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위키드(Wicked)│2024
감독 : 존 추 │ 주연 : 아리아나 그란데, 신시아 에리보
감독 : 존 추 │ 주연 : 아리아나 그란데, 신시아 에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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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위키드’(존 추, 2024)는 프랭크 바움이 1900년에 출간한 ‘오즈의 마법사’의 전사를 다루고 있다.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착한 마녀와 나쁜 마녀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또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는 벽돌길은 왜 노란색이 되었는지 ‘위키드’에 잘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계보를 따져 보면 영화 ‘위키드’는 뮤지컬 ‘위키드’를 영화화 한 것이고, 뮤지컬 ‘위키드’는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소설, ‘위키드’(1995)를 각색한 작품이다. 그러니까 ‘오즈의 마법사’가 출간된 지 95년 후에 다른 작가로부터 탄생한 소설 ‘위키드’는 사실 공식적인 프리퀄은 아니다. 두 작품은 스타일에서부터 많은 차이가 난다. ‘오즈의 마법사’가 동심을 풍부하게 만드는 판타지 동화라면, 소설 ‘위키드’는 여러 면에서 수위가 높다. 그러니 프랭크 바움의 동화와 유사한 분위기일 거라 생각하고 ‘위키드’를 읽기 시작한다면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첫 챕터부터 남편이 집을 비울 때마다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맺는 아내의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관심은 훨씬 철학적인 데 있다. 그래서 소설 ‘위키드’는 종교와 정치가 어떻게 결탁하고 서로 닮아가는지부터 선악의 모호한 구분, 인간의 변화와 성장 등에 대해 집요하게 다룬다. ‘오즈의 마법사’의 세계관을 ‘나니아 왕국’ 같은 판타지 시리즈만큼 방대하게 확장시켜 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위키드’가 이런 작품이 된 것은 ‘오즈의 마법사’가 본래 19세기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내포하고 있는 동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에메랄드 시티는 워싱턴 D.C를, 착한 마녀와 나쁜 마녀는 각각 선한 지도자와 부패한 지도자 및 기업가를, 마법사는 실제로는 무능력하지만 겉으로 강력해 보이려 애쓰는 정치인을 의미한다. 또한, 노란 벽돌길과 동쪽 마녀의 은색 구두는 당시 경제계에서 한창 논쟁거리였던 금본위제와 은본위제를 은유하고 있으며,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 사자 등은 당시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노동자들을 빗댄 캐릭터였다. 소설 ‘위키드’는 이러한 원작의 맥락을 고려해 사회적, 경제적, 철학적 쟁점을 더 심화시킨 것이다.
한편, 2003년에 초연된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는 소설을 매우 순화시켜 각색한 작품이다. 뮤지컬에서는 소설 ‘위키드’의 다양한 인물 관계 및 복잡한 내러티브가 훨씬 단순해졌으며, 어둡고 음울한 톤 대신 코미디가 더해져 밝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탈바꿈되었다. 여기에 화려한 세팅과 의상은 물론, 뮤지컬계에서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는 스티븐 슈왈츠의 노래까지 더해져 ‘위키드’는 브로드웨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린 뮤지컬이 되었다.
영화 ‘위키드’도 뮤지컬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지난 11월에 개봉한 ‘위키드’는 ‘파트1’에 해당하는데, 뮤지컬의 1막과 마찬가지로 ‘엘파바’(신시아 에리보)와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가 과거에 어떤 관계였으며 왜 헤어지게 되는지 두 사람의 만남, 갈등, 우정, 성장, 결별의 모든 과정을 담고 있다. 무대의 제약을 뛰어넘는 스크린의 특성으로 인해 마법이 통하고 동물이 말하는 세상을 훨씬 자유롭고 실감나게 표현한 것이 차이점이다.
그러나 대중성을 앞세운 뮤지컬과 영화에도 원작 소설의 몇몇 테마들은 살아있다. 가령, 영화 초반부에 ‘악은 만들어지는가, 아니면 타고 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는데, 이것은 ‘위키드’의 서사 아래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는 중요한 모티브다. 또한, 엘파바의 초록색 피부를 조롱하고 따돌리는 아이들, 지금껏 인간과 평등한 삶을 살아왔던 말하는 동물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폭력 사태 등은 동시대에도 일어나고 있는 불평등과 부조리를 떠올리게 한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위정자들의 부당한 명령에 침묵할 것인가 행동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데, 이 중 엘파바는 자신이 타고난 마법사임을 깨닫고 악한 권력에 대항하기로 결심한다. 엘파바가 이 순간 부르는 유명한 넘버,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는 그녀 안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자각, 자신감을 보여주는 노래다.
“난 깨어나 버렸어... 난 중력을 거스르고 있어... 아무도 우릴 끌어내릴 순 없어...
(Too late for second-guessing... I’m defying gravity,.. They’ll never bring us down)”
단순해 보이는 가사지만 물리적, 감정적, 사회적 제약을 초월해 맞서겠다는 강인한 의지가 엿보인다. 이 노래의 의미와 맥락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원작 소설을 읽어보길 권한다.
■ 글 :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 전주국제영화제 이사)
YTN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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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키드’(존 추, 2024)는 프랭크 바움이 1900년에 출간한 ‘오즈의 마법사’의 전사를 다루고 있다.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착한 마녀와 나쁜 마녀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또 에메랄드 시티로 향하는 벽돌길은 왜 노란색이 되었는지 ‘위키드’에 잘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계보를 따져 보면 영화 ‘위키드’는 뮤지컬 ‘위키드’를 영화화 한 것이고, 뮤지컬 ‘위키드’는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소설, ‘위키드’(1995)를 각색한 작품이다. 그러니까 ‘오즈의 마법사’가 출간된 지 95년 후에 다른 작가로부터 탄생한 소설 ‘위키드’는 사실 공식적인 프리퀄은 아니다. 두 작품은 스타일에서부터 많은 차이가 난다. ‘오즈의 마법사’가 동심을 풍부하게 만드는 판타지 동화라면, 소설 ‘위키드’는 여러 면에서 수위가 높다. 그러니 프랭크 바움의 동화와 유사한 분위기일 거라 생각하고 ‘위키드’를 읽기 시작한다면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첫 챕터부터 남편이 집을 비울 때마다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맺는 아내의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펼쳐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레고리 머과이어의 관심은 훨씬 철학적인 데 있다. 그래서 소설 ‘위키드’는 종교와 정치가 어떻게 결탁하고 서로 닮아가는지부터 선악의 모호한 구분, 인간의 변화와 성장 등에 대해 집요하게 다룬다. ‘오즈의 마법사’의 세계관을 ‘나니아 왕국’ 같은 판타지 시리즈만큼 방대하게 확장시켜 놓은 작품이기도 하다.
‘위키드’가 이런 작품이 된 것은 ‘오즈의 마법사’가 본래 19세기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을 내포하고 있는 동화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에메랄드 시티는 워싱턴 D.C를, 착한 마녀와 나쁜 마녀는 각각 선한 지도자와 부패한 지도자 및 기업가를, 마법사는 실제로는 무능력하지만 겉으로 강력해 보이려 애쓰는 정치인을 의미한다. 또한, 노란 벽돌길과 동쪽 마녀의 은색 구두는 당시 경제계에서 한창 논쟁거리였던 금본위제와 은본위제를 은유하고 있으며,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 사자 등은 당시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노동자들을 빗댄 캐릭터였다. 소설 ‘위키드’는 이러한 원작의 맥락을 고려해 사회적, 경제적, 철학적 쟁점을 더 심화시킨 것이다.
한편, 2003년에 초연된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는 소설을 매우 순화시켜 각색한 작품이다. 뮤지컬에서는 소설 ‘위키드’의 다양한 인물 관계 및 복잡한 내러티브가 훨씬 단순해졌으며, 어둡고 음울한 톤 대신 코미디가 더해져 밝고 감동적인 이야기로 탈바꿈되었다. 여기에 화려한 세팅과 의상은 물론, 뮤지컬계에서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리는 스티븐 슈왈츠의 노래까지 더해져 ‘위키드’는 브로드웨이에서 두 번째로 높은 수익을 올린 뮤지컬이 되었다.
영화 ‘위키드’도 뮤지컬을 토대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유사한 성격을 지닌다. 지난 11월에 개봉한 ‘위키드’는 ‘파트1’에 해당하는데, 뮤지컬의 1막과 마찬가지로 ‘엘파바’(신시아 에리보)와 ‘글린다’(아리아나 그란데)가 과거에 어떤 관계였으며 왜 헤어지게 되는지 두 사람의 만남, 갈등, 우정, 성장, 결별의 모든 과정을 담고 있다. 무대의 제약을 뛰어넘는 스크린의 특성으로 인해 마법이 통하고 동물이 말하는 세상을 훨씬 자유롭고 실감나게 표현한 것이 차이점이다.
그러나 대중성을 앞세운 뮤지컬과 영화에도 원작 소설의 몇몇 테마들은 살아있다. 가령, 영화 초반부에 ‘악은 만들어지는가, 아니면 타고 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되는데, 이것은 ‘위키드’의 서사 아래 끊임없이 작동하고 있는 중요한 모티브다. 또한, 엘파바의 초록색 피부를 조롱하고 따돌리는 아이들, 지금껏 인간과 평등한 삶을 살아왔던 말하는 동물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폭력 사태 등은 동시대에도 일어나고 있는 불평등과 부조리를 떠올리게 한다. 엘파바와 글린다는 위정자들의 부당한 명령에 침묵할 것인가 행동할 것인가 하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되는데, 이 중 엘파바는 자신이 타고난 마법사임을 깨닫고 악한 권력에 대항하기로 결심한다. 엘파바가 이 순간 부르는 유명한 넘버, ‘디파잉 그래비티(Defying Gravity)’는 그녀 안에 일어나고 있는 변화와 자각, 자신감을 보여주는 노래다.
“난 깨어나 버렸어... 난 중력을 거스르고 있어... 아무도 우릴 끌어내릴 순 없어...
(Too late for second-guessing... I’m defying gravity,.. They’ll never bring us down)”
단순해 보이는 가사지만 물리적, 감정적, 사회적 제약을 초월해 맞서겠다는 강인한 의지가 엿보인다. 이 노래의 의미와 맥락을 보다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원작 소설을 읽어보길 권한다.
■ 글 :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 전주국제영화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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