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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으로 모든 것이 무너지며 아수라장이 된 세상, 만약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청한다면 당신은 기꺼이 문을 열어 그를 집 안으로 들일 수 있을까?
당장 오늘 퇴근길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건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지독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현실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관객에게 던지는 작품이다.
오는 9일 개봉을 앞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유일하게 남은 단 한 채의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장편 ‘잉투기’(2013)와 ‘가려진 시간’(2016)을 비롯해, 숱한 단편을 통해 탄탄하게 연출력을 다져온 엄태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이병헌 씨를 비롯해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박지후, 김도윤 씨 등 걸출한 출연진이 의기투합해 제작단계부터 주목 받았다.
동장군의 매서운 기세에 모든 것이 얼어붙은 2020년 12월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지진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136세대, 219명 주민의 생존기를 그린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아파트로 모여드는 외부인들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콘크리트 안에 그들 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간다.
엄태화 감독은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불과 세 번째 장편 연출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탄탄하고 빼어난 연출력으로 관객을 몰아붙인다. 그는 자칫 허무맹랑하고 판타지처럼 보일 수 있는 세기말의 분위기, 종말이 코 앞에 온 상황을 누구보다 현실감 높게 그려낸다.
빛의 질감을 비롯해 명암의 대비와 깊이 등을 영리하고 계산적으로 활용한 것은 물론이고 매 순간 상황에 맞는 적절한 음악과 효과음으로 극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극대화한다.
무엇보다 단단하고 밀도 높게 핍진성(逼眞性)을 확보해 이야기에 힘을 싣는 덕분에 관객은 작품을 보는 내내 점점 더 영화에 빠져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옥도를 방불케 하는 상황에서도 자가(自家)와 전세를 구분하는 모습은 마치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화상 같고, 나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정당화하는 양면적이고 모순된 모습 또한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이고 부끄러운 줄 알라고 힐난하지만 실상 그것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상황은 소름 돋을 정도로 지금 우리네 모습을 반영한다. 씁쓸함을 넘어 쓰디쓴 텁텁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특히 각 등장인물의 활용과 더불어 이를 소화한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일품이다.
902호 영탁(이병헌)을 비롯해, 602호 민성(박서준)·명화(박보영) 부부, 1207호 금애(김선영)와 809호 도균(김도윤), 903호 혜원(박지후)까지. 이들 모두는 어둡고 암울하며 절망과 공포가 만연한 상황에서 계속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하지만 어떤 선택도 감히 비난할 수 없으며,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단순히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덕분에 관객은 이들을 보며 자연스레 본인을 대입하거나 우리 주변 누군가를 떠올린다. 자연스레 관객이 한층 더 공감하고 몰입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맹목적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눈 깜짝할 새 광기에 휩싸이는 이들의 모습이나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이타심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까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매일같이 뉴스의 사회면에서 보던 그들과 다름없다.
이처럼 캐릭터가 하나같이 현실에 단단하게 발을 붙이고 서 있게 하는 데에는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가 한몫했다. 모든 배우가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는 가운데, 역시나 눈에 띄는 것은 이병헌 씨의 경이로운 연기다. 높은 집중도로 캐릭터와 하나 된 그의 모습은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표정을 상실하며 점차 변해가는 박서준 씨의 모습이나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김선영 씨, 김도윤 씨의 섬세한 연기 또한 보는 맛을 더한다. 여기에 박보영, 박지후 씨 등은 세밀한 눈빛 연기를 통해 빈틈없이 캐릭터를 소화하며 작품의 공백을 느낄 수 없게 한다.
드라마, 스릴러, 미스터리, 서스펜스, 공포 여기에 결코 웃을 수 없는 웃음. 다채롭고 복합적인 장르적 쾌감 위에 촘촘한 서사와 발군의 연기력으로 극을 움직이는 배우들의 조합까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마치 한국형 디스토피아 장르의 시작을 알리는 듯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한다.
콘크리트 마냥 단단하게 얼어붙은 한국 영화 시장을 깨울 유토피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희망을 걸어볼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엄태화 감독 연출. 배우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박지후, 김도윤 출연. 러닝타임 130분. 15세 관람가. 2023년 8월 9일 극장 개봉.
YTN 김성현 (jamkim@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당장 오늘 퇴근길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사건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지독할 정도로 사실적이고, 고개를 돌려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현실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관객에게 던지는 작품이다.
오는 9일 개봉을 앞둔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대지진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서울, 모든 것이 무너졌지만 유일하게 남은 단 한 채의 아파트로 생존자들이 모여들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장편 ‘잉투기’(2013)와 ‘가려진 시간’(2016)을 비롯해, 숱한 단편을 통해 탄탄하게 연출력을 다져온 엄태화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 이병헌 씨를 비롯해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박지후, 김도윤 씨 등 걸출한 출연진이 의기투합해 제작단계부터 주목 받았다.
동장군의 매서운 기세에 모든 것이 얼어붙은 2020년 12월 겨울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지진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136세대, 219명 주민의 생존기를 그린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아파트로 모여드는 외부인들로부터 ‘생존하기 위해’ 콘크리트 안에 그들 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간다.
엄태화 감독은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불과 세 번째 장편 연출작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탄탄하고 빼어난 연출력으로 관객을 몰아붙인다. 그는 자칫 허무맹랑하고 판타지처럼 보일 수 있는 세기말의 분위기, 종말이 코 앞에 온 상황을 누구보다 현실감 높게 그려낸다.
빛의 질감을 비롯해 명암의 대비와 깊이 등을 영리하고 계산적으로 활용한 것은 물론이고 매 순간 상황에 맞는 적절한 음악과 효과음으로 극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극대화한다.
무엇보다 단단하고 밀도 높게 핍진성(逼眞性)을 확보해 이야기에 힘을 싣는 덕분에 관객은 작품을 보는 내내 점점 더 영화에 빠져드는 경험을 하게 된다.
지옥도를 방불케 하는 상황에서도 자가(自家)와 전세를 구분하는 모습은 마치 오늘날 대한민국의 자화상 같고, 나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정당화하는 양면적이고 모순된 모습 또한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이고 부끄러운 줄 알라고 힐난하지만 실상 그것이 메아리처럼 되돌아오는 상황은 소름 돋을 정도로 지금 우리네 모습을 반영한다. 씁쓸함을 넘어 쓰디쓴 텁텁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특히 각 등장인물의 활용과 더불어 이를 소화한 배우들의 연기 역시 일품이다.
902호 영탁(이병헌)을 비롯해, 602호 민성(박서준)·명화(박보영) 부부, 1207호 금애(김선영)와 809호 도균(김도윤), 903호 혜원(박지후)까지. 이들 모두는 어둡고 암울하며 절망과 공포가 만연한 상황에서 계속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하지만 어떤 선택도 감히 비난할 수 없으며, 등장인물 중 그 누구도 단순히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는 구분되지 않는다. 덕분에 관객은 이들을 보며 자연스레 본인을 대입하거나 우리 주변 누군가를 떠올린다. 자연스레 관객이 한층 더 공감하고 몰입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맹목적 이기주의에 함몰되어 눈 깜짝할 새 광기에 휩싸이는 이들의 모습이나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이타심으로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까지.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우리가 매일같이 뉴스의 사회면에서 보던 그들과 다름없다.
이처럼 캐릭터가 하나같이 현실에 단단하게 발을 붙이고 서 있게 하는 데에는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가 한몫했다. 모든 배우가 제 역할을 충실하게 해내는 가운데, 역시나 눈에 띄는 것은 이병헌 씨의 경이로운 연기다. 높은 집중도로 캐릭터와 하나 된 그의 모습은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표정을 상실하며 점차 변해가는 박서준 씨의 모습이나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김선영 씨, 김도윤 씨의 섬세한 연기 또한 보는 맛을 더한다. 여기에 박보영, 박지후 씨 등은 세밀한 눈빛 연기를 통해 빈틈없이 캐릭터를 소화하며 작품의 공백을 느낄 수 없게 한다.
드라마, 스릴러, 미스터리, 서스펜스, 공포 여기에 결코 웃을 수 없는 웃음. 다채롭고 복합적인 장르적 쾌감 위에 촘촘한 서사와 발군의 연기력으로 극을 움직이는 배우들의 조합까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마치 한국형 디스토피아 장르의 시작을 알리는 듯 새로운 기준점을 제시한다.
콘크리트 마냥 단단하게 얼어붙은 한국 영화 시장을 깨울 유토피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희망을 걸어볼 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엄태화 감독 연출. 배우 이병헌, 박서준, 박보영, 김선영, 박지후, 김도윤 출연. 러닝타임 130분. 15세 관람가. 2023년 8월 9일 극장 개봉.
YTN 김성현 (jamkim@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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