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발명품 ‘한글’도 특허 출원 가능할까

세기의 발명품 ‘한글’도 특허 출원 가능할까

2021.10.06. 오후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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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1년 10월 6일 (수요일)
□ 진행 : 최형진 아나운서
□ 출연 : 박성우 특허청 심사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최형진 아나운서(이하 최형진): 매주 수요일은 대한민국 특허청과 함께하는 '독특허지~ 기특허지~' 시간입니다. 오늘도 매주 이 시간, 우리의 지식재산권을 지켜주는 박성우 심사관과 함께합니다. 안녕하세요?

◆ 박성우 심사관(이하 박성우): 네, 안녕하세요. 오늘도 퀴즈 하나 드려야겠습니다. 이번 주에 중요한 기념일이 있는데,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 최형진: 제가 정말 사랑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글, 한글이 만들어진 한글날 아닙니까!

◆ 박성우: 맞습니다. 이번주 토요일, 10월 9일은 바로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세종대왕께서 훈민정음을 창제한지 575돌이 되는 한글날인데요. 그렇다면 훈민정음이 무슨 뜻인지는 아시겠죠?

◇ 최형진: 아, 이거 알아요. 훈민, 백성을 가르치는, 정음, 바른 소리 아닙니까.

◆ 박성우: 딩동댕동~ 역시 국어에 강한 아나운서님답습니다. 말씀대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를 뜻하는 훈민정음은 1446년,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창제한 28개의 글자를 말하는데요. 지난 몇 해 전에는,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은 뭔가요’라는 특허청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당당 1위로 훈민정음이 선정됐습니다. 25개의 후보작 가운데 30%가 넘는 누리꾼의 선택을 받은 건데요. 응답자들 반응을 보면요. ‘세종대왕과 신하, 국민이 함께 만든 상생의 이모티콘’, ‘한국인의 자부심과 긍지가 느껴지는 최고의 발명’, ‘이렇게 글을 적게 해주신 세종대왕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등의 글을 남겨 훈민정음을 아주 극찬을 했었습니다.

◇ 최형진: 그렇군요. 훈민정음, 한글이 우리나라 최고의 발명품이란 데는 많은 분들이 동의하실 것 같은데요. 이건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잖아요?

◆ 박성우: 물론입니다. 한국인이 생각하는 가장 위대한 발명품, 훈민정음은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는데요. 유네스코는 1997년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했고요. 또 유네스코에서는 1990년부터 매년 문맹 퇴치에 공헌한 사람들에게 ‘세종대왕 문맹 퇴치상(King Sejong Literacy Prize)’을 주고 있습니다. 그만큼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가장 배우기가 쉬워서 문맹을 없애기에 최적의 글자라는 것을 세계가 인정한 겁니다.

◇ 최형진: 그러고 보니까 문자가 없는 나라에서 우리 한글을 공식문자로 사용한다는 뉴스도 종종 나오잖아요.

◆ 박성우: 그렇습니다. 아시다시피 인도네시아 북부 지방의 찌아찌아 부족에게 한글을 전파한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지요. 말은 있지만 문자가 없는 나라나 부족들이 한글을 사용하려는 시도를 지금도 하고 있다고 하구요. 또 한류 열풍 때문에 세계적으로 한글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이처럼 한글을 배우려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고, 또 기능적인 우수함뿐만 아니라 한글의 모양 자체를 아름답다고 느끼는 경우도 많다고 하는데요. 예를 하나 들어보면요. 최근에 BTS가 맥○날드와 협업을 하면서 전 세계 49개국에서 'BTS 밀'이란 메뉴를 한정판으로 선보였는데요. 이 기간 동안 전 세계 맥○날드 직원들은 'ㅂㅌㅅㄴㄷ' 또는 'ㅁㄷㄴㄷ'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일을 했다고 합니다. 아나운서님 방금 제가 말한 이 자음(초성)들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습니까.

◇ 최형진: 아, 방탄소년단, 맥도날드의 자음을 딴 거군요.

◆ 박성우: 그렇습니다. 이렇게 한글 자음만 적어놔도 그게 디자인적으로 가치가 있다는 거죠. 실제로 해외 유명 패션 브랜드에서 한글을 활용한 아이템을 선보이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이렇게 기능성과 독창성, 거기다가 아름다움까지 두루 갖춘 한글의 매력에 푹 빠진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요. 이쯤 되면 심사관인 제 입장에서는 말이죠.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 한글이라면 한글을 활용해서 특허는 물론이고 상표, 디자인 출원까지 다 해야 되는 거 아닌가 말이죠.

◇ 최형진: 심사관님 색다른 접근이네요, 한글도 특허출원을 할 수 있는 겁니까? 독창성을 생각하면 가능할 것도 같은데 개발하신 분들이 돌아가셔서 가능할까 싶거든요?

◆ 박성우: 자~ 그래서 오늘도 박성우의 알쓸특잡 들어갑니다. 먼저 특허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거나 되는 게 아니고, 그 대상은 반드시 발명이 되어야 하구요. 특허가 되기 위한 발명은 ‘자연법칙’을 이용한 것이어야 한다는 대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여기서 ‘자연법칙’이라고 하면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웠던 수많은 거창한 물리적·화학적 법칙들도 당연히 있겠고요, 거기다가 일반적인 경험칙에 의해서 알 수 있는 것으로서 일정한 원인에 의해서 일정한 결과가 발생되는 것, 인과율, 예를 들면,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떨어진다. 통나무는 물위에 뜬다 등등 이지요. 그래서 이를 근거로 놓고 본다면 훈민정음 같이 ‘사회적 약속(합의)’의 성격이 강한 문자(자모) 체계 자체를 특허로 등록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심사관인 저로서는 고개가 갸우뚱해지고요. 다만, 글자를 이용한 어떠한 물건이나 장치 또는 방법 같은 거는 특허대상이 될 수 있다 하겠습니다.

◇ 최형진: 그런가요. 훈민정음을 최고의 발명품으로 보는 한 명으로 좀 아쉬운 마음도 드는데요. 혹시 이 훈민정음을 특허로 출원하려는 시도 같은 건 없었나요?

◆ 박성우: 네, 문자 체계 자체를 특허출원한 적은 없었지만요. 글자를 이용한 학습 발명을 출원한 사례가 있었는데요. 10여년 전에 특허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마법천자문’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나운서 님 혹시 ‘마법천자문’이란 책을 아십니까?

◇ 최형진: 저는 생소한 작품입니다만...

◆ 박성우: ‘마법천자문’은 어려운 한자를 손오공의 모험 이야기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서 놀이하듯이 쉽게 외울 수 있도록 한 한자학습용 만화책입니다. 가령 예를 들면~ 바람 풍(風)자 같은 경우에는 주인공들이 '불어라, 바람 풍(風)'하고 외치면서 마법을 쓰면 ‘휙 하고’ 바람이 불고요, 열 개(開)자 같은 경우는 '열려라, 열 개(開)' 하면 문이 열리는 식으로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한자를 쉽게 기억하는 방식인데요. 2003년 첫 권을 발행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계속 시리즈로 발간하게 되면서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했고요. 그러자 해당 출판사에서는 이 책 시리즈를 저작권뿐만 아니라 특허로도 보호받기 위해서 2005년 5월 특허출원을 하게 되었던 거지요.

◇ 최형진: 책은 저작권 아닙니까? 무엇에 대한 특허인 건가요?

◆ 박성우: 먼저 저작권이라 함은, 인간의 감정이나 사상을 표현한 창작물인 저작물에 대한 배타적, 독점적 권리를 말하는 것이고요. 특허라 함은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기술적 사상의 창작물인 발명에 대한 배타적, 독점적 권리라는 점 말씀드리고요. 앞에서 언급한 ‘마법천자문’은 특정한 스토리 전개와 화면 구성을 통한 한자교육 방법에 대해서 특허를 낸 건데요. 이미지 인식과정은 기억이나 연상작용의 효율이 높다고 하는 경험칙(인과율)을 근거로 볼 때, 한자와 관련된 만화를 삽입하고, 시각적 배치를 유기적으로 구성하고 그로 인해 한자 학습효과를 높이는 효과가 인정되어 자연법칙을 이용한 발명으로 특허대상은 된다 하겠습니다.

◇ 최형진: 그래요? 세상에 그런 발명, 특허도 있군요. 그래서 어떻게. 특허가 등록이 됐나요?

◆ 박성우: 네, 전례가 없는 유형의 특허출원이라 갑론을박이 있었는데요. 특정한 내용 구성을 통해서 학습효과를 높이는 효과가 인정돼서, 2006년 6월에 일단은 특허 등록이 됐습니다.

◇ 최형진: 책도 특허 등록이 가능한 거였군요.

◆ 박성우: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2007년 한 방송사에서 ‘마법천자문’과 유사한 내용의 한자교육 애니메이션을 방영한 적이 있는데요.. ‘마법천자문’ 출판사 측에서는 방송사에게 특허침해 경고장을 보냈고, 방송사에서는 특허등록무효심판을 청구하면서 맞섰는데요. 1심(심판원)(지방법원에 해당)에서는 ‘마법천자문’ 출판사가 승소했지만, 2심(특허법원)(고등법원에 해당)에서는 상대 회사가 "‘마법천자문’이 특허 출원 전에 발행이 되어서 신규성을 상실해서 무효"라고 주장했고, 재판부는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서 《마법천자문》 특허를 발명으로 인정하면서도 신규성 상실로 등록무효 판결을 내렸습니다.

◇ 최형진: 등록된 특허가 취소된 거네요? 그 이유가 ‘신규성이 없어서 무효’라는 건데, 이건 어떤 의민가요?

◆ 박성우: ‘마법천자문’ 책이 출판되고 난 뒤에야 특허 출원을 했기 때문에, 이미 책의 내용이 공개가 됐다는 거지요. 특허라는 것은 새로운 기술을 공개하는 대가로 독점권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이미 공개된 기술은 새로운 것이 아니어서 특허를 받지 못하는 것이 대원칙입니다. 물론 공개한 자가 출원자 또는 발명자 자기 자신이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당히 잔혹하지요. 그래서 특허법에서는 약간의 숨 쉴 구멍을 두었는데요. 만약에 어쩔 수 없이 공개를 하고 난 뒤에 출원을 하려면 공개된 후 1년 안에만 출원을 하게 되면 공개된 그 건은 저의 특허청에서는 공개가 안 될 걸로 간주하고 심사하겠다는 ‘공지예외주장’도 있음을 아울러 말씀드립니다.

◇ 최형진: 그런 원칙이 또 있었나요. 어렵게 받은 특허가 무효가 됐다니 안타깝네요. 아무튼 어려운 소송 이야기는 뒤로 하고,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어쨌든 특정한 한자교재와 교육방법이 특허가 될 수 있다고 인정을 받았다는 거네요. 한글도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만들어진 거니까 마법천자문 사례와 통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은데요?

◆ 박성우: 그렇습니다. 두 달 가까이 저랑 함께해오다 보니까 아나운서님도 특허를 보는 눈이 예리해지신 것 같은데요. 한글 자체는 특허가 어렵지만 그 한글의 제작원리가 수록된 일종의 발명노트라고 할 수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과학적 원리를 통해서 글자를 쉽게 학습할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특허로 내 볼 만하다고 주장한다면?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 최형진: 그렇군요. 결국 ‘한글도 특허를 받을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서 기다, 아니다 확답을 하기는 어렵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결론을 내려도 될까요?

◆ 박성우: 그렇습니다. 한글 자체는 어렵지만, 한글을 이용한 기술은 특허대상으로 가능하다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특허를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논쟁은 특허제도가 탄생한 이래로 쭉 계속돼 왔는데요. 특허의 역사는 그 대상이 끊임없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하나의 예로 신의 영역을 도전해서 세계 최초로 생명체에도 특허가 허용된 사례가 있습니다. 제너럴일렉트릭사의 미생물학자 차크라바티 이름을 따서 차크라바티 사건이라고 하는데요. 지금부터 40년 전인 1980년 미국에서는 유전자 변형을 통해 새로 만들어진 인공 박테리아에 대해 처음으로 특허를 인정했는데요. 그 당시에는 이 판결이 박테리아와 같은 생명체에 특허를 줄 수 있는지 논쟁을 불러왔지만, 이후 바이오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당시 미 연방대법원의 판결문에는 지금도 특허계에서는 인구에 회자되는 유명한 명언이 등장합니다. “태양 아래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특허의 대상이다”가 바로 그것입니다.

◇ 최형진: 그렇군요. 저도 아까 책의 내용 구성에 대해서 특허를 받았다고 해서 ‘이런 것도 특허가 될 수 있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하늘 아래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이 특허가 될 수 있는 만큼, 아이디어가 생기면 즉시 특허출원부터 해서 소중한 지식재산을 보호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박성우: 고맙습니다.

YTN 이은지 (yinzhi@ytnrad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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