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 방송 : YTN 라디오 FM 94.5 (20:20~21:00)
■ 날짜 : 2024년 10월 20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온유 (뇌성마비 소녀의 엉금엉금 성장기)’의 저자 김은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화제에 오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사지 마비성 뇌성마비 딸을 돌보는 엄마인데요. 딸과 함께 보내는 유쾌하면서도 발랄한 일상은 특히 장애아 부모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뇌성마비 소녀의 엉금엉금 성장기’라는 책을 저술하신 김은혜 씨 모시고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온유 (뇌성마비 소녀의 엉금엉금 성장기)’의 저자 김은혜(이하 김은혜) : 안녕하세요.
◆ 이성규 : 네. 제가 인스타그램 말씀을 드렸었는데 팔로우가 많으세요?
◇ 김은혜 : 최근에 여러분들이 찾아주셔가지고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있더라고요.
◆ 이성규 : 유튜브도 하시죠?
◇ 김은혜 : 유튜브는, 온유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을 자꾸 자기 패드에 넣어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근데 그걸 인스타그램을 연동시킬 수 없어서 그냥 유튜브 계정에다가 제가 그거를 올리면서 그냥 오픈해놨더니 약간 유튜브를 하는 형식으로 되었어요. 열심히 해보려고요.
◆ 이성규 : 따님 이름인 거죠? 온유가. 그런데 온유 양과 김은혜 씨에 대해서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소개 좀 한번 해 주시겠어요?
◇ 김은혜 : 저 좀 소개할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온유 (뇌성마비 소녀의 엉금엉금 성장기)’ 책의 저자이며 꽃과 색으로 삶을 그리는 작가이기도 한 그레이스 킴 김은혜입니다.
◆ 이성규 : 따님 이름이 온유잖아요. 이름이 친근하고 부드럽고 상당히 예뻐요. 누가 지으셨어요?
◇ 김은혜 : 온유는 사실 태명이었어요. 근데 이제 온유가 뱃속에 있을 때는 엄청 건강한 아이로 저희가 알고 있었거든요. 낳자마자 이 아이가 아픈 걸 알았고, 아이 이름을 지어서 한 달 안에 그 이름을 올려야 되는데. 너무 정신이 없으니까 이름을 지을 정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그냥 태명으로 이 아이 이름을 짓자고 해서. 원래 태명이 온유였습니다.
◆ 이성규 : 온유. 그게 한자어겠죠?
◇ 김은혜 : 네 맞아요.
◆ 이성규 : ‘온유할 온’자에 ‘부드러울 유’ 이렇게 됩니까?
◇ 김은혜 : 맞습니다. 태명을 사실은 저도 생각해 보니까 그때 온유가 첫 아이였고 이 아이를 품어본 게 처음이라 잘 몰랐는데. 태동이나 이런 게 엄청 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얘 참 온유한 아이라고 생각을 해서 저희가 온유라고 태명을 그렇게 지었거든요. 그게 이름이 되었네요.
◆ 이성규 : 근데 온유 양이 태어나자마자 정신이 없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때 얘기 좀 해주세요.
◇ 김은혜 : 태어나자마자. 정말 뱃속에 있을 때는 전혀 몰랐고요. 제가 그때 당시 나이가 28에 임신을 해서 29살 1월에 온유를 낳았으니까. 그 나이가 29살이지만 한국 나이로 29살이지 제가 27번째 년도 그러니까 제가 27살에 아이를 낳은 거예요. 진짜 어리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진짜 건강한 산모였고 아이도 다 건강한 아이였어요. 그 아이가 나왔는데 몸에 수포가 몇 개가 있었어요. 우리 뜨거운 물 딱 댔을 때 이렇게 물집이 생기잖아요. 몸에 물집이 몇 개 있었어요. 그거 외에는 너무너무 예쁜 아이였거든요. 그래서 물집이 있어서 큰 병원으로 옮겼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그때 너무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그냥 몸에 물집 몇 개 있는데 왜 큰 병원으로 옮기지? 잘 몰랐죠. 이해를 못하고 워낙 어렸을 때였어서. 그래서 온유는 그 이후로 색소실조증이라는 병명을 갖고 색소실조증으로 인한 뇌성마비를 얻게 된 거예요.
◆ 이성규 : 색소실조가 됐는데 왜 뇌성 마비가.
◇ 김은혜 : 색소실조증. 그죠? 이해가 안 가죠. 이게 수포가 피부 겉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장기 안으로도 수포가 생긴대요. 그래서 눈 쪽으로 오면 눈이 실명되기도 하고. 근데 뇌에 오면 가장 안 좋은 거죠. 근데 이제 겉으로 만약에 드러나서 잇몸 있는 쪽에 수포가 생기면 이가 없기도 해요. 그리고 겉에 머리 쪽에 생기면 탈모가 생기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그냥 몸에 생기면 수포가 터지고 나서 이렇게 점처럼 살짝 남거든요. 근데 그게 그냥 피부에만 생기면 그냥 피부 트러블로 없어지는데, 온유는 가장 안 좋은 케이스로 뇌에 수포가 생기니까 다른 모든 신체들은 한 번 다치면 재생이 가능하지만 뇌는 재생이 불가능한 거예요.
◆ 이성규 : 그러니까 제어 장치가 무너진 거네요.
◇ 김은혜 : 그래서 색소실조증으로 인한 뇌성마비가 된 거죠.
◆ 이성규 : 네. 근데 그때 이 희귀질환이 제가 지금 들어봐도 저도 이 분야 전공자인데. 그런 것도 있구나 싶은데. 아무리 어머니지만 당시에 젊고 또 질병에 대해서 또 좀 생소하고 그래서 더 정신이 없으셨을 것 같네요.
◇ 김은혜 : 일단 그냥 그 나이에는 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아이를 낳고 이 아이를 키운다는 것조차도 너무 정보가 없었는데. 이렇게 얘기하면 또 나이가. 저 때는 유튜브라는 것도 그 시절에, 거의 20여 년 전이니까 유튜브도 이렇게 막 활성화가 되어 있던 시기는 아니어서 뭔가 이렇게 정보 교류가 좀 적었거든요. 그러니까 정말 암담하고 그 장애 아이를 내가 이렇게 어떻게 키워야 되나. 이런 암담함이 엄청 컸던 것 같아요.
◆ 이성규 : 그 의사 선생님도 여기저기 찾아다니셨을 것 같아요.
◇ 김은혜 : 맞아요. 근데 이 색소실조증이라는 이 병이요. 너무 희귀해서 희귀병도 등록할 수 없는 희귀병인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예를 들면 이 희귀병에 걸린 사람이 100명 이상이 돼야 희귀병 등록을 해줘서 나라에서 돈도 좀 지원해 주고 뭔가 희귀병 관련 이런 거를 해줘요. 그런데 얘는 너무 사람이 몇 없는 너무 희귀병이라 희귀병에도 등록을 못하는 희귀병인 거죠. 그래서 그때는 막 인터넷으로 찾아서 소소하게 그 병에 걸린 엄마 아빠들끼리 모여서 정보도 교류하고 그렇게 했었어요. 그때 만났던 친구 중에 색소실조증을 같이 앓고 있었던 온유보다 훨씬 더 언니였거든요. 그 언니가 지금은 고등학생, 대학생이 됐는데 막 전교 1등 하고 아직도 저희한테 연락 와요.
◆ 이성규 : 그 언니도 뇌성이에요? 아니면 어디로.
◇ 김은혜 : 보통은 색소실조증 아이들이 옛날로 얘기하면 그냥 애기가 나왔는데 좀 피부 트러블이 있었다. 그냥 그 정도로 하고 보통의 생활을 할 수 있대요. 근데 온유가 좀 유난히 뇌성 마비까지 온 거고. 그 친구는 조금 한쪽 눈이 조금 안 보이고 이가 9개밖에 없고 머리에 이제 탈모가 좀 있고. 겉으로 드러나기에 조금 그런 거 외에는 크게 다른 문제는 없어요.
◆ 이성규 : 장애 등록 받았나 모르겠네요.
◇ 김은혜 : 그러게요.
◆ 이성규 : 근데 또 온유가 엄마도 어린 엄마였지만 또 첫 애잖아요.
◇ 김은혜 : 네 맞아요.
◆ 이성규 : 첫 아이니까 엄마 경험이 좀 초보잖아요. 그때 생소하고 그러니까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라든가 ‘왜 나지? 왜 장애 있는 아이 엄마가 나여야 되지?’ 뭐 그런 생각 복잡한 생각은 안하셨어요?
◇ 김은혜 : 너무 많이 했죠.
◆ 이성규 : 그러셨어요.
◇ 김은혜 : 지금은 제가 이 자리에 나와서 이렇게 이성규 교수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또 내 과거를 얘기할 만큼 많이 성장했다고 저도 생각을 하는데. 그때는 안 그랬어요. 너무 어렸고 삶을 살면서 내가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게 거의 처음이잖아요. 첫 어려움이라고 그래야 되나. 일단 창피했고요. 그리고 속상했어요. 그리고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약간 그런 생각과 그때는 잘못된 장애 인식에 휩싸여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럼 내가 생각하는 장애 가족, 우리 사회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장애 인식에 맞는 그 장애 가족이 되어야 되는구나. 근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여태까지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비장애인으로 살았고 한 번도 내가 실질적으로 실제로 장애인을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갑자기 내가 애를 낳았는데, 이 애가 장애인이야. 그럼 난 이제 장애인 가족이 돼버렸어. 나 그럼 어떻게 살아야 돼? TV에서 말하는 것처럼 맨날 울고 슬프고 이렇게 막 우울하게 살고 막 이래야 돼?’ 그런 인식이 저를 더 힘들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 이성규 : 그래서 공황장애 얘기가 그런 거랑 연관된 거군요.
◇ 김은혜 :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왔었고요. 그래서 그 인식에 나를 계속 끼워 맞추려고 하니까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거를 딱 벗어 던지는 순간 그리고 이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내가 그냥 나로 살아도 되는구나.’ 이거는 분명히 말해야 돼요. ‘잘못되었던’ 장애 인식에 대해서 내가 거기서 딱 벗어나니까 너무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제 자신이. 그냥 나로 살아도 되니까.
◆ 이성규 : 그러니까 장애인 가족이나 장애인 부모라는 프레임으로 인한 일반 명사 속에서 살다가.
◇ 김은혜 : 살려고 노력한.
◆ 이성규 : 김은혜라는 고유 명사를 찾으셨네요.
◇ 김은혜 : 그런 것 같아요. 그랬더니 자유로워졌어요. 온유와 함께. 온유는 장애인이거든요. 온유가 장애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온유는 장애인이고 저는 비장애인이에요. 근데 함께 사는 이 가족이 서로가 서로를 빛나게 살면서. 아까 말씀하셨듯이 고유명사로 나로서 살아가면서 조화롭게 가족의 형태로도 즐기는 삶을 찾은 것 같아요. 지금은.
◆ 이성규 : 그래놓고 남동생 둘을 또 보셨잖아요.
◇ 김은혜 : 근데요. 그거 아세요? 제가 키워보니까 장애 아이 키우는 것도 힘들지만 비장애 아이들 키우는 거 보통 아니게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우스갯소리로도 사람들한테 “어떻게 비장애 아이들만 키워? 너무 힘들겠다.” 막 이렇게 우스갯소리를 말하는 때가 있어요. 종종. 근데 그게 솔직히 진심이거든요. 저는 온유를 키워서 이 아이에 대한 생각이나 그리고 사람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아까 말씀하셨듯이 내가 지금 막 괴롭고 이랬지만 그거를 벗어날 수 있는 용기 이런 것들을 억지로 내 인생의 경험으로 깨우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억지로 그런 상황이 없어서 깨우치지 못하면 비장애 아이들만 키우는 거는 너무너무 힘든 일이거든요. 사실 마음으로 마음적으로. 그래서 제가 가끔 그런 얘기를.
◆ 이성규 : 그 힘든 그 비장애 아이들 동생이 “우리 누나 장애인이야.” 이러고 얘기했던 적이 또 있다면서요? 어디에서.
◇ 김은혜 : 우리 리안이가 둘째인데요. 참 밝아요. 우리 막내도 밝지만. 그 아이가 5살, 6살 이 정도 됐을 때예요. 그래서 태권도 도장에서 승급 심사를 받으러 갔는데. 거기 승급 심사니까 온 가족이 다 같이 응원을 가요. 그래서 당연히 온유도 데리고 갔죠. 그랬는데 거기서 리안이가 이제 관장님을 딱 보더니 “안녕하십니까? 관장님. 전 리안입니다. 여기는 저희 엄마. 옆에 저희 누나, 장애인”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때 당시만 해도 이런 장애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제가 되게 불편했거든요. 그래서 그때도 되게 열심히 살고 활발히 살고 온유를 드러내고 막 이렇게 했지만 ‘장애인’이라는 그 단어 자체는 조금 불편해했었어요. 그래서 그때 제가 블로그를 했었는데 거기에도 제가 그렇게 썼어요. 이걸 불편해하는 내 마음이 맞나. 그래서 그때 리안이한테 “리안아, ‘장애인’ 이렇게 누나를 소개하지 말고 그냥 ‘누나는 몸이 좀 불편해요.’ 이렇게 얘기하면 어떨까?”라고 리안이한테 그렇게 말을 했거든요. 그리고 나서 제가 블로그를 쓰면서 그렇게 아이를 가르치는 게 맞나.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나는 불편하지만 리안이는 불편하지 않았던 거잖아요. 왜냐하면 리안이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온유 누나니까 너무 좋은거에요.
◆ 이성규 : 프레임이 없어요.
◇ 김은혜 : 없어요. 너무 좋은 거예요. 누나는 좋고, 누나는 행복하게 살고 우리 가족이고 예쁘고 그게 이 아이한테 장애인은 그거였던 거예요. 근데 저한테 장애인은 TV에서 봤던.
◆ 이성규 : 프레임 속에 있어요.
◇ 김은혜 : 그래서 저는 불편했던 거죠. 그래서 내가 이걸 깨야겠다고 생각했고.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듯 ‘뇌성마비’, ‘우리 온유는 장애인’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저는 비장애인이다. 아직은 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비장애인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 이제는 전혀 저도 그 프레임을 깨고 나왔습니다.
◆ 이성규 :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뇌성마비 온유의 엉금엉금 성장기’의 저자, 김은혜 씨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우리가 노래 하나 듣고 가는 거는 알고 오셨죠? 하나 좀 추천해 주시죠.
◇ 김은혜 : 제가 신청할 곡 신청할 곡은 ‘Me Too’ 예요.
◆ 이성규 : 이게 OST 중에 메간 트레이너가 불렀던 거죠?
◇ 김은혜 : 아시네요. 이 노래는 이제 영화 의 OST인데. 이 영화의 주인공이 이제 원래는 외모에 되게 자신이 없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니까 자기가 너무너무 예뻐진 거예요. 막 슈퍼모델처럼. 그런데 정작 이 여자한테만 그렇게 보이는 거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예전에 그냥 통통하고 그녀의 모습 그대로 보이거든요. 그런데 이 여자가 자기 자신이 예뻐졌다고 느낀 후로 이제 자신감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 그런 이야기의 코믹 영화인데요. 근데 제 딸이 장애인으로 휠체어를 타고 있잖아요. 근데 온유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또 행복하다고 느끼는 삶을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결국 이 삶의 태도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일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저한테는 그냥 코믹 영화가 아니고 이 영화의 내용이 삶의 용기로 다가오는 것 같아서 들어보고 싶습니다.
◆ 이성규 : 김은혜 씨가 추천한 OST 중에 메간 트레이너의 곡 ‘Me Too’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뇌성마비 장애 온유와 두 아들 그리고 남편까지 다섯 가족과 함께 유쾌한 일상을 만들고 있는 김은혜 씨 모시고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근데요. 이제 또 곧 입동에다가 김장철이 다가오잖아요. 근데 온유와 김은혜 씨에게 이 김치가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 김은혜 : 제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그리고 1년 뒤에 바로 온유를 낳았는데 온유가 아팠잖아요. 그래서 살림을 좀 즐겁게 하려다가 살림에 손을 댈 수가 없었죠. 그때는 온유 낳고 나서 온유가 장애 판정을 받고 그 이후로는 막 두 달, 한 달 이렇게 병원에서 아예 입원을 했어요. 그래서 아예 집에 들어오지 못했어요. 두 달 동안. 그리고 또 집에 잠깐 왔다가 또 한 달 동안 입원을 하고 이런 생활을 했었고. 또 이제 입원을 안 하더라도 아침 일찍 첫 타임으로 7시 반, 8시 타임 이런 타임에 가서 운동을 시키고 집에 돌아오면 오후 6시. 그런 삶을 계속 살았기 때문에 살림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온유, 리안이, 시안이 다 학교에 다니고 저도 저만의 시간이 좀 주어지고 살림을 다시 할 수 있는 여건들이나 그런 시간들이 주어져서 ‘내가 살림에 다시 최선을 다하는데 좀 어려운 걸 해보자.’ 이제 주부들 생각하기에 김치가 되게 어렵다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담가보니까 싶더라고요. 뭐든 손으로 잘 만들어서 그런가. 그래서 김치를 한번 내가 도전을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되게 맛있게 잘 된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살림에 다시 손을 대면서 좀 안정을 찾았다는 기분. 그런 기분이 드는 음식이라 아이들도 김치 좋아하고요.
◆ 이성규 : 참 재밌게 사시는 것 같아요. SNS를 보면 모델처럼 옷도 입으시는 것 같고. 또 아이들하고 재미난 동영상 올리시는 것도 있고. 또 막내아들하고만 해외여행도 다녀오시오. 원래 이렇게 유쾌하신 분이에요? 아니면 그렇게 노력을 하신 거예요?
◇ 김은혜 : 아니 누가 그러더라고요. “노력하는 거예요?” 이거 있잖아요.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니까 일부러 이렇게 예쁜 삶과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하냐고 했는데. 절대 일부러 할 수 없고요. 저 자신 그대로고. 제가 이런 말도 해요. 저 이거 많이 어두워진 거라고. 원래 더 밝았다고. 근데 이제 아이들과 제가 오랫동안 온유 낳고 우울증과 그런 어두운 터널의 시기가 있었잖아요. 그런 게 좀 아깝고 그 시절이 안타깝고 내 자신이 나를 봤을 때. 그리고 지금은 하루하루가 너무 감사하고 그리고 즐기고 싶고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즐거워요. 물론 순간순간 힘든 마음이나 이런 거는 지금도 늘 있어요. 온유 얘기하면 막 눈물부터 펑펑 나고 아직도 그러긴 하지만 내가 삶 속에서 순간순간에 즐거움을 누리는 삶으로 변한 거는 확실한 것 같아요.
◆ 이성규 : 그런 김은혜 씨를 보고 주변에서 여러 가지 이렇게 반응들을 하실 텐데 그중에 좀 생각나는 말씀이 있으세요?
◇ 김은혜 : 진짜 저는 너무 감동과 감사의 DM을 많이 받거든요. 인스타로. 근데 제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장애 아이를 낳으면 그 장애 아이의 인생이 좀 슬프지만 이 아이의 인생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잘 상상이 안 가요. 근데 그때 가장 불쌍한 사람은 엄마예요. 내가 제일 불쌍해요. 어떻게 살아야 되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나 그럼 옷도 어떻게 입어야 되고 나 이제 밝은 옷 입으면 사람들이 질타할까? ‘장애인 엄마면서 저렇게 밝은 옷을 입고 다녀.’ 막 이럴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 때문에 우울해지거든요. 근데 어떤 엄마도 딱 그런 DM을 보내셨더라고요. ‘제가 아이를 낳았는데 장애 아이라더라.’ 그래서 자기도 똑같이 ‘나는 이제 내 장롱에 있는 모든 명품 백을 다 갖다 버려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대요. 그런데 어느 날 인스타로 저를 만났는데 ‘어머 이 여자 뭐야. 이렇게 웃고 즐기고 삶을 누리네.’ 그러면서 저한테 DM으로 너무 고맙다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모습 보여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 이성규 : 그러다가 이제 책을 내셨잖아요. ‘뇌성마비 소녀의 엉금엉금 성장기’ 근데 왜 책을 내실 생각을 하셨어요?
◇ 김은혜 : 그때는 온유가 정상인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웃기지만. 온유가 학교에 가면 이 병에 대해서 친구들한테 설명을 해줘야 되는데. 매일 한 명 한 명한테 다 설명하긴 어려우니까 조그만 엽서를 한 장 써서 ‘우리 온유는 이런 병이 있었고 이렇게 해서 좋은 행복한 가정에 사는 아이야’라는 엽서를 써서 이제 온유 친구들한테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시작했는데. 남편이 ‘책을 써보면 어때? 은혜야.’ 그래서 온유 친구들이나 주변에 나눠줄 생각으로 책을 썼어요. 처음에는. 근데 이게 또 인스타에서 여러분들이 많이 구매를 원하시고 해서 한 번 더 찍었죠.
◆ 이성규 : 네. 이 방송 들으시면 또 대박 나시겠네요.
◇ 김은혜 : 아이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서. 초등학생 아이들도 같이 볼 수 있게끔 너무 어렵게 글로 꽉 찬 책이 아니에요. 쉽게 후딱 즐겁게 감동적으로 볼 수 있는 책이니까.
◆ 이성규 : 원래 화가시죠? 그림 그리시고.
◇ 김은혜 : 저는 어렸을 적에는 패션을 전공하고 패션 회사에 다녔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이제 온유를 키우면서 온유랑 평생 뭘 하면서 살까 고민하다가. 온유가 이렇게 손에 터치할 수 있는 게 펜을 들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행위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온유랑 평생 나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그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서 지금은 세 번째 개인전을 지금 열고 있어요.
◆ 이성규 : 지금 진행 중이에요?
◇ 김은혜 : 진행 중에 있어요. 지금 서울 서초구에 있는 갤러리에서 세 번째 ‘Colors of Courage, 용기의 색들’이라는 주제로 지금 전시를 열고 있습니다.
◆ 이성규 : 전시회가 언제 끝나죠?
◇ 김은혜 : 이번 전시회는 10월 26일까지입니다.
◆ 이성규 : 근데 지난번에는 한번 전시회 때 작품이 판매된 수익금을 기부하셨더라고요.
◇ 김은혜 : 네 맞아요. 제가 기부라는 것도 저는 온유를 만나고 나서 기부라는 것을 하게 되었고 알게 되었고 이 세상을 만났는데. 온유가 처음에 아프고 나서 서울대병원에서 수술도 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남편이랑 처음으로 ‘이렇게 아픈 아이들이 많았구나. 이 세상에.’ 그런 것들을 알게 되면서 서울대병원에 기부를 했고요. 그다음에는 저희가 ‘푸르메재단’이라고. 예전에 션 씨가 말씀하셨는데. 어린이 재활병원이 우리나라에 하나도 없었대요.
◆ 이성규 : 루게릭이요?
◇ 김은혜 : 아니요. 그냥 재활병원이요. 어린이만을 위한 재활병원은 없었대요. 그러니까 성인과 같이 하는 재활병원에 있는데 어린이만을 위한 재활병원이 없어서 그거를 기부금으로 세웠거든요. 푸르메재단과 함께. 거기에 저희가 연결이 돼가지고 그때 션 씨랑 같이 이렇게 달리기도 하고 하면서 이제 기부를 했고. 그게 또 인연이 되어가지고 ‘아너 소사이어티’라고 또 기부 재단이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 또 회원으로 활동을 했고. 또 최근에는요. 제가 이렇게 그림을 그려서 그림 기부도 하고 또 전시회에서 판 금액을 기부도 하기도 하지만. 최근에 저희 막내가 친구들하고 같이 1일 카페를 해서 또 그 수익금을 전액 다 온유와 같은 몸이 불편한 장애 아이들을 위해 또 기부하기도 했어요. 솔직히 그 기부가 가장 저한테는 뿌듯하고 기억에 남는 기부이기도 해요.
◆ 이성규 : DNA 상속이네요.
◇ 김은혜 : 너무 감사하죠. 그러면은.
◆ 이성규 : 앞으로 또 해보고 싶은 일 있으시면 소개하시면서 마무리해 주시죠.
◇ 김은혜 : 해보고 싶은 일 너무 많은데요. 그냥 내가 장애 인식 개선에 조금 힘이 된다면 나를 보여주는 것에 더 힘쓰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은 많이 들어요.
◆ 이성규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뇌성마비 소녀의 엉금엉금 성장기’의 저자 김은혜 씨와 함께 유쾌한 시간 가져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김은혜 : 감사합니다.
◆ 이성규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 날짜 : 2024년 10월 20일 (일요일)
■ 진행 : 이성규 교수
■ 대담 : ‘온유 (뇌성마비 소녀의 엉금엉금 성장기)’의 저자 김은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이성규 교수(이하 이성규) :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화제에 오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사지 마비성 뇌성마비 딸을 돌보는 엄마인데요. 딸과 함께 보내는 유쾌하면서도 발랄한 일상은 특히 장애아 부모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뇌성마비 소녀의 엉금엉금 성장기’라는 책을 저술하신 김은혜 씨 모시고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 ‘온유 (뇌성마비 소녀의 엉금엉금 성장기)’의 저자 김은혜(이하 김은혜) : 안녕하세요.
◆ 이성규 : 네. 제가 인스타그램 말씀을 드렸었는데 팔로우가 많으세요?
◇ 김은혜 : 최근에 여러분들이 찾아주셔가지고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있더라고요.
◆ 이성규 : 유튜브도 하시죠?
◇ 김은혜 : 유튜브는, 온유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을 자꾸 자기 패드에 넣어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근데 그걸 인스타그램을 연동시킬 수 없어서 그냥 유튜브 계정에다가 제가 그거를 올리면서 그냥 오픈해놨더니 약간 유튜브를 하는 형식으로 되었어요. 열심히 해보려고요.
◆ 이성규 : 따님 이름인 거죠? 온유가. 그런데 온유 양과 김은혜 씨에 대해서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소개 좀 한번 해 주시겠어요?
◇ 김은혜 : 저 좀 소개할까요? 안녕하세요. 저는 ‘온유 (뇌성마비 소녀의 엉금엉금 성장기)’ 책의 저자이며 꽃과 색으로 삶을 그리는 작가이기도 한 그레이스 킴 김은혜입니다.
◆ 이성규 : 따님 이름이 온유잖아요. 이름이 친근하고 부드럽고 상당히 예뻐요. 누가 지으셨어요?
◇ 김은혜 : 온유는 사실 태명이었어요. 근데 이제 온유가 뱃속에 있을 때는 엄청 건강한 아이로 저희가 알고 있었거든요. 낳자마자 이 아이가 아픈 걸 알았고, 아이 이름을 지어서 한 달 안에 그 이름을 올려야 되는데. 너무 정신이 없으니까 이름을 지을 정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그냥 태명으로 이 아이 이름을 짓자고 해서. 원래 태명이 온유였습니다.
◆ 이성규 : 온유. 그게 한자어겠죠?
◇ 김은혜 : 네 맞아요.
◆ 이성규 : ‘온유할 온’자에 ‘부드러울 유’ 이렇게 됩니까?
◇ 김은혜 : 맞습니다. 태명을 사실은 저도 생각해 보니까 그때 온유가 첫 아이였고 이 아이를 품어본 게 처음이라 잘 몰랐는데. 태동이나 이런 게 엄청 심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얘 참 온유한 아이라고 생각을 해서 저희가 온유라고 태명을 그렇게 지었거든요. 그게 이름이 되었네요.
◆ 이성규 : 근데 온유 양이 태어나자마자 정신이 없었다고 하셨잖아요. 그때 얘기 좀 해주세요.
◇ 김은혜 : 태어나자마자. 정말 뱃속에 있을 때는 전혀 몰랐고요. 제가 그때 당시 나이가 28에 임신을 해서 29살 1월에 온유를 낳았으니까. 그 나이가 29살이지만 한국 나이로 29살이지 제가 27번째 년도 그러니까 제가 27살에 아이를 낳은 거예요. 진짜 어리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진짜 건강한 산모였고 아이도 다 건강한 아이였어요. 그 아이가 나왔는데 몸에 수포가 몇 개가 있었어요. 우리 뜨거운 물 딱 댔을 때 이렇게 물집이 생기잖아요. 몸에 물집이 몇 개 있었어요. 그거 외에는 너무너무 예쁜 아이였거든요. 그래서 물집이 있어서 큰 병원으로 옮겼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그때 너무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그냥 몸에 물집 몇 개 있는데 왜 큰 병원으로 옮기지? 잘 몰랐죠. 이해를 못하고 워낙 어렸을 때였어서. 그래서 온유는 그 이후로 색소실조증이라는 병명을 갖고 색소실조증으로 인한 뇌성마비를 얻게 된 거예요.
◆ 이성규 : 색소실조가 됐는데 왜 뇌성 마비가.
◇ 김은혜 : 색소실조증. 그죠? 이해가 안 가죠. 이게 수포가 피부 겉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장기 안으로도 수포가 생긴대요. 그래서 눈 쪽으로 오면 눈이 실명되기도 하고. 근데 뇌에 오면 가장 안 좋은 거죠. 근데 이제 겉으로 만약에 드러나서 잇몸 있는 쪽에 수포가 생기면 이가 없기도 해요. 그리고 겉에 머리 쪽에 생기면 탈모가 생기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그냥 몸에 생기면 수포가 터지고 나서 이렇게 점처럼 살짝 남거든요. 근데 그게 그냥 피부에만 생기면 그냥 피부 트러블로 없어지는데, 온유는 가장 안 좋은 케이스로 뇌에 수포가 생기니까 다른 모든 신체들은 한 번 다치면 재생이 가능하지만 뇌는 재생이 불가능한 거예요.
◆ 이성규 : 그러니까 제어 장치가 무너진 거네요.
◇ 김은혜 : 그래서 색소실조증으로 인한 뇌성마비가 된 거죠.
◆ 이성규 : 네. 근데 그때 이 희귀질환이 제가 지금 들어봐도 저도 이 분야 전공자인데. 그런 것도 있구나 싶은데. 아무리 어머니지만 당시에 젊고 또 질병에 대해서 또 좀 생소하고 그래서 더 정신이 없으셨을 것 같네요.
◇ 김은혜 : 일단 그냥 그 나이에는 장애, 비장애를 떠나서 아이를 낳고 이 아이를 키운다는 것조차도 너무 정보가 없었는데. 이렇게 얘기하면 또 나이가. 저 때는 유튜브라는 것도 그 시절에, 거의 20여 년 전이니까 유튜브도 이렇게 막 활성화가 되어 있던 시기는 아니어서 뭔가 이렇게 정보 교류가 좀 적었거든요. 그러니까 정말 암담하고 그 장애 아이를 내가 이렇게 어떻게 키워야 되나. 이런 암담함이 엄청 컸던 것 같아요.
◆ 이성규 : 그 의사 선생님도 여기저기 찾아다니셨을 것 같아요.
◇ 김은혜 : 맞아요. 근데 이 색소실조증이라는 이 병이요. 너무 희귀해서 희귀병도 등록할 수 없는 희귀병인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에 예를 들면 이 희귀병에 걸린 사람이 100명 이상이 돼야 희귀병 등록을 해줘서 나라에서 돈도 좀 지원해 주고 뭔가 희귀병 관련 이런 거를 해줘요. 그런데 얘는 너무 사람이 몇 없는 너무 희귀병이라 희귀병에도 등록을 못하는 희귀병인 거죠. 그래서 그때는 막 인터넷으로 찾아서 소소하게 그 병에 걸린 엄마 아빠들끼리 모여서 정보도 교류하고 그렇게 했었어요. 그때 만났던 친구 중에 색소실조증을 같이 앓고 있었던 온유보다 훨씬 더 언니였거든요. 그 언니가 지금은 고등학생, 대학생이 됐는데 막 전교 1등 하고 아직도 저희한테 연락 와요.
◆ 이성규 : 그 언니도 뇌성이에요? 아니면 어디로.
◇ 김은혜 : 보통은 색소실조증 아이들이 옛날로 얘기하면 그냥 애기가 나왔는데 좀 피부 트러블이 있었다. 그냥 그 정도로 하고 보통의 생활을 할 수 있대요. 근데 온유가 좀 유난히 뇌성 마비까지 온 거고. 그 친구는 조금 한쪽 눈이 조금 안 보이고 이가 9개밖에 없고 머리에 이제 탈모가 좀 있고. 겉으로 드러나기에 조금 그런 거 외에는 크게 다른 문제는 없어요.
◆ 이성규 : 장애 등록 받았나 모르겠네요.
◇ 김은혜 : 그러게요.
◆ 이성규 : 근데 또 온유가 엄마도 어린 엄마였지만 또 첫 애잖아요.
◇ 김은혜 : 네 맞아요.
◆ 이성규 : 첫 아이니까 엄마 경험이 좀 초보잖아요. 그때 생소하고 그러니까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라든가 ‘왜 나지? 왜 장애 있는 아이 엄마가 나여야 되지?’ 뭐 그런 생각 복잡한 생각은 안하셨어요?
◇ 김은혜 : 너무 많이 했죠.
◆ 이성규 : 그러셨어요.
◇ 김은혜 : 지금은 제가 이 자리에 나와서 이렇게 이성규 교수님과 이야기도 나누고 또 내 과거를 얘기할 만큼 많이 성장했다고 저도 생각을 하는데. 그때는 안 그랬어요. 너무 어렸고 삶을 살면서 내가 이런 어려움을 겪는 게 거의 처음이잖아요. 첫 어려움이라고 그래야 되나. 일단 창피했고요. 그리고 속상했어요. 그리고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지?’ 약간 그런 생각과 그때는 잘못된 장애 인식에 휩싸여 있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래서 ‘그럼 내가 생각하는 장애 가족, 우리 사회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장애 인식에 맞는 그 장애 가족이 되어야 되는구나. 근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여태까지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비장애인으로 살았고 한 번도 내가 실질적으로 실제로 장애인을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갑자기 내가 애를 낳았는데, 이 애가 장애인이야. 그럼 난 이제 장애인 가족이 돼버렸어. 나 그럼 어떻게 살아야 돼? TV에서 말하는 것처럼 맨날 울고 슬프고 이렇게 막 우울하게 살고 막 이래야 돼?’ 그런 인식이 저를 더 힘들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 이성규 : 그래서 공황장애 얘기가 그런 거랑 연관된 거군요.
◇ 김은혜 :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왔었고요. 그래서 그 인식에 나를 계속 끼워 맞추려고 하니까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거를 딱 벗어 던지는 순간 그리고 이 아이의 장애를 받아들이고 ‘내가 그냥 나로 살아도 되는구나.’ 이거는 분명히 말해야 돼요. ‘잘못되었던’ 장애 인식에 대해서 내가 거기서 딱 벗어나니까 너무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제 자신이. 그냥 나로 살아도 되니까.
◆ 이성규 : 그러니까 장애인 가족이나 장애인 부모라는 프레임으로 인한 일반 명사 속에서 살다가.
◇ 김은혜 : 살려고 노력한.
◆ 이성규 : 김은혜라는 고유 명사를 찾으셨네요.
◇ 김은혜 : 그런 것 같아요. 그랬더니 자유로워졌어요. 온유와 함께. 온유는 장애인이거든요. 온유가 장애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온유는 장애인이고 저는 비장애인이에요. 근데 함께 사는 이 가족이 서로가 서로를 빛나게 살면서. 아까 말씀하셨듯이 고유명사로 나로서 살아가면서 조화롭게 가족의 형태로도 즐기는 삶을 찾은 것 같아요. 지금은.
◆ 이성규 : 그래놓고 남동생 둘을 또 보셨잖아요.
◇ 김은혜 : 근데요. 그거 아세요? 제가 키워보니까 장애 아이 키우는 것도 힘들지만 비장애 아이들 키우는 거 보통 아니게 힘듭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우스갯소리로도 사람들한테 “어떻게 비장애 아이들만 키워? 너무 힘들겠다.” 막 이렇게 우스갯소리를 말하는 때가 있어요. 종종. 근데 그게 솔직히 진심이거든요. 저는 온유를 키워서 이 아이에 대한 생각이나 그리고 사람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아까 말씀하셨듯이 내가 지금 막 괴롭고 이랬지만 그거를 벗어날 수 있는 용기 이런 것들을 억지로 내 인생의 경험으로 깨우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억지로 그런 상황이 없어서 깨우치지 못하면 비장애 아이들만 키우는 거는 너무너무 힘든 일이거든요. 사실 마음으로 마음적으로. 그래서 제가 가끔 그런 얘기를.
◆ 이성규 : 그 힘든 그 비장애 아이들 동생이 “우리 누나 장애인이야.” 이러고 얘기했던 적이 또 있다면서요? 어디에서.
◇ 김은혜 : 우리 리안이가 둘째인데요. 참 밝아요. 우리 막내도 밝지만. 그 아이가 5살, 6살 이 정도 됐을 때예요. 그래서 태권도 도장에서 승급 심사를 받으러 갔는데. 거기 승급 심사니까 온 가족이 다 같이 응원을 가요. 그래서 당연히 온유도 데리고 갔죠. 그랬는데 거기서 리안이가 이제 관장님을 딱 보더니 “안녕하십니까? 관장님. 전 리안입니다. 여기는 저희 엄마. 옆에 저희 누나, 장애인”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때 당시만 해도 이런 장애인이라는 단어 자체가 제가 되게 불편했거든요. 그래서 그때도 되게 열심히 살고 활발히 살고 온유를 드러내고 막 이렇게 했지만 ‘장애인’이라는 그 단어 자체는 조금 불편해했었어요. 그래서 그때 제가 블로그를 했었는데 거기에도 제가 그렇게 썼어요. 이걸 불편해하는 내 마음이 맞나. 그래서 그때 리안이한테 “리안아, ‘장애인’ 이렇게 누나를 소개하지 말고 그냥 ‘누나는 몸이 좀 불편해요.’ 이렇게 얘기하면 어떨까?”라고 리안이한테 그렇게 말을 했거든요. 그리고 나서 제가 블로그를 쓰면서 그렇게 아이를 가르치는 게 맞나. 장애인이라는 단어가 나는 불편하지만 리안이는 불편하지 않았던 거잖아요. 왜냐하면 리안이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온유 누나니까 너무 좋은거에요.
◆ 이성규 : 프레임이 없어요.
◇ 김은혜 : 없어요. 너무 좋은 거예요. 누나는 좋고, 누나는 행복하게 살고 우리 가족이고 예쁘고 그게 이 아이한테 장애인은 그거였던 거예요. 근데 저한테 장애인은 TV에서 봤던.
◆ 이성규 : 프레임 속에 있어요.
◇ 김은혜 : 그래서 저는 불편했던 거죠. 그래서 내가 이걸 깨야겠다고 생각했고. 저는 아까도 말씀드렸듯 ‘뇌성마비’, ‘우리 온유는 장애인’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리고 저는 비장애인이다. 아직은 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비장애인 아들 둘을 키우고 있다. 이렇게 얘기하는 것에 대해서 이제는 전혀 저도 그 프레임을 깨고 나왔습니다.
◆ 이성규 : YTN 라디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뇌성마비 온유의 엉금엉금 성장기’의 저자, 김은혜 씨와 함께 이야기 나눠보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우리가 노래 하나 듣고 가는 거는 알고 오셨죠? 하나 좀 추천해 주시죠.
◇ 김은혜 : 제가 신청할 곡 신청할 곡은 ‘Me Too’ 예요.
◆ 이성규 : 이게 OST 중에 메간 트레이너가 불렀던 거죠?
◇ 김은혜 : 아시네요. 이 노래는 이제 영화 의 OST인데. 이 영화의 주인공이 이제 원래는 외모에 되게 자신이 없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보니까 자기가 너무너무 예뻐진 거예요. 막 슈퍼모델처럼. 그런데 정작 이 여자한테만 그렇게 보이는 거지 다른 사람들 눈에는 예전에 그냥 통통하고 그녀의 모습 그대로 보이거든요. 그런데 이 여자가 자기 자신이 예뻐졌다고 느낀 후로 이제 자신감이 넘치는 삶을 살게 되는 그런 이야기의 코믹 영화인데요. 근데 제 딸이 장애인으로 휠체어를 타고 있잖아요. 근데 온유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또 행복하다고 느끼는 삶을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결국 이 삶의 태도와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일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저한테는 그냥 코믹 영화가 아니고 이 영화의 내용이 삶의 용기로 다가오는 것 같아서 들어보고 싶습니다.
◆ 이성규 : 김은혜 씨가 추천한 OST 중에 메간 트레이너의 곡 ‘Me Too’ 듣고 오셨습니다. 이성규의 행복한 쉼표, 잠시만요.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뇌성마비 장애 온유와 두 아들 그리고 남편까지 다섯 가족과 함께 유쾌한 일상을 만들고 있는 김은혜 씨 모시고 이야기 나누고 있습니다. 근데요. 이제 또 곧 입동에다가 김장철이 다가오잖아요. 근데 온유와 김은혜 씨에게 이 김치가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 김은혜 : 제가 어린 나이에 결혼을 했고 그리고 1년 뒤에 바로 온유를 낳았는데 온유가 아팠잖아요. 그래서 살림을 좀 즐겁게 하려다가 살림에 손을 댈 수가 없었죠. 그때는 온유 낳고 나서 온유가 장애 판정을 받고 그 이후로는 막 두 달, 한 달 이렇게 병원에서 아예 입원을 했어요. 그래서 아예 집에 들어오지 못했어요. 두 달 동안. 그리고 또 집에 잠깐 왔다가 또 한 달 동안 입원을 하고 이런 생활을 했었고. 또 이제 입원을 안 하더라도 아침 일찍 첫 타임으로 7시 반, 8시 타임 이런 타임에 가서 운동을 시키고 집에 돌아오면 오후 6시. 그런 삶을 계속 살았기 때문에 살림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 온유, 리안이, 시안이 다 학교에 다니고 저도 저만의 시간이 좀 주어지고 살림을 다시 할 수 있는 여건들이나 그런 시간들이 주어져서 ‘내가 살림에 다시 최선을 다하는데 좀 어려운 걸 해보자.’ 이제 주부들 생각하기에 김치가 되게 어렵다고 생각하잖아요. 근데 담가보니까 싶더라고요. 뭐든 손으로 잘 만들어서 그런가. 그래서 김치를 한번 내가 도전을 해보자고 생각했는데 되게 맛있게 잘 된 거예요. 그래서 그때부터 살림에 다시 손을 대면서 좀 안정을 찾았다는 기분. 그런 기분이 드는 음식이라 아이들도 김치 좋아하고요.
◆ 이성규 : 참 재밌게 사시는 것 같아요. SNS를 보면 모델처럼 옷도 입으시는 것 같고. 또 아이들하고 재미난 동영상 올리시는 것도 있고. 또 막내아들하고만 해외여행도 다녀오시오. 원래 이렇게 유쾌하신 분이에요? 아니면 그렇게 노력을 하신 거예요?
◇ 김은혜 : 아니 누가 그러더라고요. “노력하는 거예요?” 이거 있잖아요.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니까 일부러 이렇게 예쁜 삶과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일부러 그렇게 하냐고 했는데. 절대 일부러 할 수 없고요. 저 자신 그대로고. 제가 이런 말도 해요. 저 이거 많이 어두워진 거라고. 원래 더 밝았다고. 근데 이제 아이들과 제가 오랫동안 온유 낳고 우울증과 그런 어두운 터널의 시기가 있었잖아요. 그런 게 좀 아깝고 그 시절이 안타깝고 내 자신이 나를 봤을 때. 그리고 지금은 하루하루가 너무 감사하고 그리고 즐기고 싶고 그리고 정말 진심으로 즐거워요. 물론 순간순간 힘든 마음이나 이런 거는 지금도 늘 있어요. 온유 얘기하면 막 눈물부터 펑펑 나고 아직도 그러긴 하지만 내가 삶 속에서 순간순간에 즐거움을 누리는 삶으로 변한 거는 확실한 것 같아요.
◆ 이성규 : 그런 김은혜 씨를 보고 주변에서 여러 가지 이렇게 반응들을 하실 텐데 그중에 좀 생각나는 말씀이 있으세요?
◇ 김은혜 : 진짜 저는 너무 감동과 감사의 DM을 많이 받거든요. 인스타로. 근데 제가 아까 말씀드렸듯이 장애 아이를 낳으면 그 장애 아이의 인생이 좀 슬프지만 이 아이의 인생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잘 상상이 안 가요. 근데 그때 가장 불쌍한 사람은 엄마예요. 내가 제일 불쌍해요. 어떻게 살아야 되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나 그럼 옷도 어떻게 입어야 되고 나 이제 밝은 옷 입으면 사람들이 질타할까? ‘장애인 엄마면서 저렇게 밝은 옷을 입고 다녀.’ 막 이럴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 때문에 우울해지거든요. 근데 어떤 엄마도 딱 그런 DM을 보내셨더라고요. ‘제가 아이를 낳았는데 장애 아이라더라.’ 그래서 자기도 똑같이 ‘나는 이제 내 장롱에 있는 모든 명품 백을 다 갖다 버려야겠다.’ 이렇게 생각을 했대요. 그런데 어느 날 인스타로 저를 만났는데 ‘어머 이 여자 뭐야. 이렇게 웃고 즐기고 삶을 누리네.’ 그러면서 저한테 DM으로 너무 고맙다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모습 보여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 이성규 : 그러다가 이제 책을 내셨잖아요. ‘뇌성마비 소녀의 엉금엉금 성장기’ 근데 왜 책을 내실 생각을 하셨어요?
◇ 김은혜 : 그때는 온유가 정상인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웃기지만. 온유가 학교에 가면 이 병에 대해서 친구들한테 설명을 해줘야 되는데. 매일 한 명 한 명한테 다 설명하긴 어려우니까 조그만 엽서를 한 장 써서 ‘우리 온유는 이런 병이 있었고 이렇게 해서 좋은 행복한 가정에 사는 아이야’라는 엽서를 써서 이제 온유 친구들한테 나눠줘야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시작했는데. 남편이 ‘책을 써보면 어때? 은혜야.’ 그래서 온유 친구들이나 주변에 나눠줄 생각으로 책을 썼어요. 처음에는. 근데 이게 또 인스타에서 여러분들이 많이 구매를 원하시고 해서 한 번 더 찍었죠.
◆ 이성규 : 네. 이 방송 들으시면 또 대박 나시겠네요.
◇ 김은혜 : 아이들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서. 초등학생 아이들도 같이 볼 수 있게끔 너무 어렵게 글로 꽉 찬 책이 아니에요. 쉽게 후딱 즐겁게 감동적으로 볼 수 있는 책이니까.
◆ 이성규 : 원래 화가시죠? 그림 그리시고.
◇ 김은혜 : 저는 어렸을 적에는 패션을 전공하고 패션 회사에 다녔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이제 온유를 키우면서 온유랑 평생 뭘 하면서 살까 고민하다가. 온유가 이렇게 손에 터치할 수 있는 게 펜을 들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행위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온유랑 평생 나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그때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서 지금은 세 번째 개인전을 지금 열고 있어요.
◆ 이성규 : 지금 진행 중이에요?
◇ 김은혜 : 진행 중에 있어요. 지금 서울 서초구에 있는 갤러리에서 세 번째 ‘Colors of Courage, 용기의 색들’이라는 주제로 지금 전시를 열고 있습니다.
◆ 이성규 : 전시회가 언제 끝나죠?
◇ 김은혜 : 이번 전시회는 10월 26일까지입니다.
◆ 이성규 : 근데 지난번에는 한번 전시회 때 작품이 판매된 수익금을 기부하셨더라고요.
◇ 김은혜 : 네 맞아요. 제가 기부라는 것도 저는 온유를 만나고 나서 기부라는 것을 하게 되었고 알게 되었고 이 세상을 만났는데. 온유가 처음에 아프고 나서 서울대병원에서 수술도 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남편이랑 처음으로 ‘이렇게 아픈 아이들이 많았구나. 이 세상에.’ 그런 것들을 알게 되면서 서울대병원에 기부를 했고요. 그다음에는 저희가 ‘푸르메재단’이라고. 예전에 션 씨가 말씀하셨는데. 어린이 재활병원이 우리나라에 하나도 없었대요.
◆ 이성규 : 루게릭이요?
◇ 김은혜 : 아니요. 그냥 재활병원이요. 어린이만을 위한 재활병원은 없었대요. 그러니까 성인과 같이 하는 재활병원에 있는데 어린이만을 위한 재활병원이 없어서 그거를 기부금으로 세웠거든요. 푸르메재단과 함께. 거기에 저희가 연결이 돼가지고 그때 션 씨랑 같이 이렇게 달리기도 하고 하면서 이제 기부를 했고. 그게 또 인연이 되어가지고 ‘아너 소사이어티’라고 또 기부 재단이 있어요. 그래서 거기에 또 회원으로 활동을 했고. 또 최근에는요. 제가 이렇게 그림을 그려서 그림 기부도 하고 또 전시회에서 판 금액을 기부도 하기도 하지만. 최근에 저희 막내가 친구들하고 같이 1일 카페를 해서 또 그 수익금을 전액 다 온유와 같은 몸이 불편한 장애 아이들을 위해 또 기부하기도 했어요. 솔직히 그 기부가 가장 저한테는 뿌듯하고 기억에 남는 기부이기도 해요.
◆ 이성규 : DNA 상속이네요.
◇ 김은혜 : 너무 감사하죠. 그러면은.
◆ 이성규 : 앞으로 또 해보고 싶은 일 있으시면 소개하시면서 마무리해 주시죠.
◇ 김은혜 : 해보고 싶은 일 너무 많은데요. 그냥 내가 장애 인식 개선에 조금 힘이 된다면 나를 보여주는 것에 더 힘쓰고 싶다는 생각이 요즘은 많이 들어요.
◆ 이성규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 오늘은 ‘뇌성마비 소녀의 엉금엉금 성장기’의 저자 김은혜 씨와 함께 유쾌한 시간 가져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김은혜 : 감사합니다.
◆ 이성규 : <이런 사람 또 없습니다>는 YTN 라디오 홈페이지와 유튜브를 통해서 다시 들으실 수 있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