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전두광이 부른 아침이슬 [와이즈픽]

'서울의 봄' 전두광이 부른 아침이슬 [와이즈픽]

2023.11.29. 오후 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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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슬 50주년…배우 황정민의 '고향' 학전 소극장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됐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유신독재라는 긴 겨울이 가고 서울에도 봄이 찾아오는가 했다. 그런데 잠시였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12·12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영화 '서울의 봄'은 이때를 담고 있다. 12·12 때 긴박했던 단 9시간의 이야기. 김성수 감독은 자신의 영화가 "어이없는 그날의 밤 이야기"라고 했다. 주연배우 정우성이 말한 대로라면 영화는 '서울의 봄이 온 게 아니고 서울의 봄은 올까?'라는 역사의 아픔과 큰 안타까움을 담았다.

군사 반란을 일으킨 '전두광'(전두환) 역을 맡은 건 배우 황정민이다. 그는 2년 전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불렀다. 2021년은 한국 대중문화의 거장이자 큰 줄기인 김민기 씨의 노래 '아침이슬' 탄생 50주년이 되던 해였다. 김민기 씨는 1971년 1집 앨범 <김민기>에 '아침이슬'을 담았다. '아침이슬'은 박정희 정권 유신독재 반대 투쟁 때, 87년 민주화운동 때, 그리고 2016년 겨울 광화문 촛불 집회 때도 수많은 사람의 입을 통해 광장을 가득 메웠다.

2년 전 배우 황정민은 박학기, 한영애 등 김민기를 사랑하고 그가 만든 학전 소극장을 고향처럼 여기는 이들과 함께 '아침이슬'을 불렀다. 황정민 또한 학전 소극장 무대에 오른 배우였다. <지하철 1호선>을 통해서다. 학전은 황정민에게도 배우의 삶을 있게 한 수원지이자 고향 같은 곳이다.

학전 소극장 문이 닫힌다…손석희 앵커도 떨게 했던 거장 김민기

'서울의 봄' 개봉 소식과 함께 안타까운 이야기가 전해졌다. 학전 소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다. 폐업 예고까지 됐다. 문을 연 지 33주년이 된 내년 3월 15일 학전의 문이 닫힌다. 1991년 서울 대학로에 학전 소극장 문을 연 김민기 씨는 폐업 소식이 전해진 이후 "제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죽는 날까지 학전을 운영하려 했는데,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말았다"고 했다. 소위 돈 되는 일이 아니니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겠는가? 코로나 위기까지 더해졌으니 소극장 경영은 고된 과정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김민기 씨의 건강 문제까지 찾아왔다. 누구보다 그를 아끼는 이들이 섣불리 '학전 문을 닫으면 절대 안 된다'고 말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학전(學田). '배울 학(學)'에 '밭 전(田)', 김민기 씨가 직접 지은 이름이다. '배우는 밭', '밭이 되어 배움을 전한다'는 뜻이란다. 배우의 일터이자 곧 학교다. 학전은 극단 이름이 되고 극단이 서는 밭이 바로 학전 소극장이었다. 이 무대에 오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다. <지하철 1호선> 자체가 곧 학전이기도 하다. 관객과 가장 가까운 작은 무대에서 태동한 한국형 뮤지컬이다. 창작이 아닌 번안 뮤지컬이다. 뿌리는 독일 베를린에서 흥행했던 '1호선' (Linie 1-Das Musikal)이다. 김민기 씨가 이를 우리식으로 표현해 무대에 올렸다. 지하철 1호선 이후 학전 무대에는 <모스키토>, <의형제>, <개똥이> 등 한국 사회 정서를 녹인 여러 뮤지컬들이 올려졌다.

김민기 씨는 '한참 잘 나가던' <지하철 1호선>을 무대에서 잠시 내린 적이 있었다. 이유는 <학전 어린이 무대> 시리즈를 올리기 위해서다. 그는 무대는 한정되어 있는데 흥행 보장도 안 되는 어린이뮤지컬을 올렸다. 존경스러운 고집이다. 시간이 흐른 뒤 <지하철 1호선>은 다시 무대에 올려졌다. 많은 훌륭한 배우들이 배출됐다. 황정민, 설경구, 김윤석, 그리고 조승우… 그들에게 배우로서의 큰 고향은 학전 소극장이고 작은 고향은 <지하철 1호선>이었다.

학전은 우리 노래의 무대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가수가 바로 '영원한 가객(歌客)' 김광석이다. 그는 학전 소극장 무대에서 1,000회 라이브를 한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들국화, 권진원, 박학기, 동물원, 한영애, 노영심 그리고 스스로 '학전을 고향 같은 곳'이라고 했던 윤도현 등도 학전에서 공연했던 가수다.

5년 전 김민기 씨가 방송 인터뷰에 처음으로 나온 적이 있었다. 이 인터뷰 때 베테랑 손석희 앵커는 많이 떨었다. 인터뷰 시작 때부터 그랬다. 본인 스스로 인정했는데 흔치 않은 일이라고 했다. 그만큼 한국 대중문화 창작자이자 작곡가인 김민기 씨의 존재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다. 손석희 앵커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 대중 음악사가 대하(大河), 큰 강이라면 김민기 씨는 발원지와 같은 존재다.

학전 가수들이 다시 무대를 메운다…한국 문화 발원지 보존을 위해

학전을 스스로 고향이자 밭이라 여기는 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학전 지킴이'이자 싱어송라이터인 박학기 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학전이나 김민기 대표님에게나 '마음의 빚'이 있다"고 말했다. 폐업 예고 소식 이후 이에 공감하는 이들이 무대에 오른다.

내년 2월 28일부터 3월 14일까지 릴레이 콘서트가 열린다. 학전의 부활을 응원하기 위해서다. 박학기, 윤도현, 알리, 동물원, 장필순, 권진원, 유리상자, 이한철, 이은미, 자전거 탄 풍경(자탄풍), 여치, 시인과 촌장, 크라잉넛, 유재하동문회, 하림, 이정선, 노찾사, 한상원밴드, 최백호, 한영애 등이 노래를 이어간다. 물론 출연료는 없다. 학전 무대에 올랐던 배우들도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 이들이 학전이란 밭에 다시 씨앗을 뿌린다.

학전 소극장은 더 이상 김민기 씨 개인만의 것이 아니다. 3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유지된 한국 대중문화의 수원지이자 발원지다. 공적인 우리 문화의 자원이 셈이다. 김민기씨를 사랑하는 사람, 학전을 찾았던 사람, 아침이슬을 따라 부르는 사람, 대학로에 추억을 얹힌 사람, 그리고 이들로부터 크고 작은 영감을 받은 많은 이들에게 학전은 곧 '배움의 밭'이었다. 봄의 폐업이 아닌 사계절 내내 보존되어야 하는 이유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YTN 배인수 (insu@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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