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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들보가 없다…'한국형 아파트' 특징
없을 무(無) 대들보 량(梁). 무량판 구조는 말 그대로 대들보가 없다는 의미다. 대신 건물의 하중을 받치는 수직재의 기둥에 철근 콘크리트 바닥인 슬래브가 바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에도 무량판 구조가 적용됐다.
무량판 구조가 무조건 나쁘건 아니다. 층높이가 작을 때 유리하고 내력벽이 필요하지 않아 실내를 넓게 활용할 수도 있다. 그만큼 공기를 단축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한국형 아파트에 최적화된 공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대들보가 없으니 보기에 좋다. 이 때문에 원래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자주 사용하는 건축 공법이었다.
결과적으로 붕괴 사고가 났으니 단점도 당연히 있다. 대들보가 없다 보니 수평 하중에 대단히 취약하다. 특정 지점만 붕괴되는 게 아니라 연쇄적으로 무너진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에서 사용하지 않는 이유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무량판 구조만으로 건물을 짓지는 않는다. 순수 무량판 구조로는 허가 자체가 나질 않는다. 전단벽으로 보강하여 하중에 대응하고 기둥에 철근으로 보강하도록 하고 있다. 기둥 주변 슬래브 접합부를 보강하는 게 필수 과정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붕괴 사고 위험이 있다. 기둥 주변이 뚫리는 파괴, 이른바 '펀칭' 위험 때문이다.
보강 제대로 안 된 무량판 구조가 문제
대들보가 없는 아파트 자체를 막아야 하나? 그렇지 않다. 만약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일본보다 지진 위험이 적은 우리나라라도 허가를 내주질 않을 것이다. 문제는 시공 과정에서 발생한다.
YTN 라디오에 출연한 김성수 건축구조기술사에 따르면 보통 아파트의 경우 안전과 관련된 구조 부재 개수가 1,000개 이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파트 시공 전까지 여러 번의 변경이 이뤄진다. 변경 때마다 1,000개 이상의 구조 부재를 하나하나 검증해야 하는데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문제가 발생한다. 실수든 누락이든 아니면 의도적 빼먹기든 사고 유발 가능성이 작지 않다.
변경 과정에서 상호 검증이 이뤄져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 검증 주체도 하나가 아닌 시공의 최종 책임이 있는 건설사와 감리전문회사에서 서로 검토해야 한다. '크로스 체킹'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변경 과정에서 새로운 설계가 추가되어 하중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상호 검증 과정에서 걸러내야 한다. 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고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전 대형 사고 대부분이 이랬다.
삼풍백화점 때도 그랬다
대표적인 게 바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다. 지난 1995년 여름 사상자만 1,500여 명 발생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형 참사로 '천민자본주의'의 한 예로 평가받는다.
삼풍백화점의 당초 계획은 백화점이 아닌 아파트 단지 종합상가였다. 건물을 지으면서 상가가 백화점으로 바뀐 것이다. 이 백화점에 쓰인 공법이 바로 무량판 구조다. 삼풍건설산업 창업주인 이준 회장은 공사 진행 중 돌연 건설사에 증축을 요구했지만 붕괴 위험성을 이유로 거부당하자 이준 회장의 건설사인 삼풍건설산업이 직접 시공에 나섰다.
구조 변경 때 구조 전문가의 철저한 검토는 없었다. 설계상으로는 기둥과 슬래브 사이에 하중을 전달하는 지판이 있어야 했지만 실제는 지판 두께가 얇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다수 있었다. 무량판 구조의 단점을 보강하지 않으니 어찌 보면 붕괴는 필연적이었던 것이다.
안전 설계가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사 기간에 식당가가 추가 되고 무거운 보일러 난방 시설이 들어서고 많은 책으로 가득 찰 '삼풍문고'도 입점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당초 계획에 없던 시설들이 여기저기 들어섰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보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무량판 구조에 가장 취약한 상황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대들보가 없는데 지붕 위에 무거운 물건을 이것저것 많이 올려놓은 상황이었다. 예고된 참사였다.
대들보 없는 아파트 15개 단지서 문제점 발견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검단 아파트 붕괴 사고처럼 철근 보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가 긴급 점검 회의까지 열어 이를 공개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 LH가 지하 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발주 아파트 91개 단지를 전수 조사한 결과 15개 단지에서 전단보강근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설명한 대로 대들보가 없으면 철근으로 잘 보강해야 하는 데 설계대로 철근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번에 문제가 된 15개 단지를 살펴보면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8개 단지, 지방이 7개 단지였다. 형태별로는 분양이 5개 단지, 임대가 10개 단지였다.
문제가 된 15개 단지 가운데 10개 단지는 설계 미흡으로 철근이 빠져 있었는데 검증 과정에서 누락되거나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5개 단지는 시공 자체가 미흡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미 입주를 마친 곳이 5개 단지라는데 있다. 보강 조치에 들어갔거나 착수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LH 외에 민간 시행사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100여 곳도 점검하고 있다. 이 결과는 다음 달 안에 나온다.
이미 밝혔듯이 대들보가 없는 아파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빨리빨리"로 상징되는 이른바 한국형 아파트가 오랜 기간 만들어 낸 한 단면일 뿐이다. 쉽고 빠르게 지을 수 있어 대들보를 만들지 않았다면 그만큼 보강을 제대로 해야 한다. 결국 대들보가 없는 이른바 '순살 아파트' 붕괴 사고는 무량판 구조의 장점만 취하고 단점을 외면한 탐욕의 결과라 할 수 있다.
YTN digital 이대건 (dglee@ytn.co.kr)
YTN digital 배인수 (insu@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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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을 무(無) 대들보 량(梁). 무량판 구조는 말 그대로 대들보가 없다는 의미다. 대신 건물의 하중을 받치는 수직재의 기둥에 철근 콘크리트 바닥인 슬래브가 바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붕괴 사고가 발생한 검단신도시 아파트 건설에도 무량판 구조가 적용됐다.
무량판 구조가 무조건 나쁘건 아니다. 층높이가 작을 때 유리하고 내력벽이 필요하지 않아 실내를 넓게 활용할 수도 있다. 그만큼 공기를 단축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한국형 아파트에 최적화된 공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대들보가 없으니 보기에 좋다. 이 때문에 원래 백화점이나 쇼핑몰에서 자주 사용하는 건축 공법이었다.
결과적으로 붕괴 사고가 났으니 단점도 당연히 있다. 대들보가 없다 보니 수평 하중에 대단히 취약하다. 특정 지점만 붕괴되는 게 아니라 연쇄적으로 무너진다.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일본에서 사용하지 않는 이유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무량판 구조만으로 건물을 짓지는 않는다. 순수 무량판 구조로는 허가 자체가 나질 않는다. 전단벽으로 보강하여 하중에 대응하고 기둥에 철근으로 보강하도록 하고 있다. 기둥 주변 슬래브 접합부를 보강하는 게 필수 과정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붕괴 사고 위험이 있다. 기둥 주변이 뚫리는 파괴, 이른바 '펀칭' 위험 때문이다.
보강 제대로 안 된 무량판 구조가 문제
대들보가 없는 아파트 자체를 막아야 하나? 그렇지 않다. 만약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면 일본보다 지진 위험이 적은 우리나라라도 허가를 내주질 않을 것이다. 문제는 시공 과정에서 발생한다.
YTN 라디오에 출연한 김성수 건축구조기술사에 따르면 보통 아파트의 경우 안전과 관련된 구조 부재 개수가 1,000개 이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파트 시공 전까지 여러 번의 변경이 이뤄진다. 변경 때마다 1,000개 이상의 구조 부재를 하나하나 검증해야 하는데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러면 문제가 발생한다. 실수든 누락이든 아니면 의도적 빼먹기든 사고 유발 가능성이 작지 않다.
변경 과정에서 상호 검증이 이뤄져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 검증 주체도 하나가 아닌 시공의 최종 책임이 있는 건설사와 감리전문회사에서 서로 검토해야 한다. '크로스 체킹'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변경 과정에서 새로운 설계가 추가되어 하중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상호 검증 과정에서 걸러내야 한다. 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사고는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전 대형 사고 대부분이 이랬다.
삼풍백화점 때도 그랬다
대표적인 게 바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다. 지난 1995년 여름 사상자만 1,500여 명 발생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형 참사로 '천민자본주의'의 한 예로 평가받는다.
삼풍백화점의 당초 계획은 백화점이 아닌 아파트 단지 종합상가였다. 건물을 지으면서 상가가 백화점으로 바뀐 것이다. 이 백화점에 쓰인 공법이 바로 무량판 구조다. 삼풍건설산업 창업주인 이준 회장은 공사 진행 중 돌연 건설사에 증축을 요구했지만 붕괴 위험성을 이유로 거부당하자 이준 회장의 건설사인 삼풍건설산업이 직접 시공에 나섰다.
구조 변경 때 구조 전문가의 철저한 검토는 없었다. 설계상으로는 기둥과 슬래브 사이에 하중을 전달하는 지판이 있어야 했지만 실제는 지판 두께가 얇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다수 있었다. 무량판 구조의 단점을 보강하지 않으니 어찌 보면 붕괴는 필연적이었던 것이다.
안전 설계가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사 기간에 식당가가 추가 되고 무거운 보일러 난방 시설이 들어서고 많은 책으로 가득 찰 '삼풍문고'도 입점하기로 했다. 이외에도 당초 계획에 없던 시설들이 여기저기 들어섰다.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 보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무량판 구조에 가장 취약한 상황으로 흘러갔던 것이다. 대들보가 없는데 지붕 위에 무거운 물건을 이것저것 많이 올려놓은 상황이었다. 예고된 참사였다.
대들보 없는 아파트 15개 단지서 문제점 발견
무량판 구조가 적용된 검단 아파트 붕괴 사고처럼 철근 보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교통부가 긴급 점검 회의까지 열어 이를 공개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한국토지주택공사, LH가 지하 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발주 아파트 91개 단지를 전수 조사한 결과 15개 단지에서 전단보강근이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설명한 대로 대들보가 없으면 철근으로 잘 보강해야 하는 데 설계대로 철근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번에 문제가 된 15개 단지를 살펴보면 지역별로는 수도권이 8개 단지, 지방이 7개 단지였다. 형태별로는 분양이 5개 단지, 임대가 10개 단지였다.
문제가 된 15개 단지 가운데 10개 단지는 설계 미흡으로 철근이 빠져 있었는데 검증 과정에서 누락되거나 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5개 단지는 시공 자체가 미흡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미 입주를 마친 곳이 5개 단지라는데 있다. 보강 조치에 들어갔거나 착수할 예정이다. 국토부는 LH 외에 민간 시행사가 발주한 무량판 구조 아파트 100여 곳도 점검하고 있다. 이 결과는 다음 달 안에 나온다.
이미 밝혔듯이 대들보가 없는 아파트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빨리빨리"로 상징되는 이른바 한국형 아파트가 오랜 기간 만들어 낸 한 단면일 뿐이다. 쉽고 빠르게 지을 수 있어 대들보를 만들지 않았다면 그만큼 보강을 제대로 해야 한다. 결국 대들보가 없는 이른바 '순살 아파트' 붕괴 사고는 무량판 구조의 장점만 취하고 단점을 외면한 탐욕의 결과라 할 수 있다.
YTN digital 이대건 (dglee@ytn.co.kr)
YTN digital 배인수 (insu@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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