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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3년 7월 16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조서환 조서환마케팅그룹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마케팅 사관학교 조서환"중소기업 마케팅은 하나에만 집중 해야"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아무리 좋은 상품이어도 마케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사랑받기가 힘듭니다. 좋은 제품을 어떻게 알리느냐.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떻게 인식시키냐가 중요할 텐데요. 우리에게 익숙한 상품들의 마케팅을 성공시킨 분입니다. 오늘은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의 주인공은 조서환마케팅그룹 조서환 대표와 함께 이야기 나눠봅니다. 안녕하세요?
◆ 조서환 조서환마케팅그룹 대표(이하 조서환)> 네, 안녕하세요.
◇ 이성규> 청취자 여러분께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조서환> 안녕하세요. 청취자 여러분 저는 조서환마케팅그룹의 대표 조서환입니다. 반갑습니다.
◇ 이성규> 조서환마케팅그룹에 대해서는 차차 이야기를 나눠보겠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오랜만입니다.
◆ 조서환> 현직에서는 이제 관두고요. 제가 회사를 조그맣게 차려가지고 마케팅 사관학교를 하나 경영하고 있어요. 그리고 또 시간이 남아서 경희대학교의 겸임 교수를 하고 있고요. 또 하나는 전국에 다니면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꼽는다면 작은 중소기업들 마케팅 컨설팅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여전히 계속 바쁘시겠어요?
◆ 조서환> 재밌게 보내고 있습니다.
◇ 이성규> 마케팅 사관학교 이러니까 군인 냄새가 좀 나는데, 원래 꿈이 군인이셨다고요?
◆ 조서환> 맞습니다. 집이 가난하게 충청남도 청양 칠갑산 밑에서 태어났어요. 그러다 보니까 대학을 보낼 수가 없으니까 공짜로 갈 수 있는 사관학교가 딱 맞다라고 보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육군3사관학교를 들어갔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 이성규> 청양이세요?
◆ 조서환> 네, 충청남도 청양이요.
◇ 이성규> 청양이 무엇으로 유명하더라.
◆ 조서환> 칠갑산으로 제일 유명하죠.
◇ 이성규> 칠갑산, 청양, 부여, 공주가 붙었잖아요.
◆ 조서환> 그리고 청양고추, 구기자도 유명하죠.
◇ 이성규> 구기자. 그래서 그러신지 건강하신 것 같아요?
◆ 조서환> 감사합니다.
◇ 이성규> 그런데 군인으로 복무하시면서 좀 사고를 당하셨죠. 그게 어떤 사고였어요?
◆ 조서환> 육군 소위 때, 소대장 시절인데 부대에서 대간첩 작전 훈련 중에 잘못된 수류탄을 제대로 멀리 던지는데 그게 손에 빠져나가지 않고 머리 위에서 폭발해버렸어요.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죠. 머리에서만 파편 24개가 나오고요. 손은 바로 그날 잘려져 나갔고요. 등은 완전 벌집이 돼서 어떻게 보면 1초만 늦게 올렸으면 공중분해 될 뻔했는데 산 거예요.
◇ 이성규> 그렇게 들으니까 또 조금 마음이 복잡하네요. 그때 이후에 일상이 많이 달라지셨겠어요?
◆ 조서환> 처음에는 정말 힘든 게 그때까지 오른손잡이로 살았잖아요. 그런데 오른손이 없어졌잖아요.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되는 거요. 글씨도 왼손으로, 그리고 또 두 손으로 하다가 한 손으로 해야 되잖아요. 그게 아주 보통 불편한 게 아니었죠. 특히나 왼손으로 가방은 들었는데 비가 올 때는 우산 들을 손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처마 밑에 앉아가지고 비 그칠 때까지 계속 기다려요. 핸드폰이 있어도 연락할 수도 없고 그때는 핸드폰도 없었으니까요. 그런 게 제일 힘들었어요.
◇ 이성규> 지금도 보면 진짜 팔 한쪽이 없는 분들이나 편마비 분들은 진짜 비가 오면 정말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그래도 이겨내셨네요.
◆ 조서환> 그러니까 어찌 보면 고난이 닥치면 사람이 또 강해지는 것 같긴 하더라고요. 이 정도는, 처만 밑에서 배고플 때요. 오갈 수도 없고, 그때 할 수 있는 방법은 마인드 컨트롤이 제일 낫더라고요. ‘비가 와서 나는 처마 밑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가 있네.’ 이러면서 책을 계속 읽었죠. 그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배는 고팠지만 책은 한 권 다 읽을 수 있었네. 비가 오시는 덕분에,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한 거죠. 그렇지 않으면 극복 못 했을 거예요.
◇ 이성규> 마인드 컨트롤, 그러니까 그 사고 이후에 일상도 많이 변했지만 그 마음의 상태, 마음 가짐, 생각 이런 것도 많이 변했겠어요?
◆ 조서환>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또 질문하실지 모르겠지만 한 손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게 뭘까? 직업 군인을 잃었잖아요. 그다음에 두 손으로 할 수 있는 건 못 하게 됐잖아요. 그러니까 입으로 먹고 살아야 되겠다. 그러면 입으로 먹고 살려면 우리말보다는 영어가 낫겠다. 그래서 영문과 진학을 한 거예요. 그게 크게 방향 튼 것 중에 하나죠. 손이 없으니 입으로 먹고 산다. 다행히 머리에 파편이 들어가지 않아서 뇌가 이상이 없으니까요.
◇ 이성규> 그러니까 그때부터 글로벌을 꿈꾸셨네요?
◆ 조서환> 그렇죠. 그 시대가 올 걸로 예측을 했고 또 손이 불편하니 가능하면 손을 안 쓰는 직업은 영문과 교수가 제일 좋겠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 꿈마저도 나중에 사라지긴 했죠.
◇ 이성규> 그러시다가 어떻게 마케팅으로 연결이 되죠?
◆ 조서환> 그래서 나중에 영문학과 교수가 되겠다는 꿈도 대학교 때 바로 결혼을 했는데요.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바로 결혼을 했는데 아기가 두 명이 계속 연년생으로 생겨서 더 이상 교수를 하겠다는 꿈은 사라지고 취직을 해야 했어요. 거기서부터 또 고난이 또 있었어요. 취직이 쉽지 않았거든요.
◇ 이성규> 그래도 처음 입사를 큰 회사로 들어가시지 않았나요?
◆ 조서환> 여기저기 떨어졌는데요. 손이 없는 사람 안 뽑겠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사실 취직은 걱정 안 했어요. 국가 유공자 우대해 준다고 그러고 10점 가점 해준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30점 깎아놓고 10점 가점 해봐야 20점 마이너스인 거예요. 의미가 없는 소리죠. 그래서 ‘손 없는 걸 속이자. 어찌 보면 속일 것도 없지. 물어보지 않아서 대답하지 않았을 뿐이지. 뭐.’ 이렇게 생각하고 애경이라는 데서 면접 보러 갈 때 손 얘기 안 하고 국가 공자 증명서 빼고 그냥 간 거예요. 면접 잘 진행되다가 또 날카로운 면접관에 의해서 오른손이 의수라는 걸 밝히고 말아요. 결국에는 면접이 중단됐죠. 그래가지고 나오는데 그냥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이 되는 거예요. 이대로 하면 끝장이다. 그래서 뒤돌아가서 다시 면접 장소로 들어가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했어요. 비록 한 손이지만 두 손 가진 사람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고 더 잘 할 수 있으니 손으로 판단하지 말고 이 책임감과 열정, 그리고 일을 머리로 한다면 사실 손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 여러분은 손으로 일했냐. 머리로 일하지 않았냐. 그렇다면 여러분이 나보다 아이큐가 더 좋다는 증거는 또 어딨냐. 그러니 나는 손도 없고 아기도 두 명이나 있고 어영부영할 자격도 잃었으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거를 합격시켜주신 거예요. 설득력 있다. 열심히 할 것 같다. 신입사원 봉급 충분히 하고 남을 사람이다라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그렇게 해서 그 회사에 몇 년 계셨어요?
◆ 조서환> 10년 풀로 있고 그리고 외국인 미국 다이엘사로 스카웃되어 갔죠.
◇ 이성규> 그때 또 영어가 빛을 발했군요.
◆ 조서환> 네. 그런데 그 안에 영어만 갖고는 안 되겠더라고요. 그런데 외국인들이 주는 명함을 보니까요. 그때 1980년도 ‘마케팅’이라는 용어조차도 없었는데 다 마케팅이라고 쓰여 있는 거예요. 오는 사람마다 다. 이게 미래인 것 같다. 그래서 경희대학교를 다시 가서 마케팅을 알아보니까 교수님이 이게 미래라는 거예요. “우리나라에 미래가 없나요?” 그러니까 “마케팅 후진국이라고 그렇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 후진국이라는 소리가 머리가 팍 박히면서 이거 하면 내 영어하고 마케팅하고 하모니를 이루면 저 외국인들이 여기에 들어올 때 빛을 발하겠다 했는데 정확히 맞은 거예요. 그 예측이, 그러니까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죠.
◇ 이성규> 그러니까 마케팅을 가지고 석사를 하셨던 거죠?
◆ 조서환> 나중에 박사까지 다 했죠.
◇ 이성규> 그런데 외국계 회사로 가시고 그 뒤에도 또 다른 회사들을 많이 경험을 하신 것 같은데요?
◆ 조서환>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외국계에서도요. 미국 다이엘사, 스위스 로슈사, 그리고 또 애경이 힘들 때 다시 애경으로 컴백을 했어요. 컴백을 해서 또 한 6년 근무를 했고 그러니까 애경에서 총 16년을 한 거죠. 나갔다 와서 또 했으니까요. 그렇게 하고 드디어 공기업 KTF, 그때 가장 잘 나가는 이동통신이었죠. 그때 마케팅 전략실장 상무로 또 스카웃 돼서 가요. 그래가지고 회사를 많이 경험을 했죠.
◇ 이성규> KTF, 그게 옛날 이동통신 그러면 카폰, 메주만한 전화기랑 관련되고 그러지 않았나요?
◆ 조서환> 그렇죠. 그러니까 SK텔레콤이라는 회사가 독점하고 있을 때 1998년도 PCS라는 게 나왔어요. 그러면서 KTF가 그때 생겼는데 그 뒤로 3년 뒤에 마케팅 전략실장을 뽑은 거예요. 2001년도에요. 그때 그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제가 들어간 거야. 정말 복이 많았던 거죠.
◇ 이성규> 그 회사에서 잘 뽑으신 거죠.
◆ 조서환> 그러니까 ‘하나로’라는 샴푸, ‘2080 치약’ 이런 것들이 성공하면서 제 이름이 마케팅에 좀 나가지고 헤드헌터가 마케팅 하면 저를 생각을 했고, 제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 갖고 정말 복이 많게 뽑혀갔어요.
◇ 이성규> YTN 라디오 이성규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조서환마케팅그룹의 조서환 대표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잠시 후에 다시 나누기로 하고요. 조서환 대표님의 추천곡을 이쯤에서 하나 듣고 오려고 합니다. 청취자 여러분과 어떤 노래 하나 듣고 싶으세요?
◆ 조서환> ‘희망의 나라로’라는 노래입니다.
◇ 이성규> ‘희망의 나라로’, 테너 엄정행 씨 노래 아닌가요?
◆ 조서환> 맞습니다. 경희대 선배님이십니다.
◇ 이성규> 이 노래를 왜 좋아하세요?
◆ 조서환> 저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해요. 모든 게 좌절해서 만약 실망으로, 실의로 빠져서 허덕였다면 힘들었을 텐데 희망을 싹 틔워서 살아났기 때문에 ‘희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는 참 좋아요.
◇ 이성규> 조서환 대표께서 추천하신 엄정행의 ‘희망의 나라’로 듣고 오겠습니다.
♫ 엄정행 - ‘희망의 나라로’
◇ 이성규> 엄정행의 ‘희망의 나라’로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조서환마케팅그룹의 조서환 대표입니다. 그런데 마케팅, 마케팅 자꾸 그러는데 아까 마케팅이 대세일 것 같다. 그래서 석사를 하시고 박사를 하셨다고 그랬잖아요. 영문학도가 마케팅 전공을 하시다 보니까 어땠어요?
◆ 조서환> 실제 현장에서 영문학 한 게 참 잘했어요. 그러니까 이모셔널한 문학을 한 바탕을 가지고 마케팅 이론과 실무가 겸비되니까 외국인들하고 소통도 원활하고요. 또 크레이티브도요. 경영학, 경영학, 경영학 한 것보다 인문학 쪽을 하고요. 경영학을 MBA를 하면 훨씬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마케팅에 성공한 요인이 아마 영문학 때문에 그러지 않았는가.
◇ 이성규> 그러니 이런 말이 그렇게 해서 나온 게 아닌가 싶으네요.
◆ 조서환> 맞습니다.
◇ 이성규> 이 슬로건을 직접 참여하신 거죠?
◆ 조서환> 그럼요. 제가 마케팅 중역이었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을 제가 다 했고요. 이미 제가 성장을 해서 마케팅 중역에서 밑에 직원들이 팀워크를 이뤄서 했고요. 그러나 최종 마케팅 의사결정은 마케팅 디렉터가 하는 거죠. 네덜란드 여성 부장 또 프랑스 상무 그리고 영국인 부사장, 이 세 명의 다국적 보스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 세 명 위에는 장영신 회장님이 계셨어요. 그래서 회장님하고 하트라인이 연결이 됐을 정도로 아주 유리한, 어떻게 보면 마케팅 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죠. 그때 시대적으로요. 그래서 어찌 보면 그러한 분들이 없었다면 아마 성공하지 못했을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어요. 특히 회장님이 엄청난 지지를 했어요.
◇ 이성규> 그러니까 오너 그룹의 지지가 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죠?
◆ 조서환> 맞습니다. 오너는 참 좋은 게 오너가 옳다고 생각되면 ‘고’하는 거예요. 그런데 오너가 ‘노’하면 오너를 설득만 하면 되는 거예요. 이미 아모레 투웨이 샴푸가 선점을 했고요. 그 다음에 럭키 랑데뷰 샴푸가 선점을 한 상태에서 제일 꼴찌로 나왔어요. 그런데 결제를 해주겠습니까? 꼴찌로 나와가지고 일등 가겠다는데. 안 해주는데 제가 그랬어요. “만약 이게 실패하면 제가 아파트 팔아서 대겠습니다. 회장님. 100% 확신 있으니 사인해 주세요.”라고 주장을 했어요. 그러니까 지독한 사람이라고.
◇ 이성규> 아파트가 그때 회사 입장에서 볼 때 몇 푼 되겠어요.
◆ 조서환> 그러니까 그만큼 의지가 강했다는 거죠. 그 의지를 보고 이 놈은 성공할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마지막에 했어요. 영어로 썼는데 카운터블 리스크 테이킹, 측정 가능한 우연만 지겠습니다. 만약에 망하면 더 이상 돈 잃지 않습니다. 그걸 보고 사인하셨어요. 그럼 회장님이 얼마나 예쁘겠어요. 박박 우겨가지고 사인 받고 6개월 만에 저는 2계급 특진했어요.
◇ 이성규> 2계급, 좀 시기하는 사람도 있었겠네요.
◆ 조서환> 엄청 많았죠. 그래서 저는 군대에서 못 딴 별을 만 서른다섯 살에 임원이 된 거예요.
◇ 이성규> 서른다섯, 요즘 공부 좀 많이 하고 박사한 사람들은 그때 회사에 들어가지도 못할 사람도 많잖아요.
◆ 조서환> 그렇죠. 그러니까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죠.
◇ 이성규> 또 책도 좀 쓰셨어요?
◆ 조서환> <모티베이터>라는 책이 가장 많이 팔렸는데요.
◇ 이성규> 사랑의 힘 <모티베이터>.
◆ 조서환> 그 책이 엄청나게 나갔어요. 그런데 책도 책이지만 더 좋은 거는 그 책을 읽고 KBS 아침마당, 또 방송사 안 나간 데가 그 책 때문에 거의 없을 정도로요. 그 다음에 조선일보 한 페이지 막 이래서 정말 그 책 하나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어요. 오늘날 이렇게 열심히 살 수 있는 이유가 어찌 보면 기폭제가 그 책이었어요.
◇ 이성규> 내용이 어떤 거죠?
◆ 조서환>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가장 중요한 거는 스스로 동기유발을 하라. 네가 동기유발이 돼야 타인도 동기유발 시킬 수가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네가 실험을 할 수 없잖냐. 그런데 네가 네 스스로 동기유발을 시켜서 여기까지 왔다. 결국엔 그런 얘기인데 동기유발 되니까 어려움도 극복할 수가 있었고 일도 피곤하지 않고 재미가 있을 수 있었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할 수 있었고요.
◇ 이성규> 비 오는 날 처마 밑에서부터 모티베이터를 한 것이네요.
◆ 조서환> 맞습니다. 처마 밑에서 모티베이팅을 한 거죠.
◇ 이성규> 그리고 또 하나 책이 있던데요. <마케팅에 집중하라>
◆ 조서환> 정확한 제목은 <마케팅은 생존이다>입니다. 왜 그러냐면 진짜 생존이더라고요. 샴푸가 없었어요. 네 근데 투웨이, 랑데뷰 보고 쉽게 말하면 카피를 한 거예요. 그러나 그들의 카피를 내가 잘 이용한 거죠. 아전인수를 한 거예요. 그들 광고조차도 내 걸로 끌어다 쓴 거예요. 치약도 마찬가지예요. 애경에는 치약이 없었잖아요. 애경에서 만들어도 입에서 트리오 냄새 난다고 치약을 안 썼어요.
◇ 이성규> 세제가 많았죠.
◆ 조서환> 세제가 많으니까요. 그러나 그걸 없애는 방법은 뭡니까? 애경을 넣지 않고 브랜드만 강조하는 거죠. 좋다는 소리도 안 해. 소비자한테 정확히 메시지를 전달하면 치약 사러 가서 그거 밖에 기억이 안 나니까 그걸 집어오는 거예요. 그게 몰아가는 힘, 이게 마케팅인 거죠. 그래서 <마케팅은 생존이다>라고 책을 쓴 거예요.
◇ 이성규> 쓰신 책에 경험도 많이 녹아 있군요.
◆ 조서환>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DNA인데 한 번 성공한 사람은요 그 DNA가 체화가 돼요.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한테 강의하면서 작은 성공을 여러 번 체험해라. 그게 나중에 큰 성공을 이루는데 자신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확신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음으로 다가온다. 대개는 흔들려서 못 하거든요.
◇ 이성규> 이제 여러 가지 마케팅 관련된 모티베이터, 생존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걸 하나로 요약하면 뭘까요?
◆ 조서환> 마케팅은 실질적인 차별화예요. 전략이 차별화가 된 거죠. 브랜드에 포커스를 둬서 취약 시장을 브랜드가 대명사화 시켜버리는 거예요. 옛날에 미원 사듯이요. 조미료를 미원이라고 얘기했듯이 똑같은 거죠. 그게 마케팅이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제일제당이 시장을, 전장을 바꿔 싸웠잖아요. 어디로? 천연 조미료 시장으로 해서 ‘입맛 다시다’해서 다시다 시 장으로 몰아갔잖아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으면 전장을 바꿔 싸워라 이거죠.
◇ 이성규> 그래서 전 장을 바꿔 싸우는 게 차별화라는 거죠?
◆ 조서환> 그렇습니다. 그게 차별화죠.
◇ 이성규> 그리고 헝그리 마케팅은 무슨 말이죠?
◆ 조서환> 그러니까 이제 제가 중소기업 강의를 많이 가요. 전체 모아놓고 강의하고 또는 중소기업중앙회 강의도 가고, 중소기업연합회 강의도 가고 그러면 그들이 막 20~30 분 질문을 해요. 어떤 사람은 막 따라오면서 질문하고 어떤 사람은 이메일 보내고 전화하고 야단하는데, 똑같은 질문이 “저는요. 중소기업이라 돈도 없고요. 마케팅 인재도 없어요. 그럼 어떻게 마케팅 해야 될까요?”그게 헝그리 마케팅이거든요. 돈 없는데 어떻게 마케팅 할까요? 그런데 가보면요. 그 회사의 강점이 있어요. 그 강점을 말하지 않는 거예요.
◇ 이성규> 모르는 거예요?
◆ 조서환> 모르는 거죠. 영어로 WHAT TO SAY, HOW TO SAY. 무엇을 얘기하면 어떻게 얘기할 건지를 모르는 거죠. 그러니까 쓸데없이 “좋다” 소리만 잔뜩 하는데 “좋다” 소리는 안 들리는 거예요. “어떤 게 좋은데 왜 좋다”라고 딱 얘기해야 되지. 그거를 빼고 액기스가 없는 걸 얘기를 하니까 그게 될 리가 없죠. 그래서 한 가지만 얘기해라. 열 가지 좋아도 다 버리고 아홉 가지 버리고 하나만 집중해라. 그렇게 얘기를 해요. 그래서 헝그리 마케팅에 성공하는 방법은 하나, 하나만 집중해라. 그리고 또 가난한 회사라고 표현하지만 우리가 중소기업이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중소기업들은 분명히 보면 아주 강점이 있어요. 딴 데서 카피할 수 없는 강점이 있거든요. 그거를 얘기해 줘야 되는데 대기업처럼 이것저것 다 얘기할라고 하니까 힘이 분산돼 가지고 선택과 집중이 안 되는 거예요. 어찌 보면 헝그리 마케팅이란 선택하고 집중해서 그것만 성공시키는 거예요. 그러면 나머지도 잘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세라짐이 온열기에 성공하니까 이제 안마의자까지도, 바디프랜드를 이겼대잖아요.
◇ 이성규> 지금 헝그리 마케팅 말씀도 하시고 여러 가지 마케팅에 관한 문구도 만드신 적도 있고 이런데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 지금 마케팅을 꿈꾸는 젊은이들, 아니면 또 그런 쪽으로 길을 새롭게 가고자 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 조서환> 제가 한 예를 들을게요. 그 대구에 박가영 씨라는 분이 있어요. 서른 살이에요. 1993년 생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쌀로 만든 케이크를 만들었어요. 너무 예쁘게 만든 거예요. 그러니까 막 사람들이 주문해서 사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손으로 만들려면 얼마나 힘들어요.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게 케이크 만드는 법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유료화하자고 하니까 300만 원 벌려고 케이크 만들 때 팔이 부러지는데 동영상으로 하니까 팔도 안 아프고 3천만 원이 벌리는 거예요. 즉, 이제는 마케팅 하기 쉬워졌어요. 옛날에는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그리고 잡지 아니면 광고할 데가 없었는데 이제는 혼자도 동영상을 촬영해서 유료화 시킬 수 있고, 또 유료화 전문 클래스 이런 데. 제 마케팅 강의를 클래스에서 하거든요. 그냥 온라인으로 입금되는 거예요. 마케팅 하기 너무 좋아졌어요. 젊은이들 마케팅, 이제는 1인 기업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거죠. SNS를 통해서,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페이스북을 통해서 그래서 저는 참 세상 마케팅 하기 좋아졌다. 젊은이들, 마케팅에 집중하라.
◇ 이성규> 집중하라. 꿈을 꿔라. 그러면 마지막으로 우리 조서환 대표님의 남은 꿈 얘기 좀 들어보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 조서환> 제가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대한민국은 마케팅 후진국이다”라는 그 교수님 말씀 듣고 그 후진국을 선진화시키겠다고 한 것이 일편단심 신입사원 때부터 지금까지 마케팅에 전념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도 마케팅 사관학교를 경영하고 있고요. 지금도 마케팅 광고를 전국에 하고 있어요. 지금도 마케팅 강의가 줄 서있어요. 그만큼 마케팅의 절절한 리더가 중소기업들한테 많아요. 그래서 저는 아무 꿈 없고 오로지 하나, 대한민국을 마케팅 강국으로 만들겠다. 이 꿈을 꼭 실현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조서환마케팅그룹 조서환 대표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조 대표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조서환> 고맙습니다.
YTN 박준범 (pyh@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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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2023년 7월 16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조서환 조서환마케팅그룹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잠시만요] 마케팅 사관학교 조서환"중소기업 마케팅은 하나에만 집중 해야"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아무리 좋은 상품이어도 마케팅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소비자에게 사랑받기가 힘듭니다. 좋은 제품을 어떻게 알리느냐. 사람들의 머릿속에 어떻게 인식시키냐가 중요할 텐데요. 우리에게 익숙한 상품들의 마케팅을 성공시킨 분입니다. 오늘은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의 주인공은 조서환마케팅그룹 조서환 대표와 함께 이야기 나눠봅니다. 안녕하세요?
◆ 조서환 조서환마케팅그룹 대표(이하 조서환)> 네, 안녕하세요.
◇ 이성규> 청취자 여러분께 먼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 조서환> 안녕하세요. 청취자 여러분 저는 조서환마케팅그룹의 대표 조서환입니다. 반갑습니다.
◇ 이성규> 조서환마케팅그룹에 대해서는 차차 이야기를 나눠보겠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오랜만입니다.
◆ 조서환> 현직에서는 이제 관두고요. 제가 회사를 조그맣게 차려가지고 마케팅 사관학교를 하나 경영하고 있어요. 그리고 또 시간이 남아서 경희대학교의 겸임 교수를 하고 있고요. 또 하나는 전국에 다니면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꼽는다면 작은 중소기업들 마케팅 컨설팅을 하고 있습니다.
◇ 이성규> 여전히 계속 바쁘시겠어요?
◆ 조서환> 재밌게 보내고 있습니다.
◇ 이성규> 마케팅 사관학교 이러니까 군인 냄새가 좀 나는데, 원래 꿈이 군인이셨다고요?
◆ 조서환> 맞습니다. 집이 가난하게 충청남도 청양 칠갑산 밑에서 태어났어요. 그러다 보니까 대학을 보낼 수가 없으니까 공짜로 갈 수 있는 사관학교가 딱 맞다라고 보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육군3사관학교를 들어갔는데 성공하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 이성규> 청양이세요?
◆ 조서환> 네, 충청남도 청양이요.
◇ 이성규> 청양이 무엇으로 유명하더라.
◆ 조서환> 칠갑산으로 제일 유명하죠.
◇ 이성규> 칠갑산, 청양, 부여, 공주가 붙었잖아요.
◆ 조서환> 그리고 청양고추, 구기자도 유명하죠.
◇ 이성규> 구기자. 그래서 그러신지 건강하신 것 같아요?
◆ 조서환> 감사합니다.
◇ 이성규> 그런데 군인으로 복무하시면서 좀 사고를 당하셨죠. 그게 어떤 사고였어요?
◆ 조서환> 육군 소위 때, 소대장 시절인데 부대에서 대간첩 작전 훈련 중에 잘못된 수류탄을 제대로 멀리 던지는데 그게 손에 빠져나가지 않고 머리 위에서 폭발해버렸어요. 살아남은 것이 기적이죠. 머리에서만 파편 24개가 나오고요. 손은 바로 그날 잘려져 나갔고요. 등은 완전 벌집이 돼서 어떻게 보면 1초만 늦게 올렸으면 공중분해 될 뻔했는데 산 거예요.
◇ 이성규> 그렇게 들으니까 또 조금 마음이 복잡하네요. 그때 이후에 일상이 많이 달라지셨겠어요?
◆ 조서환> 처음에는 정말 힘든 게 그때까지 오른손잡이로 살았잖아요. 그런데 오른손이 없어졌잖아요. 모든 걸 다시 시작해야 되는 거요. 글씨도 왼손으로, 그리고 또 두 손으로 하다가 한 손으로 해야 되잖아요. 그게 아주 보통 불편한 게 아니었죠. 특히나 왼손으로 가방은 들었는데 비가 올 때는 우산 들을 손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 처마 밑에 앉아가지고 비 그칠 때까지 계속 기다려요. 핸드폰이 있어도 연락할 수도 없고 그때는 핸드폰도 없었으니까요. 그런 게 제일 힘들었어요.
◇ 이성규> 지금도 보면 진짜 팔 한쪽이 없는 분들이나 편마비 분들은 진짜 비가 오면 정말 힘드셨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데 그래도 이겨내셨네요.
◆ 조서환> 그러니까 어찌 보면 고난이 닥치면 사람이 또 강해지는 것 같긴 하더라고요. 이 정도는, 처만 밑에서 배고플 때요. 오갈 수도 없고, 그때 할 수 있는 방법은 마인드 컨트롤이 제일 낫더라고요. ‘비가 와서 나는 처마 밑에서 책 한 권을 다 읽을 수가 있네.’ 이러면서 책을 계속 읽었죠. 그게 위로가 되더라고요. 배는 고팠지만 책은 한 권 다 읽을 수 있었네. 비가 오시는 덕분에,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한 거죠. 그렇지 않으면 극복 못 했을 거예요.
◇ 이성규> 마인드 컨트롤, 그러니까 그 사고 이후에 일상도 많이 변했지만 그 마음의 상태, 마음 가짐, 생각 이런 것도 많이 변했겠어요?
◆ 조서환>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나중에 또 질문하실지 모르겠지만 한 손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게 뭘까? 직업 군인을 잃었잖아요. 그다음에 두 손으로 할 수 있는 건 못 하게 됐잖아요. 그러니까 입으로 먹고 살아야 되겠다. 그러면 입으로 먹고 살려면 우리말보다는 영어가 낫겠다. 그래서 영문과 진학을 한 거예요. 그게 크게 방향 튼 것 중에 하나죠. 손이 없으니 입으로 먹고 산다. 다행히 머리에 파편이 들어가지 않아서 뇌가 이상이 없으니까요.
◇ 이성규> 그러니까 그때부터 글로벌을 꿈꾸셨네요?
◆ 조서환> 그렇죠. 그 시대가 올 걸로 예측을 했고 또 손이 불편하니 가능하면 손을 안 쓰는 직업은 영문과 교수가 제일 좋겠다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 꿈마저도 나중에 사라지긴 했죠.
◇ 이성규> 그러시다가 어떻게 마케팅으로 연결이 되죠?
◆ 조서환> 그래서 나중에 영문학과 교수가 되겠다는 꿈도 대학교 때 바로 결혼을 했는데요.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었고 바로 결혼을 했는데 아기가 두 명이 계속 연년생으로 생겨서 더 이상 교수를 하겠다는 꿈은 사라지고 취직을 해야 했어요. 거기서부터 또 고난이 또 있었어요. 취직이 쉽지 않았거든요.
◇ 이성규> 그래도 처음 입사를 큰 회사로 들어가시지 않았나요?
◆ 조서환> 여기저기 떨어졌는데요. 손이 없는 사람 안 뽑겠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사실 취직은 걱정 안 했어요. 국가 유공자 우대해 준다고 그러고 10점 가점 해준다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실제 현실은 그렇지 않았어요. 30점 깎아놓고 10점 가점 해봐야 20점 마이너스인 거예요. 의미가 없는 소리죠. 그래서 ‘손 없는 걸 속이자. 어찌 보면 속일 것도 없지. 물어보지 않아서 대답하지 않았을 뿐이지. 뭐.’ 이렇게 생각하고 애경이라는 데서 면접 보러 갈 때 손 얘기 안 하고 국가 공자 증명서 빼고 그냥 간 거예요. 면접 잘 진행되다가 또 날카로운 면접관에 의해서 오른손이 의수라는 걸 밝히고 말아요. 결국에는 면접이 중단됐죠. 그래가지고 나오는데 그냥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이 되는 거예요. 이대로 하면 끝장이다. 그래서 뒤돌아가서 다시 면접 장소로 들어가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했어요. 비록 한 손이지만 두 손 가진 사람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있고 더 잘 할 수 있으니 손으로 판단하지 말고 이 책임감과 열정, 그리고 일을 머리로 한다면 사실 손하고 무슨 상관이 있냐. 여러분은 손으로 일했냐. 머리로 일하지 않았냐. 그렇다면 여러분이 나보다 아이큐가 더 좋다는 증거는 또 어딨냐. 그러니 나는 손도 없고 아기도 두 명이나 있고 어영부영할 자격도 잃었으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거를 합격시켜주신 거예요. 설득력 있다. 열심히 할 것 같다. 신입사원 봉급 충분히 하고 남을 사람이다라고 판단하셨던 것 같아요.
◇ 이성규> 그렇게 해서 그 회사에 몇 년 계셨어요?
◆ 조서환> 10년 풀로 있고 그리고 외국인 미국 다이엘사로 스카웃되어 갔죠.
◇ 이성규> 그때 또 영어가 빛을 발했군요.
◆ 조서환> 네. 그런데 그 안에 영어만 갖고는 안 되겠더라고요. 그런데 외국인들이 주는 명함을 보니까요. 그때 1980년도 ‘마케팅’이라는 용어조차도 없었는데 다 마케팅이라고 쓰여 있는 거예요. 오는 사람마다 다. 이게 미래인 것 같다. 그래서 경희대학교를 다시 가서 마케팅을 알아보니까 교수님이 이게 미래라는 거예요. “우리나라에 미래가 없나요?” 그러니까 “마케팅 후진국이라고 그렇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그 후진국이라는 소리가 머리가 팍 박히면서 이거 하면 내 영어하고 마케팅하고 하모니를 이루면 저 외국인들이 여기에 들어올 때 빛을 발하겠다 했는데 정확히 맞은 거예요. 그 예측이, 그러니까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죠.
◇ 이성규> 그러니까 마케팅을 가지고 석사를 하셨던 거죠?
◆ 조서환> 나중에 박사까지 다 했죠.
◇ 이성규> 그런데 외국계 회사로 가시고 그 뒤에도 또 다른 회사들을 많이 경험을 하신 것 같은데요?
◆ 조서환>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외국계에서도요. 미국 다이엘사, 스위스 로슈사, 그리고 또 애경이 힘들 때 다시 애경으로 컴백을 했어요. 컴백을 해서 또 한 6년 근무를 했고 그러니까 애경에서 총 16년을 한 거죠. 나갔다 와서 또 했으니까요. 그렇게 하고 드디어 공기업 KTF, 그때 가장 잘 나가는 이동통신이었죠. 그때 마케팅 전략실장 상무로 또 스카웃 돼서 가요. 그래가지고 회사를 많이 경험을 했죠.
◇ 이성규> KTF, 그게 옛날 이동통신 그러면 카폰, 메주만한 전화기랑 관련되고 그러지 않았나요?
◆ 조서환> 그렇죠. 그러니까 SK텔레콤이라는 회사가 독점하고 있을 때 1998년도 PCS라는 게 나왔어요. 그러면서 KTF가 그때 생겼는데 그 뒤로 3년 뒤에 마케팅 전략실장을 뽑은 거예요. 2001년도에요. 그때 그 100대 1의 경쟁을 뚫고 제가 들어간 거야. 정말 복이 많았던 거죠.
◇ 이성규> 그 회사에서 잘 뽑으신 거죠.
◆ 조서환> 그러니까 ‘하나로’라는 샴푸, ‘2080 치약’ 이런 것들이 성공하면서 제 이름이 마케팅에 좀 나가지고 헤드헌터가 마케팅 하면 저를 생각을 했고, 제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 갖고 정말 복이 많게 뽑혀갔어요.
◇ 이성규> YTN 라디오 이성규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조서환마케팅그룹의 조서환 대표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야기 잠시 후에 다시 나누기로 하고요. 조서환 대표님의 추천곡을 이쯤에서 하나 듣고 오려고 합니다. 청취자 여러분과 어떤 노래 하나 듣고 싶으세요?
◆ 조서환> ‘희망의 나라로’라는 노래입니다.
◇ 이성규> ‘희망의 나라로’, 테너 엄정행 씨 노래 아닌가요?
◆ 조서환> 맞습니다. 경희대 선배님이십니다.
◇ 이성규> 이 노래를 왜 좋아하세요?
◆ 조서환> 저는 ‘희망’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해요. 모든 게 좌절해서 만약 실망으로, 실의로 빠져서 허덕였다면 힘들었을 텐데 희망을 싹 틔워서 살아났기 때문에 ‘희망’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노래는 참 좋아요.
◇ 이성규> 조서환 대표께서 추천하신 엄정행의 ‘희망의 나라’로 듣고 오겠습니다.
♫ 엄정행 - ‘희망의 나라로’
◇ 이성규> 엄정행의 ‘희망의 나라’로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조서환마케팅그룹의 조서환 대표입니다. 그런데 마케팅, 마케팅 자꾸 그러는데 아까 마케팅이 대세일 것 같다. 그래서 석사를 하시고 박사를 하셨다고 그랬잖아요. 영문학도가 마케팅 전공을 하시다 보니까 어땠어요?
◆ 조서환> 실제 현장에서 영문학 한 게 참 잘했어요. 그러니까 이모셔널한 문학을 한 바탕을 가지고 마케팅 이론과 실무가 겸비되니까 외국인들하고 소통도 원활하고요. 또 크레이티브도요. 경영학, 경영학, 경영학 한 것보다 인문학 쪽을 하고요. 경영학을 MBA를 하면 훨씬 유연한 사고를 가질 수가 있었어요. 그래서 마케팅에 성공한 요인이 아마 영문학 때문에 그러지 않았는가.
◇ 이성규> 그러니 이런 말이 그렇게 해서 나온 게 아닌가 싶으네요.
◆ 조서환> 맞습니다.
◇ 이성규> 이 슬로건을 직접 참여하신 거죠?
◆ 조서환> 그럼요. 제가 마케팅 중역이었고요.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을 제가 다 했고요. 이미 제가 성장을 해서 마케팅 중역에서 밑에 직원들이 팀워크를 이뤄서 했고요. 그러나 최종 마케팅 의사결정은 마케팅 디렉터가 하는 거죠. 네덜란드 여성 부장 또 프랑스 상무 그리고 영국인 부사장, 이 세 명의 다국적 보스들이 있었어요. 그리고 이 세 명 위에는 장영신 회장님이 계셨어요. 그래서 회장님하고 하트라인이 연결이 됐을 정도로 아주 유리한, 어떻게 보면 마케팅 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죠. 그때 시대적으로요. 그래서 어찌 보면 그러한 분들이 없었다면 아마 성공하지 못했을 거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들어요. 특히 회장님이 엄청난 지지를 했어요.
◇ 이성규> 그러니까 오너 그룹의 지지가 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죠?
◆ 조서환> 맞습니다. 오너는 참 좋은 게 오너가 옳다고 생각되면 ‘고’하는 거예요. 그런데 오너가 ‘노’하면 오너를 설득만 하면 되는 거예요. 이미 아모레 투웨이 샴푸가 선점을 했고요. 그 다음에 럭키 랑데뷰 샴푸가 선점을 한 상태에서 제일 꼴찌로 나왔어요. 그런데 결제를 해주겠습니까? 꼴찌로 나와가지고 일등 가겠다는데. 안 해주는데 제가 그랬어요. “만약 이게 실패하면 제가 아파트 팔아서 대겠습니다. 회장님. 100% 확신 있으니 사인해 주세요.”라고 주장을 했어요. 그러니까 지독한 사람이라고.
◇ 이성규> 아파트가 그때 회사 입장에서 볼 때 몇 푼 되겠어요.
◆ 조서환> 그러니까 그만큼 의지가 강했다는 거죠. 그 의지를 보고 이 놈은 성공할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마지막에 했어요. 영어로 썼는데 카운터블 리스크 테이킹, 측정 가능한 우연만 지겠습니다. 만약에 망하면 더 이상 돈 잃지 않습니다. 그걸 보고 사인하셨어요. 그럼 회장님이 얼마나 예쁘겠어요. 박박 우겨가지고 사인 받고 6개월 만에 저는 2계급 특진했어요.
◇ 이성규> 2계급, 좀 시기하는 사람도 있었겠네요.
◆ 조서환> 엄청 많았죠. 그래서 저는 군대에서 못 딴 별을 만 서른다섯 살에 임원이 된 거예요.
◇ 이성규> 서른다섯, 요즘 공부 좀 많이 하고 박사한 사람들은 그때 회사에 들어가지도 못할 사람도 많잖아요.
◆ 조서환> 그렇죠. 그러니까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죠.
◇ 이성규> 또 책도 좀 쓰셨어요?
◆ 조서환> <모티베이터>라는 책이 가장 많이 팔렸는데요.
◇ 이성규> 사랑의 힘 <모티베이터>.
◆ 조서환> 그 책이 엄청나게 나갔어요. 그런데 책도 책이지만 더 좋은 거는 그 책을 읽고 KBS 아침마당, 또 방송사 안 나간 데가 그 책 때문에 거의 없을 정도로요. 그 다음에 조선일보 한 페이지 막 이래서 정말 그 책 하나가 제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놨어요. 오늘날 이렇게 열심히 살 수 있는 이유가 어찌 보면 기폭제가 그 책이었어요.
◇ 이성규> 내용이 어떤 거죠?
◆ 조서환>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가장 중요한 거는 스스로 동기유발을 하라. 네가 동기유발이 돼야 타인도 동기유발 시킬 수가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네가 실험을 할 수 없잖냐. 그런데 네가 네 스스로 동기유발을 시켜서 여기까지 왔다. 결국엔 그런 얘기인데 동기유발 되니까 어려움도 극복할 수가 있었고 일도 피곤하지 않고 재미가 있을 수 있었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할 수 있었고요.
◇ 이성규> 비 오는 날 처마 밑에서부터 모티베이터를 한 것이네요.
◆ 조서환> 맞습니다. 처마 밑에서 모티베이팅을 한 거죠.
◇ 이성규> 그리고 또 하나 책이 있던데요. <마케팅에 집중하라>
◆ 조서환> 정확한 제목은 <마케팅은 생존이다>입니다. 왜 그러냐면 진짜 생존이더라고요. 샴푸가 없었어요. 네 근데 투웨이, 랑데뷰 보고 쉽게 말하면 카피를 한 거예요. 그러나 그들의 카피를 내가 잘 이용한 거죠. 아전인수를 한 거예요. 그들 광고조차도 내 걸로 끌어다 쓴 거예요. 치약도 마찬가지예요. 애경에는 치약이 없었잖아요. 애경에서 만들어도 입에서 트리오 냄새 난다고 치약을 안 썼어요.
◇ 이성규> 세제가 많았죠.
◆ 조서환> 세제가 많으니까요. 그러나 그걸 없애는 방법은 뭡니까? 애경을 넣지 않고 브랜드만 강조하는 거죠. 좋다는 소리도 안 해. 소비자한테 정확히 메시지를 전달하면 치약 사러 가서 그거 밖에 기억이 안 나니까 그걸 집어오는 거예요. 그게 몰아가는 힘, 이게 마케팅인 거죠. 그래서 <마케팅은 생존이다>라고 책을 쓴 거예요.
◇ 이성규> 쓰신 책에 경험도 많이 녹아 있군요.
◆ 조서환>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DNA인데 한 번 성공한 사람은요 그 DNA가 체화가 돼요.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한테 강의하면서 작은 성공을 여러 번 체험해라. 그게 나중에 큰 성공을 이루는데 자신감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확신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흔들리지 않음으로 다가온다. 대개는 흔들려서 못 하거든요.
◇ 이성규> 이제 여러 가지 마케팅 관련된 모티베이터, 생존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걸 하나로 요약하면 뭘까요?
◆ 조서환> 마케팅은 실질적인 차별화예요. 전략이 차별화가 된 거죠. 브랜드에 포커스를 둬서 취약 시장을 브랜드가 대명사화 시켜버리는 거예요. 옛날에 미원 사듯이요. 조미료를 미원이라고 얘기했듯이 똑같은 거죠. 그게 마케팅이거든요.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나중에 제일제당이 시장을, 전장을 바꿔 싸웠잖아요. 어디로? 천연 조미료 시장으로 해서 ‘입맛 다시다’해서 다시다 시 장으로 몰아갔잖아요.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으면 전장을 바꿔 싸워라 이거죠.
◇ 이성규> 그래서 전 장을 바꿔 싸우는 게 차별화라는 거죠?
◆ 조서환> 그렇습니다. 그게 차별화죠.
◇ 이성규> 그리고 헝그리 마케팅은 무슨 말이죠?
◆ 조서환> 그러니까 이제 제가 중소기업 강의를 많이 가요. 전체 모아놓고 강의하고 또는 중소기업중앙회 강의도 가고, 중소기업연합회 강의도 가고 그러면 그들이 막 20~30 분 질문을 해요. 어떤 사람은 막 따라오면서 질문하고 어떤 사람은 이메일 보내고 전화하고 야단하는데, 똑같은 질문이 “저는요. 중소기업이라 돈도 없고요. 마케팅 인재도 없어요. 그럼 어떻게 마케팅 해야 될까요?”그게 헝그리 마케팅이거든요. 돈 없는데 어떻게 마케팅 할까요? 그런데 가보면요. 그 회사의 강점이 있어요. 그 강점을 말하지 않는 거예요.
◇ 이성규> 모르는 거예요?
◆ 조서환> 모르는 거죠. 영어로 WHAT TO SAY, HOW TO SAY. 무엇을 얘기하면 어떻게 얘기할 건지를 모르는 거죠. 그러니까 쓸데없이 “좋다” 소리만 잔뜩 하는데 “좋다” 소리는 안 들리는 거예요. “어떤 게 좋은데 왜 좋다”라고 딱 얘기해야 되지. 그거를 빼고 액기스가 없는 걸 얘기를 하니까 그게 될 리가 없죠. 그래서 한 가지만 얘기해라. 열 가지 좋아도 다 버리고 아홉 가지 버리고 하나만 집중해라. 그렇게 얘기를 해요. 그래서 헝그리 마케팅에 성공하는 방법은 하나, 하나만 집중해라. 그리고 또 가난한 회사라고 표현하지만 우리가 중소기업이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중소기업들은 분명히 보면 아주 강점이 있어요. 딴 데서 카피할 수 없는 강점이 있거든요. 그거를 얘기해 줘야 되는데 대기업처럼 이것저것 다 얘기할라고 하니까 힘이 분산돼 가지고 선택과 집중이 안 되는 거예요. 어찌 보면 헝그리 마케팅이란 선택하고 집중해서 그것만 성공시키는 거예요. 그러면 나머지도 잘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세라짐이 온열기에 성공하니까 이제 안마의자까지도, 바디프랜드를 이겼대잖아요.
◇ 이성규> 지금 헝그리 마케팅 말씀도 하시고 여러 가지 마케팅에 관한 문구도 만드신 적도 있고 이런데요.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데 지금 마케팅을 꿈꾸는 젊은이들, 아니면 또 그런 쪽으로 길을 새롭게 가고자 하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 조서환> 제가 한 예를 들을게요. 그 대구에 박가영 씨라는 분이 있어요. 서른 살이에요. 1993년 생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쌀로 만든 케이크를 만들었어요. 너무 예쁘게 만든 거예요. 그러니까 막 사람들이 주문해서 사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손으로 만들려면 얼마나 힘들어요. 그래서 아이디어를 낸 게 케이크 만드는 법을 동영상으로 찍어서 유료화하자고 하니까 300만 원 벌려고 케이크 만들 때 팔이 부러지는데 동영상으로 하니까 팔도 안 아프고 3천만 원이 벌리는 거예요. 즉, 이제는 마케팅 하기 쉬워졌어요. 옛날에는 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그리고 잡지 아니면 광고할 데가 없었는데 이제는 혼자도 동영상을 촬영해서 유료화 시킬 수 있고, 또 유료화 전문 클래스 이런 데. 제 마케팅 강의를 클래스에서 하거든요. 그냥 온라인으로 입금되는 거예요. 마케팅 하기 너무 좋아졌어요. 젊은이들 마케팅, 이제는 1인 기업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는 거죠. SNS를 통해서,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페이스북을 통해서 그래서 저는 참 세상 마케팅 하기 좋아졌다. 젊은이들, 마케팅에 집중하라.
◇ 이성규> 집중하라. 꿈을 꿔라. 그러면 마지막으로 우리 조서환 대표님의 남은 꿈 얘기 좀 들어보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 조서환> 제가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대한민국은 마케팅 후진국이다”라는 그 교수님 말씀 듣고 그 후진국을 선진화시키겠다고 한 것이 일편단심 신입사원 때부터 지금까지 마케팅에 전념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도 마케팅 사관학교를 경영하고 있고요. 지금도 마케팅 광고를 전국에 하고 있어요. 지금도 마케팅 강의가 줄 서있어요. 그만큼 마케팅의 절절한 리더가 중소기업들한테 많아요. 그래서 저는 아무 꿈 없고 오로지 하나, 대한민국을 마케팅 강국으로 만들겠다. 이 꿈을 꼭 실현하고 싶습니다.
◇ 이성규>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조서환마케팅그룹 조서환 대표 모시고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조 대표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조서환> 고맙습니다.
YTN 박준범 (pyh@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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