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은의 영화이야기] 로비로 흥할 것인가, ‘로비’

[윤성은의 영화이야기] 로비로 흥할 것인가, ‘로비’

2025.04.14. 오전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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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로비(LOBBY)│2025
감독 : 하정우 │ 주연 : 하정우, 김의성, 강해림, 이동휘, 박병은, 강말금, 시원, 차주영, 박해수, 곽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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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영화 '로비' 포스터

‘로비’는 하정우의 세 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전작인 ‘롤러코스터’(2013)와 ‘허삼관’(2014)이 많은 관객을 모으지 못했던 만큼 ‘로비’가 개봉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번 작품은 ‘롤러코스터’와 결을 같이 하는 영화로 하정우 특유의 유머 코드가 연신 웃음을 유발한다. ‘로비’의 특이점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정치, 사회적 이슈들과 밀착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림도 그리고 책도 쓰는 연기자 하정우에게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은 것 같다.

▲ 영화 '로비' 스틸컷

영화는 벤처 기업 대표인 ‘윤창욱’(하정우)이 고급 레스토랑에 들어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500만 원이 넘는 바지를 입고 300만 원짜리 와인을 마시는 어느 사업가에게 투자를 요청하기 위해서다. 그는 전기차에 들어가는 매립형 배터리의 우수성을 설명하기 시작하지만 곧 회장의 바지에 와인을 쏟게 되고, 산만해진 분위기와 함께 프레젠테이션은 쉴 새 없이 방해를 받는다. 킬로당 몇 백만 원짜리 트러플이 올라간 피자가 전기차 배터리보다 화제가 되는 상황에서 회장은 주인공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4조짜리 국가 지원 사업을 따내면 투자하겠다고.

▲ 영화 '로비' 스틸컷

한 공간에 여러 인물들이 들락거리며 주인공의 목표에 훼방을 놓는 이 첫 번째 신은 자연스레 우디 앨런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한다. 각각 다른 관심사에 꽂힌 이들이 대사를 치고 받느라 어수선한데도 절묘한 타이밍 때문에 이 의미 없는 대사들은 몇 겹의 불협화음을 이루고, 블랙코미디를 완성시켜 나간다. 코미디가 알싸해서 풍자는 순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사실 ‘로비’는 쉬지 않고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까발리며 조롱한다. 기술력보다 정치인들 눈치 보기에 바쁜 사업가의 등장은 시작일 뿐이다.

▲ 영화 '로비' 스틸컷

투자를 받기 위해 갔다가 몇 마디 해보지도 못한 채 오히려 돈자랑만 듣고 돌아온 윤창욱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친상까지 당한다. 슬픔을 달랠 새도 없이 돌출형 배터리를 밀고 있는 오랜 라이벌 ‘손광우’(박병은)가 문상을 오더니 800억에 신기술을 팔라며 윤창욱을 자극하자 윤창욱은 노선을 바꾸기로 결심한다. 손광우보다 로비를 더 잘해 보기로, 아니 더 더럽게 해보기로. 그렇게 훨씬 뛰어난 기술과 실력을 가졌어도 국가지원사업에 로비가 필요하다는 씁쓸함 위에, 본격적으로 골프장에서의 소리 없는 혈투가 시작된다. 손광우는 국토해양부 ‘조장관’(강말금)을, 윤창욱은 그녀의 남편이자 실세인 ‘최실장’(김의성)을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조장관과 최실장 부부는 서로 으르렁대며 이혼소송 중이지만 부패한 공무원의 표본 같은 존재라는 점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

▲ 영화 '로비' 스틸컷

‘로비’는 골프장 로비에도 못 가본 사람들은 알기 어려운 골프 로비의 모든 것을 망라한 듯하다. 윤창욱이 준비한 골프 접대의 핵심은 두 가지다. 최실장이 좋아하는 진세빈 프로를 섭외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드는 것, 최실장의 실수나 부족함을 눈감아 주며 기분 좋게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게 하는 것. 그러나 어렵게 섭외한 진프로는 이상하게 최실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골프 초짜 윤창욱은 번번이 최실장을을 앞질러 간다. 윤창욱이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진실게임을 제안하자 최실장은 이를 이용해 진프로에게 음흉한 마음을 드러내고, 진프로는 모욕감을 참지 못한다. 교양도 개념도 없는 조장관과의 골프는 더 가관이다. 손광우의 로비에 함께 한 골프장 대표의 아내 ‘다미’(차주영)와 영화배우 ‘마태수’(최시원)가 술에 취해 사라져버리는 위기에 봉착하자 손광우는 조장관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 영화 '로비' 스틸컷

우연과 과장 때문에 ‘로비’는 진지한 블랙코미디로 분류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장관과 최실장 부부 캐릭터야 희화화 되어 있다손 치더라도 인턴사원이 된 윤창욱 조카 캐릭터는 판타지에 가깝다. 그래도 감독의 메시지만큼은 진심이다. 로비로 흥한 자는 로비로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야 올바른 사회라는 것. 대통령이 부재하게 된 현시점에서 더욱 흥미롭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 영화 '로비' 스틸컷



■ 글 : 윤성은 영화평론가 (영화학 박사 / 전주국제영화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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