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콘클라베(Conclave)│2025
감독 : 에드워드 버거 │ 주연 : 랄프 파인츠, 스탠리 투치, 존 리스고, 이사벨라 로셀리니
감독 : 에드워드 버거 │ 주연 : 랄프 파인츠, 스탠리 투치, 존 리스고, 이사벨라 로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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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도 사람처럼 운명을 타고 태어난다. 어떤 각본은 때를 잘 만나 투자가 순조롭게 진행되기도 하고, 어떤 프로젝트는 10년이 훌쩍 넘어서야 빛을 보기도 한다. 기획 단계에서는 주목받던 영화가 막상 개봉할 때는 관객들에게 외면당하기도 하고,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만들어진 작품이 크게 흥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기획에서 개봉까지 2년 이상이 걸리는 영화의 운명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개봉 시기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갑자기 출연 배우의 스캔들이 터지거나 전염병이 돌면 그동안 영화에 들어간 비용과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반대로, 제작진이 의도치 않았음에도 사건 사고나 사회적 분위기가 영화를 부각시키는 경우도 있다.
‘콘클라베’(감독 에드워드 버거)는 제목이 말해주듯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의미심장하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퍼져 있을 때 국내에 개봉됐다.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 후보에 올라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시상식 직후로 개봉일을 잡았을 뿐이지만 운명이 영화를 그렇게 인도한 것이다. ‘콘클라베’ 첫 시퀀스에서 임종한 교황은 생전에 다양성을 추구했고 다른 종교와 문화를 포용했다는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겹쳐진다. 또한, 누가 차기 교황으로 적합한가에 대한 고민과 논쟁, 추기경들 사이의 선거운동은 우리네 정치판과 유사한 점이 많다. 특히,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대립하는 장면은 작년 미국 대선에서 있었던 민주당과 공화당의 싸움을 연상시킨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각색상 하나만 수상하는데 그쳤지만 이처럼 여러 정치․사회적 이슈들과 함께 ‘콘클라베’는 개봉 2주도 안 되어 약 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순항 중이다. 이는 작년 11월에 개봉한 올해 아카데미 최다 수상작, ‘아노라’(감독 션 베이커)의 두 배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그러나 ‘콘클라베’는 단지 시기를 잘 만난 영화가 아니라 그 어렵다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훌륭한 작품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로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바 있는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이번에도 외부와 단절된 바티칸을 배경으로 흡입력 강한 정치 스릴러를 완성시켰다. ‘콘클라베’는 가톨릭 교구에 속한 추기경들도 각기 다른 신념을 갖고 있으며, 그 갈등 때문에 콘클라베를 전쟁 치르듯 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신의 대리인으로서 고해성사를 행하는 성직자들도 일반인들 만큼 유혹에 약한 존재들이며, 완전무결하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콘클라베의 단장인 ‘로렌스’(랄프 파인즈)는 스스로 교황이 될 자질이 부족하다고 여겨 자유주의 진영의 ‘벨리니’(스탠리 투치)를 지지한다. 그러나 예상보다 벨리니의 세력이 약하고 보수주의자들의 과오가 하나둘씩 밝혀지자 동요되기 시작한다. 당선이 유력한 후보자들의 흠결을 들추어 나가면서 그러한 행동이 자신의 숨겨진 욕망 때문인지 정의 때문인지 갈등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그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 외부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고 선거판은 또 다른 국면을 맞는다.
소소한 반전의 순간들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웃지 못할 진지한 블랙코미디 연출도 일품이지만 이 영화를 세련되게 가공하는 것은 촬영, 편집, 음악 등 영화의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콘클라베’는 연출자의 주관적인 카메라 워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으며, 앵글과 사이즈만 바뀐다. 음악에도 단 하나의 장식적인 음조차 허용하지 않았으며, 그 공백은 정교한 음향효과가 메우고 있다. 이 강박적이라 할만큼 절제된 형식에 숨통을 틔워주고 서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꽤 빠른 리듬을 타는 편집이다. 이러한 편집은 계속 다음 장면을 궁금해하고 예측하게 만들면서도 종종 그 기대를 깨뜨리면서 관객들을 앞서간다. 종교인들의 추한 민낯을 보여주는데 이처럼 지적이고 고상한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영화는 추기경들의 붉은 색 수단(신부들의 의복)처럼 다소 충겨적인 결말부까지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교황은 누가 뭐래도 선한 사람이 선출되고, 로렌스도 내적 갈등과 부담감에서 벗어나 미소를 짓는다. 장르적 색채가 강한 서사를 미학적으로 포장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다.
다행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직무에도 복귀할 만큼 회복세라고 한다. 아직 다음 콘클라베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성싶다.
■ 글 :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 전주국제영화제 이사)
YTN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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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콘클라베' 포스터
영화도 사람처럼 운명을 타고 태어난다. 어떤 각본은 때를 잘 만나 투자가 순조롭게 진행되기도 하고, 어떤 프로젝트는 10년이 훌쩍 넘어서야 빛을 보기도 한다. 기획 단계에서는 주목받던 영화가 막상 개봉할 때는 관객들에게 외면당하기도 하고, 우여곡절 끝에 어렵게 만들어진 작품이 크게 흥행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기획에서 개봉까지 2년 이상이 걸리는 영화의 운명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개봉 시기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갑자기 출연 배우의 스캔들이 터지거나 전염병이 돌면 그동안 영화에 들어간 비용과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반대로, 제작진이 의도치 않았음에도 사건 사고나 사회적 분위기가 영화를 부각시키는 경우도 있다.
▲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콘클라베’(감독 에드워드 버거)는 제목이 말해주듯 차기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으로, 의미심장하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퍼져 있을 때 국내에 개봉됐다. 아카데미 시상식 8개 부문 후보에 올라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시상식 직후로 개봉일을 잡았을 뿐이지만 운명이 영화를 그렇게 인도한 것이다. ‘콘클라베’ 첫 시퀀스에서 임종한 교황은 생전에 다양성을 추구했고 다른 종교와 문화를 포용했다는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과 겹쳐진다. 또한, 누가 차기 교황으로 적합한가에 대한 고민과 논쟁, 추기경들 사이의 선거운동은 우리네 정치판과 유사한 점이 많다. 특히,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이 대립하는 장면은 작년 미국 대선에서 있었던 민주당과 공화당의 싸움을 연상시킨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각색상 하나만 수상하는데 그쳤지만 이처럼 여러 정치․사회적 이슈들과 함께 ‘콘클라베’는 개봉 2주도 안 되어 약 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순항 중이다. 이는 작년 11월에 개봉한 올해 아카데미 최다 수상작, ‘아노라’(감독 션 베이커)의 두 배를 뛰어넘는 기록이다.
▲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그러나 ‘콘클라베’는 단지 시기를 잘 만난 영화가 아니라 그 어렵다는 대중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훌륭한 작품이다. ‘서부 전선 이상 없다’(2022)로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바 있는 에드워드 버거 감독은 이번에도 외부와 단절된 바티칸을 배경으로 흡입력 강한 정치 스릴러를 완성시켰다. ‘콘클라베’는 가톨릭 교구에 속한 추기경들도 각기 다른 신념을 갖고 있으며, 그 갈등 때문에 콘클라베를 전쟁 치르듯 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신의 대리인으로서 고해성사를 행하는 성직자들도 일반인들 만큼 유혹에 약한 존재들이며, 완전무결하지 못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콘클라베의 단장인 ‘로렌스’(랄프 파인즈)는 스스로 교황이 될 자질이 부족하다고 여겨 자유주의 진영의 ‘벨리니’(스탠리 투치)를 지지한다. 그러나 예상보다 벨리니의 세력이 약하고 보수주의자들의 과오가 하나둘씩 밝혀지자 동요되기 시작한다. 당선이 유력한 후보자들의 흠결을 들추어 나가면서 그러한 행동이 자신의 숨겨진 욕망 때문인지 정의 때문인지 갈등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그에게도 기회가 올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 외부에서 큰 폭발이 일어나고 선거판은 또 다른 국면을 맞는다.
▲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소소한 반전의 순간들에서 느껴지는 긴장감, 웃지 못할 진지한 블랙코미디 연출도 일품이지만 이 영화를 세련되게 가공하는 것은 촬영, 편집, 음악 등 영화의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콘클라베’는 연출자의 주관적인 카메라 워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장면에서 카메라는 고정되어 있으며, 앵글과 사이즈만 바뀐다. 음악에도 단 하나의 장식적인 음조차 허용하지 않았으며, 그 공백은 정교한 음향효과가 메우고 있다. 이 강박적이라 할만큼 절제된 형식에 숨통을 틔워주고 서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은 꽤 빠른 리듬을 타는 편집이다. 이러한 편집은 계속 다음 장면을 궁금해하고 예측하게 만들면서도 종종 그 기대를 깨뜨리면서 관객들을 앞서간다. 종교인들의 추한 민낯을 보여주는데 이처럼 지적이고 고상한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영화는 추기경들의 붉은 색 수단(신부들의 의복)처럼 다소 충겨적인 결말부까지 우아함을 잃지 않는다. 교황은 누가 뭐래도 선한 사람이 선출되고, 로렌스도 내적 갈등과 부담감에서 벗어나 미소를 짓는다. 장르적 색채가 강한 서사를 미학적으로 포장한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 작품이다.
다행히 프란치스코 교황은 직무에도 복귀할 만큼 회복세라고 한다. 아직 다음 콘클라베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될성싶다.
▲ 영화 '콘클라베' 스틸컷
■ 글 :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 전주국제영화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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