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흔든 체조 선수 성폭력 '합의금 1,900억...전체 소송 금액 1조'

美 흔든 체조 선수 성폭력 '합의금 1,900억...전체 소송 금액 1조'

2024.04.24. 오후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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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흔든 체조 선수 성폭력 '합의금 1,900억...전체 소송 금액 1조'
2021년 9월 FBI 관련 미 의회 청문회에 참석한 체조선수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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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체조팀 주치의 래리 나사르(60)의 성범죄에 늑장 대응한 미 법무부가 피해자에 총 1억 달러(우리나라 돈으로 1,900억 원)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23일(현지시각) 미국 뉴욕타임스 CNN 방송 등 미언론은 일제히 래리 나사르의 성폭력 사건에서 늑장 수사를 한 연방수사국(FBI)이 피해자들에게 합의금으로 1억 3,870만 달러(우리나라 돈으로 1,909억 원)를 합의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1986년부터 체조 대표팀 주치의로 일했던 나사르는 수십 년에 걸쳐 여성 선수들에게 치료를 빙자해 상습 성범죄를 저질렀다. 30년 동안 265명을 성적으로 학대해 온 래리 나사르는 2018년 유죄 판결을 받고 17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나사르의 성폭력 사건을 수사한 FBI도 책임을 면하지 못 했다. 나사르의 범죄는 2015년에 이미 신고가 들어온 상태였으나 나사르가 법정에 서기까지 약 3년여의 세월이 흘렀다. FBI는 2015년 7월 신고를 받고 일부 피해자를 상대로 인터뷰까지 했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수사가 진척되지 않았다.

2021년 9월 열린 미연방 상원 청문회에서 마로니는 "성범죄 피해 사실을 FBI 요원에게 진술하는 과정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FBI가 진술을 무시한 것이 더 큰 고통이었다"고 증언했다. 마로니는 수사 초기인 2015년 이미 FBI에 피해 진술을 했지만, FBI 요원은 2017년까지도 진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나사르 사건은 수사 기관이 늑장 대응을 하는 사이 언론에서 먼저 다뤘다. 전직 체조 선수였던 레이철 덴홀랜더 변호사가 2016년 9월 일간지 '인디애나폴리스 스타'에 관련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히면서 급물살을 탄 것이다.

래리 나사르의 성폭력 생존자(그들은 피해자가 아닌 생존자로 불리길 원했다) 목록엔 간판스타 시몬 바일스, 알리 레이먼스, 매카일라 마로니와 매기 니콜스 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선수들이 포함됐다.

이들 선수는 FBI에 2022년 각각 5,000만 달러(우리나라 돈으로 약 628억 원)의 배상을 요구했다. 나머지 참여자들도 1,000만 달러(약 125억 원)의 배상금을 요구했다.

CNN에 따르면, 법무부는 FBI 인디애나폴리스 사무소의 고위 관리들이 나사르의 주장에 대응하지 않았고, 대응할 때 수많은 근본적인 실수를 저질렀으며, 조사 활동을 수행할 때 여러 FBI 정책을 위반했다는 감찰 보고서의 내용을 인정했다.

피해자 44명을 대리한 믹 그루얼 변호사는 나사르 관련 소송의 전체 합의금이 10억 달러(약 1조 3,760억 원)에 달한다는 것은 "충격적인 비극이 일어났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강조했다. 천문학적인 소송 액수가 아니라 그만큼 끔찍했던 피해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스포츠계의 전무후무한 사건'이자 '미투' 열풍을 불렀던 나사르의 성폭력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우리는 영원히 어리지 않다'에 자세히 소개됐다.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했던 피해자 카일 스티븐스가 나사르를 바라보며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 내려 돌아온다"고 한 말은 그대로 다큐멘터리의 제목이 됐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YTN

2018년은 우리나라도 '미투의 해'였다. 조재범 전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팀 코치의 성폭력 의혹으로 촉발된 체육계 성폭력 해결을 위해 2019년 2월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 '스포츠특별인권조사단(스포츠특조단)'이 꾸려졌다. 2020년엔 '스포츠윤리센터'가 출범해 스포츠 분야 인권침해 및 비리 신고 사건을 저부하고 처리 후 해당 체육단체에 징계 요구를 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2019년 출범했던 스포츠특조단은 지난해 3월 말 조직을 해산했다. 행정안전부가 스포츠특조단의 파견 기간 연장을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25일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행안부는 "원래 한시적으로 운영하기로 한 조직이었고, 업무가 어느 정도 마무리됐다. 필요하면 인권위가 정규 업무로 하면 된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한겨레신문에 "각 부처가 한 곳에 모여 정책·조사·교육을 할 수 있는 특조단이 체육계 인권을 다루는 올바른 방식이었다고 봤는데 지금 정부에선 이를 상시 조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결국 특조단은 지난해 3월 16일 기계체조 선수의 훈련 체계 개선 등에 대한 의견표명 결정을 마지막으로 공식 해산했다.

2020년 출범한 '스포츠윤리센터'는 2023년 10월 기준 출범 이후 징계를 요청한 사건 중 절반 이상이 처분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권익위 경제제도개선과 김동현 사무관은 YTN 라디오에 "지난 3년간 징계 요구건 224건 중 체육단체의 징계 결과 통보 건은 99건이었고 이 중 9건은 결과 통보까지 1~2년이나 걸리도록 상당히 늦게 통보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2021년 요구건 중 6건, 2022년 요구건 중 26건은 징계 요구에 대한 처리결과를 통보하지도 않았다"고 지적했다.

절반에 미치지도 못하는 징계 원인으로는 '강제력 부족'이 원인이다. 기한이 정해지지 않으니 재조사 명목으로 처리를 미루거나, 징계 요청을 따르지 않아도 법적 처벌이 없다 보니 효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 중 징계 요구 결과는 3개월 이내에 통보하도록 하는 법률이 개정돼 오는 8월부터 시행하게 되었으나 여전히 단체에서 징계 요청을 따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을 받는 조항은 없다.

중앙대 체육과학대 김상범 교수는 미국 체조 선수들의 소송에 대해 "미국과 우리나라는 개인의 권리나 권한이 침해당했을 때 배상해 주는 액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면서 "단지 스포츠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이러한 판결을 내는 배경에는 (이러한 행위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한몫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디지털뉴스팀 최가영 기자

YTN 최가영 (weeping0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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