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만리장성' 넘보는 일본 탁구신동...뒤로 가는 한국탁구

[와이파일] '만리장성' 넘보는 일본 탁구신동...뒤로 가는 한국탁구

2022.07.26. 오전 05:00
댓글
글자크기설정
인쇄하기
AD
게임스코어 0대 3에 점수도 5대 10, 절체절명 챔피언십 포인트에 몰린 상황. 상대가 탁구 종주국 중국 선수인 만큼 모두들 끝난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19살 탁구신동은 포기하지 않았고, 6게임을 결국 뒤집은 뒤 마지막 7게임도 4대 9에서 신들린 듯 연속 7득점, 승부를 마무리했습니다. ITTF(세계탁구연맹) 홈페이지가 'Comeback of all time'(사상 최고의 역전승)이라고 극찬한 지난 23일 WTT(월드테이블테니스) 챔피언스대회 결승전이었습니다. 매사에 포기가 빠른 저로서는(오죽하면 집사람이 "당신 특기는 '회피'"라고 할까요)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결과였습니다.

'못 미더운' 차세대 3인방..불안한 중국
떨떠름한 린가오위안..상상이나 했을까요

일본이 자랑하는 천재 하리모토(8위)의 결승전 맞수는 왼손잡이 린가오위안(세계 20위). 이미 최강 반열에 오른 판전둥(1위) 마룽(2위)의 뒤를 이어 량징쿤(3위) 왕추친(14위)과 함께 중국 대표팀 주전 5명 중 한 명이지만 랭킹은 가장 낮습니다. 강철 정신력을 보유한 판전둥 마룽과 경기력은 큰 차이가 없지만, 멘탈 약점이 여지없이 드러난 것이죠. 하리모토가 승부처에서 보여준 임기응변, 과감한 플레이와 비교해도 소극적인 운영이 아쉬웠습니다. 타이완 노장에게 덜미를 잡힌 량징쿤도 들쭉날쭉 기복은 여전했습니다. 마룽은 독일 파워 탁구의 대명사 프란체스카에게 졌고, 판전둥은 불참했습니다.




'괴성boy' 하리모토, 이민자 2세 '중국킬러'
아버지이자 코치인 '장 위'(하리모토 위)..벤치에서도 중국어로 서로 소통합니다

이제 2003년생이지만 도쿄 올림픽부터 일본 대표팀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하리모토 토모카즈. 중국 쓰촨성 출신인 아버지가 코치 생활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왔고, 어머니 장 링도 오성홍기를 달고 톈진 세계선수권에 출전했던 탁구 가족입니다. 일본에서 태어나 2살 때부터 자연스레 라켓을 잡았습니다. 아버지는 무엇보다 백핸드 훈련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부모가 일본으로 귀화한 뒤 자연스레 유망주 육성 프로그램에 편입, 본격적으로 포핸드 등을 익혔습니다.

난다 긴다 하는 중국 주전들을 크고 작은 대회에서 죄다 이겨본 만큼, 중국이 만리장성 수성의 걸림돌로 가장 신경 쓰는 적수가 바로 하리모토입니다. 중국 혈통에 일본의 시스템이 접목돼 다시 중국의 뒤통수를 치는 '부메랑'이라고 할까요. 테니스 샤라포바의 괴성에 버금가는 샤우팅과 활처럼 허리를 휘는 세리머니가 인상적. 일본에서는 'Victory Cry'라고 하더군요. 여동생도 유망주입니다.


기록제조기..11살에 '톱 100' 격파
90년대 '치키타'의 창시자 페트르 코벨..손목 움직임이 경이롭습니다

11살 때 세계 랭킹 100위 내 선수를 꺾었습니다.14살에는 최연소 프로투어 우승, 최연소 올림픽 8강, 이듬해 최연소 전일본선수권 챔피언 등 숱한 기록을 세웠습니다. 나이답지 않은 매치 운영 능력, 지고 있어도 어떻게든 역전을 만드는 승부욕도 갖췄습니다. 특기는 전광석화 백핸드. 상대 서브 회전을 읽는 눈과 감각이 뛰어나 리시브 에이스를 심심찮게 만듭니다. 테이블 위에서 상대 투바운드 서브 등 짧은 공을 공략하는 '치키타'(백핸드 사이드스핀 플릭)는 판전둥, 타이완 린윤주와 더불어 단연 톱 수준입니다.


현대 탁구의 게임체인저 '치키타'
열대과일 브랜드 '치키타'..스페인어로는 소녀

90년대 중반 체코 레전드 선수 페트르 코벨을 시작으로,'영원한 2인자' 왕하오 '그랜드슬래머' 장지커를 거치면서 완성된 치키타. 톱스핀과 사이프스핀이 혼합되면서 바나나처럼 휘어가는 성질이 있는데, 바나나로 유명한 과일 브랜드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강한 손목 힘은 필수. 2014년 세계탁구계 공인구 재질이 딱딱한 플라스틱으로 바뀌면서 서브의 회전이 감소한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비스 리턴을 하는 입장에서는 2구부터 적극 공격이 가능한 셈인데, 이 때문에 현대 탁구는 사실상 서브권의 우위가 없어질 지경이 됐죠.
올림픽 3회 연속 은메달 왕하오..이면타법 치키타 계승자

우리나라에서는 '꽃미남 선수' 정영식이 단연 1인자. WTT 챔피언스 대회에서 하리모토에게 아깝게 진 임종훈도 이 기술의 완성도가 높습니다. 과거 '유승민 킬러' 최현진 감독은 "임종훈이 2세트부터 소극적이었던 반면 하리모토는 게임 운영을 바꾸면서 좀 더 공격적인 플레이를 했고, 아무리 짧은 하회전 서브를 넣어도 치키타로 선제 공격을 잡았다"고 분석했습니다. "정영식은 "저도 서브 코스를 미리 알려주면 어떤 공이든 치키타로 공격할 자신이 있습니다. 문제는 중국이나 일본 주전 선수의 경우, 구질의 변화는 물론 코스의 깊이, 타이밍이 순간적으로 변하기 때문에 대처하기가 어렵다는 점이죠."라고 어려움을 토로했습니다.


'파워' 중국...'스피드' 일본
세계 1위 판전둥.. 최강 백핸드에 포핸드 연결력도 최고

남자부 하리모토, 여자부 이토 미마(도쿄 올림픽 혼합복식 금메달)로 대표되는 일본 탁구. 테이블에 바짝 붙어 변화무쌍한 서브로 상대를 현혹하고, 수비 때도 다양한 백핸드 구질에서 나오는 적극적 리시브로 속전속결, 상대 플레이를 무력화하는 스피드탁구입니다. 중국은 '천하장사' 마룽을 주축으로 '랠리의 달인' 판전둥까지 근육질 파워 탁구가 대표적이죠. 탄탄한 기본기와 강한 임팩트, 완벽한 체중 이동으로 돌덩이 구질을 만듭니다.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신기술을 창조하고, 용품 개발과 관리에도 철저합니다. 여자 1,2위를 다투는 왕만위, 쑨잉샤도 스타일은 남자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중국 추격은 고사하고 이미 일본에도 추월 당한 한국 탁구의 색깔은 무엇일까요?



'무색무취' 한국탁구
WTT대회 유일한 8강 진출 임종훈 / 최현진 감독

이번에 헝가리에서 처음 열린 WTT 챔피언스는 상위랭커 30명 등 32명씩이 남녀 단식에 출전하는 왕중왕전. 사실상 세계선수권 전초전입니다. 전 현직 국대 4명이 나선 우리 대표팀은 임종훈을 빼고 모두 1회전 탈락 참패를 당했습니다. 유망주들은 랭킹이 낮아 참여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시기 스타 컨덴더, 컨덴더, 피더 등 각종 시리즈 성적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조대성-이상수 조가 중국 조들을 연파하고 복식 우승을 차지한 게 유일한 소득. 중국 일본을 만나기 전 아시아와 유럽 강호들의 벽을 뚫기도 버거웠습니다. 세계랭킹 톱 20에 남녀 합쳐 불과 2명 턱걸이. 한국탁구의 초라한 현실이 그대로 반영됐습니다.

9월로 다가온 세계선수권...해법은?

4년 전 중국 탁구협회와 교류 차원에서 내한했던 중국 코치 Z씨. 머무는 기간은 짧았지만 반향은 컸습니다. "치키타는 공의 6~7시 부위를 노려 쳐야 하고, 엄지를 12시 방향으로 원을 그려 최대한 짧게 돌려야 회전과 스피드를 한꺼번에 챙길 수 있다"라고 하던데요."(국대 A). "포핸드 파워가 고민이었는데, 그립만 조금 교정하니까 정말 달라지더라고요."(실업선수 B) "드라이브(톱스핀)는 무릎을 낮추고 허리를 돌리는 거야"를 외치는 두루뭉술한 우리 지도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구체적인 '족집게 레슨'이었습니다. 선수를 키우고 미래 청사진을 제시하는 본업은 제쳐두고 자리 보전에만 급급한 사령탑도 여럿인 국내 상황. 한국 탁구를 평가해달라는 기자 질문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 탁구는 (선수 육성) 시스템이라는 게 없다. 과거 빠른 풋워크와 포핸드가 특징이었다면 지금은 아무 색깔이 없다". 그동안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영화 '호우시절'의 배경인 쓰촨성 청두..코로나를 뚫고 탁구 열기로 달아오르길

남자 탁구는 도쿄올림픽 3-4위 전에서 한 수 아래로 치부했던 일본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여자는 이미 세계 8강도 버겁습니다. 두 달 뒤로 다가온 중국 청두 세계선수권단체전. 지난해 장우진-임종훈이 휴스턴 세계대회에서 남자복식 은메달을 따면서 체면치레를 했지만 올 가을은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
서봉국

YTN 서봉국 (bksuh@ytn.c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