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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헌법은 이렇게 시작한다. 헌법 제9조는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전 국토에 역사의 숨결이 숨 쉬는 우리나라에서 무분별한 문화재 훼손을 막는 것은 헌법이 명시한 국가의 책무이다.
지난 1달여 동안 이어진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의 연속 보도는 국가와 사회가 이 같은 책무에 대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지속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과정이었다.
국내의 매장 문화재 훼손 실태는 총체적인 문제이다. 위 그림은 매장문화재 행정의 난맥상을 이루는 세 가지 축을 보여준다. 문화재 훼손 가능성이 있는데도 3만 ㎡ 미만 공사는 소홀히 하는 현 제도의 문제점(8월 31일 보도 '소리 없는 난개발'…매장문화재 SOS 지도 )은, 전문성까지 떨어지는 문화재 담당 공무원들의 실태(9월 25일 보도 : 담당 공무원 61% 일반행정직…교체도 잦아)과 맞물려 난개발을 더욱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문화재 공간정보가 줄줄이 빠진 문화재 지도(9월 26일 보도 :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이상한 문화재청 지도)는 훼손의 악순환을 더욱 깊게 한다.
=문화재 훼손을 용인하는 제도=
매장문화재법은 문화재 조사는 민간조사기관이 맡고, 거의 대부분 비용은 민간 사업자가 대도록 하고 있다. 그나마 지표 조사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이다. 발굴에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한지 대지면적 1,000㎡(302.5평)의 소규모 사업을 기준으로 따져보았다. 문화재청 고객지원센터가 공개한 '문화재 조사 대가 계산 프로그램'으로 산정해보면, 시굴 조사 비용은 천4백만 원~2천여 만원, 정밀 발굴 조사 비용은 1억 3천여만 원에서 10억여 원까지의 범위로 나타났다. 생활유적일 경우 발굴 조사 기간이 19일에서 49일 정도여서 조사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지만, 성곽 유적은 최대 214일까지로 조사 기간이 늘어나며 비용도 치솟았다. 3,000㎡(907.5평) 사업은 발굴 비용만 최소한 2억 7천여만 원 (생활 유적인데 조사하기도 쉬운 경우)에서 20여억 원(성곽 유적인데 조사 여건도 어려운 경우)까지의 범위에서 산정되었다.조사 예상 기간도 37일에서 411일까지 다양했다. 요약하면 중소규모 건축공사라도, 발굴이 시작되면 1달에서 1년 이상에 걸쳐 공사가 지연되고, 비용도 최소한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이 들 수 있다. 현행 매장문화재법은 소규모 공사 대부분에 대해 문화재 지표 조사를 면제해 주는 대신 공사 현장에서 유물 유적을 발견하면 사업자나 땅 주인이 스스로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양심에 맡기는 것이다. 기자가 접촉한 지자체 문화재 담당 공무원들은 매우 드물지만, 수개월에 1번꼴로 자발적인 신고가 들어오며,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재도 별로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문화재를 발견하고도 모른 체하고 넘어간다면? 법규상으로는 벌칙 조항이 있다. 만약 공사 현장에서 발견한 유물이나 유적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숨기거나 훼손하면, 3년 징역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매장 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7장 31조 6항). 처벌 현황은 어떨까? 최근 7년여 동안 매장문화재를 훼손해 고발된 경우는 전국에서 50건에 그쳤다. 재판이 종료된 42건 중 19건은 300만 원 미만 벌금형, 15건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유일한 실형 1건도 집행유예에 그쳤다. 솜방망이 처벌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매장문화재를 발견해 신고할 경우 그 가치를 산정해 국가가 보상금이나 포상금을 주도록 하고 있지만, 공사 중단과 추가 발굴조사에 따른 비용에는 크게 못 미치는 편이다. 문화재 신고를 했다가, 최소한 수억 원 이상의 발굴 조사 비용과 공사 지연으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사업자 입장에서, 경제적인 실익만을 따진다면, 공사를 강행하는 것이 이익인 셈이다. 양심적인 신고에 대한 보상은 미흡하고, 문화재 훼손 행위에 대한 처벌은 유명무실하다면, 문화재 보존을 요행에 맡기는 시스템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더 나아가 어렵게 유적 유구를 발굴한 이후의 관리 실태를 보면, 발굴 조사가 다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든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이 현장 취재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조사해 9월 8일에 보도한 리포트 ('유적 발굴해놓고 나 몰라라…55% 부실 관리')는 당국이 보존 조치 결정을 내렸던 유적 중 절반 이상이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보존조치 유적이란, 발굴한 뒤, 국가나 지방의 지정 문화재로 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그 가치를 인정해 보존하도록 한 문화재이다. 전국 596곳 중, 55%인 326곳의 관리 상태에 문제가 있었다. 249건은 작년 한 해 지자체가 유적을 관리 점검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 현행법에는 보존조치 유적을 누가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 상세한 규정도 없다. 원칙적으로는 토지 소유자에게 관리 책임이 있다는 설명인데, 국가는 해당 토지를 매입할 예산도 의지도 정책 조율 능력도 없다. 제도 미비에, 정보 관리 부실에, 정책 수행 역량도 실종된 보존조치 유적 문제는 문화재 행정의 무기력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국고고학회 회원 300인의 의견은?
그렇다면 매장문화재 보존 문제의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가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최근 한국고고학회와 공동으로 현행 매장문화재 보호 제도의 대안 마련을 위한 설문 조사를 했다. (조사 방법은 기사 하단에 명시) 고고학 분야 종사 경력 5년 이상인 947명의 고고학회 정회원 중 311명이 응답했다. 대학이나 연구원, 발굴기관의 전문가와 공무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응답자 거의 모두는 YTN이 중점 보도했던 3만 ㎡ 미만의 소형 공사로 매장문화재가 훼손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 동의했다. '가능성이 매우 높다'가 75.2%, '가능성이 높다'가 21.9%로 약 97%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답변이었다.
제도 개선 방안으로는, 고고학적 거점 지역을 세부적으로 선별해 해당 지역에서는 전면적으로 매장문화재 지표 조사를 실시하도록 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주목할만한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되었거나, 여러 시대의 유적 유물이 동시에 출현하거나, 지방 행정의 중심으로서 매장 문화재 밀도가 높은 곳, 또는 고고학적 연구 자료로 특별히 가치가 크다고 판단되는 유적 유물이 발견된 곳 등을 종합적으로 포괄하는 개념일 것이다. 수만 개에 달하는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을 일률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에서 한 발 더 나가 우선 관리할 곳을 정밀히 조사해 중점 보호하자는 것이다.
3만 ㎡ 면적 규정을 하향 조정해 기준을 강화하자는 의견도 그다음으로 많았다. 만 ㎡나 5천㎡ 등 3만 ㎡보다 더 작은 면적으로 기준을 변경해 문화재 지표 조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다만, 이 같은 기준 조정도 필요하지만, 그 자체 하나만으로는 완전한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취재진은 1999년 이후 지난해까지의 건축 사업 중에서 사업 면적을 쪼개서 교묘하게 3만 ㎡ 기준을 회피한 게 아닌지 의심되는 공사 214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령 3만 ㎡를 넘어가는 공사를 2개 이상으로 쪼개서 17,000㎡ 정도로 만들어 신청하는 식이다. 취재진이 살펴본 사례는 건축인허가 날짜가 거의 같고, 주소와 사업명이 같은 경우를 중심으로 골라낸 것이여서, 사업명과 건축인허가 날짜 등이 다르게 인허가를 신청한 공사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 문화재 담당 공무원들은 문화재 조사를 피하려는 꼼수를 뻔히 알지만 현행법으로는 막을 도리가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아래 그래프에서도, 면적 2만9천 ㎡ 대 사업과 3만 ㎡대 사업의 개수를 비교하면, 유달리 3만 ㎡ 대의 건축사업의 숫자가 뚝 떨어지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편법이 횡행하는 현실에서는 면적 기준을 내려도 고고학적 거점 지역을 별도로 관리하는 종합적인 처방이 필수적이다
.
설문조사는 고고학 전문가들에게 문화재 보호를 방해하는 환경적 요소가 무엇인지도 물었다. 응답자의 92%는 '개발 논리에 밀려 문화재 조사를 불필요한 부담으로만 여기는 인식'을 꼽았다.
또한, 문화재 행정 당국의 문제로는 '문화재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과 잦은 교체'(57.9%)를 가장 많이 꼽았다. 또한 '문화재 보호에 대한 지자체의 의지 결여'(50.5%)와 '문화재청 역량과 정책 의지 결여'(50.2%)를 꼽은 사람도 비슷하게 많았다. 제도적인 개선도 필요하지만, 구태의연한 문화재 당국의 인식이 함께 바뀌지 않으면 근본적인 개혁이 어려울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깔고 있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문화재 발굴제도의 공영화 방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응답자들은 '시굴 또는 발굴 조사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거나(58.8%), '조사 기관의 법인 형태를 공기관으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 (57.2%) 는 등의 의견을 나타냈다.
주관식 답변 중에는 "문화재 발굴 조사의 입찰제로 인해 저가 조사가 많아지며 조사의 질 또한 떨어진다." "발굴기관이 난립해 저가 경쟁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서 자유 경쟁 체제와 시장 논리에 문화재를 포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다수가 제시했다.
"주민과 개발사업자에게 떠넘겨진 책임을 국가가 일정 부분 감당할 필요가 있다"라거나, "매장문화재 발굴 전문기관 법인 인가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사설 법인이 아닌 지자체 산하 법인화 또는 발굴기관의 공영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비슷한 의견들을 복수의 고고학 전문가가 제시했다.
아울러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개발 논리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문화재청의 지위를 격상해야 한다." "문화재청이 문화재 조사 관리 감독의 역할을 더욱 충실하게 진행해야 한다." "일반인과 전문가가 함께 적극적인 토론을 바탕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으려면…=
문화재청은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의 연속 보도와 관련해 정밀 지표조사와 함께 관련 문화재 보호 법령의 개정 작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당국자는 이번 보도를 계기로 3만㎡ 이상의 개발 사업만 문화재 지표조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현 제도의 문제점이 데이터를 통해 드러난 만큼, 한국고고회 등 전문가들과 자문 회의를 거쳐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화성시 길성리 백제 토성과 관아 터 등 매장문화재 유존지역 범위 확대가 필요한 지역은 이미 보완을 위한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고 덧붙였다.
매장문화재 보호는 사회 각 주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정교한 사회적 조율과 합의가 필요한 문제이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매장문화재의 특성상, 보존의 필요성을 외면하기 쉽다는 점이 함정으로 작용한다. 눈앞의 유적을 직접 훼손하는 사람만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땅밑의 수많은 문화재가 부지불식간에 훼손될 개연성을 알고도 지속적으로 해당 제도를 방치하고 눈감아 버리는 태도 역시, 미필적 고의요, 헌법의 책무를 저버리는 처사이다. 그 결과로 어떤 문제가 반복되어 왔는지는 그간의 YTN 연속 보도가 말해준다. 모처럼 마련된 공론화의 기회가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도록 행정부와 입법부, 학계, 시민사회의 관심이 모두 필요한 이유이다.
취재 • 기사 • 데이터 분석 : 함형건 기자 [hkhahm@ytn.co.kr]
데이터 정리 • 분석 지원 : 김노현
그래픽 디자인 : 강현우
=매장문화재 보호정책 개선 방안 관련 설문 조사 개요=
조사 기관: YTN, 한국고고학회
조사 기간: 2017. 09. 20 ~ 28(9일간)
조사 대상: 고고학 분야 종사 경력 5년 이상의 한국고고학회 정회원
조사 방법: 이메일 설문조사
표집 방법: 전수조사
응답률: 32.8%(947명 중 311명 응답)
=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매장문화재 관련 온라인 기사 =
①'소리없는 난개발'…매장문화재 SOS 지도
http://www.ytn.co.kr/_ln/0106_201708311445521186
②천하명당 정조대왕릉, 용의 여의주는 어디로 갔을까
http://www.ytn.co.kr/_ln/0106_201709051616444311
③[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수원 화성에서 경주 신라 고분까지...'깜깜이 건축 공사'의 민낯
http://www.ytn.co.kr/_ln/0106_201709082015093189
④[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매장문화재 SOS 지도 숨은그림찾기
http://www.ytn.co.kr/_ln/0106_201709221508423895
⑤[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담당 공무원 61% 일반행정직...교체도 잦아
http://www.ytn.co.kr/_ln/0106_201709251854008616
⑥[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이상한 문화재청 지도
http://www.ytn.co.kr/_ln/0106_201709261234306740
매장문화재 SOS 지도 어떻게 만들었나
http://www.ytn.co.kr/_ln/0106_201708311539190282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매장문화재 관련 방송 리포트 =
① 소규모 난개발의 습격…매장문화재 SOS 지도
② 방치된 백제 토성…소규모 난개발의 그늘
③ 문화재청 지도 정보 무더기 누락..."행정에 구멍"
④ 유적 발굴해놓고 나 몰라라...55% 부실 관리
⑤문화재 조사 제도 뜯어고친다...."조사 확대해야"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지난 1달여 동안 이어진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의 연속 보도는 국가와 사회가 이 같은 책무에 대해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지속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과정이었다.
국내의 매장 문화재 훼손 실태는 총체적인 문제이다. 위 그림은 매장문화재 행정의 난맥상을 이루는 세 가지 축을 보여준다. 문화재 훼손 가능성이 있는데도 3만 ㎡ 미만 공사는 소홀히 하는 현 제도의 문제점(8월 31일 보도 '소리 없는 난개발'…매장문화재 SOS 지도 )은, 전문성까지 떨어지는 문화재 담당 공무원들의 실태(9월 25일 보도 : 담당 공무원 61% 일반행정직…교체도 잦아)과 맞물려 난개발을 더욱 방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문화재 공간정보가 줄줄이 빠진 문화재 지도(9월 26일 보도 :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 이상한 문화재청 지도)는 훼손의 악순환을 더욱 깊게 한다.
=문화재 훼손을 용인하는 제도=
매장문화재법은 문화재 조사는 민간조사기관이 맡고, 거의 대부분 비용은 민간 사업자가 대도록 하고 있다. 그나마 지표 조사 비용을 국가가 지원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이다. 발굴에 어느 정도 돈이 필요한지 대지면적 1,000㎡(302.5평)의 소규모 사업을 기준으로 따져보았다. 문화재청 고객지원센터가 공개한 '문화재 조사 대가 계산 프로그램'으로 산정해보면, 시굴 조사 비용은 천4백만 원~2천여 만원, 정밀 발굴 조사 비용은 1억 3천여만 원에서 10억여 원까지의 범위로 나타났다. 생활유적일 경우 발굴 조사 기간이 19일에서 49일 정도여서 조사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지만, 성곽 유적은 최대 214일까지로 조사 기간이 늘어나며 비용도 치솟았다. 3,000㎡(907.5평) 사업은 발굴 비용만 최소한 2억 7천여만 원 (생활 유적인데 조사하기도 쉬운 경우)에서 20여억 원(성곽 유적인데 조사 여건도 어려운 경우)까지의 범위에서 산정되었다.조사 예상 기간도 37일에서 411일까지 다양했다. 요약하면 중소규모 건축공사라도, 발굴이 시작되면 1달에서 1년 이상에 걸쳐 공사가 지연되고, 비용도 최소한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이 들 수 있다. 현행 매장문화재법은 소규모 공사 대부분에 대해 문화재 지표 조사를 면제해 주는 대신 공사 현장에서 유물 유적을 발견하면 사업자나 땅 주인이 스스로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양심에 맡기는 것이다. 기자가 접촉한 지자체 문화재 담당 공무원들은 매우 드물지만, 수개월에 1번꼴로 자발적인 신고가 들어오며, 보존 가치가 있는 문화재도 별로 없는 편이라고 말했다.
문화재를 발견하고도 모른 체하고 넘어간다면? 법규상으로는 벌칙 조항이 있다. 만약 공사 현장에서 발견한 유물이나 유적을 제대로 신고하지 않고 숨기거나 훼손하면, 3년 징역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릴 수 있다.(매장 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7장 31조 6항). 처벌 현황은 어떨까? 최근 7년여 동안 매장문화재를 훼손해 고발된 경우는 전국에서 50건에 그쳤다. 재판이 종료된 42건 중 19건은 300만 원 미만 벌금형, 15건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유일한 실형 1건도 집행유예에 그쳤다. 솜방망이 처벌이란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매장문화재를 발견해 신고할 경우 그 가치를 산정해 국가가 보상금이나 포상금을 주도록 하고 있지만, 공사 중단과 추가 발굴조사에 따른 비용에는 크게 못 미치는 편이다. 문화재 신고를 했다가, 최소한 수억 원 이상의 발굴 조사 비용과 공사 지연으로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사업자 입장에서, 경제적인 실익만을 따진다면, 공사를 강행하는 것이 이익인 셈이다. 양심적인 신고에 대한 보상은 미흡하고, 문화재 훼손 행위에 대한 처벌은 유명무실하다면, 문화재 보존을 요행에 맡기는 시스템이라고 해도 할 말은 없다.
더 나아가 어렵게 유적 유구를 발굴한 이후의 관리 실태를 보면, 발굴 조사가 다 무슨 소용이냐는 생각을 절로 하게 만든다.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이 현장 취재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조사해 9월 8일에 보도한 리포트 ('유적 발굴해놓고 나 몰라라…55% 부실 관리')는 당국이 보존 조치 결정을 내렸던 유적 중 절반 이상이 부실하게 관리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보존조치 유적이란, 발굴한 뒤, 국가나 지방의 지정 문화재로 등록은 하지 않았지만, 그 가치를 인정해 보존하도록 한 문화재이다. 전국 596곳 중, 55%인 326곳의 관리 상태에 문제가 있었다. 249건은 작년 한 해 지자체가 유적을 관리 점검한 기록이 전혀 없었다. 현행법에는 보존조치 유적을 누가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 상세한 규정도 없다. 원칙적으로는 토지 소유자에게 관리 책임이 있다는 설명인데, 국가는 해당 토지를 매입할 예산도 의지도 정책 조율 능력도 없다. 제도 미비에, 정보 관리 부실에, 정책 수행 역량도 실종된 보존조치 유적 문제는 문화재 행정의 무기력함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한국고고학회 회원 300인의 의견은?
그렇다면 매장문화재 보존 문제의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가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은 최근 한국고고학회와 공동으로 현행 매장문화재 보호 제도의 대안 마련을 위한 설문 조사를 했다. (조사 방법은 기사 하단에 명시) 고고학 분야 종사 경력 5년 이상인 947명의 고고학회 정회원 중 311명이 응답했다. 대학이나 연구원, 발굴기관의 전문가와 공무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응답자 거의 모두는 YTN이 중점 보도했던 3만 ㎡ 미만의 소형 공사로 매장문화재가 훼손되었을 가능성에 대해서 동의했다. '가능성이 매우 높다'가 75.2%, '가능성이 높다'가 21.9%로 약 97%가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답변이었다.
제도 개선 방안으로는, 고고학적 거점 지역을 세부적으로 선별해 해당 지역에서는 전면적으로 매장문화재 지표 조사를 실시하도록 하자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주목할만한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되었거나, 여러 시대의 유적 유물이 동시에 출현하거나, 지방 행정의 중심으로서 매장 문화재 밀도가 높은 곳, 또는 고고학적 연구 자료로 특별히 가치가 크다고 판단되는 유적 유물이 발견된 곳 등을 종합적으로 포괄하는 개념일 것이다. 수만 개에 달하는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을 일률적으로 관리하는 방식에서 한 발 더 나가 우선 관리할 곳을 정밀히 조사해 중점 보호하자는 것이다.
3만 ㎡ 면적 규정을 하향 조정해 기준을 강화하자는 의견도 그다음으로 많았다. 만 ㎡나 5천㎡ 등 3만 ㎡보다 더 작은 면적으로 기준을 변경해 문화재 지표 조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하는 방법이다. 다만, 이 같은 기준 조정도 필요하지만, 그 자체 하나만으로는 완전한 해법이 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실제로 취재진은 1999년 이후 지난해까지의 건축 사업 중에서 사업 면적을 쪼개서 교묘하게 3만 ㎡ 기준을 회피한 게 아닌지 의심되는 공사 214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령 3만 ㎡를 넘어가는 공사를 2개 이상으로 쪼개서 17,000㎡ 정도로 만들어 신청하는 식이다. 취재진이 살펴본 사례는 건축인허가 날짜가 거의 같고, 주소와 사업명이 같은 경우를 중심으로 골라낸 것이여서, 사업명과 건축인허가 날짜 등이 다르게 인허가를 신청한 공사까지 합하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지자체 문화재 담당 공무원들은 문화재 조사를 피하려는 꼼수를 뻔히 알지만 현행법으로는 막을 도리가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아래 그래프에서도, 면적 2만9천 ㎡ 대 사업과 3만 ㎡대 사업의 개수를 비교하면, 유달리 3만 ㎡ 대의 건축사업의 숫자가 뚝 떨어지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편법이 횡행하는 현실에서는 면적 기준을 내려도 고고학적 거점 지역을 별도로 관리하는 종합적인 처방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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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는 고고학 전문가들에게 문화재 보호를 방해하는 환경적 요소가 무엇인지도 물었다. 응답자의 92%는 '개발 논리에 밀려 문화재 조사를 불필요한 부담으로만 여기는 인식'을 꼽았다.
또한, 문화재 행정 당국의 문제로는 '문화재 담당 공무원의 전문성 부족과 잦은 교체'(57.9%)를 가장 많이 꼽았다. 또한 '문화재 보호에 대한 지자체의 의지 결여'(50.5%)와 '문화재청 역량과 정책 의지 결여'(50.2%)를 꼽은 사람도 비슷하게 많았다. 제도적인 개선도 필요하지만, 구태의연한 문화재 당국의 인식이 함께 바뀌지 않으면 근본적인 개혁이 어려울 것이라는 문제의식을 깔고 있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문화재 발굴제도의 공영화 방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응답자들은 '시굴 또는 발굴 조사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거나(58.8%), '조사 기관의 법인 형태를 공기관으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 (57.2%) 는 등의 의견을 나타냈다.
주관식 답변 중에는 "문화재 발굴 조사의 입찰제로 인해 저가 조사가 많아지며 조사의 질 또한 떨어진다." "발굴기관이 난립해 저가 경쟁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서 자유 경쟁 체제와 시장 논리에 문화재를 포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다수가 제시했다.
"주민과 개발사업자에게 떠넘겨진 책임을 국가가 일정 부분 감당할 필요가 있다"라거나, "매장문화재 발굴 전문기관 법인 인가의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사설 법인이 아닌 지자체 산하 법인화 또는 발굴기관의 공영화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비슷한 의견들을 복수의 고고학 전문가가 제시했다.
아울러 "문화재에 대한 인식이 개발 논리에 지배당하지 않도록 문화재청의 지위를 격상해야 한다." "문화재청이 문화재 조사 관리 감독의 역할을 더욱 충실하게 진행해야 한다." "일반인과 전문가가 함께 적극적인 토론을 바탕으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으려면…=
문화재청은 YTN 데이터저널리즘팀의 연속 보도와 관련해 정밀 지표조사와 함께 관련 문화재 보호 법령의 개정 작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문화재청 당국자는 이번 보도를 계기로 3만㎡ 이상의 개발 사업만 문화재 지표조사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현 제도의 문제점이 데이터를 통해 드러난 만큼, 한국고고회 등 전문가들과 자문 회의를 거쳐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화성시 길성리 백제 토성과 관아 터 등 매장문화재 유존지역 범위 확대가 필요한 지역은 이미 보완을 위한 검토 작업에 착수했다고 덧붙였다.
매장문화재 보호는 사회 각 주체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정교한 사회적 조율과 합의가 필요한 문제이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매장문화재의 특성상, 보존의 필요성을 외면하기 쉽다는 점이 함정으로 작용한다. 눈앞의 유적을 직접 훼손하는 사람만 비난의 대상이 아니다. 땅밑의 수많은 문화재가 부지불식간에 훼손될 개연성을 알고도 지속적으로 해당 제도를 방치하고 눈감아 버리는 태도 역시, 미필적 고의요, 헌법의 책무를 저버리는 처사이다. 그 결과로 어떤 문제가 반복되어 왔는지는 그간의 YTN 연속 보도가 말해준다. 모처럼 마련된 공론화의 기회가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도록 행정부와 입법부, 학계, 시민사회의 관심이 모두 필요한 이유이다.
취재 • 기사 • 데이터 분석 : 함형건 기자 [hkhahm@ytn.co.kr]
데이터 정리 • 분석 지원 : 김노현
그래픽 디자인 : 강현우
=매장문화재 보호정책 개선 방안 관련 설문 조사 개요=
조사 기관: YTN, 한국고고학회
조사 기간: 2017. 09. 20 ~ 28(9일간)
조사 대상: 고고학 분야 종사 경력 5년 이상의 한국고고학회 정회원
조사 방법: 이메일 설문조사
표집 방법: 전수조사
응답률: 32.8%(947명 중 311명 응답)
=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매장문화재 관련 온라인 기사 =
①'소리없는 난개발'…매장문화재 SOS 지도
http://www.ytn.co.kr/_ln/0106_201708311445521186
②천하명당 정조대왕릉, 용의 여의주는 어디로 갔을까
http://www.ytn.co.kr/_ln/0106_201709051616444311
③[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수원 화성에서 경주 신라 고분까지...'깜깜이 건축 공사'의 민낯
http://www.ytn.co.kr/_ln/0106_201709082015093189
④[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매장문화재 SOS 지도 숨은그림찾기
http://www.ytn.co.kr/_ln/0106_201709221508423895
⑤[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담당 공무원 61% 일반행정직...교체도 잦아
http://www.ytn.co.kr/_ln/0106_201709251854008616
⑥[매장문화재 데이터 분석] "법적 효력이 없습니다"...이상한 문화재청 지도
http://www.ytn.co.kr/_ln/0106_201709261234306740
매장문화재 SOS 지도 어떻게 만들었나
http://www.ytn.co.kr/_ln/0106_201708311539190282
=YTN 데이터저널리즘팀 매장문화재 관련 방송 리포트 =
① 소규모 난개발의 습격…매장문화재 SOS 지도
② 방치된 백제 토성…소규모 난개발의 그늘
③ 문화재청 지도 정보 무더기 누락..."행정에 구멍"
④ 유적 발굴해놓고 나 몰라라...55% 부실 관리
⑤문화재 조사 제도 뜯어고친다...."조사 확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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