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직장 내 괴롭힘'에 극단적 선택...법원 "사망 보험금 지급해야"

단독 '직장 내 괴롭힘'에 극단적 선택...법원 "사망 보험금 지급해야"

2023.08.08. 오후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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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에 이른 전화상담원의 유족에게 보험사가 사망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습니다.

고인의 사망은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따른 게 아니라 우발적 사고로 봐야 한다며, '재해'로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홍민기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기자]
2018년, 성남시 직영 콜센터에서 전화 상담 업무를 시작한 40대 여성 A 씨.

입사 1년 반 만인 지난 2019년 12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A 씨가 헬륨가스를 이용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A 씨는 2001년, 아들에게 1억 원을 지급하는 사망보험에 가입한 상태였지만,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습니다.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는 보험 약관상 지급 거절 사유에 해당한다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유족은 A 씨 사망이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산업 재해라고 주장하며 소송을 냈습니다.

A 씨가 극단적 선택에 내몰렸을 당시 '자유로운 의사 결정이 가능한 상태'였는지가 소송 쟁점이 됐습니다.

그런데 A 씨는 입사 이후 관리자의 공개적인 지적과 모욕, 질책 등으로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를 겪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9년 한 해 동안에만 정신과 치료를 스무 번 넘게 받았고, 몸무게도 7㎏ 넘게 빠질 만큼 정신적 고통이 심했습니다.

잠시 일을 쉬어 상태가 호전됐지만, 복직 후 두 달간 사측의 형사 고소와 징계위원회 회부, 해고 처분이 잇따르면서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습니다.

A 씨는 사망 사흘 전 병원 상담에서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부닥치니 더 힘들다", "아침마다 토했는데 통증이 더 심해진다"고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2년 동안 이어진 소송 끝에 법원은 A 씨 유족 손을 들어줬습니다.

재판부는 A 씨가 죽음을 준비할 무렵 이미 정상적인 판단력을 잃고 통제 불능의 충동에 사로잡혔다고 봤습니다.

극단적 선택에 필요한 준비를 했다는 사정만으로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할 수 있는 상태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겁니다.

또, 직장 내 괴롭힘이 직접 원인이 되진 않았지만, A 씨의 사망은 고의가 아닌 우발적 사고로 재해에 해당한다며, 보험금 1억 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A 씨 유족과 보험사 양측 모두 항소하지 않아 이 판결은 지난 5월 확정됐습니다.

[박치현 / A 씨 유족 측 대리인 : 업무상 스트레스와 정신적 고통이 극심했고 그것이 악화해서 정신적 억제력과 현실 판단 능력이 현저히 저하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 행위로 나아간 것이라면 업무상 재해라는 것을 인정한 판례로서….]

대법원은 지난 2021년, 직장 상급자가 업무상 범위를 넘어 다른 노동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줬다면 민사상 불법 책임을 진다는 판례도 확립했습니다.

YTN 홍민기입니다.


영상편집 : 문지환
그래픽 : 이원희



YTN 홍민기 (hongmg122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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