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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1년 9월 13일 (월요일)
□ 진행 : 최형진 아나운서
□ 출연 : 개그맨 윤형빈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형진 아나운서(이하 최형진): 육군헌병대의 D.P, 근무이탈체포병, 탈영병 체포조 등으로 불리는데요. 최근 이 D.P의 활동과 함께 군대 내 가혹 행위와 부조리를 담은드라마
◆ 개그맨 윤형빈(이하 윤형빈): 네, 안녕하세요.
◇ 최형진: 제가 헌병 912기거든요. 윤형빈 씨가 몇 기죠?
◆ 윤형빈: 제가 736기입니다.
◇ 최형진: 제가 가물가물한데 군대에서 만날 수 있는 기수가 아니죠?
◆ 윤형빈: 아닌 것 같아요. 한참 후임이시네요. 한 번 헌병은 영원한 헌병입니다. (웃음)
◇ 최형진: 네, 그렇습니다. 지금 D.P가 이렇게 흥행하면서 여러 방송에서 부르실 텐데 다 거절하고 여기 나오신 이유가 있다면서요?
◆ 윤형빈: 사실 저한테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면 조금 민감한 사안에 대한 말씀도 많이 하시고 한데, 제가 말을 조금이라도 제대로 전달을 못 드리면 곤란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상황에 있는 분들한테 피해를 드릴 수도 있겠다 싶어서 조심했는데요. 최형진 아나운서께서도 마침 헌병 출신이시고 이 상황을 너무 잘 아시니까, 이건 나가서 말씀 드려도 좋겠다 해서 나오게 됐죠.
◇ 최형진: 제가 장문의 편지까지 좀 보냈는데, 저는 나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한 번 헌병은 영원한 헌병 아니겠습니까? 본격적으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D.P라는 보직, 용어 자체를 이번 드라마의 흥행을 통해 알게 된 분들이 상당합니다. 정확히 어떤 활동을 하는 겁니까?
◆ 윤형빈: 말 그대로 군탈체포조고요. 근무지를 이탈한 병사들을 검거하는데 사병으로 조를 짜서 수사관들을 대신해서 근무이탈만 전담으로 하는 병사들을 D.P조라고 하죠.
◇ 최형진: 2인 1조로 활동하게 되는데, 대선배님 모셔놓고 이런 말하긴 그렇습니다만, 저희 헌병 입장에서는 꿀... (웃음)
◆ 윤형빈: 하하, 맞아요. 그런 이야기가 많았어요. 아무래도 사복을 입고, 영내에 갇혀있다는 거 자체가 사실 군인들한테 가장 힘든데, 영외로 나갈 수 있고 자유로워 보이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시는데 실은 실적 압박을 굉장히 많이 받는 보직이 또 D.P조입니다.
◇ 최형진: 사건이 발생했을 때 가장 압박을 많이 받게 되겠군요.
◆ 윤형빈: 아무래도 헌병대의 가장 인사고과점수가 높은 게 군탈자를 검거하는 것이기도 하고, 못 잡았을 때는 정말 그런 게 많죠.
◇ 최형진: 모르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은데 윤형빈 씨가 전군 군탈체포, 탈영병 검거율 1위 아닙니까?
◆ 윤형빈: 맞습니다.
◇ 최형진: 대단하시네요.
◆ 윤형빈: 그런데 저 혼자 한 건 아니고요. 그때 당시 같이 활동하는 D.P조가 2인1조, 2개조였습니다. 그래서 4명이 함께 활동했는데 같이 했던 D.P조 분들이 참 잘했죠.
◇ 최형진: D.P를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느냐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일단 제 경험, 방송이니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저도 군탈체포조 제안이 들어왔었어요. ‘너 군탈 관심 있니?’, 이런 식으로. 그런데 제 윗선임과 전역 차이가 거의 안나서 둘이 동시에 전역을 해버릴 수 있으니까.
◆ 윤형빈: 제대 날짜도 잘 맞아야 해요.
◇ 최형진: 그리고 일단 군생활을 잘 해야 됩니다. 그래서 지켜보고 있다가 ‘너 군탈체포조 할래?’, 이런 거 아니겠습니까?
◆ 윤형빈: 그렇죠. 그래서 이게 지원해서 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고 군생활을 열심히 잘 하고 있으면 담당관이 눈여겨보다가 제대로 인해서 비는 공석이 생기면 눈여겨봤던 친구한테 이야기를 하죠. 드라마에 보면 딱 그 대사가 나와요. ‘D.P할래?’, 이 대사가 기억에 남습니다.
◇ 최형진: 좋으셨나요?
◆ 윤형빈: 사실은 좋았습니다. 하하
◇ 최형진: 그리고 많은 분들이 정말 많이 물어보는데, 군 생활 잘하고, ‘그 다음에 어떤 조건이 있어?’라고 물어보면 저 같은 경우는 뭐라고 하냐면, ‘집이 좀 살아야 돼’.
◆ 윤형빈: 그게 있었어요. 물어봐요 꼭.
◇ 최형진: 나가서 활동하다 보면 돈을 많이 쓰니까. 그때 한 달에 활동비가 얼마였죠?
◆ 윤형빈: 제 기억으로는 36만 원. 40만 원 밑이었어요.
◇ 최형진: 일반 병사들이 보기에는 당시 저희 월급이 8~9만 원대여서.
◆ 윤형빈: 많이 받으셨네요. 저희는 1~2만 원, 5만 원, 이렇게 받았던 것 같아요.
◇ 최형진: 그렇군요. 그런데 군탈체포조는 많이 받았거든요.
◆ 윤형빈: 엄청 많이 받았죠.
◇ 최형진: 저희 병사 입장에서는 굉장히 많다고 여겼지만, 나가서 활동하는 친구는 그야말로 엄카(엄마카드)를 빌려야 해요. 그래서 그걸로 결제를 해야 되기 때문에 가정의 재산도 좀 보는 것 같더라고요.
◆ 윤형빈: 많이 물어봐요. 이런 상황이 생길 수 있는데 집에 좀 부탁을 드릴 수 있냐고 물어보시고. 그때는 빨리 나가고 싶은 욕심에 집안이 되게 넉넉하지 않아도 그 정도는 가능합니다, 하고는 나가서 굉장히 아껴 쓰는 거죠. 그래서 노숙 생활도 많이 하고요.
◇ 최형진: 그리고 그런 질문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제가 아무래도 헌병 출신이라 속속들이 다 알거든요. D.P가 내무반 생활을 하냐고 물어보시는 분도 있는데, 역인가에 뭐가 있지 않아요?
◆ 윤형빈: 저 같은 경우는 역에 TMO라고 병사들이 고향으로 돌아간다든가 할 때 표를 끊어주는 그 장소 안에 헌병파견대라는 게 있습니다. 헌병이 지금은 군사경찰이잖아요. 경찰서가 있으면 파출소가 있듯이 파출소처럼 나와 있어요. 그 안에 저희가 생활하는 곳이 있었죠.
◇ 최형진: 저희도 훈련 갔다 오면, D.P하시는 분들 일 마치고 가끔 얼굴을 비출 때가 있습니다.
◆ 윤형빈: 그렇죠.
◇ 최형진: 대단히 얄밉더라고요. (웃음)
◆ 윤형빈: 하하, 그래서 그게 드라마
◇ 최형진: 물론 그 친구들도 엄청 힘듭니다. 나가서 잡아야 하고. 그런데 물론 부대 입대하기 전에는 다들 그렇습니다만, 일반 시민 아니었겠습니까. 특별한 훈련을 받습니까?
◆ 윤형빈: 특별한 훈련 받았던 것은 헌병이 공통으로 받는 훈련이 있죠. 후반기 교육에서 종행교, 종합행정학교에서 받는 훈련을 제외하고는 사실 특별한 훈련을 받진 않아요.
◇ 최형진: 윤형빈 씨 보면 군대에서 생활 잘해서 군탈체포조가 됐고, 군탈체포조로 검거율 1위가 됐고, 지금 또 격투 팟빵도 제가 굉장히 애청했어요. 죄송합니다만, 개그 빼고 다 잘하시는? (웃음)
◆ 윤형빈: 저도 요새 그걸 느끼고 있어요. 그걸 캐릭터로 밀어볼까. 하하.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윤형빈은 웃기는 걸로 이슈 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요.
◇ 최형진: 제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 윤형빈: 아닙니다. (웃음)
◇ 최형진: 임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탈영을 한 친구들 아니겠습니까. 물론 힘들어서 나간 분들인데 위험한 순간은 없었나요?
◆ 윤형빈: 물론 검거되는 친구가 굉장히 예민하기 때문에 혹시나 저희한테 위해를 가한다든가 이럴 수 있으니까 늘 조심하는데 저는 사실 직접적으로 싸움을 걸어오는 경우는 적었어요. 다행히. 그런데 저희 선·후임들 이야기 들어보면 위험한 상황들이 있죠.
◇ 최형진: 2인 1조로 다니는 것도 결국 이런 위험한 순간 때문인 건가요?
◆ 윤형빈: 그게 큰 걸로 알고 있고요. 또 하나는 제가 알기로 서로 증인이 되어 줄 수가 있대요. 검거 당시 어떤 상황이 나왔을 때 서로가 서로의 증인이 되어 주는 역할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 최형진: 이렇게 군탈체포조가 밖에서 열심히 탈영병을 잡아오면 저는 영창근무를 서면서 그 친구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했죠. 영창근무하면서도 사연이 많았어요. 쉽지 않더라고요.
◆ 윤형빈: 아유, 어렵죠. 그리고 거기서는 영창 안에 계시는 분들에게 뭐랄까, 근엄하고 흐트러짐 없는 모습을 보여야 하잖아요.
◇ 최형진: 그래서 저희는 목소리도, 물론 배우셨겠지만 들어가면 그럼 근엄한 목소리 많이 내죠. 2인1조인데 정해진 파트너는 보직이 끝날 때까지 쭉 이어지는 건가요?
◆ 윤형빈: 앞서서 말씀드렸다시피 제대가 생기지 않은 한, 쭉 같이 가죠.
◇ 최형진: 그런데 맞지 않으면 굉장히 힘들겠습니다.
◆ 윤형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희 선임의 선임 중에 한 분이 너무 안 맞아서 힘들었다는 이야기를 지금도 많이 하더라고요.
◇ 최형진: 그렇다고 ‘나 군탈체포조 안 해’, 이럴 수는 없잖아요.
◆ 윤형빈: 그런 케이스도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대 문화 안에서 그게 참 쉽지는 않죠.
◇ 최형진: 1등조였다고 직접 얘기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객관화가 되어 있습니까?
◆ 윤형빈: 제가 상장을 받은 게 다행히 있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이런 얘기를 안 하다가 집에서 상장을 찾은 이후로 상장 인증해놓고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 최형진: 검거를 많이 하면 활동에 따라 포상도 있나요?
◆ 윤형빈: 그런데 아시다시피 D.P조는 원래 외부에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잘 잡아서 정식으로 포상휴가를 받기도 하지만 군탈 담당관이 저희가 어려운 사건을 해결했다거나 고생을 많이 했을 시에 그러면 집에 2박3일 정도 다녀오라고 비공식 휴가를 주죠.
◇ 최형진: ‘일 잘하는 헌병상’도 받으셨습니까?
◆ 윤형빈: 그게 검거율 126%를 달성하면서 받았죠.
◇ 최형진: 참고로 저도 ‘모범헌병상’을 받았는데 이 인증은 다음번에 한 번 하도록 하겠습니다. 집에 상장이 있더라고요.
◆ 윤형빈: 저는 종합행정학교 736기 우등상, 그게 1위상이거든요. 그것도 있는데 또 뭐 있으세요? 배틀 한 번 가야겠는데요. (웃음)
◇ 최형진: 하하, 잠시만요.
◆ 윤형빈: 하하.
◇ 최형진: 현재 사용되는 탈영병 추적기법 중 하나도 윤형빈 씨 근무 당시에 만들어졌다고?
◆ 윤형빈: 네, 정확하게는 저라기보다 같은 조원 선임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때 당시 IP추적기법이 막 생길 때예요. 20여 년 전이니까. 각 메일을 가지고 있는 포털사나 게임사에 보내서 IP가 확인이 되는 건 시간이 너무 걸리니까 IP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을 저희들끼리 머리를 굴려서 만들었었는데, 그 내용을 보니까 그 기법이 지금도 전달이 되어서 오고 있더라고요.
◇ 최형진: 더 깊은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만,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것도 있고. 체포하는 과정도 비밀유지가 되어야 하는 부분도 있어야 해서요. 탈영병을 잡기 위해 외부에서 활동하게 되잖아요, 그럼 만약 못 잡으면 부대로 돌아올 수 없는 겁니까? 그렇게 전역하는 경우도 있나요?
◆ 윤형빈: 그렇지는 않습니다. 못 잡으면 부대로 한 번 들어오긴 하죠. 너무 오래 못 잡으면 담당관이 ‘다 들어와’하면 들어와서 정신교육 한 번 받고, 그리고 나면 정신 바짝 차리고 나가서 잡으러 또 다니고 했죠.
◇ 최형진: 그런 압박이 굉장할 것 같아요.
◆ 윤형빈: 많아요. 그리고 하루 세 번 전화로 보고해야 돼요. 기상했습니다, 어디 나갑니다, 오늘 뭐 했고 뭐 마쳤습니다 등.
◇ 최형진: 지금 이 방송에서 윤형빈 씨를 당연히 선배님으로서 군탈체포조로 힘들게 일하고 계시는 장병들이 계시기 때문에 대단하다, 멋지다, 말씀을 드리지만, 저희 헌병한테는 꿀...(웃음)
◆ 윤형빈: 하하, 이게 순찰병들이랑 늘 기싸움이 있었어요.
◇ 최형진: 많은 분들이 헌병 뭐하는 데냐고 물어보시는데요. 헌병이 진짜 많이 해요. 행사 있으면 위병소 앞에서 옷 차려입고 몇 시간 동안 서 있어야 하고.
◆ 윤형빈: 사단장님 행사 있는 날이 정말 힘들었어요. 정자세로 손끝 하나 까딱 못하고 서 있어야 되는데 허리가 너무 아프고.
◇ 최형진: 그거 해야 되죠. 훈련 다 뛰어야 하고 영창, 또 탱크 지나가서 길거리 나가서 교통통제도 해야 됩니다. 하는 거 많습니다. 애청자 분께서 ‘사복 입고 활동하던데 사복은 본인 옷입니까? 복장 규정이 있습니까?’라고 물어보셨네요.
◆ 윤형빈: 복장규정은 없고요. 의상도 본인이 입던 거. 그런데 처음 나갈 때만큼은 드라마에서도 고증이 잘 됐더라고요. 처음 나갈 때는 본인 옷이 없으니까 선배들 옷을 빌려서 입고 나가고, 그 이후에는 본인 옷을 입죠.
◇ 최형진: 그렇죠. 화려한 옷은 아니지만 청바지에 티 같은 거 입고 다녔던 것 같아요. 애청자 분이 의견 보내주셨는데요. ‘오랜만에 듣네요. 헌병가. EBC 544기입니다’라고 하십니다. 단결.
◆ 윤형빈: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 최형진: 헌병가 틀어달라고 사전에 말을 했는데 가물가물해요.
◆ 윤형빈: 저도 ‘백두산 높은 뫼는’, 여기까지만 기억이 나고.
◇ 최형진: 그리고 저는 맨 뒤요. ‘육군 헌병이다’, 이렇게 끝나죠.
◆ 윤형빈: 맞아요.
◇ 최형진: 애청자 의견입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도 탱크 부대 탈영병 설득 능력이 최고셨대요’, ‘경험담 좀 들려주세요. 드라마
◆ 윤형빈: 사실
◇ 최형진: 탈영병 중에 안타까운 상황도 있을 것 같은데, 기억에 남는 상황 있으신가요?
◆ 윤형빈: 저는 그런 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상근이라고 하죠. 출퇴근을 하는 병사인데, 그 친구는 부모님도 안 계시고 삼촌이 돌봐주셨는데 삼촌도 가끔 연락하는 정도. 정말 오갈 데도 없고 돈도 없는 친구가 상근 예비역이 된 거예요. 차라리 군인이 됐으면 괜찮은데. 그러니까 이 친구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하고 탈영을 하게 됐는데, ‘그 친구는 차라리 군 안으로 들어왔으면 좋았겠는데’ 하는 생각을 했었죠.
◇ 최형진: 그럴 때는 ‘살짝 풀어드릴까’, 이런 건 상상할 수도 없는 거죠?
◆ 윤형빈: 실은 제 사례 중에 제가 마지막 말년 휴가를 남겨두고 어머님들과 면담을 많이 해요.
◇ 최형진: 좀 알려달라고요.
◆ 윤형빈: 물론 지금 그러면 안 되는데, 그 당시에 어머님께 ‘제가 말년 휴가고 제대를 합니다. 혹시 연락을 저에게 먼저 주시면 제가 선처를 할게요’ 해서 어머님이 이모랑 만나기로 했다고 제보를 해주시면서. ‘잘 해주세요’ 하셔서 조서를 굉장히 잘 써줬던 기억이 있죠.
◇ 최형진: 참 군탈체포조로 활동하시면 병사들의 마음을 알지 않습니까. 이야기 하다보면 안타까운 것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애청자님이 재미있는 질문 주셨네요. ‘사단장님도 헌병대장님께 찍소리 못 한다는데 사실인가요?’
◆ 윤형빈: 제가 헌병대장님도 아니고 사단장님도 아니어서 잘 모르는데요.
◇ 최형진: 저희도 거기까지는 잘 몰라요.
◆ 윤형빈: 그런데 저희가 본 느낌은 헌병대장이면 진짜 터치를 못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 최형진: 좀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적은 기무사 아니겠습니까. 하하.
◆ 윤형빈: 라이벌이죠.
◇ 최형진: 마지막으로 D.P 출신이고 검거율 1위인데, 생활하시면서 자부심이 있습니까?
◆ 윤형빈: 그럼요. 아무래도 남들이 경험하지 못하는 보직에 들어가서 좋은 검거율을냈고, 그때의 추억도 많고 고생한 기억도 많은데 굉장히 자부심 있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최형진: 사실은 저도 2년 어떻게 버티지 날짜 가는 거 하루하루 세고 그랬는데, 지나고 보니까 참 의미 있던 시간 같아요.
◆ 윤형빈: 추억이라는 생각이 들고, 살면서 조금 고생스럽기도 하고 갇혀 있긴 하지만 그 안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하잖아요. 그게 의미 있다는 생각도 사실 들어요.
◇ 최형진: 혹시 후배들이나 선배들이랑 술 한 잔 하시고 얘기하면서 군대 얘기하잖아요. 그때 군탈체포조 얘기 가끔 하십니까?
◆ 윤형빈: 그럼요. 그리고 그때 당시 같이 근무했던 친구들 만나면 정말 밤새는 줄 모르고 그 얘기를 합니다.
◇ 최형진: 맞아요. 매년 만나서 똑같은 얘기 또 하는데도요.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고맙습니다. 단결!
◆ 윤형빈: 단결! 고맙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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