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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13:00~14:00)
■ 진행 : 김혜민 PD
■ 방송일 : 2022년 1월 26일 (수요일)
■ 대담 : 김용찬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김혜민의 이슈&피플] 위험사회. 우리의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통의 시작 -김용찬교수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미래 교육이 열리다, <런어스> 이 시간에는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며 꼭 생각하고 배워야 하는 주제들을 연세대학교와 함께 배워보는 시간입니다. 코로나 확진자 1만 명, 마음이 참 무거운데요. 코로나, 지난 2년 동안 열심히 갈고 닦은 실력과 능력을 우리가 이제 보여줘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저도 언론인으로서, 또 YTN 라디오 구성원으로서 무얼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시점입니다. 제 고민을 덜어줄 분을 오늘 모셨어요. 김용찬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와 오늘 이야기 나눠볼게요. 교수님, 어서 오세요.
◆ 김용찬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이하 김용찬)> 네, 안녕하세요.
◇ 김혜민> 오늘 제가 교수님하고 재난 시대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요. 앞서 청취자하고도 전화 연결했지만 평소에 tv 못 보시니까 라디오 통해서 정보 접하기 위해서 YTN 라디오도 하루 종일 틀어놓으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재난 시대에 참 미디어가 중요하잖아요. 이 이야기하기 전에 일단 제가 현상부터 진단하기 위해서, 우리가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은 언제 우리 사회가 안 위험했었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지금 학자들이나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말하는 위험사회의 특징이 어떤 게 있겠습니까.
◆ 김용찬> 사실 위험사회라는 말 자체가 학자들이 만들어서 쓴 용어라고 할 수가 있는데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생각해 보면 물론 우리가 코로나 상황 중에 있으니까 위험이라고 하는 것이 매일매일 피부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사회라는 말이 너무 적절한 말처럼 들리긴 하지만, 사실 인류 역사를 쭉 돌이켜보면 지금만큼 또 안전한 사회가 없지 않나, 라는 생각도 할 수가 있거든요. 우리가 여러 가지 다양한 지표로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예를 들어서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기대수명.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사는지 보게 되면 사실 통계를 보면, 1950년대 전까지만 하더라 하더라도 전 세계 평균 기대수명이 50세가 채 되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UN이 계산한 바에 의하면 2040년 정도가 되면 전 세계 평균이 거의 80세, 혹은 85세까지 간다고 하거든요. 그런 걸 따져보면 사실은 정말 우리가 정말 위험한 사회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학자들이 그동안 우리 사회가 왜 위험한 사회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저는 이제 미디어,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소통, 이런 거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서 생각해보면 제일 핵심적인 문제 중에 하나는 뭐냐면 우리가 어떤 위험 상황에 처했을 때, 지금 코로나 같이. 그것을 풀어주는,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공통의 이야기의 틀이 사라진 시대가 우리 시대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훨씬 더 우리가 불확실성을 더 많이 느끼게 되는 것이고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같이 기댈 만한 이야기의 틀이 없다고 하는 거죠. 옛날 같으면 예를 들어 신의 섭리라든지, 혹은 악한 세력의 어떤 계획이라든지 이런 식의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에 대한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결국 개인이 스스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수집해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는, 그렇기 때문에 불안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특별히 위험사회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김혜민> 그러니까 인간의 이성과 기술과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오히려 주어지는 위험은 줄어들었잖아요.
◆ 김용찬> 그거는 어떤 지표를 쓰느냐에 따라 다르긴 한데요.
◇ 김혜민> 예를 들면 과거에 우리가 속절없이 맞이했었던 위험들을 어느 정도 예측도 하고, 어느 정도 대응도 하고, 자연 위기라든지 이런 부분에 있어서, 물론 새로운 위험들이 닥치기는 했지만. 그런데 오히려 공통의 이야기의 틀이 사라져 버려서 기술과 과학이 발전을 해서 막을 수 있는 일조차도 오히려 막을 수 없는 그런 역설적인 시대가 된 게 아닌가, 저는 그런 생각을 좀 해보거든요.
◆ 김용찬> 결국은 우리가 위험 자체를 없앨 수는 없겠죠. 우리가 어떤 장소에 있든 어떤 사회에 있던 또 어떤 때에 있든지 간에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위험은 항상 발생할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그런 위험이 닥쳤을 때 우리 공동체가 같이 협력해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일종의 공동체 역량, 이것을 우리가 갖추고 있느냐, 없느냐. 사실 이게 중요한 것인데 조금 전에 위험사회와 관련된 말씀을 해 주셨는데, 결국에는 우리가 그런 공동체적 역량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하는 것이겠죠. 문제 자체가 없어졌다고 하기보다는.
◇ 김혜민> 그러면 교수님이랑 얘기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이 사회가 위험사회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러면 우리는 이 위험의 요소를 해결할 수 있는 공동체의 역량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그렇게 문제를 바라보는 게 정확한 것 같아요. 그러면 한국 사회는 이런 공동체의 역량이 있는 사회입니까.
◆ 김용찬> 어떤 것 같으세요.
◇ 김혜민> 그렇기 때문에 교수님을 모셨겠죠. 역량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 김용찬> 그렇죠. 좀 전에 말씀드린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50년대, 혹은 60년대, 70년대, 그나마 우리 사회 안에 작고 큰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존재했을 때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경제적으로도 혹은 정치적으로도 훨씬 더 어려운 시기였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뭔가 기댈 언덕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그때는 그것이 점점 허약해져 가는 과정이 있기는 했지만, 지역 커뮤니티라고 하는 것이 여전히 존재했을 때가 있었고, 그리고 가족 커뮤니티라고 하는 것이 비교적 튼튼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그리고 예를 들어서 대학에 들어와서도 동아리라든지 하는 것이 있었고 심지어는 같은 정치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정치적 결사체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여건도 있었고. 그런데 2022년, 오늘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방금 전에 말씀드렸던 그런 것들이 이제는 드라마에서나 등장하는 과거의 추억을 우리가 떠올리는 것들이 되었다, 라고 하는 것인데 바로 그런 것들이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위험 상황에 대해서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도움을 주고,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에 도움을 주는 일종의 스토리의 틀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그런 커뮤니티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지난 20년, 30년, 40년 동안 근본적인 커뮤니티의 인프라 자체가 굉장히 허약해진 상태에 있고, 그게 아마 우리 사회가 위험사회로 점점 더 전진해 나가는 핵심적인 문제라고 볼 수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 김혜민> 그러니까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 무너지면서 공동체 안에 있을 수 있는 집단 지성이라든지 함께할 수 있는 위로라든지 자정 능력이 우리 사회에 사라져버린 거죠. 그러니까 위험이 닥쳤을 때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데, 그러다 보니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우리 아주 흔한 말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하는데 무슨 문제가 생기면 서로 흩어져서 지적질 하느라, 그리고 그 지적질의 끝에 공통적으로 모이는 그 지점에 마녀사냥까지 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 때도 굉장히 많았죠.
◆ 김용찬> 그렇죠.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위험 상황, 자연재난부터 시작해서 정치적 격변, 이런 것들을 겪게 되면 누군가를, 혹은 어떤 집단을 뽑아내서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고, 쉽게 마녀사냥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보편적인 현상이죠. 어떤 때나 우리가 쉽게 예를 찾을 수 있는. 이번 코로나 상황도 전혀 예외가 아니었다라고 볼 수가 있을 텐데 저는 그것과 연관돼서 한 가지 일종의 아이러니한 것으로 생각해보는 건 뭐냐면 얼마만큼 어떤 특정 집단을 비난하고 마녀사냥 하는 게 비합리적인가라는 걸 보여주는 게 뭐냐면 특히 코로나 같은 보건 위기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평상시에도 그랬지만 더군다나 꺼려하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낯선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 그것이 더 강화가 되면 혐오, 이런 것들로 드러나는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누구에게 감염이 되나요. 사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가 감염이 된다고 그러면 대부분의 감염의 소스는 아는 사람들이거든요. 가족들. 친구들. 우리가 친하게 만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우리의 손가락은 모르는 사람들, 낯선 사람들. 결국 그런 공포가 더 확대가 되게 되면 심각한 사회적인 분열, 혐오, 이런 문제로 발전하게 되는데 아무튼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전혀 예외가 아니었다고 하는 것. 그러니까 누군가를 비난하는 그런 현상은요.
◇ 김혜민> 네. 그러니까 말씀하신 낯선 사람들, 결국은 우리 사회에 약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그래서 중국 폐렴, 이런 말도 있었고 또 이태원 클럽 확진자의 경우에는 성소수자들을 향한 손가락질이 좀 많았던 것을 우리가 알 수 있게 됩니다. 교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주셨는데 현대사회의 개인들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연대와 배척을 간접적으로 학습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가 이런 재난 시대 때 연대할 수 있게 해야지, 배척할 수 있게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이 미디어의 역할, 좀 설명을 해주세요.
◆ 김용찬> 지금 연대와 배척, 두 단어를 쓰셨는데 이걸 재밌다, 라고 하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이런 재난 상황과 관련된 연구들을 보면 꼭 연구가 아니더라도, 미디어 기사라든지 우리가 쉽게 접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재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이 굉장히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한편에서는 평상시보다 훨씬 더 사람들이 착해져요. 그러니까 주변에 사람들에게 더 호의를 베풀고, 그야말로 연대감, 이런 것을 서로 느낄 수 있는 행동을 보인다고 하는 거죠. 실제로 연구 결과들이 있는데 사람들이 예를 들어서 버스 정류장에서, 혹은 지하철역에 만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평상시에는 우리가 모른 척 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인사를 나눈다든지, 이런 것들도 관찰이 되고. 그러니까 평시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혹은 평상시보다 훨씬 더 높은 연대감을 보이는 반면에, 또 동시에 평상시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적대감을 사람들에게 보인다고 하는데 그게 어떤 사람들은 연대감을 더 많이 보이고, 어떤 사람들은 적대감을 더 많이 보이고 이런 것이 아니라 연대감을 보이는 사람들과 적대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동일한 사람들이라고 하죠. 그런데 왜 그럴까,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되겠죠. 여러 가지 그것을 설명해 주는 이론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해 주는 것이 이런 겁니다. 사람들이 위험 상황에 처하게 되면 불확실성이 높아지죠. 뭔가 불안하고, 어떻게 해야 될까. 그렇게 불확실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자기들이 조금이라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익숙한 것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자기가 원래부터 평상시에는 별로 소속감을 느끼지 않았던 집단에, 그러나 멤버십을 갖고 있는 집단에 더 결속력을, 충성심을 높인다든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연대감이 높아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현상이 나타나느냐 하면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에 대해서 거기서부터 얻는 안정감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그 경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훨씬 더 밀어내고, 그들을 더 배척하게 되고 그들에 대한 혐오감을 더 높이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결국 연대와 적대가 같이 가는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인데 최근에는 그것이 특히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제가 그것을 디지털 연대와 디지털 적대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그것 때문에 연대와 적대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훨씬 더 극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고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겠죠.
◇ 김혜민> 그러면 디지털 연대, 디지털 적대라고 하셨는데 이 추를 미디어가 굉장히 많이 갖고 있다고 말해도 됩니까.
◆ 김용찬> 그렇죠. 미디어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죠.
◇ 김혜민> 그러면 우리나라 미디어, 멀리 갈 것도 없이 코로나 시대에 우리나라 미디어는 이 축이 연대에 더 있었습니까, 적대에 더 있었습니까, 학자로서 판단하시기에.
◆ 김용찬> 그거를 딱 두부 자르듯이 이야기할 수는 없는데 저는 결국 이런 재난 상황에서 쉽게 얘기하면 두 개의 바퀴가 돌아간다, 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한쪽에서는 두려움과 공포의 바퀴가 돌아가고, 또 한편에서는 그냥 두려움과 공포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한 바퀴가 돌아가는데 우리가 미디어가 어떻게 뭘 해야 되느냐, 라는 얘기를 하게 되면 시끄럽게 얘기할 수가 있겠죠. 미디어의 보도라든지, 혹은 미디어가 전달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공포의 바퀴를 돌리기보다는 어떻게든 공동체적 역량을 모아서 문제 해결, 혹은 문제 대처의 바퀴를 더 잘 돌릴 수 있도록 미디어가 역할을 해야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에 대해서 우려하는 것은 후자보다는 전자. 공포의 바퀴를 돌리는데 그것에 기여하는 이야기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더 전달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걱정을 하는 거죠.
◇ 김혜민> 문제 해결의 발길을 더 많이 돌려야 한다, 미디어가,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언론인이지만 이런 재난 시대에는 사실은 그 정보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높단 말이에요. 사람들의. 그러면 문제 해결의 바퀴를 위해 선별된 정보만, 문제 해결에 용이한 정보만 공개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일단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들을 되도록 많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언론의 역할인 건지 잘 모르겠어요.
◆ 김용찬> 그게 이제 쉬운 문제가 아닌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100% 확실한 정보만 전달할 수는 없겠죠. 그래서 사실은 미디어와 전문가들 사이에 공조, 이게 굉장히 중요한데 그 공조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미디어는 전문가들의 말을 배워야 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전문가들은 또 미디어의 말을 배워야 되는데 그런 공조가 잘 이루어진 상태에서, 그렇다고 하는 전제에서, 저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100% 확실한 정보라기보다는 결국은 사람들이 사실 재난 상황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정보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뭐가 내가 믿을 수 있는 정보인지 아닌지를 모르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전문가들과의 공조를 바탕으로 해서 미디어가 해야 되는 역할은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데 거기에 분명히 어떤 주석을 항상 붙여줘야 되는 것이죠. 이 정보는 100% 우리가 믿을 수 있다. 이게 거의 과학적으로 검증된 정보다. 혹은 어떤 것은 이런 정보가 상당히 믿을 수는 있지만 아직까지 100% 확실한 것은 아니다. 이것도 사실은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정보인데요. 어떤 사실에 대해서 우리가 아직은 잘 모른다, 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정보죠. 우리가 아직은 잘 모른다. 그것도 우리가 세분화시켜서 살펴볼 수 있는데 지금은 잘 모르지만, 예를 들어서 한 내년 정도면 우리가 알 수 있다, 라든지. 혹은 여러 가지 과학자들이 열심히 노력을 해서 우리가 몇 년 후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는 정보다. 혹은 이거는 우리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실 알 수 없는 거다, 라고 하는 것들을 알려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파편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데 방금 제가 말씀드린 것을 종합해서 말씀드리면, 결국은 정보의 지도를 그려주는 것. 그러니까 얼마나 확실한 것인가. 확실하지 않은 것인가. 혹은 우리가 얼마나 모르는 것인가, 라고 하는 것들의 좌표를 지정해 주는 것. 이게 사실은 미디어가 해주는 것이죠. 그러니까 다 아는 것처럼, 확실한 것처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지도를 그려주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굉장히 안정감을 주게 되는 것이죠.
◇ 김혜민> 원래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아는 척하는 것처럼 용감한 게 없거든요. 위험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언론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니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얘기를 가지고 지도를 그려주는 역할을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수님하고 여러 학자들이 커뮤니케이션 하부 구조 이론이라는 걸 만드셨던데 거기에 핵심 내용이 이거더라고요. 위험 상황에서 특정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이 보이는 연대의 모습이 결국 그 커뮤니티가 보유한 커뮤니케이션 하부 구조의 질에 달려있다, 라고 얘기를 하셨는데 이 위험 시대에 말씀하신 그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김용찬> 커뮤니케이션 하부 구조라고 하는 게 다른 것이 아니라 결국은 계속 오늘 말씀드리는 것이기는 하지만 문제가 없을 수는 없죠. 다만 그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같이 소통할 수 있느냐, 없느냐, 라고 하는 게 가장 핵심적인 이슈라고 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서 우리가 같은 지역에 살 수도 있고 혹은 같은 조직의, YTN 같은, 조직에 속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집단이나 지역이나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특정 이슈에 대해서 아, 이게 우리의 문제야, 라고 같이 합의를 할 수 있는가.
◇ 김혜민> 그게 공감의 시작이잖아요.
◆ 김용찬>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 밑에 일종의 인프라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무슨 전력이라든지, 수도라든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부 구조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이게 우리 문제야, 라고 하는 공동체적 합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 밑에서 움직이는 소통의 인프라라고 하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가 그것을 갖추려고 하는 노력을 얼마나 해왔는가, 라고 하는 것, 그게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중요한 문제고요. 그것이 제대로 갖춰진다고 그러면 문제가 닥치더라도 그 문제를 우리가 이게 우리 문제구나, 라고 공동의 인식을 하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그러면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같이 무엇을 할 것인가, 공동의 문제 해결, 해결 방법, 이런 것들을 끌어낼 수 있는 것. 이것도 결국은 원활하고 활발한 소통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 커뮤니케이션 하부 구조, 혹은 커뮤니케이션 인프라라고 하는 것인데 결국에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라고 하는 게 우리 사회에 주어진 숙제이고 코로나19 상황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과제라고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 김혜민>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소통의 그릇을 만드는 게 재난 시대에 굉장히 중요하고, 무엇보다 그 그릇의 역할을 미디어가 해 줘야 한다는 중요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코로나 시대 잘 보내고 더 연구하셔서요. 교수님, 오늘 던져주신 그 과제에 대한 답을 또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인터뷰 고맙습니다.
YTN 김혜민 (visionmin@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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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김혜민 PD
■ 방송일 : 2022년 1월 26일 (수요일)
■ 대담 : 김용찬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김혜민의 이슈&피플] 위험사회. 우리의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소통의 시작 -김용찬교수
◇ 김혜민 PD(이하 김혜민)> 미래 교육이 열리다, <런어스> 이 시간에는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며 꼭 생각하고 배워야 하는 주제들을 연세대학교와 함께 배워보는 시간입니다. 코로나 확진자 1만 명, 마음이 참 무거운데요. 코로나, 지난 2년 동안 열심히 갈고 닦은 실력과 능력을 우리가 이제 보여줘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저도 언론인으로서, 또 YTN 라디오 구성원으로서 무얼 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는 시점입니다. 제 고민을 덜어줄 분을 오늘 모셨어요. 김용찬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와 오늘 이야기 나눠볼게요. 교수님, 어서 오세요.
◆ 김용찬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이하 김용찬)> 네, 안녕하세요.
◇ 김혜민> 오늘 제가 교수님하고 재난 시대 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하고 싶어요. 앞서 청취자하고도 전화 연결했지만 평소에 tv 못 보시니까 라디오 통해서 정보 접하기 위해서 YTN 라디오도 하루 종일 틀어놓으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재난 시대에 참 미디어가 중요하잖아요. 이 이야기하기 전에 일단 제가 현상부터 진단하기 위해서, 우리가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은 언제 우리 사회가 안 위험했었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지금 학자들이나 언론이나 전문가들이 말하는 위험사회의 특징이 어떤 게 있겠습니까.
◆ 김용찬> 사실 위험사회라는 말 자체가 학자들이 만들어서 쓴 용어라고 할 수가 있는데요. 그런데 사실 우리가 생각해 보면 물론 우리가 코로나 상황 중에 있으니까 위험이라고 하는 것이 매일매일 피부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사회라는 말이 너무 적절한 말처럼 들리긴 하지만, 사실 인류 역사를 쭉 돌이켜보면 지금만큼 또 안전한 사회가 없지 않나, 라는 생각도 할 수가 있거든요. 우리가 여러 가지 다양한 지표로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예를 들어서 가장 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기대수명.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사는지 보게 되면 사실 통계를 보면, 1950년대 전까지만 하더라 하더라도 전 세계 평균 기대수명이 50세가 채 되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UN이 계산한 바에 의하면 2040년 정도가 되면 전 세계 평균이 거의 80세, 혹은 85세까지 간다고 하거든요. 그런 걸 따져보면 사실은 정말 우리가 정말 위험한 사회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학자들이 그동안 우리 사회가 왜 위험한 사회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만 저는 이제 미디어,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소통, 이런 거에 관심 있는 사람으로서 생각해보면 제일 핵심적인 문제 중에 하나는 뭐냐면 우리가 어떤 위험 상황에 처했을 때, 지금 코로나 같이. 그것을 풀어주는, 우리가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는 공통의 이야기의 틀이 사라진 시대가 우리 시대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훨씬 더 우리가 불확실성을 더 많이 느끼게 되는 것이고요.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고 우리가 이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 모두가 같이 기댈 만한 이야기의 틀이 없다고 하는 거죠. 옛날 같으면 예를 들어 신의 섭리라든지, 혹은 악한 세력의 어떤 계획이라든지 이런 식의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에 대한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결국 개인이 스스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수집해서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갈 수밖에 없는, 그렇기 때문에 불안감이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그런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특별히 위험사회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 김혜민> 그러니까 인간의 이성과 기술과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오히려 주어지는 위험은 줄어들었잖아요.
◆ 김용찬> 그거는 어떤 지표를 쓰느냐에 따라 다르긴 한데요.
◇ 김혜민> 예를 들면 과거에 우리가 속절없이 맞이했었던 위험들을 어느 정도 예측도 하고, 어느 정도 대응도 하고, 자연 위기라든지 이런 부분에 있어서, 물론 새로운 위험들이 닥치기는 했지만. 그런데 오히려 공통의 이야기의 틀이 사라져 버려서 기술과 과학이 발전을 해서 막을 수 있는 일조차도 오히려 막을 수 없는 그런 역설적인 시대가 된 게 아닌가, 저는 그런 생각을 좀 해보거든요.
◆ 김용찬> 결국은 우리가 위험 자체를 없앨 수는 없겠죠. 우리가 어떤 장소에 있든 어떤 사회에 있던 또 어떤 때에 있든지 간에 여러 가지 다양한 종류의 위험은 항상 발생할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그런 위험이 닥쳤을 때 우리 공동체가 같이 협력해서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일종의 공동체 역량, 이것을 우리가 갖추고 있느냐, 없느냐. 사실 이게 중요한 것인데 조금 전에 위험사회와 관련된 말씀을 해 주셨는데, 결국에는 우리가 그런 공동체적 역량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고 하는 것이겠죠. 문제 자체가 없어졌다고 하기보다는.
◇ 김혜민> 그러면 교수님이랑 얘기하다 보니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이 사회가 위험사회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러면 우리는 이 위험의 요소를 해결할 수 있는 공동체의 역량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그렇게 문제를 바라보는 게 정확한 것 같아요. 그러면 한국 사회는 이런 공동체의 역량이 있는 사회입니까.
◆ 김용찬> 어떤 것 같으세요.
◇ 김혜민> 그렇기 때문에 교수님을 모셨겠죠. 역량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 김용찬> 그렇죠. 좀 전에 말씀드린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50년대, 혹은 60년대, 70년대, 그나마 우리 사회 안에 작고 큰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존재했을 때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면 경제적으로도 혹은 정치적으로도 훨씬 더 어려운 시기였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뭔가 기댈 언덕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그때는 그것이 점점 허약해져 가는 과정이 있기는 했지만, 지역 커뮤니티라고 하는 것이 여전히 존재했을 때가 있었고, 그리고 가족 커뮤니티라고 하는 것이 비교적 튼튼하게 존재하고 있었고, 그리고 예를 들어서 대학에 들어와서도 동아리라든지 하는 것이 있었고 심지어는 같은 정치적인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끼리 정치적 결사체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여건도 있었고. 그런데 2022년, 오늘 시점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가 방금 전에 말씀드렸던 그런 것들이 이제는 드라마에서나 등장하는 과거의 추억을 우리가 떠올리는 것들이 되었다, 라고 하는 것인데 바로 그런 것들이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위험 상황에 대해서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도움을 주고,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이야기 할 것인가에 도움을 주는 일종의 스토리의 틀을 우리에게 제공해 주는 그런 커뮤니티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지난 20년, 30년, 40년 동안 근본적인 커뮤니티의 인프라 자체가 굉장히 허약해진 상태에 있고, 그게 아마 우리 사회가 위험사회로 점점 더 전진해 나가는 핵심적인 문제라고 볼 수가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 김혜민> 그러니까 크고 작은 공동체들이 무너지면서 공동체 안에 있을 수 있는 집단 지성이라든지 함께할 수 있는 위로라든지 자정 능력이 우리 사회에 사라져버린 거죠. 그러니까 위험이 닥쳤을 때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데, 그러다 보니까 무슨 문제가 생기면 우리 아주 흔한 말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하는데 무슨 문제가 생기면 서로 흩어져서 지적질 하느라, 그리고 그 지적질의 끝에 공통적으로 모이는 그 지점에 마녀사냥까지 하는 모습들을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코로나 때도 굉장히 많았죠.
◆ 김용찬> 그렇죠.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위험 상황, 자연재난부터 시작해서 정치적 격변, 이런 것들을 겪게 되면 누군가를, 혹은 어떤 집단을 뽑아내서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고, 쉽게 마녀사냥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보편적인 현상이죠. 어떤 때나 우리가 쉽게 예를 찾을 수 있는. 이번 코로나 상황도 전혀 예외가 아니었다라고 볼 수가 있을 텐데 저는 그것과 연관돼서 한 가지 일종의 아이러니한 것으로 생각해보는 건 뭐냐면 얼마만큼 어떤 특정 집단을 비난하고 마녀사냥 하는 게 비합리적인가라는 걸 보여주는 게 뭐냐면 특히 코로나 같은 보건 위기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이 평상시에도 그랬지만 더군다나 꺼려하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 하면 낯선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 그것이 더 강화가 되면 혐오, 이런 것들로 드러나는데 한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누구에게 감염이 되나요. 사실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가 감염이 된다고 그러면 대부분의 감염의 소스는 아는 사람들이거든요. 가족들. 친구들. 우리가 친하게 만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실제로 우리의 손가락은 모르는 사람들, 낯선 사람들. 결국 그런 공포가 더 확대가 되게 되면 심각한 사회적인 분열, 혐오, 이런 문제로 발전하게 되는데 아무튼 코로나 상황 속에서도 전혀 예외가 아니었다고 하는 것. 그러니까 누군가를 비난하는 그런 현상은요.
◇ 김혜민> 네. 그러니까 말씀하신 낯선 사람들, 결국은 우리 사회에 약자들인 경우가 대부분이고요. 그래서 중국 폐렴, 이런 말도 있었고 또 이태원 클럽 확진자의 경우에는 성소수자들을 향한 손가락질이 좀 많았던 것을 우리가 알 수 있게 됩니다. 교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주셨는데 현대사회의 개인들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연대와 배척을 간접적으로 학습한다,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가 이런 재난 시대 때 연대할 수 있게 해야지, 배척할 수 있게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이 미디어의 역할, 좀 설명을 해주세요.
◆ 김용찬> 지금 연대와 배척, 두 단어를 쓰셨는데 이걸 재밌다, 라고 하면 좀 그렇기는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이런 재난 상황과 관련된 연구들을 보면 꼭 연구가 아니더라도, 미디어 기사라든지 우리가 쉽게 접하는 이야기들을 보면, 재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이 굉장히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한편에서는 평상시보다 훨씬 더 사람들이 착해져요. 그러니까 주변에 사람들에게 더 호의를 베풀고, 그야말로 연대감, 이런 것을 서로 느낄 수 있는 행동을 보인다고 하는 거죠. 실제로 연구 결과들이 있는데 사람들이 예를 들어서 버스 정류장에서, 혹은 지하철역에 만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에게 평상시에는 우리가 모른 척 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인사를 나눈다든지, 이런 것들도 관찰이 되고. 그러니까 평시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혹은 평상시보다 훨씬 더 높은 연대감을 보이는 반면에, 또 동시에 평상시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적대감을 사람들에게 보인다고 하는데 그게 어떤 사람들은 연대감을 더 많이 보이고, 어떤 사람들은 적대감을 더 많이 보이고 이런 것이 아니라 연대감을 보이는 사람들과 적대감을 보이는 사람들이 동일한 사람들이라고 하죠. 그런데 왜 그럴까,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되겠죠. 여러 가지 그것을 설명해 주는 이론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해 주는 것이 이런 겁니다. 사람들이 위험 상황에 처하게 되면 불확실성이 높아지죠. 뭔가 불안하고, 어떻게 해야 될까. 그렇게 불확실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자기들이 조금이라도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익숙한 것에 더 집착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자기가 원래부터 평상시에는 별로 소속감을 느끼지 않았던 집단에, 그러나 멤버십을 갖고 있는 집단에 더 결속력을, 충성심을 높인다든지.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연대감이 높아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어떤 현상이 나타나느냐 하면 자기가 속해 있는 집단에 대해서 거기서부터 얻는 안정감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그 경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훨씬 더 밀어내고, 그들을 더 배척하게 되고 그들에 대한 혐오감을 더 높이게 되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결국 연대와 적대가 같이 가는 그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인데 최근에는 그것이 특히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의해서 제가 그것을 디지털 연대와 디지털 적대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그것 때문에 연대와 적대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이 훨씬 더 극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고 그것을 경험하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라고 할 수 있겠죠.
◇ 김혜민> 그러면 디지털 연대, 디지털 적대라고 하셨는데 이 추를 미디어가 굉장히 많이 갖고 있다고 말해도 됩니까.
◆ 김용찬> 그렇죠. 미디어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죠.
◇ 김혜민> 그러면 우리나라 미디어, 멀리 갈 것도 없이 코로나 시대에 우리나라 미디어는 이 축이 연대에 더 있었습니까, 적대에 더 있었습니까, 학자로서 판단하시기에.
◆ 김용찬> 그거를 딱 두부 자르듯이 이야기할 수는 없는데 저는 결국 이런 재난 상황에서 쉽게 얘기하면 두 개의 바퀴가 돌아간다, 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한쪽에서는 두려움과 공포의 바퀴가 돌아가고, 또 한편에서는 그냥 두려움과 공포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한 바퀴가 돌아가는데 우리가 미디어가 어떻게 뭘 해야 되느냐, 라는 얘기를 하게 되면 시끄럽게 얘기할 수가 있겠죠. 미디어의 보도라든지, 혹은 미디어가 전달하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통해서 공포의 바퀴를 돌리기보다는 어떻게든 공동체적 역량을 모아서 문제 해결, 혹은 문제 대처의 바퀴를 더 잘 돌릴 수 있도록 미디어가 역할을 해야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에 대해서 우려하는 것은 후자보다는 전자. 공포의 바퀴를 돌리는데 그것에 기여하는 이야기들이 미디어를 통해서 더 전달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걱정을 하는 거죠.
◇ 김혜민> 문제 해결의 발길을 더 많이 돌려야 한다, 미디어가, 말씀을 하셨는데 저도 언론인이지만 이런 재난 시대에는 사실은 그 정보에 대한 욕구가 굉장히 높단 말이에요. 사람들의. 그러면 문제 해결의 바퀴를 위해 선별된 정보만, 문제 해결에 용이한 정보만 공개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일단 우리가 갖고 있는 정보들을 되도록 많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게 언론의 역할인 건지 잘 모르겠어요.
◆ 김용찬> 그게 이제 쉬운 문제가 아닌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100% 확실한 정보만 전달할 수는 없겠죠. 그래서 사실은 미디어와 전문가들 사이에 공조, 이게 굉장히 중요한데 그 공조가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미디어는 전문가들의 말을 배워야 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죠. 전문가들은 또 미디어의 말을 배워야 되는데 그런 공조가 잘 이루어진 상태에서, 그렇다고 하는 전제에서, 저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100% 확실한 정보라기보다는 결국은 사람들이 사실 재난 상황에서 두려워하는 것은 정보가 없어서라기보다는 뭐가 내가 믿을 수 있는 정보인지 아닌지를 모르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결국 전문가들과의 공조를 바탕으로 해서 미디어가 해야 되는 역할은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데 거기에 분명히 어떤 주석을 항상 붙여줘야 되는 것이죠. 이 정보는 100% 우리가 믿을 수 있다. 이게 거의 과학적으로 검증된 정보다. 혹은 어떤 것은 이런 정보가 상당히 믿을 수는 있지만 아직까지 100% 확실한 것은 아니다. 이것도 사실은 사람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정보인데요. 어떤 사실에 대해서 우리가 아직은 잘 모른다, 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정보죠. 우리가 아직은 잘 모른다. 그것도 우리가 세분화시켜서 살펴볼 수 있는데 지금은 잘 모르지만, 예를 들어서 한 내년 정도면 우리가 알 수 있다, 라든지. 혹은 여러 가지 과학자들이 열심히 노력을 해서 우리가 몇 년 후에는 그래도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는 정보다. 혹은 이거는 우리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실 알 수 없는 거다, 라고 하는 것들을 알려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파편적인 정보를 전달하는 것도 중요한데 방금 제가 말씀드린 것을 종합해서 말씀드리면, 결국은 정보의 지도를 그려주는 것. 그러니까 얼마나 확실한 것인가. 확실하지 않은 것인가. 혹은 우리가 얼마나 모르는 것인가, 라고 하는 것들의 좌표를 지정해 주는 것. 이게 사실은 미디어가 해주는 것이죠. 그러니까 다 아는 것처럼, 확실한 것처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지도를 그려주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굉장히 안정감을 주게 되는 것이죠.
◇ 김혜민> 원래 어설프게 아는 사람이 아는 척하는 것처럼 용감한 게 없거든요. 위험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언론은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니까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얘기를 가지고 지도를 그려주는 역할을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교수님하고 여러 학자들이 커뮤니케이션 하부 구조 이론이라는 걸 만드셨던데 거기에 핵심 내용이 이거더라고요. 위험 상황에서 특정 커뮤니티에 속한 사람들이 보이는 연대의 모습이 결국 그 커뮤니티가 보유한 커뮤니케이션 하부 구조의 질에 달려있다, 라고 얘기를 하셨는데 이 위험 시대에 말씀하신 그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김용찬> 커뮤니케이션 하부 구조라고 하는 게 다른 것이 아니라 결국은 계속 오늘 말씀드리는 것이기는 하지만 문제가 없을 수는 없죠. 다만 그 문제를 우리의 문제로 같이 소통할 수 있느냐, 없느냐, 라고 하는 게 가장 핵심적인 이슈라고 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서 우리가 같은 지역에 살 수도 있고 혹은 같은 조직의, YTN 같은, 조직에 속해 있을 수도 있는데 그런 집단이나 지역이나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특정 이슈에 대해서 아, 이게 우리의 문제야, 라고 같이 합의를 할 수 있는가.
◇ 김혜민> 그게 공감의 시작이잖아요.
◆ 김용찬> 그런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 밑에 일종의 인프라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무슨 전력이라든지, 수도라든지,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부 구조잖아요. 그런데 우리가 이게 우리 문제야, 라고 하는 공동체적 합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 밑에서 움직이는 소통의 인프라라고 하는 것이 필요한데 우리가 그것을 갖추려고 하는 노력을 얼마나 해왔는가, 라고 하는 것, 그게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하는 중요한 문제고요. 그것이 제대로 갖춰진다고 그러면 문제가 닥치더라도 그 문제를 우리가 이게 우리 문제구나, 라고 공동의 인식을 하고 그것을 토대로 해서 그러면 우리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같이 무엇을 할 것인가, 공동의 문제 해결, 해결 방법, 이런 것들을 끌어낼 수 있는 것. 이것도 결국은 원활하고 활발한 소통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죠. 그래서 그런 것들을 가능케 해주는 것이 커뮤니케이션 하부 구조, 혹은 커뮤니케이션 인프라라고 하는 것인데 결국에는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라고 하는 게 우리 사회에 주어진 숙제이고 코로나19 상황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과제라고 할 수가 있을 것 같습니다.
◇ 김혜민> 그러니까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소통의 그릇을 만드는 게 재난 시대에 굉장히 중요하고, 무엇보다 그 그릇의 역할을 미디어가 해 줘야 한다는 중요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코로나 시대 잘 보내고 더 연구하셔서요. 교수님, 오늘 던져주신 그 과제에 대한 답을 또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인터뷰 고맙습니다.
YTN 김혜민 (visionmin@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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