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괴물'도 지친다...힘들 땐 힘들다고 말하자 ㅣ 김민재의 깜짝 발언을 보며

[와이파일] '괴물'도 지친다...힘들 땐 힘들다고 말하자 ㅣ 김민재의 깜짝 발언을 보며

2023.03.29. 오후 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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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이 아니라 소속팀에서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김민재 선수의 깜짝 발언이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네이버와 포털 사이트와 유튜브 등 스포츠 관련 뉴스는 온통 김민재 선수에 대한 소식으로 가득찼습니다. 세계적인 수비수로 성장한 26살의 선수가 국가 대표팀 은퇴를 돌려서 말했으니 충분히 그럴만 합니다.

문제의 발언은 어제(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루과이와의 평가전 직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나왔습니다. 우루과이에 2골을 내주고 패했기 때문인지 표정이 무거웠고., 현장에 있던 취재진이 "힘들어 보인다"는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예상하지 못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냥 지금 힘들고 멘털적으로도 많이 무너져있는 상태고 당분간,..당분간이 아니라 소속팀에서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이후 소속팀에만 집중하고 싶은 생각이 대한축구협회와 조율이 된 건지 묻는 질문에 "조율이 됐다고는 말씀 못 드리겠어요. (협회와) 이야기는 좀 나누고 있었는데..."라며 믹스트존을 빠져나갔습니다. 당분간이든 아니든, 한 마디로 대표팀 소집에 응하기 싫다는 의미겠죠.


◈ 하루 전만 해도 180도 달랐던 인터뷰

그런데 불과 하루 전 김민재 선수의 인터뷰는 180도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27일 열린우루과이 평가전 사전 기자회견에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과 참석한 김민재 선수는 "대표팀에 와서 계속 활약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지난주 콜롬비아와의 평가전에서 A매치 100번째 경기에 출전해 '센추리 클럽'에 김영권 선수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해당 질문에 대한 김민재 선수의 답변은 이랬습니다.

"제가 목표하는 거는 부상없이 대표팀에 와서 계속 활약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부상이 있거나 혹은 어떤 기량을 유지하지 못하면 대표팀에서 기회를 못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유지를 잘 하는 게 목표인 거 같고, (A매치) 경기 수는 제 몫을 다하는 만큼 하지 않을까요."

전후 상황과 맥락을 볼 때 "소속팀에 집중하고 싶다"는 김민재 선수의 발언이 실제 국가대표 은퇴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입니다. 축구협회는 김민재 선수의 돌발 발언에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김민재 선수가 지난해부터 이어진 이적과 월드컵 등 빡빡한 일정으로 많이 지쳐있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팀 관계자는 "김민재는 아직 젊다. 풀고 다독여야 할 문제다. 4월에 클린스만 감독이 나폴리에서 김민재를 직접 만나 잘 다독일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실제로 김민재 선수는 1월에도 축구협회에 멘털적인 부분에서 이야기를 했고, 이에 따라 클린스만 감독과 개별 면담도 진행했다"고 축구협회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표팀 관계자는 "책임감이 강한 선수인데 (이번 평가전 2연전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으로 감정이 폭발한 것 같다”고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 김민재 선수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일화도 있습니다. 지난해 카타르월드컵 당시 가나전 패배 직후 김민재 선수는 당시 KBS 해설위원이던 대표팀 선배 구자철에게 “(가나전) 세 번째 실점에서 제 위치가 잘못됐기 때문에 골 먹은 것 아니냐. 냉정하게 얘기해 달라" 문자 메시지를 보내 팬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당시 김민재 선수는 직전 경기였던 우루과이전에서 오른쪽 종아리를 다쳐 출전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가나전에 선발 출전해 90분 풀타임을 뛰었습니다.


◈ 살인적인 강행군...'번아웃' 가능성

김민재 선수는 지금 일종의 '번아웃'을 겪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번아웃은 보통 극도로 몸이 지쳤을 때 심리적 불안정으로 찾아옵니다.

올 시즌 나폴리에 합류한 이후 김민재는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휴식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소속팀만 보더라도 이번 시즌 세리아A 리그와 챔피언스리그 등 각종 대회에서 대부분을 풀타임으로 뛰었습니다. 덕분에 소속팀 나폴리는 리그 선두를 질주하며 33년 만의 우승에 가까워졌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6강에 진출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민재 선수는 지난해 12월 카타르월드컵 일정까지 소화했습니다. 카타르월드컵 이후 첫 A매치이자 클린스만 감독 데뷔전이었던 이번 A매치 2연전을 달랐을까요? 김민재 선수는 '콜롬비아-우루과이' 2연전에서도 2경기 연속 풀타임을 뛰었습니다. 말 그대로 강행군 일정입니다. 물론 김민재 선수혼자 강행군 일정을 소화한 건 아닙니다. 손흥민 선수 등 유럽파 선수들의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유럽파의 숙명...선수 수명 단축하는 장거리 이동

대표팀 소집 떄마다 유럽파 선수들은 장거리 이동에 따른 체력 부담을 감내해야 합니다. 생리학적으로 보통 1시간 시차를 적응하는데 하루가 걸린다고 합니다. 한국과 7~8시간 차이 나는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국내에서 열리는 A매치를 위해 입국할 경우 적응 기간에만 7~8일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유럽파 선수들은 입국 사 나흘 뒤 A매치에 출전합니다. 체력적으로 부담이 따를 수 밖에 없고, 체력이 떨어지면 심리(멘털) 상태도 당연히 불안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축구 취재를 10년 가까이 하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 29세의 비교적 이른 나이에 국가대표를 은퇴한 박지성 선수가 유럽 출신 선수였다면 좀 더 오래 국가대표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 말입니다. 무릎이 안 좋았던 박지성 선수에게 장거리 비행은 여러모로 부담이 됐고, 무릎 상태를 악화시키는데 직간접적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성용 구자철 등 30대 초반에 국가대표를 은퇴한 선수들 역시 비슷한 부담과 어려움을 겪었을 겁니다. 현재 대한민국 축구의 상징 손흥민 선수 역시 같은 상황에 놓여 있기에 언제나 '혹사 논란'이 따라다니고 있고요. 김민재 선수의 깜짝 발언에 단순히 비난 만을 쏟아낼 수 없는 사례들입니다.


◈ '혹사 논란' 대신 합리적 대안 마련을...

그렇다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니 지금처럼 유럽파 선수들에게 국가대표의 사명감만을 강조해야 할까요? 우리나라와 상황이 비슷한 일본의 사례를 참고할 만합니다. 일본 역시 우리나라처럼 유럽파 중심으로 대표팀을 운영합니다. 당연히 장거리 이동에 따른 체력적 부담이 뒤따릅니다. 이에 따라 일본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유럽 한복판 독일 뒤셀도르프에 대표팀을 위한 베이스캠프를 만들었습니다. 우리 축구협회의 파주NFC(국가대표 훈련장)과 비슷한 시설입니다. 모든 A매치 준비를 이곳에서 하는 건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유럽파 선수들의 피로도를 얼마든지 줄일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클린스만 감독이 지휘하는 축구 대표팀의 다음 A매치는 오는 6월에 열립니다. 유럽 리그가 종료한 직후여서 유럽파 선수들의 피로도는 높을 수 밖에 없고, 자연스럽게 김민재 선수의 대표팀 제외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여기에 김민재 선수가 유럽 이적 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6월 A매치에 김민재 선수를 부르지 않을 명분과 이유는 충분해 보입니다. 6월 A매치를 건너뛴다면 다음 A매치는 9월입니다.

"소속팀에 전념하겠다"는 발언으로 파장을 불러온 김민재 선수는 오늘(29일) 별다른 해명 없이 이탈리아로 출국했습니다. 김민재 선수와의 재회가 6월일지, 아니면 9월일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지만, 김민재 선수에겐 '휴식’이, 우리에겐 '기다림'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추가)
적지 않은 논란과 걱정을 남기고 이탈리아로 묵묵부답 떠났던 김민재 선수가 SNS에 사과문을 올렸네요. 진심이 느껴지는 긴 글입니다.

김민재 선수는 "우선 저의 발언으로 놀라셨을 선수, 팬분들께 죄송하다"면서 "힘들다는 의미가 잘못 전달돼 글을 올린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냥 재미있게만 했던 대표팀에서 점점 비중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 부담을 많이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멘탈적으로 무너졌다는 이야기는 경기장에서의 부담감, 나는 항상 잘해야 한다는 책임감, 수비수로서 실점했을 때 실망감 등 이런 것들이 힘들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지금 제가 축복 받은 선수임을 잘 인지하고 있다. 이겨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대표 선수로서 신중하지 못한 점, 성숙하지 못한 점, 실망했을 팬, 선수분들께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습니다.
김민재 선수 SNS



YTN 김재형 (jhkim03@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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