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3:00~14:00)
■ 진행 : 김혜민 PD
■ 방송일 : 2021년 12월 23일 (목요일)
■ 대담 : 박예송 이슈&피플 작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김혜민의 이슈&피플]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난 후 내가 얻은 것들 ㅡ 박예송 작가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지금 흐르는 노래는 자신의 환자에게 죽음을 당했지만, 안전한 진료 환경과 마음 아픈 환자들이 편견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 임세원 교수의 추모곡입니다. 아픈 마음 보고 듣고 말하기. 이 코너는 말 그대로 우리의 아픈 마음을 보고 듣고 말하는 시간인데요. 오늘 이 코너가 마지막이에요. 그래서 오늘 마지막 시간에 걸맞는 정말 특별한 게스트를 모셨습니다. 청취자분들께 직접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 박예송 이슈&피플 작가(이하 박예송)> 네, 안녕하세요. 저는 이슈&피플 작가 박예송이라고 합니다.
◇ 김혜민> 반갑습니다. 저와 함께 김혜민의 이슈&피플을 만들고 있는 작가 박예송 씨가 오늘 특별 스페셜 게스트입니다. 아휴, 얼마나 떠는지. 옆에서. 왜 이 작가님께서 오늘 방송에 나왔는지 여러분,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자, 아픈 마음 보고 듣고 말하기. 이 코너의 마지막 손님으로 나온 이유가 있죠.
◆ 박예송> 사실 제가 이 프로의 작가로서, 또 청취자로서 이 코너의 수혜자이지 않을까 싶어요. PD님께서 이제 이 코너 처음 시작하실 때 예송아, 우리가 이 코너를 통해서 마음 아픈 사람 단 한 명이라도, 나 마음 아프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라고. 근데 정말 실제로 많은 청취자분들이 문자 보내주셨고, 그분들 중 한 명이 이제 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그래서 사실 오늘 마지막 시간에 제 아픈 마음 이야기하려고 나왔습니다.
◇ 김혜민> 저하고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작가인데, 본인이 이제 이 코너를 함께 만들면서 본인의 아픈 마음을 보게 됐더라고요. 저도 사실 전혀 몰랐었던 일이었고, 그래서 그걸 알게 됐고 이 자리 마지막 시간에 예송 작가가 나와 줬으면 좋겠다. 저도 생각했고 또 이 코너를 함께 만들고 있는 우리 정신과 의사분들, 또 임세원 교수님의 아내 되시는 우리 신은희 교수님께서도 박 작가 얘기를 청취자들한테 들려줬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하셔서 저희가 모시게 됐습니다. 음, 어려운 이야기를 좀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우리 박 작가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해 줄 수 있겠어요.
◆ 박예송> 사실 이 얘기를 하는 게 아직도 조금 어려운데, 제가 6살 때 어린이집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제가 그 당시 5층에 살어서 이제 엘리베이터를 탔죠. 근데 엘리베이터에 타고 뒤따라서 교복 입은 남학생이 타더라고요 그러고 이제 문이 닫힌 순간부터 5층을 가는 그 동안 제가 그 남학생한테 맞은 거죠. 그래서 온몸을 맞았는데 사실 맞아서 아팠다는 생각보다는 너무너무 무서웠고. 너무 저한테는 충격이었던 거죠. 그래서 어쨌든 제가 맞아 죽지 않는 이상 이 순간은 끝날 테니까 빨리 그냥 끝났으면 좋겠다. 이 순간이. 그런 생각으로 5층에 오기를 기다렸고, 문이 열리고 이제 그 남학생이 먼저 내리고 제가 엉엉 울면서 내렸죠.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아프고. 그 당시에 제가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었는데, 아버지가 제 울음소리를 듣고 놀라서 뛰쳐나오신 거죠. 그래서 아버지가 저를 이렇게 안아주셨고, 여기까지가 제가 기억하는 그날의 일입니다.
◇ 김혜민> 아, 여섯 살 여자아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엘리베이터 일층에서 오층까지 올라가면서 그 무서운 일을 겪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걸 어떻게 견디고 참았어요.
◆ 박예송> 사실 견뎠다기보다는 그냥 살아지니까 살았던 것 같아요. 그동안 저는 20년 동안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기도 했고, 모른 채로 살았었거든요. 그날 일이 있고 단 한 번도 누군가한테, 또 부모님한테도 제가 어떤 상태인지 말하지도 못했고. 근데 이게 매일 떠오르는 기억도 아니니까. 그냥 다음 날 되면 잘 지내고 밖에 나가면 잘 웃고 하니까, 그냥 그날 일이 떠올라서 힘들 때마다 방에서 혼자 울면서 밤을 지새웠던 것 같아요.
◇ 김혜민>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요. 그 일에 대해서.
◆ 박예송> 그렇죠. 말을 못한 거죠.
◇ 김혜민> 부모님하고도 그 이후에도 얘기를 안 했고.
◆ 박예송> 네, 부모님하고도. 사실 제가 아픔을 직면하고 나서야 말을 했지, 그 전에는 한 번도.
◇ 김혜민> 말하지 않았군요. 와, 여섯 살 때의 일이고 기억을 못할 수 없는 일이죠. 이건 뭐. 너무 큰 충격의 일이기 때문에, 살면서 그때의 기억이 순간순간 떠오르면서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언제 그랬어요.
◆ 박예송> 제가 특별히 조금 힘들어하는 상황이 있는데,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는 걸 아직도 조금 무서워해요. 지인이나 여러 명이서 같이 타는 건 괜찮은데 혼자 타거나 모르는 남자분이랑 같이 타면 제 몸도 그날 일을 기억하다 보니까, 온 몸의 신경이 그 남자한테 쏠려 있는 거죠. 왜냐하면 제가 언제 이 남자한테 맞을지도 모른다는 그 공포감이, 언제 맞을지 모르니까 방어할 태세를 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이건 최근에 있었던 일인데 제가 웬만하면 지하철을 잘 안 타요. 못 타는데 제가 우연히 퇴근시간에 지하철을 탄 적이 있어요. 근데 퇴근 시간이다. 보니까 얼마나 사람이 많겠어요. 이렇게 비집어서 타는데 그 상황이 저는 너무 힘든 거예요. 그냥. 왜냐하면 저를 둘러싼 남자 분들이 저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그냥 제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좀 숨이 가빠지고 그런 경험을 처음 해봐서.
◇ 김혜민> 놀랐군요.
◆ 박예송> 너무 놀래가지고 그냥 그 자리에 서서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아요. 유독 이런 상황을 좀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 김혜민> 트라우마가 된 거죠. 우리 예송 작가한테 트라우마가 된 거고, 제가 처음에 이 이야기를 우리 예송 작가한테 들었을 때 그 6살 여자아이의 고통도 느껴졌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20대 중반의 여성의 고통도 느껴졌어요. 또 하나는 저도 이제 아이를 키우는 부모다 보니까 부모님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내 사랑하는 딸이 그런 고통을 겪었고, 그 고통이 지금까지도 몸에, 마음에 남았으니까. 부모님도 너무 힘드셨을 것 같아요.
◆ 박예송> 그렇죠. 사실 저만큼 힘들었던 게 부모님이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 커서 생각해 보니까 부모님의 마음을 좀 이해는 하지만, 그 당시에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좀 컸어요. 왜냐하면 부모님이 저한테 한 번도 그날 일에 대해서 제 마음이 어떤지 여쭤봐 주시지 않으셨고, 또 그날 저를 때렸던 남학생을 찾지 못했거든요. 근데 이제 커서 제가 제 아픔을 직면하고 가장 먼저 부모님께 말씀드렸죠. 말씀드려서 제가 그동안 부모님한테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까 왜 이제야 얘기했냐. 너무 미안하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 당시에 2000년대 초반이어서 cctv도 없었어요. 엘리베이터나 입구에 cctv도 없어서, 결국 범인도 못 잡았고. 근데 다 터놓고 이야기하니까 부모님의 마음도 얼마나 찢어졌었을까.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님이 제가 그날 일을 잊으셨으면 했대요. 그래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근데 지금은 좀 사소하기 힘든 일이 있어도 엄마, 나 이랬어. 나 이래서 힘들었어. 잘 이야기하고.
◇ 김혜민> 그 일이 있고 말을 못했기 때문에 살면서 좀 힘든 얘기도 엄마 아빠한테 잘 못했을 것 같아요.
◆ 박예송> 네, 맞아요. 제가 워낙 성격이 힘든 이야기를 남한테 잘 못하는데,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더 심해진 것 같아요. 말을 하지 않는 그런 게.
◇ 김혜민> 부모님 마음도 너무 이해가 가요. 그러니까 아. 기억 안 했으면 좋겠다. 6살이니까. 이제 기억을 할 것 같기도 하고 안 할 것 같기도 한데. 부모님 입장에서는 너무 본인들한테도 상처고. 이걸 괜히 얘기했다가, 예를 들어 아이는 잘 지내고 있는데 괜히 내가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닌가. 그런 마음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부모님의 마음과 또 우리 예송 작가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데 아까 계속해서 표현했던 게 내가 이 아픔을 직면하고, 라고 이야기했잖아요. 이 아픔을 직면하게 된 게 바로 이제 이 코너 때문이었던 거잖아요.
◆ 박예송> 네, 맞아요.
◇ 김혜민> 그런데 왜 이 코너를 통해 나의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해결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 박예송> 처음에 제가 트라우마로 인해서 이렇게 나타나는 증상들. 이런 게 저는 되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엘리베이터에서 그런 일을 당했으니까 이건 제가 당연히 안고 가야 하는 반응이고, 이건 내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아픔이다.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제가 그걸 처음 깨달았던 거는 지난 10월에 가판대에 트라우마 치유센터 조이수현 현 사무국장님 나오셨을 때 사전 인터뷰를 통해서 트라우마에도 정말 많은 종류가 있고, 특히나 이런 반응들이 침투적인 기억. PTSD,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이런 거라고 하죠. 그런 게 있다는 거를 알았고 그때부터 제 트라우마를 좀 자세히 들여다봤던 것 같아요.
◇ 김혜민>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그런 상처나 아니면 내 반응이 그냥 내가 안고 가야 할 거.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인터뷰를 통해서 아니네, 이거 아픈 거고 해결해야 하는 거네. 직면해야 하는 거네, 를 깨닫게 된 거네요.
◆ 박예송> 그때 깨달았고 무엇보다 제가 제일 아픔을 직면해야겠다고 깨달았던 거는 제가 이 트라우마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면 만약에 저한테 이런 일이 또 비슷하게 생기면 저는 죽고 싶다가 아니고 그냥 죽어버려야겠다. 이 생각이 너무 무서운 거죠. 그래서 내가 내 스스로 죽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이 트라우마를 반드시 직면해야겠다. 그 살고 싶은 마음이, 그 간절함이 제 아픔에 직면하게 한 것 같아요.
◇ 김혜민> 그래요. 임세원 교수님께서도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라는 말을 하시면서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도 너무 살고 싶기에 하는 선택이다, 라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 살고 싶은 간절함이 우리 예송 작가로 하여금 아, 내가 트라우마를 직면해야겠다, 라는 용기를 갖게 한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 나한테 위로가 됐고 격려가 됐던 인터뷰는 어떤 게 있었어요.
◆ 박예송>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는 아무래도 아픈 마음 보고 듣고 말하기에 나오셨던 분들이 아닐까 싶은데, 참 많은 분들이 저한테 위로가 됐고 용기가 되어주셨거든요. 본인이 우울증을 갖고 있고 어떤 치료 과정인지 이야기해 주셨던 이하늬 작가님이나, 나는 조현병 환자입니다, 라고 참 어려운 이야기인데 방송에 나가서 이야기하는 이관형 기자님. 또 저보다 한참 어린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 이 책 썼던 청소년 친구들. 그분들이나 또 고 임세원 교수님 아내 분이셨던 신은희 교수님. 또 저 이 코너 CP 님이신 백종우 교수님. 이분들의 인터뷰를 밖에서 들으면서 저도 그냥 마음속으로 나도 용기 내고 싶다. 나도 아픈데, 저분들 어떻게 방송에서 저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지. 이런 생각만 있지 이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더라고요. 근데 말하다 보니까 무슨 수상소감 이야기한 것처럼 됐는데, 어쨌든 이분들의 용기와 외침이 저를 살려주신 거예요.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하다는 말씀 꼭 하고 싶어요.
◇ 김혜민> 아, 지금 1312님이 어떻게, 여섯 살 여자아이가 얼마나 충격적이고 아팠을까요. 작가님. 앞으로도 지금처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주세요. 작가님 힘내시라는 말씀밖에 못 드리네요. 하셨네요. 정말 이 코너를 통해 본인이 아, 이거 정상 아니구나. 나 이거 아픈 거구나라고 깨닫고, 그리고 이 아픈 거 숨길 일이 아니구나. 사람들한테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아야겠구나 생각했고. 그래서 저한테 어느 날 할 말이 있다고 저기 방으로 끌고 가서 둘이 거의 30분을 엉엉 울다가, 저도 이제 생각지도 못했던 얘기였고. 그러면서 정말 이 코너 처음 시작할 때 그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그 한 사람이 우리 작가였구나. 저도 참 감사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처음으로 한 일이 저에게 이야기하고 주변에 알리는 일이었죠.
◆ 박예송> 그렇죠. 제가 이제 가장 먼저 부모님한테 알렸고 제 가까운 주변 지인들한테 제가 어떤 아픔이 있는지 알리기 시작했어요.
그게 제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제 아픔을 치료하는 첫 단계라고 생각을 해서, 제 아픔에 대해 이야기했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까, 제 아픔을 저 혼자 어떻게 해보려고 하다 보니까 마음의 병이 20년 동안 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 김혜민> 그리고 이제 상담 치료를 시작했잖아요.
◆ 박예송> 저희 아버지가 추천해 주신 상담센터에서 이제 치료 받은 지 한 두 달 정도 되어가고 있는데, 그 상담센터 방이 정말 작아요. 작은 탁자 하나랑 의자 두 개 앉고 선생님이랑 저랑 딱 둘만 있는 공간인데 그 공간이 들어가면 제 감정에 정말 솔직해지더라고요. 제 감정에 정말 솔직해지고 확실히 왜 전문가한테 상담을 받는지. 왜 이제서야 이걸 받기 시작했지. 할 정도로 너무너무 좋아지고 있고, 그동안 저는 저를 위로하는 방법을 모른 채로 살았었거든요. 근데 이제 상담을 통해 저를 사랑하는 방법도 배우고 있고, 치료를 통해서 저는 반드시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제 매주 상담 시간이 기다려지고 좋습니다.
◇ 김혜민> 지금 1003 님은 6살 어렸던 나이에 이렇게 힘들었던 상황이 있었는데 지금처럼 잘 이겨내줘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힘내세요, 하셨고 보이는 라디오 창에 조세학 님께선 정말 공감했고 감동했습니다. 작가님의 경험과 극복함이 세상 어두운 곳에 따뜻함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방송에서 말한 용기와 외침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렇게 함께 응원을 해주셨어요. 그러면서 이제 글을 쓴다면서요. 내 아픔에 대한 글을.
◆ 박예송> 제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난 후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이게 제 아픔에 직면하고 나아지는 과정까지 글로 남겨보면 어떨까,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또 누군가는 제 글을 읽고 이렇게 저처럼 용기를 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언젠가는 책을 내는 게 목표인데 글을 쓰다 보니까 이게 저한테도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 김혜민> 치유의 힘이 있죠.
◆ 박예송> 글로 이제 나의 현 상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눈에 보이는 글로 제가 어떤 상태인지. 이게 어제의 심리와 오늘의 심리가 또 다르거든요.
이런 복잡한 제 마음을 글로 정리하면서 제 스스로도 저를 다듬는 것 같아요.
글을 다듬으면서, 제 마음도 다듬고. 좋은 것 같아요.
◇ 김혜민> 사람들한테 추천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해요. 치유에 있어서 글쓰기의 역할은 굉장히 크니까요. 이렇게 어렵게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우리 작가님의 이유가 있죠.
◆ 박예송> 그렇죠.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PD님도 아시겠지만 처음에 제안하셨을 때 제가 바로 거절을 했거든요. 저는 절대 안 나갑니다. 제가 무슨 방송을 하냐고.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있는데, 시간을 갖고 생각을 해보니까 제가 이런 말 하기 전까지 PD님도 모르셨고, 또 밖에 계신 제작진분들도 지금 작가가 왜 앉아 있나 싶으실 것 같은데. 펑크 나서 작가가 떼우나 보다.
◇ 김혜민> 제가 굉장히 설득 어렵게 해서 지금 한 달 간의 예약 후에 나온 거예요. 펑크 난 거 아닙니다.
◆ 박예송> 그래서 저처럼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은 사람도 들여다보면 다 아픔이 있거든요. 분명 지금 이 순간에도 혼자 끙끙 앓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근데 이제 본인의 아픔을 공개하는 순간 이미 치유가 되고 있는 거거든요. 이거 하나 제가 경험을 해봐서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거여서, 오늘 제 방송을 듣고 마음 아픈 사람. 단 한 명이라도 용기 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방송에 나오게 됐고, 저는 절대 숨기지 않으셨으면 해요. 물론 어려운 거, 저도 정말 잘 알고 하지만, 이렇게 용기 내서 나오니까 그냥 PD님이랑 이야기하러 나온 것 같고 별거 아니네요.
◇ 김혜민> 그렇게 떨더니. 이렇게 잘할 줄이야.
◆ 박예송> 방송 잘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분들에게 용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 하나로 나오게 됐습니다.
◇ 김혜민> 트라우마를 갖게 된 상황들은 거의 99.9프로는 본인의 잘못에 의해 생긴 상황들이 아니거든요. 내 잘못이 아니에요. 근데 그걸 말하지 않고 가지고 있으면 나 스스로가 이거 내가 잘못했나? 이거 내가 뭘 어떻게 해서,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더 그 트라우마, 상처가 덧입고 덧 입혀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예송 작가한테 인터뷰를 권했던 이유는 저도 사실 처음에 깜짝 놀랐거든요. 아, 내 주변에 이런 사연이 있는 친구가 있었어. 그런데 저렇게 늘 활기차고 늘 웃으면서 일했는데 사실 저 친구한테 저런 아픔이 있었구나. 그러면 여러분들 주변에도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예송 작가가 어렵지만 용기를 내서 이 얘기를 해준다면, 저 같은 사람도. 그리고 우리 예송 작가처럼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도 서로에게 다 좋을 것 같아서 오늘 요청을 드렸고, 흔쾌히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 0332님 작가님, 파이팅입니다. 솔직한 마음을 애청자들에게 진솔하게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하셨고, 3993님은 우리 사회의 작가님 같이 자신의 어려움을 감추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 프로그램이 치유의 힘을 주지 않았나 싶어요. 앞으로도 더 좋은 방송 부탁드려요. 3400님. 작가님 어릴 적 상처, 트라우마에 너무 힘드신 시간 보냈네요. 작가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꽃길만 걸으실 거예요. 이렇게 보내주셨어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응원을 해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어요.
◆ 박예송> 그동안 저는 어떤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빈칸을 채우지 못했는데, 이제 몇 달 사이에 제 아픔을 직면하고 그 빈칸을 채우게 됐어요.
◇ 김혜민> 어떤 걸까요.
◆ 박예송> 저는 사람 살리는 작가가 반드시 되겠다. 제가 이 방송을 통해서, 인터뷰를 통해서 세상에 용기 내서 제 아픔을 고백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이런 방송을 많이 만들어야겠다. 마음 아픈 사람한테 이렇게 손 내밀어주는 작가가 꼭 되겠습니다.
◇ 김혜민> 사람을 살리는 작가가 되겠답니다. 자신의 상처를 딛고 다른 누군가에게 손 내밀어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오늘 박예송 작가의 이름 석 자를 여러분들이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임세원 교수의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에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이라는 책의 한 구절을 읽고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트라우마는 과거의 반복이므로 이를 이겨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바로 그것이 끝나게 하는 것이다. 즉 트라우마는 과거에 끝나버린 사건이므로, 현재의 자신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과거의 시간을 회상할 수는 있다.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므로. 그러나 사건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그 사건은 지금의 나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꺼내는 것이 확실히 가능하다.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네, 우리 임세원 교수님의 이 말은 우리 예송 작가를 비롯해 트라우마로 고통 받고 있고 또 이 고통을 조금 오픈하고 싶은 그런 분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2249님. 토닥토닥, 저도 트라우마 있어요. 수시로 잘 터시고 담담하실 수 있기를 빕니다. 이렇게 보내주셨어요. 그리고 우리 유튜브에도 작가님, 어쩌면 기존에 나오셨던 분들도 작가님의 공감과 용기 덕분에 저희에게 더욱 의미 있게 나타난 거 아닐까요. 작가님이 이슈&피플 작가님이어서 감사하네요. 또 이렇게 보내주셔서, 저도 감사합니다. 오늘 함께해 주신 박예송 작가 너무 고맙습니다.
YTN 김혜민 (visionmin@ytnradi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 진행 : 김혜민 PD
■ 방송일 : 2021년 12월 23일 (목요일)
■ 대담 : 박예송 이슈&피플 작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김혜민의 이슈&피플]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난 후 내가 얻은 것들 ㅡ 박예송 작가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지금 흐르는 노래는 자신의 환자에게 죽음을 당했지만, 안전한 진료 환경과 마음 아픈 환자들이 편견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세상을 꿈꾼 임세원 교수의 추모곡입니다. 아픈 마음 보고 듣고 말하기. 이 코너는 말 그대로 우리의 아픈 마음을 보고 듣고 말하는 시간인데요. 오늘 이 코너가 마지막이에요. 그래서 오늘 마지막 시간에 걸맞는 정말 특별한 게스트를 모셨습니다. 청취자분들께 직접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 박예송 이슈&피플 작가(이하 박예송)> 네, 안녕하세요. 저는 이슈&피플 작가 박예송이라고 합니다.
◇ 김혜민> 반갑습니다. 저와 함께 김혜민의 이슈&피플을 만들고 있는 작가 박예송 씨가 오늘 특별 스페셜 게스트입니다. 아휴, 얼마나 떠는지. 옆에서. 왜 이 작가님께서 오늘 방송에 나왔는지 여러분,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자, 아픈 마음 보고 듣고 말하기. 이 코너의 마지막 손님으로 나온 이유가 있죠.
◆ 박예송> 사실 제가 이 프로의 작가로서, 또 청취자로서 이 코너의 수혜자이지 않을까 싶어요. PD님께서 이제 이 코너 처음 시작하실 때 예송아, 우리가 이 코너를 통해서 마음 아픈 사람 단 한 명이라도, 나 마음 아프다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그걸로 된 거라고. 근데 정말 실제로 많은 청취자분들이 문자 보내주셨고, 그분들 중 한 명이 이제 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그래서 사실 오늘 마지막 시간에 제 아픈 마음 이야기하려고 나왔습니다.
◇ 김혜민> 저하고 함께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는 작가인데, 본인이 이제 이 코너를 함께 만들면서 본인의 아픈 마음을 보게 됐더라고요. 저도 사실 전혀 몰랐었던 일이었고, 그래서 그걸 알게 됐고 이 자리 마지막 시간에 예송 작가가 나와 줬으면 좋겠다. 저도 생각했고 또 이 코너를 함께 만들고 있는 우리 정신과 의사분들, 또 임세원 교수님의 아내 되시는 우리 신은희 교수님께서도 박 작가 얘기를 청취자들한테 들려줬으면 좋겠다. 이런 말씀을 하셔서 저희가 모시게 됐습니다. 음, 어려운 이야기를 좀 해줘야 할 것 같은데 우리 박 작가한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해 줄 수 있겠어요.
◆ 박예송> 사실 이 얘기를 하는 게 아직도 조금 어려운데, 제가 6살 때 어린이집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어요. 제가 그 당시 5층에 살어서 이제 엘리베이터를 탔죠. 근데 엘리베이터에 타고 뒤따라서 교복 입은 남학생이 타더라고요 그러고 이제 문이 닫힌 순간부터 5층을 가는 그 동안 제가 그 남학생한테 맞은 거죠. 그래서 온몸을 맞았는데 사실 맞아서 아팠다는 생각보다는 너무너무 무서웠고. 너무 저한테는 충격이었던 거죠. 그래서 어쨌든 제가 맞아 죽지 않는 이상 이 순간은 끝날 테니까 빨리 그냥 끝났으면 좋겠다. 이 순간이. 그런 생각으로 5층에 오기를 기다렸고, 문이 열리고 이제 그 남학생이 먼저 내리고 제가 엉엉 울면서 내렸죠. 얼마나 무서웠겠어요. 아프고. 그 당시에 제가 복도식 아파트에 살았었는데, 아버지가 제 울음소리를 듣고 놀라서 뛰쳐나오신 거죠. 그래서 아버지가 저를 이렇게 안아주셨고, 여기까지가 제가 기억하는 그날의 일입니다.
◇ 김혜민> 아, 여섯 살 여자아이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엘리베이터 일층에서 오층까지 올라가면서 그 무서운 일을 겪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걸 어떻게 견디고 참았어요.
◆ 박예송> 사실 견뎠다기보다는 그냥 살아지니까 살았던 것 같아요. 그동안 저는 20년 동안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몰랐기도 했고, 모른 채로 살았었거든요. 그날 일이 있고 단 한 번도 누군가한테, 또 부모님한테도 제가 어떤 상태인지 말하지도 못했고. 근데 이게 매일 떠오르는 기억도 아니니까. 그냥 다음 날 되면 잘 지내고 밖에 나가면 잘 웃고 하니까, 그냥 그날 일이 떠올라서 힘들 때마다 방에서 혼자 울면서 밤을 지새웠던 것 같아요.
◇ 김혜민>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어요. 그 일에 대해서.
◆ 박예송> 그렇죠. 말을 못한 거죠.
◇ 김혜민> 부모님하고도 그 이후에도 얘기를 안 했고.
◆ 박예송> 네, 부모님하고도. 사실 제가 아픔을 직면하고 나서야 말을 했지, 그 전에는 한 번도.
◇ 김혜민> 말하지 않았군요. 와, 여섯 살 때의 일이고 기억을 못할 수 없는 일이죠. 이건 뭐. 너무 큰 충격의 일이기 때문에, 살면서 그때의 기억이 순간순간 떠오르면서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언제 그랬어요.
◆ 박예송> 제가 특별히 조금 힘들어하는 상황이 있는데,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는 걸 아직도 조금 무서워해요. 지인이나 여러 명이서 같이 타는 건 괜찮은데 혼자 타거나 모르는 남자분이랑 같이 타면 제 몸도 그날 일을 기억하다 보니까, 온 몸의 신경이 그 남자한테 쏠려 있는 거죠. 왜냐하면 제가 언제 이 남자한테 맞을지도 모른다는 그 공포감이, 언제 맞을지 모르니까 방어할 태세를 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이건 최근에 있었던 일인데 제가 웬만하면 지하철을 잘 안 타요. 못 타는데 제가 우연히 퇴근시간에 지하철을 탄 적이 있어요. 근데 퇴근 시간이다. 보니까 얼마나 사람이 많겠어요. 이렇게 비집어서 타는데 그 상황이 저는 너무 힘든 거예요. 그냥. 왜냐하면 저를 둘러싼 남자 분들이 저한테 아무 짓도 하지 않아도 그냥 제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좀 숨이 가빠지고 그런 경험을 처음 해봐서.
◇ 김혜민> 놀랐군요.
◆ 박예송> 너무 놀래가지고 그냥 그 자리에 서서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아요. 유독 이런 상황을 좀 무서워하는 것 같아요.
◇ 김혜민> 트라우마가 된 거죠. 우리 예송 작가한테 트라우마가 된 거고, 제가 처음에 이 이야기를 우리 예송 작가한테 들었을 때 그 6살 여자아이의 고통도 느껴졌고, 그 고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20대 중반의 여성의 고통도 느껴졌어요. 또 하나는 저도 이제 아이를 키우는 부모다 보니까 부모님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내 사랑하는 딸이 그런 고통을 겪었고, 그 고통이 지금까지도 몸에, 마음에 남았으니까. 부모님도 너무 힘드셨을 것 같아요.
◆ 박예송> 그렇죠. 사실 저만큼 힘들었던 게 부모님이 아닐까 싶은데. 그래서 커서 생각해 보니까 부모님의 마음을 좀 이해는 하지만, 그 당시에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좀 컸어요. 왜냐하면 부모님이 저한테 한 번도 그날 일에 대해서 제 마음이 어떤지 여쭤봐 주시지 않으셨고, 또 그날 저를 때렸던 남학생을 찾지 못했거든요. 근데 이제 커서 제가 제 아픔을 직면하고 가장 먼저 부모님께 말씀드렸죠. 말씀드려서 제가 그동안 부모님한테 어떤 마음이었는지, 이렇게 말씀을 드리니까 왜 이제야 얘기했냐. 너무 미안하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 당시에 2000년대 초반이어서 cctv도 없었어요. 엘리베이터나 입구에 cctv도 없어서, 결국 범인도 못 잡았고. 근데 다 터놓고 이야기하니까 부모님의 마음도 얼마나 찢어졌었을까. 부모님의 마음도 이해가 가고.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님이 제가 그날 일을 잊으셨으면 했대요. 그래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고. 근데 지금은 좀 사소하기 힘든 일이 있어도 엄마, 나 이랬어. 나 이래서 힘들었어. 잘 이야기하고.
◇ 김혜민> 그 일이 있고 말을 못했기 때문에 살면서 좀 힘든 얘기도 엄마 아빠한테 잘 못했을 것 같아요.
◆ 박예송> 네, 맞아요. 제가 워낙 성격이 힘든 이야기를 남한테 잘 못하는데, 그런 일이 있고 나서 더 심해진 것 같아요. 말을 하지 않는 그런 게.
◇ 김혜민> 부모님 마음도 너무 이해가 가요. 그러니까 아. 기억 안 했으면 좋겠다. 6살이니까. 이제 기억을 할 것 같기도 하고 안 할 것 같기도 한데. 부모님 입장에서는 너무 본인들한테도 상처고. 이걸 괜히 얘기했다가, 예를 들어 아이는 잘 지내고 있는데 괜히 내가 더 힘들게 하는 건 아닌가. 그런 마음도 있으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부모님의 마음과 또 우리 예송 작가의 마음이 이해가 가는데 아까 계속해서 표현했던 게 내가 이 아픔을 직면하고, 라고 이야기했잖아요. 이 아픔을 직면하게 된 게 바로 이제 이 코너 때문이었던 거잖아요.
◆ 박예송> 네, 맞아요.
◇ 김혜민> 그런데 왜 이 코너를 통해 나의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해결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 박예송> 처음에 제가 트라우마로 인해서 이렇게 나타나는 증상들. 이런 게 저는 되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제가 엘리베이터에서 그런 일을 당했으니까 이건 제가 당연히 안고 가야 하는 반응이고, 이건 내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아픔이다.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죠. 제가 그걸 처음 깨달았던 거는 지난 10월에 가판대에 트라우마 치유센터 조이수현 현 사무국장님 나오셨을 때 사전 인터뷰를 통해서 트라우마에도 정말 많은 종류가 있고, 특히나 이런 반응들이 침투적인 기억. PTSD,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이런 거라고 하죠. 그런 게 있다는 거를 알았고 그때부터 제 트라우마를 좀 자세히 들여다봤던 것 같아요.
◇ 김혜민> 그러니까 지금까지는 그런 상처나 아니면 내 반응이 그냥 내가 안고 가야 할 거.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날 인터뷰를 통해서 아니네, 이거 아픈 거고 해결해야 하는 거네. 직면해야 하는 거네, 를 깨닫게 된 거네요.
◆ 박예송> 그때 깨달았고 무엇보다 제가 제일 아픔을 직면해야겠다고 깨달았던 거는 제가 이 트라우마 때문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왜냐면 만약에 저한테 이런 일이 또 비슷하게 생기면 저는 죽고 싶다가 아니고 그냥 죽어버려야겠다. 이 생각이 너무 무서운 거죠. 그래서 내가 내 스스로 죽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이 트라우마를 반드시 직면해야겠다. 그 살고 싶은 마음이, 그 간절함이 제 아픔에 직면하게 한 것 같아요.
◇ 김혜민> 그래요. 임세원 교수님께서도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라는 말을 하시면서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람도 너무 살고 싶기에 하는 선택이다, 라는 말씀을 하셨거든요. 그 살고 싶은 간절함이 우리 예송 작가로 하여금 아, 내가 트라우마를 직면해야겠다, 라는 용기를 갖게 한 것 같아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 나한테 위로가 됐고 격려가 됐던 인터뷰는 어떤 게 있었어요.
◆ 박예송>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는 아무래도 아픈 마음 보고 듣고 말하기에 나오셨던 분들이 아닐까 싶은데, 참 많은 분들이 저한테 위로가 됐고 용기가 되어주셨거든요. 본인이 우울증을 갖고 있고 어떤 치료 과정인지 이야기해 주셨던 이하늬 작가님이나, 나는 조현병 환자입니다, 라고 참 어려운 이야기인데 방송에 나가서 이야기하는 이관형 기자님. 또 저보다 한참 어린 우리의 상처는 솔직하다, 이 책 썼던 청소년 친구들. 그분들이나 또 고 임세원 교수님 아내 분이셨던 신은희 교수님. 또 저 이 코너 CP 님이신 백종우 교수님. 이분들의 인터뷰를 밖에서 들으면서 저도 그냥 마음속으로 나도 용기 내고 싶다. 나도 아픈데, 저분들 어떻게 방송에서 저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지. 이런 생각만 있지 이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더라고요. 근데 말하다 보니까 무슨 수상소감 이야기한 것처럼 됐는데, 어쨌든 이분들의 용기와 외침이 저를 살려주신 거예요. 그래서 이 자리를 빌려서 감사하다는 말씀 꼭 하고 싶어요.
◇ 김혜민> 아, 지금 1312님이 어떻게, 여섯 살 여자아이가 얼마나 충격적이고 아팠을까요. 작가님. 앞으로도 지금처럼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해 주세요. 작가님 힘내시라는 말씀밖에 못 드리네요. 하셨네요. 정말 이 코너를 통해 본인이 아, 이거 정상 아니구나. 나 이거 아픈 거구나라고 깨닫고, 그리고 이 아픈 거 숨길 일이 아니구나. 사람들한테 이야기하고 도움을 받아야겠구나 생각했고. 그래서 저한테 어느 날 할 말이 있다고 저기 방으로 끌고 가서 둘이 거의 30분을 엉엉 울다가, 저도 이제 생각지도 못했던 얘기였고. 그러면서 정말 이 코너 처음 시작할 때 그 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고 했는데, 그 한 사람이 우리 작가였구나. 저도 참 감사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처음으로 한 일이 저에게 이야기하고 주변에 알리는 일이었죠.
◆ 박예송> 그렇죠. 제가 이제 가장 먼저 부모님한테 알렸고 제 가까운 주변 지인들한테 제가 어떤 아픔이 있는지 알리기 시작했어요.
그게 제가 스스로 할 수 있는 제 아픔을 치료하는 첫 단계라고 생각을 해서, 제 아픔에 대해 이야기했고 돌이켜 생각해 보니까, 제 아픔을 저 혼자 어떻게 해보려고 하다 보니까 마음의 병이 20년 동안 쌓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 김혜민> 그리고 이제 상담 치료를 시작했잖아요.
◆ 박예송> 저희 아버지가 추천해 주신 상담센터에서 이제 치료 받은 지 한 두 달 정도 되어가고 있는데, 그 상담센터 방이 정말 작아요. 작은 탁자 하나랑 의자 두 개 앉고 선생님이랑 저랑 딱 둘만 있는 공간인데 그 공간이 들어가면 제 감정에 정말 솔직해지더라고요. 제 감정에 정말 솔직해지고 확실히 왜 전문가한테 상담을 받는지. 왜 이제서야 이걸 받기 시작했지. 할 정도로 너무너무 좋아지고 있고, 그동안 저는 저를 위로하는 방법을 모른 채로 살았었거든요. 근데 이제 상담을 통해 저를 사랑하는 방법도 배우고 있고, 치료를 통해서 저는 반드시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이제 매주 상담 시간이 기다려지고 좋습니다.
◇ 김혜민> 지금 1003 님은 6살 어렸던 나이에 이렇게 힘들었던 상황이 있었는데 지금처럼 잘 이겨내줘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힘내세요, 하셨고 보이는 라디오 창에 조세학 님께선 정말 공감했고 감동했습니다. 작가님의 경험과 극복함이 세상 어두운 곳에 따뜻함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방송에서 말한 용기와 외침에 박수를 보냅니다. 이렇게 함께 응원을 해주셨어요. 그러면서 이제 글을 쓴다면서요. 내 아픔에 대한 글을.
◆ 박예송> 제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난 후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이게 제 아픔에 직면하고 나아지는 과정까지 글로 남겨보면 어떨까, 싶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또 누군가는 제 글을 읽고 이렇게 저처럼 용기를 내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언젠가는 책을 내는 게 목표인데 글을 쓰다 보니까 이게 저한테도 도움이 많이 되더라고요.
◇ 김혜민> 치유의 힘이 있죠.
◆ 박예송> 글로 이제 나의 현 상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눈에 보이는 글로 제가 어떤 상태인지. 이게 어제의 심리와 오늘의 심리가 또 다르거든요.
이런 복잡한 제 마음을 글로 정리하면서 제 스스로도 저를 다듬는 것 같아요.
글을 다듬으면서, 제 마음도 다듬고. 좋은 것 같아요.
◇ 김혜민> 사람들한테 추천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해요. 치유에 있어서 글쓰기의 역할은 굉장히 크니까요. 이렇게 어렵게 방송에 나와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우리 작가님의 이유가 있죠.
◆ 박예송> 그렇죠. 정말 쉽지 않은 결정이었어요. PD님도 아시겠지만 처음에 제안하셨을 때 제가 바로 거절을 했거든요. 저는 절대 안 나갑니다. 제가 무슨 방송을 하냐고. 그렇게 말했던 기억이 있는데, 시간을 갖고 생각을 해보니까 제가 이런 말 하기 전까지 PD님도 모르셨고, 또 밖에 계신 제작진분들도 지금 작가가 왜 앉아 있나 싶으실 것 같은데. 펑크 나서 작가가 떼우나 보다.
◇ 김혜민> 제가 굉장히 설득 어렵게 해서 지금 한 달 간의 예약 후에 나온 거예요. 펑크 난 거 아닙니다.
◆ 박예송> 그래서 저처럼 이렇게 아무 걱정 없이 사는 것 같은 사람도 들여다보면 다 아픔이 있거든요. 분명 지금 이 순간에도 혼자 끙끙 앓고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근데 이제 본인의 아픔을 공개하는 순간 이미 치유가 되고 있는 거거든요. 이거 하나 제가 경험을 해봐서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거여서, 오늘 제 방송을 듣고 마음 아픈 사람. 단 한 명이라도 용기 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방송에 나오게 됐고, 저는 절대 숨기지 않으셨으면 해요. 물론 어려운 거, 저도 정말 잘 알고 하지만, 이렇게 용기 내서 나오니까 그냥 PD님이랑 이야기하러 나온 것 같고 별거 아니네요.
◇ 김혜민> 그렇게 떨더니. 이렇게 잘할 줄이야.
◆ 박예송> 방송 잘 했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분들에게 용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 하나로 나오게 됐습니다.
◇ 김혜민> 트라우마를 갖게 된 상황들은 거의 99.9프로는 본인의 잘못에 의해 생긴 상황들이 아니거든요. 내 잘못이 아니에요. 근데 그걸 말하지 않고 가지고 있으면 나 스스로가 이거 내가 잘못했나? 이거 내가 뭘 어떻게 해서,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더 그 트라우마, 상처가 덧입고 덧 입혀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예송 작가한테 인터뷰를 권했던 이유는 저도 사실 처음에 깜짝 놀랐거든요. 아, 내 주변에 이런 사연이 있는 친구가 있었어. 그런데 저렇게 늘 활기차고 늘 웃으면서 일했는데 사실 저 친구한테 저런 아픔이 있었구나. 그러면 여러분들 주변에도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예송 작가가 어렵지만 용기를 내서 이 얘기를 해준다면, 저 같은 사람도. 그리고 우리 예송 작가처럼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들도 서로에게 다 좋을 것 같아서 오늘 요청을 드렸고, 흔쾌히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 0332님 작가님, 파이팅입니다. 솔직한 마음을 애청자들에게 진솔하게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하셨고, 3993님은 우리 사회의 작가님 같이 자신의 어려움을 감추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이 프로그램이 치유의 힘을 주지 않았나 싶어요. 앞으로도 더 좋은 방송 부탁드려요. 3400님. 작가님 어릴 적 상처, 트라우마에 너무 힘드신 시간 보냈네요. 작가님 용기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 꽃길만 걸으실 거예요. 이렇게 보내주셨어요.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응원을 해요. 어떤 작가가 되고 싶어요.
◆ 박예송> 그동안 저는 어떤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빈칸을 채우지 못했는데, 이제 몇 달 사이에 제 아픔을 직면하고 그 빈칸을 채우게 됐어요.
◇ 김혜민> 어떤 걸까요.
◆ 박예송> 저는 사람 살리는 작가가 반드시 되겠다. 제가 이 방송을 통해서, 인터뷰를 통해서 세상에 용기 내서 제 아픔을 고백했던 것처럼 앞으로도 이런 방송을 많이 만들어야겠다. 마음 아픈 사람한테 이렇게 손 내밀어주는 작가가 꼭 되겠습니다.
◇ 김혜민> 사람을 살리는 작가가 되겠답니다. 자신의 상처를 딛고 다른 누군가에게 손 내밀어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오늘 박예송 작가의 이름 석 자를 여러분들이 기억해 주시길 바랍니다. 임세원 교수의 죽고 싶은 사람은 없다, 에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면, 이라는 책의 한 구절을 읽고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트라우마는 과거의 반복이므로 이를 이겨내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바로 그것이 끝나게 하는 것이다. 즉 트라우마는 과거에 끝나버린 사건이므로, 현재의 자신에게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스스로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과거의 시간을 회상할 수는 있다. 생각은 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므로. 그러나 사건이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그 사건은 지금의 나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의식적으로 꺼내는 것이 확실히 가능하다.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다. 네, 우리 임세원 교수님의 이 말은 우리 예송 작가를 비롯해 트라우마로 고통 받고 있고 또 이 고통을 조금 오픈하고 싶은 그런 분들에게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2249님. 토닥토닥, 저도 트라우마 있어요. 수시로 잘 터시고 담담하실 수 있기를 빕니다. 이렇게 보내주셨어요. 그리고 우리 유튜브에도 작가님, 어쩌면 기존에 나오셨던 분들도 작가님의 공감과 용기 덕분에 저희에게 더욱 의미 있게 나타난 거 아닐까요. 작가님이 이슈&피플 작가님이어서 감사하네요. 또 이렇게 보내주셔서, 저도 감사합니다. 오늘 함께해 주신 박예송 작가 너무 고맙습니다.
YTN 김혜민 (visionmin@ytnradi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