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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방송일 : 2024년 09월 14일 (토요일)
■ 진행 : 최휘 아나운서
■ 대담 : 선정수 팩트체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휘 아나운서(이하 최휘) : 지난 한 주간 있었던 뉴스들 가운데 사실 확인이 필요한 뉴스를 팩트체크해 보는 시간입니다. 선정수 팩트체커 전화로 만나보죠. 안녕하세요.
◆ 선정수 팩트체커(이하 선정수) : 네. 안녕하세요.
◇ 최휘 : 오늘 준비한 팩트체크 주제는 전승 괴담인데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괴상한 이야기. 이런 뜻인가요?
◆ 선정수 : 네. 그렇습니다. 선풍기 사망설과 백신 접종 샤워 금지 두 가지 주제를 짚어볼 텐데요. <선풍기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 이런 말과 <예방 접종 당일은 샤워 금지> 이런 지침에 대해 사실 여부를 판단해 보겠습니다.
◇ 최휘 : 어릴 적 많이 들어본 말인데요. 선풍기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 그런데 요즘엔 이런 말을 믿는 분들이 많이 안 계시는 것 같아요.
◆ 선정수 : 저도 어릴 적에 굉장히 많이 듣고 자란 말인데요. 여름에 선풍기 켜놓고 자면 어머니가 들어와서 끄기도 하시고, 타이머를 맞춰 놓고 자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엔 집집마다 에어컨을 많이 사용하는데요. 그래도 선풍기 갖춰놓은 집들이 아직도 많죠. 제가 3년반 정도 태국에서 살다왔는데요. 태국에서도 선풍기 많이 씁니다. 그런데 태국에서 파는 가정용 선풍기에는 타이머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는 말이 없기 때문이죠.
◇ 최휘 : 다른 나라에는 선풍기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는 말이 없나요?
◆ 선정수 : 네.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는 말인데요. 일본은 그마저도 1980년대 이후 이 말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이런 말을 믿어왔어요. 2006년 7월 14일 한국소비자원 보도자료를 보면요 여름철 안전사고를 주의하라는 내용인데요. <매년 여름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5대 사고 유형은 ▲선풍기·에어컨 질식사고 ▲자동차안 어린이 질식사고 ▲자동차안 폭발사고 ▲에어컨 폭발사고 ▲가정내 위생 안전사고이다.>라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당시 소비자원은 "더운 여름철에 선풍기 바람을 특정부위에만 집중적으로 오래 쐬면 몸 안 수분을 지속적으로 빼앗겨 저체온증이 발생한다. 또, 선풍기 바람을 직접 쐴 경우, 이산화탄소 포화농도는 높아지고 산소농도가 떨어지는 산소부족 현상으로 사망할 수 있다. 노인이나 호홉기 질환자는 더욱 위험하다."라고 지적합니다. 이어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최근 3년간 선풍기·에어컨을 틀어놓고 잠을 자다가 질식사해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에 접수된 사례는 20건"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에어컨·선풍기 질식사고를 예방하려면 선풍기나 에어컨을 켜고 잠을 잘 때는 반드시 타이머 조절을 하고, 바람을 회전시키며, 방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라고 친절히 선풍기 사망을 피하는 법도 알려주죠.
◇ 최휘 : 공공기관인 소비자원이 보도자료를 내놓을 정도라면 뭔가 근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 선풍기 사망설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 선정수 : 세계 최초로 대량생산돼 판매된 선풍기는 1882년 미국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에 선풍기가 처음 도입된 건 191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매일신보는 1918년 8월3일 <위생상으로 본 선풍기, 주의만하면 유익>이라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선풍기 바람에 대하여 위생가는 말하여 왈 썩은 공기와 먼지를 일으키는 고로 위생에 좋지 못하다는 말도 있으나... 상중 가정에서 아이들 자는 데다가 선풍기를 틀어놓고 아이들이 서늘해 잘 자려니 생각하는 일이 있으나 그것은 위험한 일이오... 몸이 너무 식어서 감기를 드는 일이 많으며... 잘 때에는 항상 주의하여 선풍기를 정지시켜야 합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1924년 신문에 국내 제조사가 선풍기 광고를 주요 신문에 대대적으로 집행을 합니다. 1927년 중외일보는 <선풍기병, 신기하다는 전기부채의 해>라는 기사를 발행합니다. "선풍기 바람을 많이 쐬면 두통과 안면 신경마비가 생기고 잠든 아기가 쏘이면 더욱이 위태, 잘못되면 생명 위험"이라는 내용이 들어있고요. 원인으로는 선풍기가 바람을 일으킬 때 선풍기 앞의 공기는 맴돌게 되어 일부분은 진공이 되며 또는 공기에 격렬한 운동이 생김으로 항상 일정한 규칙으로 호흡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장애를 받아서 폐장에는 산소가 부족하게 되고 혈액은 부정하여지고 불쾌감과...> 이런 내용이 보도됩니다.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선풍기 틀어놓고 자다가 죽었다는 기사가 꼬리를 물었습니다.
◇ 최휘 : 선풍기 사망설을 다룬 최근 기사를 좀 살펴보죠.
◆ 선정수 : 2008년 기사가 가장 마지막으로 검색이 되는데요. 연합뉴스는 2008년 7월4일 <광주서 선풍기 틀고 자다 저체온증 사망 잇따라>라는 기사를 발행했습니다. 이게 선풍기 가동이 사망원인이 됐다는 단정적인 내용을 담은 마지막 보도로 확인이 되고요. 2007년 무렵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서 선풍기 사망설에 관한 논쟁이 크게 일어납니다. 이후 선풍기 가동을 사망원인으로 단정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1920년대부터 2008년까지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선풍기 틀고 자던 사람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또는 질식해서 숨졌다 이런 내용인데요. 기사를 살펴보면 경찰을 인용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경찰은 사망자가 선풍기를 얼굴 가까이 켜 놓고 자다가 저산소증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요.
◇ 최휘 : 경찰이 선풍기를 사망의 원인으로 지목한 건데요. 그럼 선풍기 때문에 숨진 게 아닌가요?
◆ 선정수 : 누군가가 돌아가시면 변사사건으로 접수돼 경찰이 출동합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가장 먼저 타살 혐의점이 있는지부터 살피죠. 외부 침입의 흔적이 있는지, 시신에 상처가 있는지 이런 것들인데요. 대부분의 선풍기 사망설 연관 사건은 외부 침입의 흔적이 없고, 시신에 상처도 없고, 딱히 자살한 것 같지도 않단 말이죠. 방 안에서 곱게 누워서 잠든 채로 돌아가셨는데,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더라. 이런 겁니다.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시신을 부검해야 하는데 보통 타살 혐의점이 없으면 경찰이 부검을 하려고 들지 않죠. 유족들도 굉장히 부검을 꺼리는 풍조가 만연해 있기도 했고요. 그런데 망자가 돌아가신 이유는 있어야 하니까 선풍기를 켜놓고 자다가 저체온증 또는 질식사 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말해왔던 것이죠.
◇ 최휘 : 요즘엔 이 선풍기 사망설이 언론에 보도되지도 않고, 또 일반 시민들도 예전보다는 이런 말을 믿지 않고 있잖아요. 무슨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 선정수 : 2010년 대법원 판결이 계기가 됐습니다. 2007년 자기 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한 분이 있었는데요. 이 분이 생명보험에 가입돼 있었습니다. 보험 보장 내용은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인한 상해로 사망하면 5000만원, 주말 사고 발생시 추가 5000만원, 질병사망보험금 5000만원이었는데요. 유족들은 망자의 사망원인이 에어컨으로 인한 저체온증에 해당한다며 추가 5000만원 보험금 지금을 요구했습니다. 대법원은 "사망원인이 분명치 않아 다툼이 생길 것이 예상되면 유족이 먼저 사망원인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며 "부검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긴 불이익은 유족들이 감수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선풍기나 에어컨을 틀고 자더라도 저체온증이나 산소부족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없다는 한국배상의학회 사실조회 결과를 받아들였습니다. 선풍기 또는 에어컨 사망설에 대법원이 마침표를 찍은 것이죠.
◇ 최휘 : 팩트체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인데요. 거의 백년 정도를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믿어왔던 통념이 근거를 통해 반박되는 것이잖아요.
◆ 선정수 : 그렇습니다. 남들이 믿는다고 해서, 우리 사회 대다수가 믿는다고 해서 그게 꼭 사실이라는 법은 없죠. 1990년대에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는 말은 모두가 믿는 사실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한국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믿지 않죠. 그건 우리사회가 점점 과학 기반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예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일깨우는 사례가 되기도 하고요. SNS를 통해서 날아오는 수많은 '카더라', 이것 하나만 먹으면 모든 병이 싹 나을 것 같은 허위 과장광고들 이런 것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의심나면 찾아보고 알아보고 물어보는 검증과정을 거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 최휘 : 2024~2025 계절독감 예방접종이 시작됐는데요. 이 예방접종과 관련해서도 오래된 통념이 있어요. 바로 "백신주사 맞은날 샤워하면 안 된다"는 말인데요. 이것도 우리나라에만 통용되는 말이라고요?
◆ 선정수 : 네, 제가 세계 여러나라 보건당국의 자료를 찾아봤는데요. 세계 어떤 나라도 백신 맞은 날에는 샤워를 하지 마라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영국 같은 경우는 아이에게 수영을 쉬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정상적으로 운동을 시키라고 하는 답변을 찾을 수 있었고요. 미국, 영국, 일본, 싱가포르 등등 많은 나라는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면 된다는 내용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주사 맞은 자리를 박박 문지르지 말라는 이야기는 있었습니다.
◇ 최휘 : 의사들도 예방접종을 받을 텐데요. 의사는 백신 맞은 날 샤워를 안 하나요?
◆ 선정수 : 현직 의사 여러분한테 물어봤는데요. 모두 샤워를 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주사 맞은 자리에 물이 닿지 않도록 방수 밴드를 붙이고 샤워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왜 백신 맞은 날은 샤워하지 말라는 지침이 생겼는지 이유를 물어봤는데요. 세 가지 정도로 추측을 하더라고요. 주사를 맞은 뒤 아물지 않은 상처 부위로 샤워할 때 세균이 침입해 감염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 첫번째 이유고요. 다른 설은 목욕 또는 샤워 시 체온에 변화가 생겨 면역 기능에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엉덩이 주사의 경우 특별히 샤워 또는 목욕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세균 감염설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목욕 또는 샤워로 인한 체온 변화는 체구가 작은 영유아에게는 가능한 일이지만 성인은 샤워 정도로는 체온 변화의 폭이 면역 기능에 혼란을 줄 정도에 이르지 못합니다. 다른 하나는 예전에 우두 접종을 할 때 끝이 뾰족한 포크처럼 생긴 분지침으로 피가 맺힐 때까지 20번 정도 피부를 찌르는 방식으로 접종을 했다고 합니다. 이때 생기는 상처가 크기 때문에 아물 때까지 물 닿지 말라고 권고를 했던 것이고요. 당시 생겼던 '백신 접종 받고는 물 닿지 마세요, 씻지 마세요.'라는 관행이 여태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 아닌가 하는 추정도 있었습니다.
◇ 최휘 : 그냥 무심코 그런가보다 하고 믿고 넘어가는 정보가 굉장히 많아요.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이야기라서 그냥 믿고, 친한 친구가 이야기 해주는 거라서 덜컥 믿고, 사실 따지기 귀찮아서 그냥 믿고 마는 이야기들도 굉장히 많거든요.
◆ 선정수 : 네. 매사에 따지기 시작하면 굉장히 피곤하죠. 그런데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거나, 아니면 나의 안전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든가 하는 여러 장면에선 결국 믿을 건 나밖에 없는 상황이 오거든요. 그래서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연습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요. 어떤 정보가 제시됐을 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가려내는 능력은 매우 필요하죠. 평소에 내 머리로 생각하고 사실인지 아닌지 따져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유산균 음료 제조사에서 기자들 모아놓고 "우리 회사 마시는 요구르트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70% 사멸시켰다" 이런 발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대부분 인문계 출신이고, 유통담당 기자들이 보건 의학 화학 생물학 이런 쪽으로 잘 모르거든요. 기자들이 그대로 받아썼습니다. 일부 매체는 "ㅇㅇ유업이 코로나 극복에 새 전기를 마련했다" 이런 의미부여를 해서 기사를 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실험은 방법이 잘못됐습니다. 사람이 뭘 먹어서 어떤 효과를 보려면 먹어서 효과를 검증하는 임상실험을 해야하는데요. 이 회사는 배양접시에 개 신장세표에 바이러스를 배양시켜 놓고 유산균 음료를 부은 뒤에 얼마나 바이러스가 덜 증식하는지를 비교한 겁니다. 유산균 음료는 산성이라서 바이러스가 직접 접촉하면 불활성화되거든요. 이게 살균제 효과를 검증하는 방식이기도 한데요. 기자들이 이런 걸 걸러내지 못했던 거죠. 이 유산균 음료의 효과를 강조하는 기사가 수백개가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제가 팩트체크 기사를 냈죠. 결과적으로 그 회사는 식품안전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결국 경영진이 바뀌게 됐죠. 팩트체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무턱대고 믿지말고 의심나면 찾아보고 물어보고 확인하기. 이게 팩트체크의 핵심입니다.
◇ 최휘 : 일상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도 팩트체크는 꼭 필요하겠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듣죠. 지금까지 선정수 팩트체커였습니다.
YTN 장정우 (jwjang@ytnradi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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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일 : 2024년 09월 14일 (토요일)
■ 진행 : 최휘 아나운서
■ 대담 : 선정수 팩트체커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휘 아나운서(이하 최휘) : 지난 한 주간 있었던 뉴스들 가운데 사실 확인이 필요한 뉴스를 팩트체크해 보는 시간입니다. 선정수 팩트체커 전화로 만나보죠. 안녕하세요.
◆ 선정수 팩트체커(이하 선정수) : 네. 안녕하세요.
◇ 최휘 : 오늘 준비한 팩트체크 주제는 전승 괴담인데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괴상한 이야기. 이런 뜻인가요?
◆ 선정수 : 네. 그렇습니다. 선풍기 사망설과 백신 접종 샤워 금지 두 가지 주제를 짚어볼 텐데요. <선풍기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 이런 말과 <예방 접종 당일은 샤워 금지> 이런 지침에 대해 사실 여부를 판단해 보겠습니다.
◇ 최휘 : 어릴 적 많이 들어본 말인데요. 선풍기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 그런데 요즘엔 이런 말을 믿는 분들이 많이 안 계시는 것 같아요.
◆ 선정수 : 저도 어릴 적에 굉장히 많이 듣고 자란 말인데요. 여름에 선풍기 켜놓고 자면 어머니가 들어와서 끄기도 하시고, 타이머를 맞춰 놓고 자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엔 집집마다 에어컨을 많이 사용하는데요. 그래도 선풍기 갖춰놓은 집들이 아직도 많죠. 제가 3년반 정도 태국에서 살다왔는데요. 태국에서도 선풍기 많이 씁니다. 그런데 태국에서 파는 가정용 선풍기에는 타이머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는 말이 없기 때문이죠.
◇ 최휘 : 다른 나라에는 선풍기 틀어놓고 자면 죽는다는 말이 없나요?
◆ 선정수 : 네.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있는 말인데요. 일본은 그마저도 1980년대 이후 이 말은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이런 말을 믿어왔어요. 2006년 7월 14일 한국소비자원 보도자료를 보면요 여름철 안전사고를 주의하라는 내용인데요. <매년 여름마다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5대 사고 유형은 ▲선풍기·에어컨 질식사고 ▲자동차안 어린이 질식사고 ▲자동차안 폭발사고 ▲에어컨 폭발사고 ▲가정내 위생 안전사고이다.>라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당시 소비자원은 "더운 여름철에 선풍기 바람을 특정부위에만 집중적으로 오래 쐬면 몸 안 수분을 지속적으로 빼앗겨 저체온증이 발생한다. 또, 선풍기 바람을 직접 쐴 경우, 이산화탄소 포화농도는 높아지고 산소농도가 떨어지는 산소부족 현상으로 사망할 수 있다. 노인이나 호홉기 질환자는 더욱 위험하다."라고 지적합니다. 이어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최근 3년간 선풍기·에어컨을 틀어놓고 잠을 자다가 질식사해 소비자위해감시시스템에 접수된 사례는 20건"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에어컨·선풍기 질식사고를 예방하려면 선풍기나 에어컨을 켜고 잠을 잘 때는 반드시 타이머 조절을 하고, 바람을 회전시키며, 방문을 열어 놓아야 한다."라고 친절히 선풍기 사망을 피하는 법도 알려주죠.
◇ 최휘 : 공공기관인 소비자원이 보도자료를 내놓을 정도라면 뭔가 근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이 선풍기 사망설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 선정수 : 세계 최초로 대량생산돼 판매된 선풍기는 1882년 미국에서 시작됐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에 선풍기가 처음 도입된 건 191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매일신보는 1918년 8월3일 <위생상으로 본 선풍기, 주의만하면 유익>이라는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선풍기 바람에 대하여 위생가는 말하여 왈 썩은 공기와 먼지를 일으키는 고로 위생에 좋지 못하다는 말도 있으나... 상중 가정에서 아이들 자는 데다가 선풍기를 틀어놓고 아이들이 서늘해 잘 자려니 생각하는 일이 있으나 그것은 위험한 일이오... 몸이 너무 식어서 감기를 드는 일이 많으며... 잘 때에는 항상 주의하여 선풍기를 정지시켜야 합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1924년 신문에 국내 제조사가 선풍기 광고를 주요 신문에 대대적으로 집행을 합니다. 1927년 중외일보는 <선풍기병, 신기하다는 전기부채의 해>라는 기사를 발행합니다. "선풍기 바람을 많이 쐬면 두통과 안면 신경마비가 생기고 잠든 아기가 쏘이면 더욱이 위태, 잘못되면 생명 위험"이라는 내용이 들어있고요. 원인으로는 선풍기가 바람을 일으킬 때 선풍기 앞의 공기는 맴돌게 되어 일부분은 진공이 되며 또는 공기에 격렬한 운동이 생김으로 항상 일정한 규칙으로 호흡하던 사람이 갑자기 이런 장애를 받아서 폐장에는 산소가 부족하게 되고 혈액은 부정하여지고 불쾌감과...> 이런 내용이 보도됩니다.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선풍기 틀어놓고 자다가 죽었다는 기사가 꼬리를 물었습니다.
◇ 최휘 : 선풍기 사망설을 다룬 최근 기사를 좀 살펴보죠.
◆ 선정수 : 2008년 기사가 가장 마지막으로 검색이 되는데요. 연합뉴스는 2008년 7월4일 <광주서 선풍기 틀고 자다 저체온증 사망 잇따라>라는 기사를 발행했습니다. 이게 선풍기 가동이 사망원인이 됐다는 단정적인 내용을 담은 마지막 보도로 확인이 되고요. 2007년 무렵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서 선풍기 사망설에 관한 논쟁이 크게 일어납니다. 이후 선풍기 가동을 사망원인으로 단정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게 됐습니다. 1920년대부터 2008년까지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졌습니다. 선풍기 틀고 자던 사람이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또는 질식해서 숨졌다 이런 내용인데요. 기사를 살펴보면 경찰을 인용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경찰은 사망자가 선풍기를 얼굴 가까이 켜 놓고 자다가 저산소증으로 숨진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 원인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요.
◇ 최휘 : 경찰이 선풍기를 사망의 원인으로 지목한 건데요. 그럼 선풍기 때문에 숨진 게 아닌가요?
◆ 선정수 : 누군가가 돌아가시면 변사사건으로 접수돼 경찰이 출동합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은 가장 먼저 타살 혐의점이 있는지부터 살피죠. 외부 침입의 흔적이 있는지, 시신에 상처가 있는지 이런 것들인데요. 대부분의 선풍기 사망설 연관 사건은 외부 침입의 흔적이 없고, 시신에 상처도 없고, 딱히 자살한 것 같지도 않단 말이죠. 방 안에서 곱게 누워서 잠든 채로 돌아가셨는데,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더라. 이런 겁니다. 정확한 사인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시신을 부검해야 하는데 보통 타살 혐의점이 없으면 경찰이 부검을 하려고 들지 않죠. 유족들도 굉장히 부검을 꺼리는 풍조가 만연해 있기도 했고요. 그런데 망자가 돌아가신 이유는 있어야 하니까 선풍기를 켜놓고 자다가 저체온증 또는 질식사 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말해왔던 것이죠.
◇ 최휘 : 요즘엔 이 선풍기 사망설이 언론에 보도되지도 않고, 또 일반 시민들도 예전보다는 이런 말을 믿지 않고 있잖아요. 무슨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 선정수 : 2010년 대법원 판결이 계기가 됐습니다. 2007년 자기 집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한 분이 있었는데요. 이 분이 생명보험에 가입돼 있었습니다. 보험 보장 내용은 급격하고도 우연한 외래의 사고로 인한 상해로 사망하면 5000만원, 주말 사고 발생시 추가 5000만원, 질병사망보험금 5000만원이었는데요. 유족들은 망자의 사망원인이 에어컨으로 인한 저체온증에 해당한다며 추가 5000만원 보험금 지금을 요구했습니다. 대법원은 "사망원인이 분명치 않아 다툼이 생길 것이 예상되면 유족이 먼저 사망원인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며 "부검을 하지 않음으로써 생긴 불이익은 유족들이 감수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선풍기나 에어컨을 틀고 자더라도 저체온증이나 산소부족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없다는 한국배상의학회 사실조회 결과를 받아들였습니다. 선풍기 또는 에어컨 사망설에 대법원이 마침표를 찍은 것이죠.
◇ 최휘 : 팩트체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인데요. 거의 백년 정도를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믿어왔던 통념이 근거를 통해 반박되는 것이잖아요.
◆ 선정수 : 그렇습니다. 남들이 믿는다고 해서, 우리 사회 대다수가 믿는다고 해서 그게 꼭 사실이라는 법은 없죠. 1990년대에 선풍기 틀고 자면 죽는다는 말은 모두가 믿는 사실에 가까웠지만 이제는 한국 사회 구성원 대부분이 믿지 않죠. 그건 우리사회가 점점 과학 기반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예시가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일깨우는 사례가 되기도 하고요. SNS를 통해서 날아오는 수많은 '카더라', 이것 하나만 먹으면 모든 병이 싹 나을 것 같은 허위 과장광고들 이런 것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의심나면 찾아보고 알아보고 물어보는 검증과정을 거치는 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 최휘 : 2024~2025 계절독감 예방접종이 시작됐는데요. 이 예방접종과 관련해서도 오래된 통념이 있어요. 바로 "백신주사 맞은날 샤워하면 안 된다"는 말인데요. 이것도 우리나라에만 통용되는 말이라고요?
◆ 선정수 : 네, 제가 세계 여러나라 보건당국의 자료를 찾아봤는데요. 세계 어떤 나라도 백신 맞은 날에는 샤워를 하지 마라는 나라는 없었습니다. 영국 같은 경우는 아이에게 수영을 쉬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정상적으로 운동을 시키라고 하는 답변을 찾을 수 있었고요. 미국, 영국, 일본, 싱가포르 등등 많은 나라는 정상적으로 일상생활을 하면 된다는 내용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다만 주사 맞은 자리를 박박 문지르지 말라는 이야기는 있었습니다.
◇ 최휘 : 의사들도 예방접종을 받을 텐데요. 의사는 백신 맞은 날 샤워를 안 하나요?
◆ 선정수 : 현직 의사 여러분한테 물어봤는데요. 모두 샤워를 한다고 했습니다. 다만, 주사 맞은 자리에 물이 닿지 않도록 방수 밴드를 붙이고 샤워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왜 백신 맞은 날은 샤워하지 말라는 지침이 생겼는지 이유를 물어봤는데요. 세 가지 정도로 추측을 하더라고요. 주사를 맞은 뒤 아물지 않은 상처 부위로 샤워할 때 세균이 침입해 감염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 첫번째 이유고요. 다른 설은 목욕 또는 샤워 시 체온에 변화가 생겨 면역 기능에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엉덩이 주사의 경우 특별히 샤워 또는 목욕에 제한을 두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세균 감염설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목욕 또는 샤워로 인한 체온 변화는 체구가 작은 영유아에게는 가능한 일이지만 성인은 샤워 정도로는 체온 변화의 폭이 면역 기능에 혼란을 줄 정도에 이르지 못합니다. 다른 하나는 예전에 우두 접종을 할 때 끝이 뾰족한 포크처럼 생긴 분지침으로 피가 맺힐 때까지 20번 정도 피부를 찌르는 방식으로 접종을 했다고 합니다. 이때 생기는 상처가 크기 때문에 아물 때까지 물 닿지 말라고 권고를 했던 것이고요. 당시 생겼던 '백신 접종 받고는 물 닿지 마세요, 씻지 마세요.'라는 관행이 여태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 아닌가 하는 추정도 있었습니다.
◇ 최휘 : 그냥 무심코 그런가보다 하고 믿고 넘어가는 정보가 굉장히 많아요.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이야기라서 그냥 믿고, 친한 친구가 이야기 해주는 거라서 덜컥 믿고, 사실 따지기 귀찮아서 그냥 믿고 마는 이야기들도 굉장히 많거든요.
◆ 선정수 : 네. 매사에 따지기 시작하면 굉장히 피곤하죠. 그런데 인생에서 굉장히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거나, 아니면 나의 안전과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든가 하는 여러 장면에선 결국 믿을 건 나밖에 없는 상황이 오거든요. 그래서 내 머리로 생각하는 연습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요. 어떤 정보가 제시됐을 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가려내는 능력은 매우 필요하죠. 평소에 내 머리로 생각하고 사실인지 아닌지 따져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 유산균 음료 제조사에서 기자들 모아놓고 "우리 회사 마시는 요구르트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70% 사멸시켰다" 이런 발표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자들이 대부분 인문계 출신이고, 유통담당 기자들이 보건 의학 화학 생물학 이런 쪽으로 잘 모르거든요. 기자들이 그대로 받아썼습니다. 일부 매체는 "ㅇㅇ유업이 코로나 극복에 새 전기를 마련했다" 이런 의미부여를 해서 기사를 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 실험은 방법이 잘못됐습니다. 사람이 뭘 먹어서 어떤 효과를 보려면 먹어서 효과를 검증하는 임상실험을 해야하는데요. 이 회사는 배양접시에 개 신장세표에 바이러스를 배양시켜 놓고 유산균 음료를 부은 뒤에 얼마나 바이러스가 덜 증식하는지를 비교한 겁니다. 유산균 음료는 산성이라서 바이러스가 직접 접촉하면 불활성화되거든요. 이게 살균제 효과를 검증하는 방식이기도 한데요. 기자들이 이런 걸 걸러내지 못했던 거죠. 이 유산균 음료의 효과를 강조하는 기사가 수백개가 쏟아졌습니다. 그래서 다음날 제가 팩트체크 기사를 냈죠. 결과적으로 그 회사는 식품안전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고 결국 경영진이 바뀌게 됐죠. 팩트체크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사례입니다. 무턱대고 믿지말고 의심나면 찾아보고 물어보고 확인하기. 이게 팩트체크의 핵심입니다.
◇ 최휘 : 일상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도 팩트체크는 꼭 필요하겠네요. 오늘은 여기까지 듣죠. 지금까지 선정수 팩트체커였습니다.
YTN 장정우 (jwjang@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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