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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김선영 앵커
■ 출연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NOW]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트로트 대부 송대관 씨가 향년 79세로 별세했습니다. 송대관 씨의 50여 년 트로트 인생, 김헌식 문화평론가 연결해서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평론가님 나와계시죠?
[김헌식]
안녕하세요.
[앵커]
갑자기 별세 소식을 들어서 많은 분들이 오늘 충격을 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송대관 씨가 평소에 지병이 있으셨던 건가요?
[김헌식]
일단 지병이 있었고요. 그간 수술을 서너차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추위 때문인지 컨디션 난조를 호소했고요. 전날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응급실로 이송된 뒤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오전 숨을 거두신 건데 사인은 심장마비로 알려졌고요.
송대관 씨 측은 몸이 좋지 않았지만 호전되고 있었고 운동도 열심히 하셨는데 평소에 공연을 하면서도 무리하지 마시라고 하면 형 모르냐고 하면서 무대를 사랑할 만큼 의지도 강했었는데 갑자기 돌연 세상을 떠나서 더 슬프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앵커]
얼마 후에 음악프로그램 출연하는 스케줄도 잡아놨었던 상황이라고 하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하죠. 태진아 씨 포함해서 설운도 씨도 그렇고 동료 연예인들, 후배들 많은 슬픔에 빠졌을 것 같은데 어떤 애도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습니까?
[김헌식]
워낙 갑작스럽게 사망을 한 상황이기 때문에 애도의 목소리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나 선후배 관계 입장에서 봤을 때 굉장히 친한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특히 4대 천왕이고 불려지는 태진아 씨가 특히나 안타까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전에도 통화를 했었고 서로 잘 지내냐고 물었고 형님 잘 계세요 하면서 안부를 물었다라고 하는데 수술이 잘됐다고 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라고 태진아 씨가 밝히기도 했었고요.
또 얼마 전에 현철 씨가 세상을 떠난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설운도 씨도 선배님은 가셨어도 남겨놓은 노래는 영원히 모두의 가슴속에 간직될 것이다, 이렇게 언급을 해서 어쨌든 슬픔을 동료 선후배 가수들이 밝히고 있습니다.
[앵커]
송대관 씨의 음악 인생도 되돌아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오랜 무명 생활이 있었고 1975년 해뜰날이 히트하면서 인기가수로 도약을 했죠.
[김헌식]
그렇습니다. 1975년 해 뜰 날을 발표를 했고요. 그 이후에 공백기가 있다가 1989년 혼자랍니다를 발표하면서 재기에 성공을 했습니다. 그 뒤에 너무나 잘 아시다시피 정 때문에, 차표 한장, 그리고 큰소리 뻥뻥, 고향이 남쪽이랬지 등 수많은 히트곡들을 연이어 정말 뻥뻥 히트시키면서 대중적인 가수로 자리매김했고 현철, 태진아, 설운도 등과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서 한 세기를 풍미했던 그런 가수였습니다.
[앵커]
히트곡 제조기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곡들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그런 가수였습니다. 남진, 나훈아에 이어서 트로트 전성시대를 이끌어왔는데 송대관 씨 가수 인생 자체도 굉장히 파란만장했잖아요?
[김헌식]
그렇습니다.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를 했는데 무척 살림살이가 팍팍했던 삶이었죠. 가수 성공 목표로 상경할 당시에는 표 살 돈이 없어서 무임승차를 할 정도였고요. 1992년 차표 한장이 크게 히트한 이후에 서울역에서 차비를 몇 배로 돌려준 사연은 유명합니다.
그렇지만 해뜰날이 표절 시비를 받기도 했고 돌연 미국으로 이민 가서 한동안 브라운관에 나타나지 않다가 1989년에 다시 되돌아오면서 재기에 성공을 했었고요. 그렇지만 2010년대에 아내분의 부동산 투자 실패로 사기 혐의에 휩싸이게 되면서 물론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마는 500억 원대의 자산이 은행에 넘어갔고 280억 원대 빚을 지기도 했고 그래서 그 여파로 고령의 나이에게도 행사장을 누비면서 활동을 하면서 이번에 안타까운 비보를 전하게 됐습니다.
[앵커]
그러면 굴곡진 인생을 살았지만 음악으로 희망을 전했던 가수 송대관 씨였는데요. 오늘 설운도 씨가 고인을 애도하면서 트로트가 많은 국민에게 사랑받는 계기를 만든 분이다, 이렇게 고인을 추억하기도 했는데. 많은 분들이 그렇게 기억할 것 같습니다. 어떤 가수보다 대중에게 친근했던 가수다, 이런 기억이 있겠죠.
[김헌식]
일단 송대관 씨의 노래들은 대부분 다 신나고 힘을 주고 희망을 주는 노래들입니다. 해뜰날 같은 경우에도 빈자들의 희망가로 통하기도 했고 모두가 어렵던 시절에 이 노래가 위로이자 앞날을 꿈꾸게 하는 빛나는 등불이었거든요.
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달려가는 모든 분들에게 많은 곡들이 희망을 줬기 때문에 앞으로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항상 희망을 잃지 않는 힘을 주었던 그런 가수로 우리 대중 음악사에 기록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앵커]
끝으로 간략하게 지금 워낙에 경황이 없고 별세 소식이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금 연예계, 문화계 인사들의 목소리는 많이 전해지지 않고 있는 그런 상황인데 문화계, 음악계 동료들에게 송대관 씨 어떻게 기억이 될까요?
[김헌식]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도 믿을 수가 없다, 지금도 눈물이 난다고 하면서 후배들을 보면 등 두드려주고 손잡아주던 선배고 또 신곡을 발표 앞두고서도 천천히 들어주면서 같이 격려를 해 주는 그런 모습을 기억했거든요. 트로트 가수가 유명 한두 명의 가수가 활동하는 독무대로 보여지게 되는데 그렇지만 송대관 씨는 후배들에게 항상 격려해 주고 기회를 줬던 그런 선배 가수로서도 기억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많은 국민에게 음악으로 많은 기쁨을 전해 줬던 트로트의 대부 송대관님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지금까지 김헌식 문화평론가였습니다. 전화연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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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 :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NOW]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아온 트로트 대부 송대관 씨가 향년 79세로 별세했습니다. 송대관 씨의 50여 년 트로트 인생, 김헌식 문화평론가 연결해서 얘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평론가님 나와계시죠?
[김헌식]
안녕하세요.
[앵커]
갑자기 별세 소식을 들어서 많은 분들이 오늘 충격을 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송대관 씨가 평소에 지병이 있으셨던 건가요?
[김헌식]
일단 지병이 있었고요. 그간 수술을 서너차례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추위 때문인지 컨디션 난조를 호소했고요. 전날 서울대병원 응급실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응급실로 이송된 뒤 응급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오전 숨을 거두신 건데 사인은 심장마비로 알려졌고요.
송대관 씨 측은 몸이 좋지 않았지만 호전되고 있었고 운동도 열심히 하셨는데 평소에 공연을 하면서도 무리하지 마시라고 하면 형 모르냐고 하면서 무대를 사랑할 만큼 의지도 강했었는데 갑자기 돌연 세상을 떠나서 더 슬프다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앵커]
얼마 후에 음악프로그램 출연하는 스케줄도 잡아놨었던 상황이라고 하는데 참 안타깝습니다.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하죠. 태진아 씨 포함해서 설운도 씨도 그렇고 동료 연예인들, 후배들 많은 슬픔에 빠졌을 것 같은데 어떤 애도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습니까?
[김헌식]
워낙 갑작스럽게 사망을 한 상황이기 때문에 애도의 목소리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나 선후배 관계 입장에서 봤을 때 굉장히 친한 분들이 많았기 때문에, 특히 4대 천왕이고 불려지는 태진아 씨가 특히나 안타까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전에도 통화를 했었고 서로 잘 지내냐고 물었고 형님 잘 계세요 하면서 안부를 물었다라고 하는데 수술이 잘됐다고 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라고 태진아 씨가 밝히기도 했었고요.
또 얼마 전에 현철 씨가 세상을 떠난 그런 상황이기 때문에 더더군다나 설운도 씨도 선배님은 가셨어도 남겨놓은 노래는 영원히 모두의 가슴속에 간직될 것이다, 이렇게 언급을 해서 어쨌든 슬픔을 동료 선후배 가수들이 밝히고 있습니다.
[앵커]
송대관 씨의 음악 인생도 되돌아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오랜 무명 생활이 있었고 1975년 해뜰날이 히트하면서 인기가수로 도약을 했죠.
[김헌식]
그렇습니다. 1975년 해 뜰 날을 발표를 했고요. 그 이후에 공백기가 있다가 1989년 혼자랍니다를 발표하면서 재기에 성공을 했습니다. 그 뒤에 너무나 잘 아시다시피 정 때문에, 차표 한장, 그리고 큰소리 뻥뻥, 고향이 남쪽이랬지 등 수많은 히트곡들을 연이어 정말 뻥뻥 히트시키면서 대중적인 가수로 자리매김했고 현철, 태진아, 설운도 등과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서 한 세기를 풍미했던 그런 가수였습니다.
[앵커]
히트곡 제조기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곡들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그런 가수였습니다. 남진, 나훈아에 이어서 트로트 전성시대를 이끌어왔는데 송대관 씨 가수 인생 자체도 굉장히 파란만장했잖아요?
[김헌식]
그렇습니다.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를 했는데 무척 살림살이가 팍팍했던 삶이었죠. 가수 성공 목표로 상경할 당시에는 표 살 돈이 없어서 무임승차를 할 정도였고요. 1992년 차표 한장이 크게 히트한 이후에 서울역에서 차비를 몇 배로 돌려준 사연은 유명합니다.
그렇지만 해뜰날이 표절 시비를 받기도 했고 돌연 미국으로 이민 가서 한동안 브라운관에 나타나지 않다가 1989년에 다시 되돌아오면서 재기에 성공을 했었고요. 그렇지만 2010년대에 아내분의 부동산 투자 실패로 사기 혐의에 휩싸이게 되면서 물론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마는 500억 원대의 자산이 은행에 넘어갔고 280억 원대 빚을 지기도 했고 그래서 그 여파로 고령의 나이에게도 행사장을 누비면서 활동을 하면서 이번에 안타까운 비보를 전하게 됐습니다.
[앵커]
그러면 굴곡진 인생을 살았지만 음악으로 희망을 전했던 가수 송대관 씨였는데요. 오늘 설운도 씨가 고인을 애도하면서 트로트가 많은 국민에게 사랑받는 계기를 만든 분이다, 이렇게 고인을 추억하기도 했는데. 많은 분들이 그렇게 기억할 것 같습니다. 어떤 가수보다 대중에게 친근했던 가수다, 이런 기억이 있겠죠.
[김헌식]
일단 송대관 씨의 노래들은 대부분 다 신나고 힘을 주고 희망을 주는 노래들입니다. 해뜰날 같은 경우에도 빈자들의 희망가로 통하기도 했고 모두가 어렵던 시절에 이 노래가 위로이자 앞날을 꿈꾸게 하는 빛나는 등불이었거든요.
또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달려가는 모든 분들에게 많은 곡들이 희망을 줬기 때문에 앞으로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항상 희망을 잃지 않는 힘을 주었던 그런 가수로 우리 대중 음악사에 기록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앵커]
끝으로 간략하게 지금 워낙에 경황이 없고 별세 소식이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금 연예계, 문화계 인사들의 목소리는 많이 전해지지 않고 있는 그런 상황인데 문화계, 음악계 동료들에게 송대관 씨 어떻게 기억이 될까요?
[김헌식]
이자연 대한가수협회장도 믿을 수가 없다, 지금도 눈물이 난다고 하면서 후배들을 보면 등 두드려주고 손잡아주던 선배고 또 신곡을 발표 앞두고서도 천천히 들어주면서 같이 격려를 해 주는 그런 모습을 기억했거든요. 트로트 가수가 유명 한두 명의 가수가 활동하는 독무대로 보여지게 되는데 그렇지만 송대관 씨는 후배들에게 항상 격려해 주고 기회를 줬던 그런 선배 가수로서도 기억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많은 국민에게 음악으로 많은 기쁨을 전해 줬던 트로트의 대부 송대관님의 명복을 빌겠습니다. 지금까지 김헌식 문화평론가였습니다. 전화연결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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