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얼빈(HARBIN)│2024
감독 : 우민호 │ 주연 : 현빈, 박정민
감독 : 우민호 │ 주연 : 현빈, 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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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어느 해보다 어수선했던 지난 연말, 드디어 ‘하얼빈’(감독 우민호)이 개봉했다. 대부분의 한국 블록버스터들이 흥행은 물론 비평적으로도 고전을 면치 못하던 상황에서 ‘하얼빈’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만든 안중근 의사의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던 작품이다. 안중근 의사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위인 중 한 사람임에도 그동안 그의 업적을 영화화 한 작품들은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서세원 감독의 ‘도마 안중근’(2004)은 소위 ‘국뽕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고, 전반적인 만듦새가 너무 조악해서 끝까지 보려면 이 영화가 한껏 끌어올리는 애국심조차 바닥이 나버리는 영화였다. 물론 흥행 성적도 약 2만 명 정도로 처참했다. 안중근 의사의 단지 동맹부터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 재판 과정까지 다루는 ‘영웅’(2022)은 뮤지컬 ‘영웅’을 스크린에 옮겨 놓은 작품으로, 천만 감독의 대열에 있는 윤제균 감독의 명성에 걸맞게 오랫동안 극장에 걸리며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는 했다. 그러나 뮤지컬 영화 연출에 있어 경험의 결핍이 그대로 드러나 비평적으로는 박한 점수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하얼빈’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는 이러한 흑역사와 밀착되어 있다.
‘하얼빈’이 좀 다를 것이라 예상한 데는 이 영화가 ‘내부자들’(2015), ‘남산의 부장들’(2020)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의 신작인데다 약 300억의 제작비가 투입되었으며, 현빈, 조우진, 박정민, 이동욱 등 매력적인 출연진까지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연 이 작품은 기대만큼이나 미장센을 비롯한 촬영, 편집, 음악 등 모든 영화적 요소에서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영화의 초점은 대규모 액션신 보다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인 면모와 정서적 고통, 내적 갈등을 드러내는데 맞춰져 있다. 첫 장면에서 얼어붙은 강 위에 안중근 의사가 움츠리고 누워 있는 부감샷은 신아산 전투에서 만국공법을 지켰다가 일본군들의 역습으로 동료들을 잃어버린 후, 고독하고 위축된 그의 정신적, 물리적 상태를 잘 드러낸다. 다소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얼음 위를 가로지르는 기하학적인 선들도 그의 혼란스런 마음을 시각화한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이 비범한 미장센은 서사가 진행되면서 동료들 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의심과 그로 인한 균열의 이미지로도 연결된다.
검푸른 빛이 감도는 러시아의 풍광과 미니멀한 세팅의 실내신들에서는 당시 독립군 내부의 분위기 뿐 아니라 엄중하고도 비밀스러운 그들 임무의 성격을 느낄 수 있다. 겉멋 없이 최대한 차분하게 피사체를 잡아내는 카메라, 명암의 대비가 강한 표현주의적 조명이 러시아 고전 영화처럼 고상하면서 비장하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김지운 감독의 ‘밀정’(2016)도 엿보인다. 기차 안 액션신과 밀정을 색출하는 장면들은 ‘밀정’에서의 그것과는 다분히 다른 스타일로 연출되었지만, 유사한 긴박감을 이끌어낸다. 결말을 아는 이야기인데도 끝까지 숨죽여 보게 만드는, 흡입력이 강한 작품이다.
다만, 작품성과는 별개로 대중들이 갈망해 왔던 영화인지는 질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관조적인 스타일을 택한 ‘하얼빈’은 결말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장면조차 직부감샷으로 보여주는 강수를 두었다. 악인을 처단하는 장면이지만 관객들이 짜릿함을 느끼기에는 거리감이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 당하는 장면도 조용하다. 여느 영화들처럼 시간을 끌거나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슬픔과 분노가 올라와야 할 장면이 가슴이 뜨거워질 여유조차 거의 없도록 연출된 것이다. 이처럼 가능한 감정을 배제함으로써 ‘하얼빈’이 대다수의 위인 영화와는 다른 차별성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대와 안중근 의사에 대한 우리 민족의 보다 보편적인 정서를 부러 끌어내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영화를 보면서 어느 정도 감정의 배설(카타르시스)을 원했던 관객들에게는 꽤 차갑거나 혹은 다소 섭섭한 영화로 기억되지 않을까.
■ 글 :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 전주국제영화제 이사)
YTN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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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느 해보다 어수선했던 지난 연말, 드디어 ‘하얼빈’(감독 우민호)이 개봉했다. 대부분의 한국 블록버스터들이 흥행은 물론 비평적으로도 고전을 면치 못하던 상황에서 ‘하얼빈’은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만든 안중근 의사의 영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을 갖게 했던 작품이다. 안중근 의사는 한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위인 중 한 사람임에도 그동안 그의 업적을 영화화 한 작품들은 별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서세원 감독의 ‘도마 안중근’(2004)은 소위 ‘국뽕영화’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고, 전반적인 만듦새가 너무 조악해서 끝까지 보려면 이 영화가 한껏 끌어올리는 애국심조차 바닥이 나버리는 영화였다. 물론 흥행 성적도 약 2만 명 정도로 처참했다. 안중근 의사의 단지 동맹부터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 재판 과정까지 다루는 ‘영웅’(2022)은 뮤지컬 ‘영웅’을 스크린에 옮겨 놓은 작품으로, 천만 감독의 대열에 있는 윤제균 감독의 명성에 걸맞게 오랫동안 극장에 걸리며 손익분기점을 넘기기는 했다. 그러나 뮤지컬 영화 연출에 있어 경험의 결핍이 그대로 드러나 비평적으로는 박한 점수를 얻을 수밖에 없었다. ‘하얼빈’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는 이러한 흑역사와 밀착되어 있다.
‘하얼빈’이 좀 다를 것이라 예상한 데는 이 영화가 ‘내부자들’(2015), ‘남산의 부장들’(2020)을 연출한 우민호 감독의 신작인데다 약 300억의 제작비가 투입되었으며, 현빈, 조우진, 박정민, 이동욱 등 매력적인 출연진까지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과연 이 작품은 기대만큼이나 미장센을 비롯한 촬영, 편집, 음악 등 모든 영화적 요소에서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준다. 영화의 초점은 대규모 액션신 보다 안중근 의사의 인간적인 면모와 정서적 고통, 내적 갈등을 드러내는데 맞춰져 있다. 첫 장면에서 얼어붙은 강 위에 안중근 의사가 움츠리고 누워 있는 부감샷은 신아산 전투에서 만국공법을 지켰다가 일본군들의 역습으로 동료들을 잃어버린 후, 고독하고 위축된 그의 정신적, 물리적 상태를 잘 드러낸다. 다소 작위적이기는 하지만 얼음 위를 가로지르는 기하학적인 선들도 그의 혼란스런 마음을 시각화한 이미지로 볼 수 있다. 이 비범한 미장센은 서사가 진행되면서 동료들 사이에 도사리고 있는 의심과 그로 인한 균열의 이미지로도 연결된다.
검푸른 빛이 감도는 러시아의 풍광과 미니멀한 세팅의 실내신들에서는 당시 독립군 내부의 분위기 뿐 아니라 엄중하고도 비밀스러운 그들 임무의 성격을 느낄 수 있다. 겉멋 없이 최대한 차분하게 피사체를 잡아내는 카메라, 명암의 대비가 강한 표현주의적 조명이 러시아 고전 영화처럼 고상하면서 비장하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김지운 감독의 ‘밀정’(2016)도 엿보인다. 기차 안 액션신과 밀정을 색출하는 장면들은 ‘밀정’에서의 그것과는 다분히 다른 스타일로 연출되었지만, 유사한 긴박감을 이끌어낸다. 결말을 아는 이야기인데도 끝까지 숨죽여 보게 만드는, 흡입력이 강한 작품이다.
다만, 작품성과는 별개로 대중들이 갈망해 왔던 영화인지는 질문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관조적인 스타일을 택한 ‘하얼빈’은 결말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장면조차 직부감샷으로 보여주는 강수를 두었다. 악인을 처단하는 장면이지만 관객들이 짜릿함을 느끼기에는 거리감이 있었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 당하는 장면도 조용하다. 여느 영화들처럼 시간을 끌거나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슬픔과 분노가 올라와야 할 장면이 가슴이 뜨거워질 여유조차 거의 없도록 연출된 것이다. 이처럼 가능한 감정을 배제함으로써 ‘하얼빈’이 대다수의 위인 영화와는 다른 차별성을 갖게 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대와 안중근 의사에 대한 우리 민족의 보다 보편적인 정서를 부러 끌어내지 않았다는 점은 아쉽다. 영화를 보면서 어느 정도 감정의 배설(카타르시스)을 원했던 관객들에게는 꽤 차갑거나 혹은 다소 섭섭한 영화로 기억되지 않을까.
■ 글 :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 전주국제영화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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