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DEI 폐기에 나바호족 암호병·재키 로빈슨 활약 삭제됐다 복구

미 국방부가 2차 세계대전에서 큰 공을 세운 원주민 나바호족 암호병과 참전용사인 메이저리그 전설 재키 로빈슨의 자료를 삭제했다가 복구했다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정책 폐기의 후속 조치로 삭제했다가 나바호 부족 지도자와 역사학자들이 강하게 반발하자 사흘 만에 번복했습니다.

앞서 지난주 초 미 국방부는 2차 대전 중 일본 이오지마와 태평양 전역에서 미군의 승리에 큰 공을 세운 나바호족 출신 암호 통신병을 다룬 웹페이지를 삭제해 논란이 됐습니다.

숀 파넬 미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20일 성명을 통해 DEI 관련 자료를 검토하고 삭제하는 과정에서 일부 실수가 발생했다면서 인공지능(AI) 도구와 소프트웨어의 한계로 인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400여 명의 나바호족 암호병 중 한 명인 피터 맥도날드는 "나바호 암호는 전쟁을 위한 의사소통 무기였다"며 "DEI와 전혀 관련이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우리가 한 일은 사람들이 알고 배울 수 있도록 존재해야 한다"며 "이는 DEI가 아니라 역사를 가르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이어 웹페이지 복구에 안도감을 표시하며 "몇몇 고위 국방부 인사들이 군의 역사를 이해하고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습니다.

나바호족 암호병 중 현재까지 살아있는 사람은 올해 96살인 맥도날드를 포함해 2명뿐입니다.

20년간 나바호족 암호병을 연구해 온 폴 로지어 미 빌라노바대 역사학 교수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싸운 암호병들의 명예를 부정한다는 사실은 역겨운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애리조나 북부 거주 나바호족 출신의 암호병들은 고유한 언어로 개발한 복잡한 암호 체계로 통신을 담당하면서 태평양 전쟁에서 미군이 승리를 거두는데 핵심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미국 정부는 2001년 7월 29명의 생존 암호병 출신 나바호 원주민들에게 최고 명예 훈장을 수여했고, 이들의 이야기는 영화 '윈드 토커'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트럼프 대통령도 1기 행정부 첫해인 2017년 암호병 3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해 "여러분이 한 일, 여러분의 방식, 용기, 나라에 대한 사랑에 감사드린다"며 공로를 치하했습니다.

워싱턴 포스트는 1947년 메이저리그에서 인종 장벽을 허문 첫 흑인 야구 선수이자 참전용사인 재키 로빈슨 관련 자료도 미 국방부 홈페이지에서 사라졌다가 지난 19일 복구됐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이오지마 전투에 참전한 전쟁 영웅인 피마 인디언 부족 출신 아이라 헤이스 등 일부 인물들의 자료는 복구되지 않았다고 보도했습니다.

1993년 첫 여성 전투기 조종사가 된 지니 레빗 등 미군에서 최초의 기록을 쓴 여성들의 자료도 삭제된 상태라고 AP 통신은 전했습니다.

트럼프는 지난 1월 취임 후 정부 정책 등에 있어 성별·인종·민족의 다양성을 배려할 것을 권고하는 전임 정부의 DEI 정책을 종료하라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이에 미 국방부는 지난달 DEI 증진과 관련한 기사와 미디어는 모두 삭제하라고 지시했습니다.




YTN 이승윤 (risungyoon@yt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