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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은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는 삼일절입니다.
미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독립운동가 김규식 박사의 손자인 김철영 씨가 사회와 이웃을 위해 헌신하며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가고 있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습니다.
안미향 리포터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붉은 단청과 푸른 기와가 어우러진 한국 전통 목조 양식의 정자,
한국 고궁의 풍경인 것 같지만 미국 텍사스 샌안토니오에 자리한 '광주의 정자'입니다.
이 정자가 미국 땅에 자리하도록 큰 역할을 한 사람, 바로 독립운동가 김규식 박사의 후손 김철영 씨입니다.
[김철영 / 김규 식 박사의 손자, 건축가 : 하루는 전화가 왔어요. 광주에서 와서 (정자를 지으려 하는 데 좀 도와줄 수 있겠느냐…. 자기네 좀 도와달라고 광주 사람들하고 이제 통화를 하는데 번역할 사람도 있어야 하고… 제가 그거를 좀 할 수 있게 제대로 할 수 있게 양쪽을 설득해서 정자를 짓게 됐어요.]
[하상언 / 샌안토니오 전 한인회장 : 광주광역시가 샌안토니오 시하고 자매 도시인데 그 중간에서 (김철영 씨가) 다리 역할을 아주 대단히 크게 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부주석으로 잘 알려진 김규식 박사.
조국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인물이지만 손자인 김철영 씨에게는 그저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였습니다.
[김철영 / 김규식 박사의 손자, 건축가 : 저는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했어요. 해방되고 할아버지가 중국에서 이제 한국으로 오셨고 (그때) 저희 아버지가 같이 오셨죠. (그 후) 할아버지는 한국 전쟁 그때 이제 납북되시면서 돌아가셨고… 저희는 할머니랑 꽤 오래 살았죠.]
한국 전쟁 이후 어지러운 정세 속에 미국으로 이주해야 했던 어린 시절.
그 과정에서 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2년 전, 아내와 함께 방문한 한국의 독립기념관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마주하게 됐습니다.
[김철영 / 김규식 박사의 손자, 건축가 : 2년 전에 제 아내랑 한국에 나가서 이제 독립기념관을 갔었죠. 거기 가서 이제 보고 그때 야 좀 느꼈어요. 어떻게 중요한 분인가.]
[강경희 / 아내 : '우리 제일 사랑하는 맏손자' 하면서 할머니가 (남편을) 굉장히 사랑했는데
코너를 돌았는데 할머니 사진이 크게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제 마음이 굉장히 뭉클했어요.]
그날 이후, 철영 씨의 삶에 대한 가치관은 완전히 바뀌게 됐습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사회에 헌신하는 일, 바로 건축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건축 회사에서는 이례적으로 사회복지사를 직원으로 채용해 저소득층과 노숙자를 위한 공공주택 등 복지 관련 시민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제임스 앤드류스 / 직원 : 위대한 업적을 남긴 할아버지를 둔다는 것은 엄청난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기 기술과 열정을 통해 본받고자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김철영 씨가 바로 그런 방식으로 할아버지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운동가 김규식 박사의 후손으로서 또, 건축가로서 사회를 변화시킬 방법을 고민한다는 김철영 씨.
삼일절을 맞아 선조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할아버지의 고귀한 뜻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미국 샌안토니오에서 YTN 월드 안미향입니다.
YTN 안미향 (khj8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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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독립운동가의 희생과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는 삼일절입니다.
미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독립운동가 김규식 박사의 손자인 김철영 씨가 사회와 이웃을 위해 헌신하며 할아버지의 뜻을 이어가고 있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습니다.
안미향 리포터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붉은 단청과 푸른 기와가 어우러진 한국 전통 목조 양식의 정자,
한국 고궁의 풍경인 것 같지만 미국 텍사스 샌안토니오에 자리한 '광주의 정자'입니다.
이 정자가 미국 땅에 자리하도록 큰 역할을 한 사람, 바로 독립운동가 김규식 박사의 후손 김철영 씨입니다.
[김철영 / 김규 식 박사의 손자, 건축가 : 하루는 전화가 왔어요. 광주에서 와서 (정자를 지으려 하는 데 좀 도와줄 수 있겠느냐…. 자기네 좀 도와달라고 광주 사람들하고 이제 통화를 하는데 번역할 사람도 있어야 하고… 제가 그거를 좀 할 수 있게 제대로 할 수 있게 양쪽을 설득해서 정자를 짓게 됐어요.]
[하상언 / 샌안토니오 전 한인회장 : 광주광역시가 샌안토니오 시하고 자매 도시인데 그 중간에서 (김철영 씨가) 다리 역할을 아주 대단히 크게 하고 있습니다.]
독립운동가이자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부주석으로 잘 알려진 김규식 박사.
조국 독립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인물이지만 손자인 김철영 씨에게는 그저 멀게만 느껴지는 존재였습니다.
[김철영 / 김규식 박사의 손자, 건축가 : 저는 한 번도 만나 뵙지 못했어요. 해방되고 할아버지가 중국에서 이제 한국으로 오셨고 (그때) 저희 아버지가 같이 오셨죠. (그 후) 할아버지는 한국 전쟁 그때 이제 납북되시면서 돌아가셨고… 저희는 할머니랑 꽤 오래 살았죠.]
한국 전쟁 이후 어지러운 정세 속에 미국으로 이주해야 했던 어린 시절.
그 과정에서 독립운동가였던 할아버지의 존재는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 2년 전, 아내와 함께 방문한 한국의 독립기념관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마주하게 됐습니다.
[김철영 / 김규식 박사의 손자, 건축가 : 2년 전에 제 아내랑 한국에 나가서 이제 독립기념관을 갔었죠. 거기 가서 이제 보고 그때 야 좀 느꼈어요. 어떻게 중요한 분인가.]
[강경희 / 아내 : '우리 제일 사랑하는 맏손자' 하면서 할머니가 (남편을) 굉장히 사랑했는데
코너를 돌았는데 할머니 사진이 크게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제 마음이 굉장히 뭉클했어요.]
그날 이후, 철영 씨의 삶에 대한 가치관은 완전히 바뀌게 됐습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으로 사회에 헌신하는 일, 바로 건축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건축 회사에서는 이례적으로 사회복지사를 직원으로 채용해 저소득층과 노숙자를 위한 공공주택 등 복지 관련 시민 사업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제임스 앤드류스 / 직원 : 위대한 업적을 남긴 할아버지를 둔다는 것은 엄청난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자기 기술과 열정을 통해 본받고자 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김철영 씨가 바로 그런 방식으로 할아버지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립운동가 김규식 박사의 후손으로서 또, 건축가로서 사회를 변화시킬 방법을 고민한다는 김철영 씨.
삼일절을 맞아 선조의 정신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할아버지의 고귀한 뜻을 가슴에 새겨봅니다.
미국 샌안토니오에서 YTN 월드 안미향입니다.
YTN 안미향 (khj8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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