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 비판에도 상업적 고래잡이 포기 못하는 일본 [쥐니어스]

국제사회 비판에도 상업적 고래잡이 포기 못하는 일본 [쥐니어스]

2023.02.20. 오후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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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 고래고기, 고래 회,
고래고기 통조림, 고래 스테이크에 튀김까지...
얼마 전 일본에 등장한 자판기에서 파는 메뉴들이에요.
아니 잠깐...고래고기를 자판기에서 판다고?

[일본에 등장한 고래고기 자판기]

일본 요코하마 한 무인 매장에 설치된 고래고기 자판기.
‘고래 스토어’란 이름이 붙었고요.
가격은 우리 돈으로 1만 원에서 3만 원 수준.

일명 고래고기 자판기는
일본 고래잡이 회사 ‘교도센바쿠’에서
고래고기 소비를 늘리기 위해 내놓았어요.
장사가 잘되면 앞으로 5년 동안
매장을 100개까지 늘린다고 하는데요.

이 회사 대표, 고래고기 자판기를 선보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히데키 도코로 / 교도센바쿠 사장]
"마트에서는 고래 사냥에 반대 단체들의 압박 때문에 고래고기를 팔 수 없지만
고래고기를 먹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무인 매장에서 자판기를 운영합니다”

현지 언론에서도 이 고래고기 자판기에 대해
전통적인 포경 산업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평했죠.
자판기에서 파는 고래고기 대부분이
일본 현지에서 잡힌 것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국제 사회 반응은 냉담했는데요.
동물보호단체들은
“쇠퇴하는 일본 포경 업계의 마지막 발악”이라고 비판했어요.
고래잡이 산업이 어려워지니 자판기까지 내놓고 수익을 올리려 한다는 거죠.

[카트린 매트 / ‘고래·돌고래 보호’ 일본 정책 책임자]
"고래고기를 좀 더 대중적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이 더 잘 알도록 하고.
사람들에게 고래고기가 일본 정체성 중 일부라고 말하면서
수요를 더 증가시키려는 거죠"

[‘멸종위기’ 고래를 돈벌이 수단으로]

일본 고래잡이가 왜 문제가 되냐면요.

먼저 일본의 상업적 고래사냥, 그러니까 포경은
수류탄이 장착된 작살을 고래에게 쏘는 잔혹한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작살이 고래 몸속을 파고 들어가면 그 안에서 수류탄이 터지는 거예요.
그 결과 고래 피부는 찢어지고 어마어마한 양의 피가 흘러나오죠.

일본 돌고래 학살을 그린
다큐멘터리 영화 ‘더 코브 : 슬픈 돌고래의 진실’의 한 장면인데요.
일본 포경의 상징 다이지 마을의 바다 모습입니다.
무자비한 돌고래 학살로 바다가 빨간 핏빛으로 물들어버렸죠.

잔혹한 고래사냥 방법뿐 아니라 ‘멸종위기’인 고래 개체 수 급감도 문제.

잠깐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면요.
이때는 일본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포경 산업이 성장했던 시기예요.
당시 미국에서도 가장 큰 사업 중 하나가 포경 산업일 정도였거든요.

화석 연료가 개발되기 전엔 고래 기름을 기계 윤활유로 썼고요.
고래 뼈나 수염으론 코르셋 같은 상품을 만들기도 했어요.

이렇게 고래에서 고기 말고도 부산물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여러 나라가 상업적 포경에 뛰어들었죠.
그 결과 20세기 중반부터는 전 세계 고래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어요.

현존하는 고래 개체 수, 약 130만 마리 정도로 추정되는데요.
상업적 포경 이전 400~500만 마리에 비하면 4분의 1 수준.

게다가 국제 멸종위기종을 지정하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현존하는 고래류 93종 중 34종이 멸종위기에 처했어요.
밍크고래, 보리고래, 대왕고래 등이죠.

얼마 전 한 국내 유튜버가
바로 이 국제 멸종위기종인
밍크고래 먹방을 선보였다가 비난받기도 했죠?

[조약골/핫핑크돌핀스 대표]
"(일본이 상업적으로 잡는 대형 고래는) 밍크고래, 보리고래, 브라이드고래 세 종류입니다.
특히 보리고래, 브라이드고래 이 두 종류는 엄격하게 국제적으로 잡아서는 안 된다고 지정한
국제 보호종입니다. 현재 매년 약 300마리 정도의 대형 고래를 일본 영해에서 잡아들이고 있습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되냐면 한반도 해역을 넘나드는 대형 고래들까지
일본 상업 포경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에..."

고래 개체 수 감소가 계속되면서
국제포경위원회 IWC는
1986년부터 전 세계에서 판매 목적의 상업 포경을 금지했어요.

하지만 일본 정부는 국제 사회의 따가운 시선에도
‘과학 연구’를 명분으로 포경을 계속했어요.
동시에 상업 포경을 다시 하려고 국제 사회에 끈질기게 로비도 벌였습니다.
포경과 전혀 관계없는
아프리카나 중앙아시아 내륙국가에도 지지를 요구했죠.
하지만 IWC의 상업 포경 금지 입장은 바뀌지 않았어요.

결국 일본은 2019년 이 단체에서 탈퇴하고
상업적 포경을 다시 시작했어요.
연간 380마리 정도만 잡겠다면서요.

일본의 상업적 고래사냥이 다시 시작된 날
일본 포경 산업의 중심 홋카이도 구시로 항.
밍크고래 두 마리가 잡혀 들어왔어요.
선원들은 수확의 기쁨을 표현하면서
고래에 일본 전통주를 붓는 의식까지 치렀고요.
그 뒤엔 고래 해체 과정을 선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고래요. 생태계에서 꽤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고래 한 마리는 연간 33톤, 그러니까 나무 1,500그루와 비슷한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걸로 추정돼요.
그래서 기후 위기 시대의 살아있는 탄소 흡수원 역할을 하죠.
게다가 고래는 바닷속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
고래 개체 수가 줄고 해양 생태계 먹이 사슬이 무너지면
수산 자원이 고갈돼 결국 피해는 인간에게도 돌아옵니다.

[조약골/핫핑크돌핀스 대표]
"많은 과학자들이 고래들을 보호하는 것이야 말로
지구 온난화 그리고 해수 온도의 급격한 상승을 막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하거든요.
대형 고래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배설에 의한 영양분을 바다에 공급함으로써
식물성 플랑크톤이 엄청나게 번성하게 하는 작용, 해양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작용을 대형 고래들이 했는데..."

[일본 고래고기 업계 상황]

그러면 일본 포경 업계 상황이 좋냐? 그렇진 않습니다.
일본 고래 소비량은 1960년대 초반에 최고조였다가 꾸준히 감소.
60년대엔 일본 학교 급식 단골 메뉴일 정도로
고래고기가 흔했는데 요즘엔 닭고기나 소고기 같은 대체 식품도 많죠.

일본 정부 자료에 따르면
고래고기 소비가 정점이었던 1962년엔
일본 내 소비량이 연간 23만 3,000톤이었습니다.
하지만 2021년 고래고기 소비량은 1,000톤에 그쳤어요.
60년대와 비교하면 고래고기 소비량이 99.5%나 줄어든 셈.

[우라라 이나모토(28) / 일본 시민]
"흥미가 있긴 하지만 굳이 (고래고기를 사러) 오진 않을 거 같아요.
평소엔 닭고기를 먹죠"

그러니까 이제 일본 내에서도 고래고기 수요가 줄어서
정부 지원 없이는 포경 산업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
2021년 일본 정부가 포경 업계에 지출한 보조금은 51억 엔.
우리 돈으로 480억 원이나 되죠.

그런데도 일본 정부와 포경 업계는 고래사냥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여요.
2년 전엔 고래고기를 많이 먹자면서
학교 급식에서 고래고기를 더 활용하는 방안을 담은
고래고기 이용 촉진법까지 통과시켰어요.

[일본이 상업적 고래잡이에 집착하는 이유]

일본은 왜 이렇게까지 상업적 고래잡이를 계속하는 걸까요?

가장 먼저 고래고기를 먹는 ‘전통’이 이유로 꼽힙니다.
일본 일부 어촌의 상업 포경 역사는 400년이 넘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아무리 수요가 줄었다 해도
고래고기를 먹는 게 전통문화라는 논리.

[요시카와 다카모리 / 전 일본 농림수산상]
"상업 포경이 필요한 이유는 일본에 고래 음식문화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포경 업계 종사자들의 경제적인 이해관계도
고래잡이를 놓을 수 없는 이유겠죠.
한 마디로 돈벌이 수단을 쉽게 놓기 어렵다는 거예요.

일본이 상업 포경을 다시 시작한 데는
정치적인 목적이 있었다는 분석도 있는데요.
일본 고래잡이 중심지 중 하나인 시모노세키 등은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의 텃밭이기도 하거든요.
특히 일본 아베 전 총리가 4연임을 위한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지역구인 시모노세키의 중심 산업, 상업 포경을 다시 허용했죠.

[조약골/핫핑크돌핀스 대표]
"일본 보수 정치인 입장에서는 세력의 근거지로 하고 있는
포경 항구에서 포경이 계속 이뤄져야 경제가 돌아가기 때문에
정권 유지, 그리고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인 거죠"

[상업적 고래잡이를 하는 나라들]

일본만 상업적 고래잡이를 하는 건 아니에요.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가 일본과 함께
세계 3대 상업적 포경 국가로 꼽히거든요.
그런데 동물단체들의 압박에도
상업적 포경을 계속하던 아이슬란드,
2024년부터 고래잡이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어요.

고래고기 수요가 감소하고 수출이 부진해졌기 때문이었죠.
실제로 지난해 아이슬란드 수산부 장관은
”포경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 증거는 희박하다“라고 밝혔어요.

상업적 고래사냥을 중단하는 것도
역시 경제 논리 때문이지만
어쨌든 전 세계적으로 상업 포경을 줄이자는 추세죠.

잠깐, 우리나라는 어떻냐고요?
우리나라는 상업적 포경이 금지돼있어요.
하지만 여전히 죽은 고래들이 그물에 걸려 잡히면 유통, 판매가 가능해요.
게다가 아직도 돈벌이를 위해
고래를 불법 포획하는 사람들도 있죠.
고래 한 마리당 국내 평균 가격이 1억 원에 달하기 때문.
해경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우리 해역에서 불법을 잡힌 고래만 총 54마리.
상업적 포경을 금지한다고 고래사냥이 완전히 끝나는 건 아니에요.


매년 2월 셋째 주 일요일은
세계 고래의 날입니다. 올해는 오는 2월 19일이죠.
세계 고래의 날, 기후 변화와 환경 오염
그리고 무분별한 포경 활동으로 위기에 처한
고래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어요.

고래의 날을 앞두고
고래고기 자판기를 내놓고 홍보에 열을 올리는 일,
돈벌이만을 좇는 인간의 욕심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닐까요?

기획:임장혁
CP:정원호
구성:문지영
제작:김태욱 유예진 함초롱
디자인:강소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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