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영화이야기] 우리의 부모들은 지금 어디에...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윤성은의 영화이야기] 우리의 부모들은 지금 어디에...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

2024.10.11. 오후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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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I want to know your parents)│2002
감독 : 김지훈 │ 주연 : 설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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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포스터


10월 16일에 개봉하는 허진호 감독의 신작, ‘보통의 가족’은 자녀들이 저지른 범죄를 두고 갈팡질팡하는 부모들의 이야기다. 사실 갈팡질팡한다기 보다는 어떻게든 아이들을 범죄자로 만들지 않으려고 우왕좌왕 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두 쌍의 부부가 저마다 내적 갈등을 겪기도 하고, 그 때문에 첨예한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하지만 선택의 고비마다 우세한 것은 윤리보다 자녀들의 안위와 미래다. 지극히 한국적 맥락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본래 네덜란드 작가인 헤르만 코흐의 소설, ‘더 디너’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게다가 ‘더 디너’는 2014년에 이탈리아 영화로도 만들어졌고, 할리우드에서도 리처드 기어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진 바 있다. 망가진 아이들보다 그런 자녀들조차 감싸기에만 급급한 부모들이 더 무섭게 느껴지는 것은 전세계적인 현상인 것 같다.

▲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스틸컷


유사한 주제의식을 가진 영화와 드라마가 꽤 있지만,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감독 김지훈, 2022, 이하 ‘니 부모’)라는 영화가 제목부터 가장 직설적이다. 하타사와 세이고의 희곡을 원작으로 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연극으로 먼저 알려졌다. 버릇 없는 아이들을 볼 때 한국에서 ‘니 아버지가 누구시냐’고 하는 것처럼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는 비슷한 경우, 일본에서 많이 쓰는 관용구다. 이처럼 유교 문화권에서 부모를 들먹이는 것은 엄청난 모욕인데, 영화를 보고 나면 그 표현이 어느 정도 정당하게 느껴진다. 자녀의 악행이 상당 부분 부모로부터 대물림된 것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스틸컷


‘니 부모’는 으리으리한 명문 국제중학교에서 사회적 배려 대상자 학생 한 명이 자살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건우’는 학교폭력 때문에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며 같은 반 친구 4명의 이름이 적힌 편지를 남기고 절벽에서 호수로 몸을 던진다. 다음 날 그는 의식불명상태로 발견되고, 가해 학생들의 부모들이 교장실로 소환된다. 건우의 편지 때문에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부모들은 저마다 아이들의 학폭 증거를 인멸하고 사건의 관계자들을 구워삼느라 분주하다. 접견 변호사인 ‘강호창’(설경구) 또한 별다른 갈등 없이 병원이사장인 ‘도지열’(오달수), 이 학교의 학생주임인 ‘정선생’(고창석), 전직 지방경찰청장 ‘박무택’(김홍파) 등에 동조해 아들 ‘한결’(성유빈)의 죄를 덮기에 바쁘다. 그러나 기간제 담임교사인 ‘송정욱’(천우희)의 양심선언으로 아이들은 경찰조사를 받게 되고, 그 과정에서 호창은 한결이 재판의 희생양이 되었음을 알게 된다. 하루 아침에 가해자들 중 한 명에서 유일한 가해자가 된 한결 때문에 호창은 억울한 피해자의 심정으로 아들을 변론하기 위한 법정에 선다.

▲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스틸컷


영화는 거의 마지막까지 답답한 상황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아이들의 폭력 장면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고, 그런 자녀들을 꾸짖기는커녕 잘못을 덮어주기 바쁜 부모들은 섬뜩하다. 가진 자들의 카르텔에 놀아나며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재판정의 풍경도 참담하긴 마찬가지다. 호사스런 국제중학교의 전경과 지나치게 깔끔한 미장센이 정서적 몰입을 방해하기도 하고, 인물의 윤리의식을 경제력에 반비례시킨 부분이 도식적이기는 해도 가지지 못한 자들이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라는 데 대한 경고, 동시대의 자녀 교육에 일침을 놓기에는 좋은 텍스트다. 전반적인 만듦새도 나쁘지 않다. 절제된 음악과 편집이 자극적인 장면들의 충격을 흡수하고, 촬영도 안정적이다. 설경구, 오달수, 천우희, 문소리 등 배우들 또한 그들의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다. 여기서 호창역을 맡았던 설경구가 ‘보통의 가족’에서 다시 한 번 자녀의 범죄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변호사로 분했다는 사실은 꽤 흥미롭다. 그가 동년배들 중 지적이고 부유한 십대의 아버지 역할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배우임에는 분명해 보인다. ‘보통의 가족’에서 그가 연기한 ‘재완’ 또한 호창처럼 몰랐던 사실이 밝혀질 때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는, 감정 기복이 큰 인물이다. 공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맘을 졸이게 만드는 영화로서 ‘보통의 가족’과 ‘니 얼굴’의 비교도 흥미롭겠지만, 한 배우가 연기한 재완과 호창 캐릭터를 비교해 보는 것도 좋은 관람 포인트가 될 것이다.

▲ 영화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스틸컷



■ 글 :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 전주국제영화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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