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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이여진 앵커, 장원석 앵커
■ 출연 : 방종우 신부·가톨릭대학교 윤리신학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PLIS]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세계 가톨릭의 상징이자 온화한 미소로 가난한 이들의 친구를 자처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습니다.
[앵커]
교황청은 폐렴과 기관지염으로 투병해오던 교황이 세상을 떴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가톨릭대학교 윤리신학 교수인방종우 신부와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앵커]
어제가 가톨릭 신자들에게 가장 큰 축제인 부활절 아니었습니까? 그때 20분간 깜짝 미사에 등장하셔서 괜찮으신 줄 알았더니 오늘 아침, 현지 시간으로 아침에 선종을 하셨군요?
[방종우]
교황님께서 2월 14일날 기관지가 좋지 않으셔서 폐렴 증상이 있으셔서 입원을 하셨다가 그래도 이렇게 퇴원을 하시고 모습을 깜짝 방문을 하기도 하시고 가난한 이웃들을 향해서 메시지를 주셔서 그래도 조금 회복되셨나 보다 했는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앵커]
교황청이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마는 폐렴과 같은 병을 앓고 있었죠?
[방종우]
기관지염으로. 워낙에 무릎이 좋지 않으셔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도 아셨고 폐에 물이 차는 증상이나 이런 것으로 인해서 수혈도 받으시고 그랬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교황님께서 재임 초반에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게 저는 얼핏 기억이 납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예지성 발언을 하셨던 것 같은데 재임 기간이 12년으로 그렇게 길지는 않은 시간이었죠?
[방종우]
교황님께서 일단 워낙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길게 재직하셨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좀 짧은 시간 동안 활동하시다가 먼저 사임을 하셨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사실 고령의 상태에서 교황으로 선출이 되셨기 때문에 본인의 나이에 대한 소회를 밝히셨던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래서 우리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스스로 사임하시는 것 아니냐, 여러 가지 이야기들도 있었는데 사실 교황직이라는 것이 종신직이기 때문에 끝까지 본인의 소임을 다하시고 최선을 다하시고 돌아가신 것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첫 남미 출신으로 교황에 선출이 됐고. 남미 출신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방종우]
일단 그리스도교 역사상 아프리카라든지. 물론 아주 예전이기는 하지만 주로 유럽 교회의 교황님들이 선출이 되셨는데 일단 남미 교황님이 선출됐다는 게 파격이었고 교회의 전통성 안에서 또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영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 되었다라는 것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그랬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더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라든지 그동안 교회가 이야기는 해왔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것들을 더 적극적으로 보여주셔서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종적을 12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대사회적인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앵커]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까지 특별한 경력도 있지 않으십니까?
[방종우]
일단 예수회 출신이기도 하시고 수도회 출신이기도 하시고 특별히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님이셨는데 거기에서는 워낙에 소탈한,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마음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하셔서 원래 교구에서도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으셨다고 할 수 있겠고. 교황님이 되시자마자 사실 보였던 행보 중에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있다라고 한다면 교황님께서 기거하시는 교황실이 있는데 거기를 들어가지 않으시고 나는 일반 주교들이 머무는, 손님들이 머무는 마르타의 집이라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서 생활을 하시면서 지금까지 사셨고. 제 기억에는 그런 기억이 있어요.
저는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했는데 미사가 끝나면 교황님과 추기경님들이 함께 차를 타고 떠나시는 게 있는데 교황님이 따로 차에 타지 않으시고 커다란 봉고차에 추기경님들과 같이 이렇게 타셔서 맨 뒷자리에서 낑겨 있다고 말씀을 드려야 될까요? 거기에서 손을 흔들어주시고 그런 소탈한 모습들이 사실 우리가 많이 배울 점이고 또 우리 시대에도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을 가르쳐주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앵커]
말씀하신 대로 다소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교회 사회에 헌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런 사례도 있고요. 프란치스코라는 성인의 이름을 선택한 점도 있고. 구체적으로 이런 이름을 선택한 데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방종우]
우리가 교황명을 정할 때 예전에 있던 교황님들의 정신을 물려받기 위해서 그것을 따르기도 하고 그러기는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는 이름은 교황명으로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이름이었습니다. 성인의 이름인데 프란치스코 성인이라고 한다면 사제 서품을 받지 않고 활동하셨던, 항상 겸손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활동했던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처음에 교황에 선출되자마자 곁에 있던 브라질 주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요. 교황님이 되셨는데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말아달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교황님께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떠올랐고 그 이름 그대로 생을 잘 마감하셨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말씀하신 대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서 많이 활동을 하셨고 또 항상 검소함, 겸손함을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보니까 가톨릭 신자들이 아닌 많은 분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던 것 같고. 가톨릭 신자에게도 다른 교황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교황이 아니었나 싶은데 어떠세요, 신부님?
[방종우]
일단 교황님께서 2013년도에 부임하시고 나서, 선출되시고 나서 로마 외에 첫 방문지가 람페두사라는 곳이었어요. 그곳이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에 있는 곳인데 거기가 난민촌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가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가지 난민들이 제가 알기로는 2000년대 이후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이탈리아로 탈출하다가 튀니지라든지 이런 여러 가지 나라에서 오다가 사고로 죽게 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리고 현재 거기에 머물고 있는 난민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그곳을 방문하시고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물론 교회는 항상 그 가르침을 이야기해오고 여러 가지 자선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직접 찾아가는 모습을 조금 더 확실히 보여주시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약자를 위한 행보뿐 아니라 기후위기라든지 보편적인 인류가 처한 그런 위기에 대해서도 언급을 많이 한 것으로 기억하거든요. 이 점은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방종우]
일단 교황님을 우리가 바라봤을 때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부분이 환경 문제라든지 아니면 가난한 이들에 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우리가 교황님의 사상을 보면 그 이전에 깊이 깔려 있는 게 뭐냐 하면 자본주의 혹은 경제중심주의에 대한 인간의 삶에 대한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해서 많이 말씀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표적으로 하셨던 유명한 말씀 중 하나가 가난한 이들이 굶어 죽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는데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것에 대해서 뉴스가 되는 이 세상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을 하셨고, 어떤 경제에 대한 여러 가지 인간의 욕심이 악마의 배설물과도 같은 것이다라고도 말씀을 하셨거든요.
우리가 여러 가지 자본주의 중심적으로 너무 지나치게 살아가다 보면 경제중심주의가 되면서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 못하고 소외되는 이들이 생기고. 그리고 최근에는 AI윤리에도 굉장히 많은 관심을 기울이셨는데 그것이 어떤 새로운 여러 가지 디지털 문화 안에서 소외되고 또 폭력에 노출되는 이들에 대한 아픔. 이것들을 강조하신 것을 보면서 이분의 지평이 단순히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관여되어 있는 것들에 대한 활동을 보이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앵커]
어제 부활절 미사에 참석을 하셔서 대독을 하기는 했지만 가자지구의 즉각적인 휴전을 거듭 촉구를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우크라이나 전쟁 등 가자전쟁 등 이런 평화적 해결과 난민 구제를 위해서도 바삐 움직이지 않으셨습니까?
[방종우]
교황님께서 여러 가지 행보를 보이셨어요.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지역들의 전쟁에도 관심이 많으셨고, 대표적으로 보면 2017년도에 로힝야족 인종 청소로 인해서 미얀마에서 그런 피해자들이 발생했을 때도 직접 방문하셨고. 2021년에는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교황님께서 이라크를 방문하셔서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도 하셨고. 최근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든지 이런 것에 있어서도 굉장히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활동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세계 모든 가톨릭 신자의 정신적인 지주이기 때문에 내가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과도 하고 잘못한 점을 인정하는 그런 것으로도 많은 관심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데요. 이 점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방종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예전에 로마 교회, 가톨릭 교회 역사 안에 있었던 것에 대해서 사과를 대표적으로 하신 적이 있는데, 예를 들면 십자군전쟁이라든지 이런 것에 대해서 회칙을 발표하셨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보다 더 세밀한 것들에 대해서 많이 사과하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사제들에게도 양떼 냄새 나는, 양냄새가 나는 목자가 되어라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시고. 여러 가지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교회 안에서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사과를 하시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신앙의 가치라든지 또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사랑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아낌없이 보내셨습니다.
[앵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하고 다음 해에 우리나라를 방문했잖아요. 그때 선정했던 자동차, 기아 소울, 가장 작은 차를 선정했던 것도 기억에 남거든요.
[방종우]
원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활동을 하실 때 다른 의미가 아니라 총에 맞는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에 방탄유리라든지 이런 차들을 사용하실 수밖에 없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나의 개인의 신변이나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을 하셨던 것 같고. 워낙 소탈한 모습을 많이 보이셨어요. 그래서 교황님이 되시자마자 아르헨티나 교구들에서 축하를 하기 위해서 온다고 했을 때도 그 돈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사용해 달라. 그리고 여기까지 오는 그 비용을 그렇게 사용해 달라고 하실 정도로 여러 가지 소탈한 면모들과 군중들에게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의지를 많이 보이셨습니다.
[앵커]
그렇게 소탈한 모습을 강조하신 만큼 장례가 어떻게 치러질지도 궁금합니다. 전임 교황님들이랑 다르게 치뤄질까요?
[방종우]
그런데 교회 안에서의 절차라는 것은 우리가 보통 한국사회에서 삼일장을 하듯이 교회 안에서도 정해진 절차가 있습니다. 보통 4일에서 6일 정도 장례 일정이 있는데 중간에 주일이 꼈을 때를 고려해서 유연하게 잡아놓은 것인데 4일이나 6일 정도 뒤에 장례 미사가 있을 예정이고 그 이후에 9일 동안 추모일을 잡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게는 한 15일 정도가 지났을 때 차기 교황을 위한 콘클라베가 열리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앵커]
이제 선종하셨기 때문에 차기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도 진행이 되지 않습니까? 그건 어떻게 진행됩니까?
[방종우]
일단은 아직 은퇴하지 않은 추기경님들이 로마로 모이시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하면 교황님의 선종을 기리는 간단한 예식이라든지 앞서 말씀드린 15일 기간 동안 그러한 시간들이 주어지고 그다음에 바로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가톨릭대학교 윤리신학 교수인 방종우 신부였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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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연 : 방종우 신부·가톨릭대학교 윤리신학 교수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PLIS]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세계 가톨릭의 상징이자 온화한 미소로 가난한 이들의 친구를 자처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습니다.
[앵커]
교황청은 폐렴과 기관지염으로 투병해오던 교황이 세상을 떴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가톨릭대학교 윤리신학 교수인방종우 신부와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앵커]
어제가 가톨릭 신자들에게 가장 큰 축제인 부활절 아니었습니까? 그때 20분간 깜짝 미사에 등장하셔서 괜찮으신 줄 알았더니 오늘 아침, 현지 시간으로 아침에 선종을 하셨군요?
[방종우]
교황님께서 2월 14일날 기관지가 좋지 않으셔서 폐렴 증상이 있으셔서 입원을 하셨다가 그래도 이렇게 퇴원을 하시고 모습을 깜짝 방문을 하기도 하시고 가난한 이웃들을 향해서 메시지를 주셔서 그래도 조금 회복되셨나 보다 했는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앵커]
교황청이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마는 폐렴과 같은 병을 앓고 있었죠?
[방종우]
기관지염으로. 워낙에 무릎이 좋지 않으셔서 휠체어를 타고 다니기도 아셨고 폐에 물이 차는 증상이나 이런 것으로 인해서 수혈도 받으시고 그랬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교황님께서 재임 초반에 이런 말씀을 하셨던 게 저는 얼핏 기억이 납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이런 예지성 발언을 하셨던 것 같은데 재임 기간이 12년으로 그렇게 길지는 않은 시간이었죠?
[방종우]
교황님께서 일단 워낙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길게 재직하셨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이 좀 짧은 시간 동안 활동하시다가 먼저 사임을 하셨고.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사실 고령의 상태에서 교황으로 선출이 되셨기 때문에 본인의 나이에 대한 소회를 밝히셨던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래서 우리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스스로 사임하시는 것 아니냐, 여러 가지 이야기들도 있었는데 사실 교황직이라는 것이 종신직이기 때문에 끝까지 본인의 소임을 다하시고 최선을 다하시고 돌아가신 것으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첫 남미 출신으로 교황에 선출이 됐고. 남미 출신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방종우]
일단 그리스도교 역사상 아프리카라든지. 물론 아주 예전이기는 하지만 주로 유럽 교회의 교황님들이 선출이 되셨는데 일단 남미 교황님이 선출됐다는 게 파격이었고 교회의 전통성 안에서 또 다른 세계에서 또 다른 영성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인물이 되었다라는 것에 있어서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데 무엇보다 그랬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더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라든지 그동안 교회가 이야기는 해왔지만 실천하지 못했던 것들을 더 적극적으로 보여주셔서 교회 안에서 여러 가지 종적을 12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대사회적인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앵커]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까지 특별한 경력도 있지 않으십니까?
[방종우]
일단 예수회 출신이기도 하시고 수도회 출신이기도 하시고 특별히 부에노스아이레스 교구장님이셨는데 거기에서는 워낙에 소탈한,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마음으로 여러 가지 활동을 하셔서 원래 교구에서도 굉장히 많은 사랑을 받으셨다고 할 수 있겠고. 교황님이 되시자마자 사실 보였던 행보 중에 우리가 기억하는 것이 있다라고 한다면 교황님께서 기거하시는 교황실이 있는데 거기를 들어가지 않으시고 나는 일반 주교들이 머무는, 손님들이 머무는 마르타의 집이라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서 생활을 하시면서 지금까지 사셨고. 제 기억에는 그런 기억이 있어요.
저는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했는데 미사가 끝나면 교황님과 추기경님들이 함께 차를 타고 떠나시는 게 있는데 교황님이 따로 차에 타지 않으시고 커다란 봉고차에 추기경님들과 같이 이렇게 타셔서 맨 뒷자리에서 낑겨 있다고 말씀을 드려야 될까요? 거기에서 손을 흔들어주시고 그런 소탈한 모습들이 사실 우리가 많이 배울 점이고 또 우리 시대에도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을 가르쳐주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앵커]
말씀하신 대로 다소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교회 사회에 헌신했다는 평가를 받는데 그런 사례도 있고요. 프란치스코라는 성인의 이름을 선택한 점도 있고. 구체적으로 이런 이름을 선택한 데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방종우]
우리가 교황명을 정할 때 예전에 있던 교황님들의 정신을 물려받기 위해서 그것을 따르기도 하고 그러기는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프란치스코 교황이라는 이름은 교황명으로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던 이름이었습니다. 성인의 이름인데 프란치스코 성인이라고 한다면 사제 서품을 받지 않고 활동하셨던, 항상 겸손하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활동했던 성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처음에 교황에 선출되자마자 곁에 있던 브라질 주교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요. 교황님이 되셨는데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말아달라라고 말씀하셨을 때 교황님께서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이 떠올랐고 그 이름 그대로 생을 잘 마감하셨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앵커]
말씀하신 대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서 많이 활동을 하셨고 또 항상 검소함, 겸손함을 강조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보니까 가톨릭 신자들이 아닌 많은 분들에게도 사랑을 받았던 것 같고. 가톨릭 신자에게도 다른 교황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교황이 아니었나 싶은데 어떠세요, 신부님?
[방종우]
일단 교황님께서 2013년도에 부임하시고 나서, 선출되시고 나서 로마 외에 첫 방문지가 람페두사라는 곳이었어요. 그곳이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에 있는 곳인데 거기가 난민촌이 있습니다. 그래서 거기가 오랜 시간 동안 여러 가지 난민들이 제가 알기로는 2000년대 이후로 아주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이탈리아로 탈출하다가 튀니지라든지 이런 여러 가지 나라에서 오다가 사고로 죽게 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그리고 현재 거기에 머물고 있는 난민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가장 먼저 그곳을 방문하시고 그리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물론 교회는 항상 그 가르침을 이야기해오고 여러 가지 자선사업을 하고 있었지만 직접 찾아가는 모습을 조금 더 확실히 보여주시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앵커]
약자를 위한 행보뿐 아니라 기후위기라든지 보편적인 인류가 처한 그런 위기에 대해서도 언급을 많이 한 것으로 기억하거든요. 이 점은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방종우]
일단 교황님을 우리가 바라봤을 때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부분이 환경 문제라든지 아니면 가난한 이들에 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우리가 교황님의 사상을 보면 그 이전에 깊이 깔려 있는 게 뭐냐 하면 자본주의 혹은 경제중심주의에 대한 인간의 삶에 대한 여러 가지 부작용에 대해서 많이 말씀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대표적으로 하셨던 유명한 말씀 중 하나가 가난한 이들이 굶어 죽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는데 주식시장이 폭락하는 것에 대해서 뉴스가 되는 이 세상에 대해서도 많이 말씀을 하셨고, 어떤 경제에 대한 여러 가지 인간의 욕심이 악마의 배설물과도 같은 것이다라고도 말씀을 하셨거든요.
우리가 여러 가지 자본주의 중심적으로 너무 지나치게 살아가다 보면 경제중심주의가 되면서 가난한 이들을 돌보지 못하고 소외되는 이들이 생기고. 그리고 최근에는 AI윤리에도 굉장히 많은 관심을 기울이셨는데 그것이 어떤 새로운 여러 가지 디지털 문화 안에서 소외되고 또 폭력에 노출되는 이들에 대한 아픔. 이것들을 강조하신 것을 보면서 이분의 지평이 단순히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에게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관여되어 있는 것들에 대한 활동을 보이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앵커]
어제 부활절 미사에 참석을 하셔서 대독을 하기는 했지만 가자지구의 즉각적인 휴전을 거듭 촉구를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우크라이나 전쟁 등 가자전쟁 등 이런 평화적 해결과 난민 구제를 위해서도 바삐 움직이지 않으셨습니까?
[방종우]
교황님께서 여러 가지 행보를 보이셨어요.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지역들의 전쟁에도 관심이 많으셨고, 대표적으로 보면 2017년도에 로힝야족 인종 청소로 인해서 미얀마에서 그런 피해자들이 발생했을 때도 직접 방문하셨고. 2021년에는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교황님께서 이라크를 방문하셔서 테러 희생자들을 추모하기도 하셨고. 최근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든지 이런 것에 있어서도 굉장히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활동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앵커]
세계 모든 가톨릭 신자의 정신적인 지주이기 때문에 내가 부족한 모습을 보여도 인정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과도 하고 잘못한 점을 인정하는 그런 것으로도 많은 관심을 줬다는 평가를 받는데요. 이 점은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방종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예전에 로마 교회, 가톨릭 교회 역사 안에 있었던 것에 대해서 사과를 대표적으로 하신 적이 있는데, 예를 들면 십자군전쟁이라든지 이런 것에 대해서 회칙을 발표하셨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보다 더 세밀한 것들에 대해서 많이 사과하셨던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 사제들에게도 양떼 냄새 나는, 양냄새가 나는 목자가 되어라라고 이야기를 하기도 하시고. 여러 가지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교회 안에서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도 사과를 하시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신앙의 가치라든지 또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에 대한 사랑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아낌없이 보내셨습니다.
[앵커]
프란치스코 교황이 즉위하고 다음 해에 우리나라를 방문했잖아요. 그때 선정했던 자동차, 기아 소울, 가장 작은 차를 선정했던 것도 기억에 남거든요.
[방종우]
원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활동을 하실 때 다른 의미가 아니라 총에 맞는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에 방탄유리라든지 이런 차들을 사용하실 수밖에 없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고 나의 개인의 신변이나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으시고 사람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노력을 하셨던 것 같고. 워낙 소탈한 모습을 많이 보이셨어요. 그래서 교황님이 되시자마자 아르헨티나 교구들에서 축하를 하기 위해서 온다고 했을 때도 그 돈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사용해 달라. 그리고 여기까지 오는 그 비용을 그렇게 사용해 달라고 하실 정도로 여러 가지 소탈한 면모들과 군중들에게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의지를 많이 보이셨습니다.
[앵커]
그렇게 소탈한 모습을 강조하신 만큼 장례가 어떻게 치러질지도 궁금합니다. 전임 교황님들이랑 다르게 치뤄질까요?
[방종우]
그런데 교회 안에서의 절차라는 것은 우리가 보통 한국사회에서 삼일장을 하듯이 교회 안에서도 정해진 절차가 있습니다. 보통 4일에서 6일 정도 장례 일정이 있는데 중간에 주일이 꼈을 때를 고려해서 유연하게 잡아놓은 것인데 4일이나 6일 정도 뒤에 장례 미사가 있을 예정이고 그 이후에 9일 동안 추모일을 잡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게는 한 15일 정도가 지났을 때 차기 교황을 위한 콘클라베가 열리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습니다.
[앵커]
이제 선종하셨기 때문에 차기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도 진행이 되지 않습니까? 그건 어떻게 진행됩니까?
[방종우]
일단은 아직 은퇴하지 않은 추기경님들이 로마로 모이시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하면 교황님의 선종을 기리는 간단한 예식이라든지 앞서 말씀드린 15일 기간 동안 그러한 시간들이 주어지고 그다음에 바로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가톨릭대학교 윤리신학 교수인 방종우 신부였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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