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에서 반미로"...美-이란 40년 갈등, 이유는?

"친미에서 반미로"...美-이란 40년 갈등, 이유는?

2020.01.09. 오후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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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미국 갈등! 트럼프 대통령이 한발 물러섰지만, 불씨는 여전합니다.

40년 동안 이어진 갈등, 이유와 전망을 역사를 통해서 짚어봅니다.

이란, 원래 중동의 대표적 친미국가였습니다.

1970년대까지는 여성들이 미니스커트를 입기도 했는데 세속주의와 서구화를 통해 왕권 강화를 노린 팔레비 왕조의 정책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 중동에서의 입지 강화와 석유 이권을 노린 미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졌습니다.

총리가 석유 국유화를 추진하고 이에 밀려 국왕이 해외로 망명하자 미 정보기관인 CIA가 복귀를 지원할 정도였죠.

다른 동맹국에는 기술 유출 우려로 팔지 않던 F-14 전투기를 이란에는 팔았습니다.

하지만 1979년 이슬람 혁명이 모든 걸 바꿨습니다.

근대화로 커진 빈부 격차, 토지개혁으로 땅을 빼앗긴 지주와 성직자의 개혁 반대,

서구식 교육을 받은 젊은 층은 왕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반발했고 미국에 대한 반감까지 더해져서 유력 종교지도자 호메이니 중심으로 왕을 몰아냈습니다.

문제는 미국이 망명한 팔레비 왕조 마지막 국왕을 받아주면서 이란 급진파의 분노를 가져왔다는 겁니다.

급진파가 테헤란에 있는 미 대사관을 점거했고, 외교관 등 인질 70여 명이 400일 넘게 억류됐습니다.

협상은 순조롭지 않았습니다.

미국의 이란 석유 수입 금지 조치에 이란도 자국 내 미국 투자 국유화와 같은 강경 자세로 나섰고, 외교 관계도 끊겼습니다.

인질 구출 작전 실패로 미군 특수부대원이 숨지는 등 두 나라는 원수가 됐습니다.

이란의 특이한 정치 시스템은 관계 회복을 가로막는 장치로 작용했습니다.

세속주의와 서구화를 막기 위해 대통령이 아닌 종교지도자가 국가원수인데, 헌법에 종교상 구세주인 '마디'가 재림할 때까지 이란 정치를 시아파 율법 전문가가 대리로 통치한다고 명시했을 정도입니다.

이슬람 율법 전문가 회의에서 최고지도자를 뽑는데, 1대가 호메이니, 2대가 알리 하메네이로 3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삼권 분립이 있고 국민의 투표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습니다.

하지만 개혁적인 후보들은 후보 자격을 얻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6명의 이슬람 율법 전문가와 6명의 법학자로 구성된 헌법수호위원회에서 헌법을 해석하고, 헌법 재판도 하고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후보를 심사해 탈락시키는 권한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군도 특이합니다.

이란군이 있고, 종교지도자 친위대 성격인 혁명수비대가 따로 있습니다.

이번 미군 공격으로 숨진 솔레이마니는 그 혁명수비대에서도 에이스만 모아놓은 특수부대 쿠드스의 총사령관이었습니다.

신정국가를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 사령관을 죽였으니 이란 입장에서 펄쩍 뛸만한 일이죠.

전망은 어떨까요?

일단 과거 전면전이 있었던 이라크와는 분명히 다릅니다.

면적은 남한의 18배, 인구도 8천만이 넘고 사막에 산악까지 지형지물도 방어에 유리해서 미군이 주요 거점을 원격 타격해도 이후 접수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에 이라크는 후세인 반대 세력이 많았고, 미국이 이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란은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의 존재도 껄끄럽습니다.

보통 적의 적은 친구라고 하죠.

중국은 이란으로부터 대량의 석유를 수입하고, 대신 이란은 중국이 자국 서부부터 유럽까지 잇는 일대일로 사업의 핵심 파트너로 서로 이해관계도 들어맞습니다.

또 이란이 이슬람 시아파 국가의 큰형님 격이라 시아파 무장세력의 지지를 받는다는 걸 볼 때 전면전 시 상당히 복잡한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나옵니다.

박광렬 [parkkr0824@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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