떤 때는 해주고 어떤 때는 안 해 주는 그런 경우였습니다. 다섯 번째 경우에는 그냥 아예 무빈소 직장으로 기존 절차랑 똑같이 하는 곳이 있었는데 이것도 사실은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제도적인 이해를 담당자가 못하는 경우. 사실은 사회복지 공무원 같은 경우에는 이게 수십 가지 수백 가지 업무 중에 하나일 뿐이라서 이해하기가 힘든 상황이기도 하고. 그리고 또 앞에 이유랑 겹쳐서 인력이나 예산이 부족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는데, 사실 이렇게 정리를 하고 전화를 108곳에 하면서 드는 생각은, 사실 지자체가 안 치르려고 하는 거라기보다는 못 치러주는 경우가 많아요. 인력이나 예산이 부족해서 그런 경우가 제일 많고. 사실 전화를 해보면 못해주거나 안 해주는 곳이나 말씀을 들어보면 이게 사람 죽음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담당자분들도 어떻게 보면 되게 규칙에 벗어나서 유동성 있게, 오히려 더 잘해 주려고 하는 분들이 훨씬 많았거든요. 그래서 좀 안타까운 게 있어서. 어떻게 보면 지금 상황에서 공영장례를 시행할 법적 근거가 사실 미비하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지금 일선 현장 공무원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 김혜민> 그럼요. 이건 제도와 또 정부의 지원이 있어야지, 공무원 개인으로 일을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아까 108곳에 일일이 다 전화를 했다고 하는데 그럼 전화할 때. 뭐,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에 뭐 YTN 라디오 김혜민 PD예요. 이러면 공무원들이 조금 무서워하면서 대답해 주는데 그냥 저 대학생이에요. 이러면 다 답변을 해주던가요. 뭐라고 대답했어요.
◐ 이승우> 저희가 약간 뭐라고 해야 되지, 정보 공개 청구를 했었어요. 시행을 하고 있는지 안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사실은 저희가 취재 입장보다는 민원인의 입장으로 여쭤본 게 좀 컸고. 나중에 밝힌 것도 있고 안 밝힌 것도 있지만, 그래서 약간 취재할 때도 지역명을 다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이분들이 일부러 치러주지 않는 건 아니라서. 규칙을 어기고 안 치러줬거나, 이런 경우면 밝혔을 텐데. 그거는 아니라서.

◇ 김혜민> 와, 정말 치밀하게 노력하며 발품 팔아 이 중요한 아젠다를 사회에 던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음 아픈 분들도 많이 만나셨겠지만 또 보석 같은 분들을 많이 만나셨을 것 같아요. 정말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이들의 죽음에 애도와 도리를 다 하는 사람들도 만나셨죠. 좀 소개를 해주세요.

◆ 남궁현> 아무래도 저희가 이걸 취재를 한다고 사람들한테 얘기를 하면 이제 무연고 사망자는 유족이나 지인이 없으니까 장래가 필요 없지 않냐, 라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는데요. 물론 그렇게 오해를 하실 수 있지만 실제로 공영 장례 현장에 나가다 보면 애도와 도리를 다하기 위해 장례에 참석하시는 분들을 되게 많이 만났습니다. 제가 3개월 동안 활동을 하면서 만났던 분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분은 고독사한 아버지의 공영 장례를 치른 20대 청년의 이야기였어요. 그분은 제가 직접 뵀는데 과거 아버지의 가정폭력이 너무 심해서 아버지랑 따로 떨어져서 시설에서 자라신 거예요. 성인이 되실 때까지 아버지랑 거의 만나지도 않았고요. 이제 성인이 된 뒤에는 그분은 시설에서 나와 보호 종료 아동이 됐고 아버지와 관계는 여전히 소원한 상태였던 거예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고독사한 채 발견됐다는 연락을 그분이 받으셨어요. 이분은 아버지의 관계가 소원하기도 했고 이분도 또 기초생활 수급자셨거든요. 그래서 형편이 어려우셨는데 그럼에도 아버지니까 어떻게든 마지막 도리를 다하고 싶다고 빚을 내서라도 장례를 치르려고 이렇게 수소문을 하신 거예요. 그러다가 서울시 공영장례 제도를 소개받게 됐고 그 지원을 받아서 직접 장례를 치르셨습니다.

◇ 김혜민> 아, 그렇군요. 사실 이분이 모르는 척 해도 아무도 지적하거나 비판하지 않을 상황인데도 본인은 그래도 도리를 다하고 싶다고 해서 서울시 공영장례 지원을 받아 장례를 치뤘군요.

◆ 남궁현> 저도 아무래도 옆에서 장례를 치르는 그분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아버지가 많이 미울 법도 한데 그분이 무척 장례를 치르는 데 담담하신 거예요. 근데 이제 장례를 치르고 난 뒤에 거기에 고인에게 쪽지를 남길 수 있는 공간이 있거든요. 근데 그분이 거기에다가 아버지 편히 쉬세요. 다음 생에는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요, 라고 써두신 거예요. 나중에 저희가 이거 취재 목적을 밝히고 그분을 따로 만나서 추가로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공영 장례를 치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이 덕분에 애도와 도리를 다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걸 보고 저희도 되게 여러 생각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 김혜민> 지금 2249님이 아들 된 도리를 지켰네요. 눈물 나요. 이렇게 보내셨고 1788님은 평소에 오죽 속을 썩었으면 시신 인수 거부를 할까요. 하셨는데 그럼요. 그 안에 많은 사연들이 있겠죠. 근데 저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장례식이라는 게 사실 남은 사람들을 위한 절차라고 생각하거든요. 떠난 사람들에 대한 미움이든 증오든 아니면 안타까움이든. 그걸 앞으로 남은 자들이 잘 살아나가기 위해서 치르는 의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신 거부하는 사람들의 선택도 존중하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수해서 애를 쓰는 분들한테는 이렇게 서울시처럼 지원을 해서 잘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게 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분들이 있었어요. 기억에 남는 분.

◆ 남궁현> 그리고 또 사실 무연고 사망자분과 돌봄 관계였던 분들도 종종 참석을 하시는데요. 돌봄 관계라고 하면 이제 사회복지 업무를 담당하시는 공무원이나 요양보호사, 이런 분들이 계셔요. 한 분은 북한 이탈 주민 출신으로 연고자가 없던 고인이 계셨어요. 이분은 정말 연고자가 없는 경우인데 그분한테 이제 10년간 마지막에 고인을 생전에 간병해온 요양보호사님이 계셨는데요. 그 요양보호사님께서 혼자 이분의 공영 장례에 참석을 하셨습니다. 고인께서 생전에 본인을 딸처럼 대해주셨다고 하면서 마지막 가는 길 외롭지 않으시라고 장례에 참석하신 분이 계셨습니다.

◇ 김혜민> 아, 그렇군요. 제가 ‘나는 죽음을 돌보는 사람입니다.’라는 장례지도사 강봉희 씨가 지은 책을 최근에 읽었어요. 그 책, 오늘 인터뷰 준비하면서 생각이 났는데 좀 한 구절 읽어드리면. 가족한테 버림받고 이웃에게 버림받고 그래서 돌아가신 뒤에 몇 달 있다가 발견되고. 그런 분들이 우리 사회에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제발 내 곁에 사랑하는 이들이 아직 살아 있을 때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분이 어떻게 살아왔던 간에 말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 그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는가가 아니다. 그가 가족과 단절되었다 해도, 그게 그가 우리들과 단절되어도 괜찮다는 이유는 되지 못한다. 그를 홀로 내팽겨 쳐 두지 않는 것은 가족의 의무가 아니라 우리의 의무다. 이 글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인터뷰 준비하면서. 오늘 런어스, 공영장례의 죽음과 그 이후 고인 곁에 남은 유족과 지인의 애도할 권리에 대해서 3개월간 취재를 했던 남궁현 팀장과 이승우 기자님과 함께하고 있는데 이 취재가 개인적으로 이 두 청년에게는 어떤 의미였을지 궁금해요. 우리 남궁현 팀장님.

◆ 남궁현> 저는 개인적으로 애도라는 개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요. 제가 군생활을 하던 중에 어릴 적부터 저를 키워주셨던 외할머니가 되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던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무척 괴로웠는데 장례를 치르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차차 슬픔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참 에도라는 개념의 중요성을 많이 느꼈는데, 취재를 하면서 그 생각이 되게 많이 나더라고요 또 한편으로는 최근 사회적으로 코로나19 사망자 유족들의 애도할 권리문제가 꾸준히 대두되고 있잖아요. 그분들을 비롯해서 무연고 사망자분들의 유족도 똑같은데. 고인의 곁에는 항상 애도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또 이런 애도할 기회가 모두에게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취재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 김혜민> 외할머니가 엄청 기특해하겠네요. 하늘에서 이거 보시면.

◆ 남궁현> 그러셨으면 좋겠네요. 많이 생각이 나더라고요.

◇ 김혜민> 할머니, 저 상 받았어요. 한 번 하세요.

◆ 남궁현> 듣고 계시죠. 저 상 받았어요.

◇ 김혜민> 그래요. 우리 승우 씨는.

◐ 이승우> 저 같은 경우에는 사실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는데. 사실 제 주변이든 주변이 아니든 간에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장례식을 치르는 게 되게 당연하게 생각을 했는데, 이게 누군가에게는 당연하지 않다는 걸 뼛속 깊이 깨달아서 그런 개인적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 김혜민> 아, 정말 두 분에게 고맙네요. 저도 당연한 게 당연하지 않은 걸 깨달았을 때, 깨닫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 게 아니라 그 이상 행동하는 게 이 사회를 변화시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정말 그걸 깨닫고 나서 두 분이 이렇게 움직여서 이런 문제 제기를 하게 되셨습니다. 두 분의 꿈도 궁금하네요.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어요. 우리 팀장님.

◆ 남궁현> 저희가 이번에는 글 위주의 기사를 기획했지만 제가 원래는 사진이나 영상 같이 이야기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비주얼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많은데요. 아직 구체적으로 진로를 정하지는 않았지만 이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습니다.

◇ 김혜민> 알겠습니다. 자, 승우 씨.

◐ 이승우> 저는 취재 기자 지망생인데 사실 이번 공연 장르의 기사처럼 약간 비 오지 않는 밤에 빗방울이 잘 안 보이잖아요. 그런 빗방울들을 헤드라이트로 비추면 보이는데 그런 헤드라이트처럼 잘 보이지 않는 존재를 비추는 기사를 쓰는 기사가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좀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탐사보도나 데이터 저널리즘이나 내러티브 저널리즘 같이 각 사안에 적합한 방식들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그런 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 김혜민> 이 두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까 제가 막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요. 너무 저를 좀 깨닫게 해 주셨고. 저도 제 얘기를 좀 짧게 하자면, 올해 40이 돼서 저 스스로의 정체성을 이 세상에 필요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되자, 였거든요. 오늘 후배 두 분의 얘기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제 꿈을 다잡게 됩니다. 자. 우리 두 분의 앞으로 펼쳐나갈 이야기들을 기대하면서 오늘 마무리하겠습니다. 남궁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그리고 이승우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학생과 함께 했어요. 고맙습니다.

YTN 김혜민 (visionmin@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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