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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몽골 침입 당시, 강화로 수도를 옮긴 고려 왕이 사용한 건물에서 대형 온돌방을 만든 흔적이 확인됐습니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강화도 묘지사 절터에서 전통 난방 방식인 온돌을 사용한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강화도에서 방에 부분적으로 온돌이 설치된 흔적이 발견된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방 전체에 온돌이 깔린 '전면 온돌'의 형태를 확인한 건 드문 경우라고 연구소는 설명했습니다.
강화 묘지사는 1264년 고려 원종이 참성단에서 초제를 지내기 전 거처했다는 기록이 있는 사찰로, 연구소가 절터 추정지에서 건물터를 확인한 결과, 동쪽 일부를 제외한 방 전체에 온돌이 깔린 흔적이 나왔습니다.
건물터는 동서 너비 16.5m, 남북 길이 6.3m에 이릅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구들을 달구는 방식인 온돌은 기원전 발명된 난방방식이지만, '쪽 구들'이 아닌 전면 온돌은 고려 후기에 정착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YTN 이승은 (selee@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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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묘지사는 1264년 고려 원종이 참성단에서 초제를 지내기 전 거처했다는 기록이 있는 사찰로, 연구소가 절터 추정지에서 건물터를 확인한 결과, 동쪽 일부를 제외한 방 전체에 온돌이 깔린 흔적이 나왔습니다.
건물터는 동서 너비 16.5m, 남북 길이 6.3m에 이릅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구들을 달구는 방식인 온돌은 기원전 발명된 난방방식이지만, '쪽 구들'이 아닌 전면 온돌은 고려 후기에 정착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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