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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5월 31일 (금요일)
■ 대담 : 이준희 음악학자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11편 “남인수·백년설이 정말 '혈서'를 썼을까?”>
♬ 백년설 ‘번지없는 주막’
♬ 김정구 ‘눈물젖은 두만강’
♬ 장세정 ‘연락선은 떠난다’
♬ 남인순 ‘애수의 소야곡’
♬ 이난영 ‘목포의 눈물’
♬ . 진방남 ‘불효자는 웁니다’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소와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가 함께 준비한 특집 코너입니다.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열한 번째 시간. 방금 몇 곡의 옛 노래 들으셨는데요. 한번쯤 들어봤을 이 노래들을 만들고 부른 음악가들은 일제시대 군국가요와도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 ‘전달자들’에서는 일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찬양한 노래, ‘군국가요’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도움말씀 주시기 위해서 음악학자인 이준희 교수님,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이준희 음악학자(이하 이준희)> 네, 안녕하십니까.
◇ 이동형> 앞에서 여섯 곡을 들었는데, 저는 한 곡 빼고는 다 알겠네요. 따라부를 수 있을 정도로. 예전에 상당히 인기있었던 대중가요인데요. 이 노래들을 만들고 불렀던 분들이 친일하고 연관이 있는 겁니까?
◆ 이준희> 군국가요라는 게 그렇죠. 친일적인 행위와 분명히 관련이 있고요. 일각에서는 친일가요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요. 친일가요가 조금 더 넓은 개념이거든요. 그런데 친일가요의 90% 이상을 또 군국가요라고 볼 수 있고, 거의 같은 말이죠.
◇ 이동형> 군국가요. 일제 군대에서 많이 불렀던 노래, 이렇게 이야기하면 됩니까?
◆ 이준희> 군가는 아닙니다. 대중가요인데, 내용상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그런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게 군국가요죠.
◇ 이동형> 군가라고 하면 대중들이 잘 안 부를 테니까요.
◆ 이준희> 그렇죠. 군대에서나 부르는.
◇ 이동형> 그러면 이 군국가요가 당시에 대중들로부터 인기는 있었습니까?
◆ 이준희> 그렇지는 않죠. 당시 이른바 식민지 조선의 대중이라면 누가 이런 것을 만들고 싶었겠습니까? 또 누가 이런 것을 듣고 싶었겠습니까? 다만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보급이 된다든가, 그런 점은 있었죠.
◇ 이동형> 대표적인 군국가요, 노래 한 곡 듣고 이야기 나눠봅시다.
◆ 군국가요> ♬ 지원병의 어머니 – (조명암 작사, 고가 마사오 작곡, 장세정 노래)
나라에 바치자고 키운 아들을/ 빛나는 싸움터로 배웅을 할 제/
눈물을 흘릴 쏘냐 웃는 얼굴로/ 깃발을 흔들었다 새벽 정거장
사나이 그 목숨이 꽃이라면은/ 저 산천 초목 아래 피를 흘리고/
기운차게 떨어지는 붉은 사쿠라/ 이것이 반도남아(半島男兒) 본분일 게다
살아서 돌아오는 네 얼굴보다/ 죽어서 돌아오는 너를 반기며/
용감한 내 아들의 충의충성(忠義忠誠)을/ 지원병의 어머니는 자랑해 주마
◇ 이동형> 지금 들으시는 노래가 ‘지원병의 어머니’라는 노래인데, 이 곡을 장세정 씨가 불렀네요. 가수가. 소개를 해주시죠.
◆ 이준희> 1930, 40, 50년대, 60년대까지도 활발하게 가수 활동을 했던 분이고요. 그 당시 뮤지컬에서는 최고의 연기자로 활동을 했던 분이기도 하고.
◇ 이동형> 우리가 처음 오프닝에 들었던 ‘연락선 떠난다’를 부른 가수기도 하고요.
◆ 이준희> 네. ‘지원병의 어머니’는 사실 우리나라 작곡가가 만든 작품은 아니고요. 일본의 유명한 고가 마사오라는 분이 만든, 원래 일본에서의 제목은 ‘군국의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일종의 번안 가요죠.
◇ 이동형> 가사만 바꿨군요?
◆ 이준희> 그렇죠. 제목하고 가사만 우리말로 바꾸어서 들여온 거고요. 이 노래가 발표되던 1941년. 이때만 해도 그래도 군국가요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41년 12월에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잖아요? 그래서 그 이듬해인 1942년부터는 한국 대중가요계에 능력 있고, 유명한 작가나 가수들은 거의 다 군국가요와 관련이 있죠.
◇ 이동형> ‘지원병의 어머니’ 가사를 보니까 ‘나라에 바치자고 키운 아들, 기운차게 떨어지는 붉은 사쿠라, 죽어서 돌아오는 너를 반기며 지원병의 어머니는 자랑해주마.’ 군대로 가라는 얘기겠죠.
◆ 이준희> 사실 그 당시의 어머니가 누가 그러겠습니까만, 노래로는, 어차피 프로파간다니까요. 이런 표현이 등장하죠.
◇ 이동형> 다음 들을 곡은요. ‘아들의 혈서’라는 곡인데요.
◆ 이준희> 이게 군국가요 중에서는 그나마 살아남은 노래입니다. 6.25 때 불렸거든요. 가사를 또 바꿉니다.
◇ 이동형> 그런데 이게 굉장히 유명한 작곡가 박시춘 작곡에 백년설 노래입니다. 우리 귀에도 익은 분들인데요. 듣고 오죠.
◆ 군국가요> ♬ 아들의 혈서 –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백년설 노래)
어머님전에 이 글월을 쓰옵노니 / 병정이 되온 것도 어머님 은혜
나라에 바친 목숨 환고향 하올 적엔 / 쏟아지는 적탄 아래 죽어서 가오리다
어제는 황야 오는 날은 산협천리 / 군마도 철수레도 끝없이 가는
너른 땅 수천 리에 진군의 길은 / 우리들의 피와 뼈로 빛나는 길입니다
어머님전에 무슨 말을 못하리까 / 이 아들 보내시고 일구월심에
이 아들 축원하사 기다리실 제 / 이 얼굴을 다시 보리 생각은 마옵소서
◇ 이동형> 네, 방금 들은 ‘아들의 혈서.’ 이게 나중에 한국 전쟁 이후에 가사를 바꿔서 다시 한 번 불렀다고 했는데요. 일제시대 때 불렸던 가사는 역시 ‘쏟아지는 적탄 아래 죽어서 가오리다.’ 일제를 찬양하는 그런 노래일 수도 있겠네요.
◆ 이준희> 그런데 6.25 때도 가사는 거의 비슷한데요. 그런데 식민지 냄새가 나는 단어를 6.25 상황에 맞게 몇 단어만 살짝 바꿔서. 전쟁 나고는 바로 부를 노래가 마땅히 없었으니까 잠깐 이런 노래도 재활용이 됐던 거죠.
◇ 이동형> 남인수, 백년설이 혈서까지 써가면서 일본군에 지원했었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인가요?
◆ 이준희>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니기는 하는데, 그것은 명백히 사실이 아닙니다. 군국가요가 굉장히 문제적인 현상인 것은 틀림이 없는데요. 그래도 그것을 탓하려고 이렇게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등장시키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죠.
◇ 이동형> 두 곡 들을 텐데요. ‘아세아의 합창,’ ‘이천오백만 감격.’ 이거는 김정구, 이난영. 역시 우리 귀에 익숙한 가수들이 불렀습니다. 듣고 오겠습니다.
◆ 군국가요> ♬ 아세아의 합창 –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김정구 노래)
우리들의 마음이 화살이 되고 / 우리들의 가슴이 방패가 되어
싸우자 싸워 싸우자 싸워 / 대동아의 꽃밭에 열매가 열릴 때 /
노래하자 춤추자 /
하늘에선 다 같이 날개가 되고 / 바다에선 다 같이 어뢰가 되어 /
싸우자 싸워 싸우자 싸워 / 아세아의 터전에 진군가 울릴 때 /
노래하자 춤추자 /
♬ 이천오백만 감격 - (조명암 작사, 이난영·남인수 노래)
역사 깊은 반도 산천 충성이 맺혀 / 영광의 날이 왔다 광명이 왔다
나라님 부르심을 감히 받들어 / 힘차게 나아가자 이천오백만
아 감격의 피 끓는 이천오백만 / 아 감격의 피 끓는 이천오백만
동쪽 하늘 우러러서 성수(聖壽)를 빌고/ 한 목숨 한 마음을 님께 바치고
미영(米英)의 묵은 원수 격멸의 마당 / 정의로 나아가자 이천오백만
아 감격의 피 끓는 이천오백만 / 아 감격의 피 끓는 이천오백만
◇ 이동형> 네, 김정구, 이난영, 남인수가 부른 노래 두 곡 듣고 왔는데, 제목이 ‘아세아의 합창,’ ‘이천오백만의 감격’입니다. 제목만 들어도 어떤 곡인지 감이 오는데요?
◆ 이준희> 그렇죠. 특히 ‘이천오백만 감격’은 원래 식민지 조선에서는 징병을 실시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다가 전쟁 막판에 자원이 없으니까 징병제를 실시하게 되는데요. 그 기념으로 만들어진 그런 노래이기도 합니다.
◇ 이동형> 그러면 이 노래를 부른 김정구, 이난영, 남인수, 이런 사람들이 일제에 협력했다, 이렇게 봐도 되는 겁니까?
◆ 이준희> 결과로 보면 협력이죠. 군국가요를 만들고, 부르고 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런데 다만 대중예술가와 저는 작가예술이라고 표현을 하는데요. 이른바 홍난파, 현제명, 이광수와 같은 문단과 악단의 명사들과는 조금 분리해서 볼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대중예술은 철저하게도 분업화되어 있는 분야니까요.
◇ 이동형> 그런데 지금까지 네 곡의 군국가요를 들어봤는데, 빠지지 않는 사람이 조명암. 작사에 다 조명암입니다. 그리고 작곡은 박시춘. 이 두 사람이 유독 이런 노래를 많이 만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 이준희> 일단 두 분이 기본적으로 그 당시에 작품 자체가 많아요. 그런데 조명암이라는 작사가는 특히 문제적인 인물이기는 한 게 군국가요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 것은 멜로디보다는 가사거든요, 사실은. 그런데 지금까지 확인된 노골적인 군국가요 중 2/3가 조명암 가사입니다. 너무 많이 쓰기는 했죠, 이분은.
◇ 이동형> 너무 많은 친일노래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노래의 작사를 했기 때문에 친일 인명사전에 올라간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 이준희> 조명암이라는 분은 해방 이후에 월북을 하게 되거든요. 북한에서도 80년대, 90년대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했고, 고위직을 역임하기도 했고, 여러모로 문제적인 인물입니다.
◇ 이동형> 우리가 흔히 북한은 남한보다는 친일파들을 많이 제거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만, 조명암 같은 사람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거 같네요.
◆ 이준희> 제가 보기에는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고요.
◇ 이동형> 그래요. 박시춘은 어떻습니까?
◆ 이준희> 박시춘 선생도 한국 대중가요사, 특히 1950년대 이전은 이분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죠. 굉장히 많은 좋은 작품들을 발표했고, 작곡자로서의 위상은 틀림없고요. 업적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공은 공이고, 과는 과니까. 그렇다고 해서 군국가요의 과를 덮을 수는 없는 거죠.
◇ 이동형> 분명 해방 후에 뛰어난 음악가고, 이분을 빼놓고는 한국 대중가요를 얘기할 수 없는 것은 맞습니다만, 해방 전 행적은 분명히 비판받을 부분은 있다?
◆ 이준희> 그렇죠.
◇ 이동형> 최근 KBS에서 3·1운동 100주년 특집 프로그램으로 노래 경연대회를 했는데, 여기서 박시춘이 만든 ‘비 내리는 고모령’ 이것을 내보내서 친일 음악가 노래를 내보내면 되느냐, 그것도 3·1운동 100주년 프로그램에, 이런 논란이 있었는데요. 제작진이 몰랐겠죠?
◆ 이준희> 그런데 저는 문제라면 문제인데, 문제가 크게 될 게 없겠다 싶기도 했고요. 일단 ‘비 내리는 고모령’은 군국가요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요. 그리고 또 박시춘이 군국가요를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일 작곡가, 이런 식으로 붙이는 것은 또 맞지 않거든요. 어쨌든 불편한 분들도 있기는 있었을 겁니다.
◇ 이동형> 그러면 이런 음악가들 중에서 과거 본인 행적에 대해서 반성하거나 사과하거나, 그런 분들이 혹시 계십니까?
◆ 이준희> 그런데 이게 군국가요가 한동안 묻힌 역사였는데요. 이게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게 90년대 이후거든요. 그 이후에 대중가요 역사에 실증이라는 것이 도입되면서 옛날 자료들이 대거 발견되고. 그런데 그 시점에서는 이미 군국가요 관련 작가나 가수들이 거의 대부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 계셨기 때문에 그나마 마지막까지 생존한 분이 반야월 선생이죠. 작사가로서도 군국가요 가사를 몇 곡 썼고, 가수로서도 몇 곡 불렀던 분인데, 이분이 그나마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기자회견의 형태로 사과, 유감을 표명한 적은 한 번 있습니다.
◇ 이동형> 과거 본인의 일을 반성한다. 반야월은 ‘울고 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 고개,’ ‘소양강 처녀.’ 주옥 같은 노래들을 만들었네요. 그러면 반야월 작사의 군국가요. ‘일억총진군’이라는 노래. 가수도 굉장히 유명한 사람, 진방남이 불렀네요.
◆ 이준희> 반야월이 곧 진방남이죠.
◇ 이동형> 가봅시다.
◆ 군국가요> ♬ 일억총진군 – 반야월 작사, 진방남 노래
나아가자 결전이다 일어나거라 / 간닌부쿠로(堪忍袋)의 줄은 터졌다
민족의 진군이다 총력전이다 / 피 뛰는 일억일심(一億一心) 함성을 쳐라
싸움터 먼저 나간 황군(皇軍) 장병아/
총후(銃後)는 튼튼하다 걱정 마시오 / 한 사람 한 집안이 모다 결사대
아카이타스키(赤い?)에 피가 끓는다
올려라 히노마루(日の丸) 빛나는 국기 / 우리는 신의 나라 자손이란다
임금께 일사보국 바치는 목숨 / 무엇이 두려우랴 거리끼겠소
대동아 재건이다 앞장잡이다 / 역사는 아름답고 평화는 온다
민족의 대진군아 발을 맞추자 / 승리다 대일본은 만세 만만세
◇ 이동형> ‘일억총진군.’ 어떻게 해서 ‘일억총진군’이라는 제목이 나왔죠?
◆ 이준희> 앞서 ‘이천오백만 감격’을 들으셨는데요. 당시 조선의 인구는 이천오백만이 맞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일억이 되느냐. 조선 더하기 일본, 당시 내지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렇게 더하면 일억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남이 아니다, 이른바 내선일체라는 담고 있는 표현이 일억인 거죠.
◇ 이동형> ‘올려라 히노마루 빛나는 국기.’ 이거 완벽한 가사네요.
◆ 이준희> 반야월 선생의 생전 해명에 따르면 녹음하러 일본에 갔더니 본사에서 신문 뭉치를 던져주면서 이런 기사를 참고로 가사 하나 빨리 써라, 그래서 대충 보고 썼다, 이런 이야기도 있기는 있습니다.
◇ 이동형> 그래요. 어쨌든 식민 시대에 목숨 바쳐 독립운동 한 분도 계시니까 그런 분들하고 비교하면 아쉬운 점을 당연히 말할 수 있겠죠. 오늘 함께 들은 다섯 곡 말고도 군국가요 작품들이 상당히 많다고 하는데, 이준희 교수님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군국가요 40선 제작에도 참여하셨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우리가 왜 이런 노래들을 기록해야 하고, 알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시죠.
◆ 이준희> 역사라는 게 빛이 있으면 당연히 그늘, 어둠도 있는 것이고요. 그것을 하나 빼고 간 다음에는 온전한 역사가 될 수 없죠. 군국가요라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있는 그대로 밝힐 필요가 있고요. 그에 대한 비판도 아울러서 함께 이루어져야겠고요. 그런데 선결되어야 할 것은 역시 자료의 발굴과 정리죠.
◇ 이동형> 그렇겠죠. 알겠습니다. 오늘 군국가요 이야기 감사합니다.
◆ 이준희> 네, 감사합니다.
◇ 이동형>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열한 번째 시간, 오늘은 일제 침략 전쟁에 동원된 유행가, 군국가요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음악학자 이준희 교수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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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 FM 94.5 (18:10~20:00)
■ 방송일 : 2019년 5월 31일 (금요일)
■ 대담 : 이준희 음악학자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11편 “남인수·백년설이 정말 '혈서'를 썼을까?”>
♬ 백년설 ‘번지없는 주막’
♬ 김정구 ‘눈물젖은 두만강’
♬ 장세정 ‘연락선은 떠난다’
♬ 남인순 ‘애수의 소야곡’
♬ 이난영 ‘목포의 눈물’
♬ . 진방남 ‘불효자는 웁니다’
◇ 앵커 이동형(이하 이동형)>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민족문제소와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가 함께 준비한 특집 코너입니다.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열한 번째 시간. 방금 몇 곡의 옛 노래 들으셨는데요. 한번쯤 들어봤을 이 노래들을 만들고 부른 음악가들은 일제시대 군국가요와도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 ‘전달자들’에서는 일제 제국주의 침략전쟁을 찬양한 노래, ‘군국가요’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도움말씀 주시기 위해서 음악학자인 이준희 교수님, 나오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이준희 음악학자(이하 이준희)> 네, 안녕하십니까.
◇ 이동형> 앞에서 여섯 곡을 들었는데, 저는 한 곡 빼고는 다 알겠네요. 따라부를 수 있을 정도로. 예전에 상당히 인기있었던 대중가요인데요. 이 노래들을 만들고 불렀던 분들이 친일하고 연관이 있는 겁니까?
◆ 이준희> 군국가요라는 게 그렇죠. 친일적인 행위와 분명히 관련이 있고요. 일각에서는 친일가요라고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요. 친일가요가 조금 더 넓은 개념이거든요. 그런데 친일가요의 90% 이상을 또 군국가요라고 볼 수 있고, 거의 같은 말이죠.
◇ 이동형> 군국가요. 일제 군대에서 많이 불렀던 노래, 이렇게 이야기하면 됩니까?
◆ 이준희> 군가는 아닙니다. 대중가요인데, 내용상 전쟁 참여를 독려하는 그런 내용으로 되어 있는 게 군국가요죠.
◇ 이동형> 군가라고 하면 대중들이 잘 안 부를 테니까요.
◆ 이준희> 그렇죠. 군대에서나 부르는.
◇ 이동형> 그러면 이 군국가요가 당시에 대중들로부터 인기는 있었습니까?
◆ 이준희> 그렇지는 않죠. 당시 이른바 식민지 조선의 대중이라면 누가 이런 것을 만들고 싶었겠습니까? 또 누가 이런 것을 듣고 싶었겠습니까? 다만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보급이 된다든가, 그런 점은 있었죠.
◇ 이동형> 대표적인 군국가요, 노래 한 곡 듣고 이야기 나눠봅시다.
◆ 군국가요> ♬ 지원병의 어머니 – (조명암 작사, 고가 마사오 작곡, 장세정 노래)
나라에 바치자고 키운 아들을/ 빛나는 싸움터로 배웅을 할 제/
눈물을 흘릴 쏘냐 웃는 얼굴로/ 깃발을 흔들었다 새벽 정거장
사나이 그 목숨이 꽃이라면은/ 저 산천 초목 아래 피를 흘리고/
기운차게 떨어지는 붉은 사쿠라/ 이것이 반도남아(半島男兒) 본분일 게다
살아서 돌아오는 네 얼굴보다/ 죽어서 돌아오는 너를 반기며/
용감한 내 아들의 충의충성(忠義忠誠)을/ 지원병의 어머니는 자랑해 주마
◇ 이동형> 지금 들으시는 노래가 ‘지원병의 어머니’라는 노래인데, 이 곡을 장세정 씨가 불렀네요. 가수가. 소개를 해주시죠.
◆ 이준희> 1930, 40, 50년대, 60년대까지도 활발하게 가수 활동을 했던 분이고요. 그 당시 뮤지컬에서는 최고의 연기자로 활동을 했던 분이기도 하고.
◇ 이동형> 우리가 처음 오프닝에 들었던 ‘연락선 떠난다’를 부른 가수기도 하고요.
◆ 이준희> 네. ‘지원병의 어머니’는 사실 우리나라 작곡가가 만든 작품은 아니고요. 일본의 유명한 고가 마사오라는 분이 만든, 원래 일본에서의 제목은 ‘군국의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일종의 번안 가요죠.
◇ 이동형> 가사만 바꿨군요?
◆ 이준희> 그렇죠. 제목하고 가사만 우리말로 바꾸어서 들여온 거고요. 이 노래가 발표되던 1941년. 이때만 해도 그래도 군국가요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41년 12월에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잖아요? 그래서 그 이듬해인 1942년부터는 한국 대중가요계에 능력 있고, 유명한 작가나 가수들은 거의 다 군국가요와 관련이 있죠.
◇ 이동형> ‘지원병의 어머니’ 가사를 보니까 ‘나라에 바치자고 키운 아들, 기운차게 떨어지는 붉은 사쿠라, 죽어서 돌아오는 너를 반기며 지원병의 어머니는 자랑해주마.’ 군대로 가라는 얘기겠죠.
◆ 이준희> 사실 그 당시의 어머니가 누가 그러겠습니까만, 노래로는, 어차피 프로파간다니까요. 이런 표현이 등장하죠.
◇ 이동형> 다음 들을 곡은요. ‘아들의 혈서’라는 곡인데요.
◆ 이준희> 이게 군국가요 중에서는 그나마 살아남은 노래입니다. 6.25 때 불렸거든요. 가사를 또 바꿉니다.
◇ 이동형> 그런데 이게 굉장히 유명한 작곡가 박시춘 작곡에 백년설 노래입니다. 우리 귀에도 익은 분들인데요. 듣고 오죠.
◆ 군국가요> ♬ 아들의 혈서 –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백년설 노래)
어머님전에 이 글월을 쓰옵노니 / 병정이 되온 것도 어머님 은혜
나라에 바친 목숨 환고향 하올 적엔 / 쏟아지는 적탄 아래 죽어서 가오리다
어제는 황야 오는 날은 산협천리 / 군마도 철수레도 끝없이 가는
너른 땅 수천 리에 진군의 길은 / 우리들의 피와 뼈로 빛나는 길입니다
어머님전에 무슨 말을 못하리까 / 이 아들 보내시고 일구월심에
이 아들 축원하사 기다리실 제 / 이 얼굴을 다시 보리 생각은 마옵소서
◇ 이동형> 네, 방금 들은 ‘아들의 혈서.’ 이게 나중에 한국 전쟁 이후에 가사를 바꿔서 다시 한 번 불렀다고 했는데요. 일제시대 때 불렸던 가사는 역시 ‘쏟아지는 적탄 아래 죽어서 가오리다.’ 일제를 찬양하는 그런 노래일 수도 있겠네요.
◆ 이준희> 그런데 6.25 때도 가사는 거의 비슷한데요. 그런데 식민지 냄새가 나는 단어를 6.25 상황에 맞게 몇 단어만 살짝 바꿔서. 전쟁 나고는 바로 부를 노래가 마땅히 없었으니까 잠깐 이런 노래도 재활용이 됐던 거죠.
◇ 이동형> 남인수, 백년설이 혈서까지 써가면서 일본군에 지원했었다, 이런 이야기는 사실인가요?
◆ 이준희> 인터넷상에 떠돌아다니기는 하는데, 그것은 명백히 사실이 아닙니다. 군국가요가 굉장히 문제적인 현상인 것은 틀림이 없는데요. 그래도 그것을 탓하려고 이렇게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등장시키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죠.
◇ 이동형> 두 곡 들을 텐데요. ‘아세아의 합창,’ ‘이천오백만 감격.’ 이거는 김정구, 이난영. 역시 우리 귀에 익숙한 가수들이 불렀습니다. 듣고 오겠습니다.
◆ 군국가요> ♬ 아세아의 합창 – (조명암 작사, 박시춘 작곡, 김정구 노래)
우리들의 마음이 화살이 되고 / 우리들의 가슴이 방패가 되어
싸우자 싸워 싸우자 싸워 / 대동아의 꽃밭에 열매가 열릴 때 /
노래하자 춤추자 /
하늘에선 다 같이 날개가 되고 / 바다에선 다 같이 어뢰가 되어 /
싸우자 싸워 싸우자 싸워 / 아세아의 터전에 진군가 울릴 때 /
노래하자 춤추자 /
♬ 이천오백만 감격 - (조명암 작사, 이난영·남인수 노래)
역사 깊은 반도 산천 충성이 맺혀 / 영광의 날이 왔다 광명이 왔다
나라님 부르심을 감히 받들어 / 힘차게 나아가자 이천오백만
아 감격의 피 끓는 이천오백만 / 아 감격의 피 끓는 이천오백만
동쪽 하늘 우러러서 성수(聖壽)를 빌고/ 한 목숨 한 마음을 님께 바치고
미영(米英)의 묵은 원수 격멸의 마당 / 정의로 나아가자 이천오백만
아 감격의 피 끓는 이천오백만 / 아 감격의 피 끓는 이천오백만
◇ 이동형> 네, 김정구, 이난영, 남인수가 부른 노래 두 곡 듣고 왔는데, 제목이 ‘아세아의 합창,’ ‘이천오백만의 감격’입니다. 제목만 들어도 어떤 곡인지 감이 오는데요?
◆ 이준희> 그렇죠. 특히 ‘이천오백만 감격’은 원래 식민지 조선에서는 징병을 실시하지 않았거든요. 그러다가 전쟁 막판에 자원이 없으니까 징병제를 실시하게 되는데요. 그 기념으로 만들어진 그런 노래이기도 합니다.
◇ 이동형> 그러면 이 노래를 부른 김정구, 이난영, 남인수, 이런 사람들이 일제에 협력했다, 이렇게 봐도 되는 겁니까?
◆ 이준희> 결과로 보면 협력이죠. 군국가요를 만들고, 부르고 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런데 다만 대중예술가와 저는 작가예술이라고 표현을 하는데요. 이른바 홍난파, 현제명, 이광수와 같은 문단과 악단의 명사들과는 조금 분리해서 볼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대중예술은 철저하게도 분업화되어 있는 분야니까요.
◇ 이동형> 그런데 지금까지 네 곡의 군국가요를 들어봤는데, 빠지지 않는 사람이 조명암. 작사에 다 조명암입니다. 그리고 작곡은 박시춘. 이 두 사람이 유독 이런 노래를 많이 만든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 이준희> 일단 두 분이 기본적으로 그 당시에 작품 자체가 많아요. 그런데 조명암이라는 작사가는 특히 문제적인 인물이기는 한 게 군국가요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는 것은 멜로디보다는 가사거든요, 사실은. 그런데 지금까지 확인된 노골적인 군국가요 중 2/3가 조명암 가사입니다. 너무 많이 쓰기는 했죠, 이분은.
◇ 이동형> 너무 많은 친일노래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런 노래의 작사를 했기 때문에 친일 인명사전에 올라간다는 얘기도 있었고요.
◆ 이준희> 조명암이라는 분은 해방 이후에 월북을 하게 되거든요. 북한에서도 80년대, 90년대까지 활발하게 활동을 했고, 고위직을 역임하기도 했고, 여러모로 문제적인 인물입니다.
◇ 이동형> 우리가 흔히 북한은 남한보다는 친일파들을 많이 제거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만, 조명암 같은 사람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거 같네요.
◆ 이준희> 제가 보기에는 별로 그런 것 같지는 않고요.
◇ 이동형> 그래요. 박시춘은 어떻습니까?
◆ 이준희> 박시춘 선생도 한국 대중가요사, 특히 1950년대 이전은 이분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죠. 굉장히 많은 좋은 작품들을 발표했고, 작곡자로서의 위상은 틀림없고요. 업적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공은 공이고, 과는 과니까. 그렇다고 해서 군국가요의 과를 덮을 수는 없는 거죠.
◇ 이동형> 분명 해방 후에 뛰어난 음악가고, 이분을 빼놓고는 한국 대중가요를 얘기할 수 없는 것은 맞습니다만, 해방 전 행적은 분명히 비판받을 부분은 있다?
◆ 이준희> 그렇죠.
◇ 이동형> 최근 KBS에서 3·1운동 100주년 특집 프로그램으로 노래 경연대회를 했는데, 여기서 박시춘이 만든 ‘비 내리는 고모령’ 이것을 내보내서 친일 음악가 노래를 내보내면 되느냐, 그것도 3·1운동 100주년 프로그램에, 이런 논란이 있었는데요. 제작진이 몰랐겠죠?
◆ 이준희> 그런데 저는 문제라면 문제인데, 문제가 크게 될 게 없겠다 싶기도 했고요. 일단 ‘비 내리는 고모령’은 군국가요와는 전혀 관련이 없고요. 그리고 또 박시춘이 군국가요를 만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일 작곡가, 이런 식으로 붙이는 것은 또 맞지 않거든요. 어쨌든 불편한 분들도 있기는 있었을 겁니다.
◇ 이동형> 그러면 이런 음악가들 중에서 과거 본인 행적에 대해서 반성하거나 사과하거나, 그런 분들이 혹시 계십니까?
◆ 이준희> 그런데 이게 군국가요가 한동안 묻힌 역사였는데요. 이게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게 90년대 이후거든요. 그 이후에 대중가요 역사에 실증이라는 것이 도입되면서 옛날 자료들이 대거 발견되고. 그런데 그 시점에서는 이미 군국가요 관련 작가나 가수들이 거의 대부분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 계셨기 때문에 그나마 마지막까지 생존한 분이 반야월 선생이죠. 작사가로서도 군국가요 가사를 몇 곡 썼고, 가수로서도 몇 곡 불렀던 분인데, 이분이 그나마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기자회견의 형태로 사과, 유감을 표명한 적은 한 번 있습니다.
◇ 이동형> 과거 본인의 일을 반성한다. 반야월은 ‘울고 넘는 박달재,’ ‘단장의 미아리 고개,’ ‘소양강 처녀.’ 주옥 같은 노래들을 만들었네요. 그러면 반야월 작사의 군국가요. ‘일억총진군’이라는 노래. 가수도 굉장히 유명한 사람, 진방남이 불렀네요.
◆ 이준희> 반야월이 곧 진방남이죠.
◇ 이동형> 가봅시다.
◆ 군국가요> ♬ 일억총진군 – 반야월 작사, 진방남 노래
나아가자 결전이다 일어나거라 / 간닌부쿠로(堪忍袋)의 줄은 터졌다
민족의 진군이다 총력전이다 / 피 뛰는 일억일심(一億一心) 함성을 쳐라
싸움터 먼저 나간 황군(皇軍) 장병아/
총후(銃後)는 튼튼하다 걱정 마시오 / 한 사람 한 집안이 모다 결사대
아카이타스키(赤い?)에 피가 끓는다
올려라 히노마루(日の丸) 빛나는 국기 / 우리는 신의 나라 자손이란다
임금께 일사보국 바치는 목숨 / 무엇이 두려우랴 거리끼겠소
대동아 재건이다 앞장잡이다 / 역사는 아름답고 평화는 온다
민족의 대진군아 발을 맞추자 / 승리다 대일본은 만세 만만세
◇ 이동형> ‘일억총진군.’ 어떻게 해서 ‘일억총진군’이라는 제목이 나왔죠?
◆ 이준희> 앞서 ‘이천오백만 감격’을 들으셨는데요. 당시 조선의 인구는 이천오백만이 맞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일억이 되느냐. 조선 더하기 일본, 당시 내지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렇게 더하면 일억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남이 아니다, 이른바 내선일체라는 담고 있는 표현이 일억인 거죠.
◇ 이동형> ‘올려라 히노마루 빛나는 국기.’ 이거 완벽한 가사네요.
◆ 이준희> 반야월 선생의 생전 해명에 따르면 녹음하러 일본에 갔더니 본사에서 신문 뭉치를 던져주면서 이런 기사를 참고로 가사 하나 빨리 써라, 그래서 대충 보고 썼다, 이런 이야기도 있기는 있습니다.
◇ 이동형> 그래요. 어쨌든 식민 시대에 목숨 바쳐 독립운동 한 분도 계시니까 그런 분들하고 비교하면 아쉬운 점을 당연히 말할 수 있겠죠. 오늘 함께 들은 다섯 곡 말고도 군국가요 작품들이 상당히 많다고 하는데, 이준희 교수님은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군국가요 40선 제작에도 참여하셨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우리가 왜 이런 노래들을 기록해야 하고, 알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시죠.
◆ 이준희> 역사라는 게 빛이 있으면 당연히 그늘, 어둠도 있는 것이고요. 그것을 하나 빼고 간 다음에는 온전한 역사가 될 수 없죠. 군국가요라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있는 그대로 밝힐 필요가 있고요. 그에 대한 비판도 아울러서 함께 이루어져야겠고요. 그런데 선결되어야 할 것은 역시 자료의 발굴과 정리죠.
◇ 이동형> 그렇겠죠. 알겠습니다. 오늘 군국가요 이야기 감사합니다.
◆ 이준희> 네, 감사합니다.
◇ 이동형> ‘100년의 기억, 전달자들.’ 열한 번째 시간, 오늘은 일제 침략 전쟁에 동원된 유행가, 군국가요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음악학자 이준희 교수와 함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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