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전의 17일'...뜨거웠던 파리 올림픽 생생한 뒷이야기.

'열전의 17일'...뜨거웠던 파리 올림픽 생생한 뒷이야기.

2024.08.14. 오후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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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이세나 앵커, 나경철 앵커
■ 출연 : 이경재 YTN 파리올림픽 취재팀, 양시창 YTN 파리올림픽 취재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뉴스퀘어 2PM]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큰 감동과 환희를 선사한 파리올림픽이 지난 일요일 폐막했죠. 역대 최고 성적을 거둔 우리 선수단의 활약과 함께, '열린 대회' 표방한 올림픽의 가치까지 올림픽이 끝나도 계속 화제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현장에서 직접 취재한 이경재, 양시창 기자와 생생한 취재 뒷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두 분, 어서 오십시오. 두 분 파리에서 정말 생생한 소식들 전해 주셨는데 보니까 얼굴이 타신 것도 같고 표정이 좋아보이기도 하고요. 언제 귀국하신 건가요?

[기자]
지난 일요일 밤에 올림픽이 폐막했거든요. 월요일에 비행기를 타고 바로 탑승을 했는데 한국 시각으로 어제 귀국을 했습니다. 개막 나흘 전에 현지에 도착했거든요. 그러니까 폐막 이튿날까지 3주가 넘는 아주 긴 출장이었습니다.

[앵커]
오시자마자 바로 출연하신 건데 시차 적응 좀 되셨습니까?

[기자]
안 됐고요. 도착한 지 딱 24시간 됐는데 저희가 생생한 뒷얘기를 전해 드려야 되는데 저희 상태가 지금 생생하지 않아서 걱정되고요. 얼굴도 많이 타고 어떻게 보면 힘든 시간이었지만 개최지가 파리라서 재미있는 점도 많았고요.

[앵커]
개인적으로는 부러웠는데. 올림픽 전에 찜통더위 때문에 파리 현지에 선수들도 힘들 거다, 이런 얘기 많았잖아요. 실제 날씨는 어땠어요?

[기자]
저희도 사실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예상보다 날씨가 선선하더라고요. 낮에는 햇볕이 뜨거웠지만 밤, 아침으로는 기온이 섭씨 20도 밑으로 떨어질 때도 많이 있었고요. 그래서 습도가 높지 않아서 조금 더 쾌적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많이들 아시는 것처럼 이번 올림픽이 에어컨이 없는 올림픽이었잖아요. 그래서 초반에는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특히 어딜 가도 에어컨이 없다는 게 힘들었는데 주요 관광지나 문화유적에 경기장들이 있고, 거기까지를 접근하려면 지하철이나 도보, 자전거로만 가능했거든요. 그래서 하루 2만 보씩 걷는 게 예삿일이었어요. 그만큼 많이 걸음에도 불구하고 에어컨이 없다는 게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는데 제일 더운 곳이 지하철 안이더라고요. 지하철 안에도 에어컨이 없으니까 지하철 안이 힘들고. 대신 밖으로 나와서 지하철 통로 거기가 제일 시원했습니다. 지하철 우리나라가 제일 좋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고, 공항 도착하자마자 저희가 다 느낀 것이 너무 습도가 한국이 높으니까. 기온이 비슷하지만 굉장히 덥게 느껴졌고요. 어제 다들 잠 못 잤을 텐데, 열대야가 저희가 출국 전에는 심각하지 않았거든요. 시차 적응 때문이기도 하지만 날씨가 너무 더워서 잠을 잘 못 자는데, 한국에 계신 분들이 많이 고생했겠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앵커]
우리나라가 훨씬 덥구나라는 걸 두 분께서 깨달으신 것 같은데. 저희가 영상을 보니까 워낙 명소잖아요. 샹젤리제 거리, 여기서 또 조깅도 하시고 하셨더라고요.

[기자]
저희가 숙소가 양시창 기자가 잘 숙소를 구해서 개선문 근방이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도착을 했는데. 뛰는 게 나오네요. 감추고 싶은 영상인데. 저는 제가 저렇게 뛰는 걸 처음 알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시차 적응도 할 겸 또 파리시내 곳곳도 돌아볼 겸 해서 아침에 며칠 열심히 뛰었고요. 지금 저희가 뭐라고 하고 들어가는데. 저기가 평상시에도 잘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었거든요. 아침에 저희가 뛰면서 그냥 얘기를 해서 원래는 들어갈 수 없는 곳도 들어가보고, 처음에 도착하게 되면 파리시내 곳곳을 돌아보고 지리를 익혀야 되는데 새벽에 뛰면서 겸사겸사 지리를 익히고 또 저희가 저것을 영상으로 촬영해서 유튜브로 방송을 했거든요.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진 않았는데.

[앵커]
두 분 표정 굉장히 좋습니다.

[기자]
굉장히 재미있게 달렸고. 사실 폐막 때까지 매일 뛰려고 했어요. 저희 촬영기자는 아마 거의 뛰었는데 저희는 매일 뛰지 못했고. 특히 우리 양시창 기자가 많이 못 쫓아오더라고요. 저는 처음에 촬영한다고 생각을 안 하고 언제 제가 파리 아침 조깅을 하겠냐, 이런 생각으로 함께하겠다고 했는데 나가보니까 카메라를 벌써 촬영기자 선배가 들이대고 이래서 갑작스럽게 촬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초반에 지형 파악도 하고 또 여러 가지 경기장을 소개해 줄 수 있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앵커]
보니까 그렇게 길게 뛰시지지 않은 것 같기도 한데.

[기자]
20km 뛰었나요.

[앵커]
그러면 본격적으로 올림픽 얘기를 나눠보죠. 현장에서 직접 보고 느낀 부분들이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어떠셨나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기자]
이번 파리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올림픽 역사상 굉장히 많은 역사가, 새 역사가 쓰여졌죠. 그런 주요 순간들을 저는 경기장에서 직접 눈으로 담을 수 있어서 참 영광이었는데요. 모든 순간이 다 값진 순간이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펜싱 오상욱 선수의 첫 금메달 장면이었습니다. 펜싱 종주국이죠, 프랑스가. 그리고 그랑팔레라고 하는 역사적인 장소에서 펜싱 경기가 열린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있더라고요. 유리천장이 내려다보이는데 비스트가 있고. 그런데 특히 남자 사브르 단체전은 대회 전부터도 금메달 유력 종목으로 꼽혔지만 개인전은 사실 그렇게 큰 기대가 없었거든요. 오상욱 선수가 멋지게 금메달을 땄고. 중요한 것은 몇 가지 국면이 있었습니다. 올림픽 전에는 오상욱 선수가 그렇게 개인전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어요. 특히 국내에서 치러진 그랑팔레 경기를 제가 직접 취재를 갔었는데 그 직전 대회까지 2연패를 하고 있다가 올림픽 두 달 남기고는 8강에서 떨어졌거든요. 이 8강에서 오상욱 선수를 떨어뜨린 장본인이 돌레지비치라는 미국 선수인데, 돌레지비치 선수를 포함해서 히스콕 같은 미국 선수들이 변칙적인 공격. 젊은 선수들인데 국제 펜싱계에도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선수들이었거든요. 이 선수들 때문에 사브르 단체전도 금메달 못 딸 수도 있다, 이런 전망도 나오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이 두 선수가 모두 32강에서 이번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두 선수 중에 한 명의 덜미를 잡은 선수가 우리 펜싱의 박상원 선수거든요. 박상원 선수는 다음 라운드에서 아쉽게 떨어졌지만 오상욱 선수의 금메달 여정에 숨은 공로가 있다. 이렇게 생각이 들고요. 결국 오상욱 선수는 개인전 첫 금메달을 따면서 그랜드슬램을 달성했고. 또 개막 이튿날 깜짝 금메달이 나오면서 우리 선수단 전체의 사기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앵커]
응원도 크게 하셨나요?

[기자]
저도 그렇게 크게 할 줄 몰랐는데 갔더니 엉덩이도 들썩이고. 기자가 그러면 안 되는데 다들 애국자가 돼서 응원을 크게 하죠. 금메달 따면 소리도 지르고.

[앵커]
과몰입을 하셨군요. 이경재 기자는 어떤 지점이 인상 깊으셨어요?

[기자]
양궁이 어려울 거라는 전망은 양시창 기자가 했었어요. 아니다, 딸 거다. 그랬던 기억이 나고. 저는 경기장을 많이 돌아보지는 못 했는데 지금 양 기자가 얘기했듯이 그랑팔레가 나왔잖아요. 저 경기장이 굉장히 특이한 곳이에요. 이번에 올림픽이 에펠탑도 있었고 베르사유 궁전도 있고 나폴레옹 시신이 있는 곳도 있었고 주요 관광지에서 경기가 열렸는데 양궁 연습장면도 나오고 있는데. 그랑팔레가 전시관인데 가보면 단층 구조거든요. 높이가 45m 되고 아자 구조거든요. 거기에 경기장을 설치하고 양쪽에 관중이 있으니까 굉장히 멋있는데 선수들이 메달 따는, 동메달 결정전, 금메달 결정전 때 등장하는 의식이 있어요. 리추얼이 있는데. 옆에 측면에 있는 문에서 나오거든요. 문에서 나오고 한 계단으로 1, 2분을 걸어와요. 그런데 문에서 등장해서 저기 나오는 장면이 경기장 안에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 딱 중계가 되는데. 그래서 선수들이 느끼는 긴장감, 관중이 느끼는 뭐랄까요. 그런 것들이 선수들은 오히려 경기에 앞서서 막 긴장 끌어오르고 관중들의 몰입도는 굉장히 올라가거든요. 그래서 저기서 펜싱과 태권도 경기가 열렸는데 저는 선수들이 등장할 때 그 리추얼이라고 할 수도 있거든요. 그 등장 리추얼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앵커]
저장면이 한국에도 전해지면서 왕자들이 입장한다.

[기자]
그런데 펜싱은 오상욱 선수 멋있잖아요. 무슨 영화 보는 것 같고. 태권도도 그런 장면이 인상적이었고요.

[앵커]
오상욱 선수, 두 분이 직접 인터뷰도 하셨잖아요. 저도 그때 생방 중이어서 그 소식 전하기도 했었는데. 현지에서도 반응이 좀 뜨거웠나요? 브라질에서 특히 인기가 많다, 이런 얘기도 있었는데요.

[기자]
저희가 인터뷰를 한 시점이 남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딴 그다음 날이었거든요. 장히 오상욱 선수가 피곤했을 텐데 제가 섭외를 한 시점이 바로 그 다음 날이었는데, 굉장히 피곤했을 텐데 제가 낮시간에 전화를 했는데도 자다 깬 목소리로 전화를 오상욱 선수가 받았어요. 그래서 굉장히 미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흔쾌히 인터뷰도 응해 주고. 또 오상욱 선수가 워낙 출중한 실력과 외모로 많이 알려지다 보니까 다른 외국 관광객들도 저희 저 인터뷰 하는 장면 곁에 서서 많이 촬영하기도 하고 지켜보면서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저희를 봤던 거 아니었나요? 저희는 많이 찍고 그랬었는데. 저희 둘이 있었을 때도 그랬긴 했는데.

[앵커]
안세영 선수 인터뷰에 대해서 얘기해 주시죠.

[기자]
오상욱 선수를 저희가 단독으로 인터뷰했고 며칠 이따 안세영 선수 금메달을 따는 결승전이었는데. 전날 저희가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다가 안세영 선수 부모님이 와 계셨거든요. 전화해서 안세영 선수 부모님을 섭외를 해서 인터뷰를 진행했고요. 부모님이 흔쾌히 인터뷰를 응해 주셔서 재미있게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저때 에피소드가 늦게 나오시는 거예요, 방송 시간이 정해져 있었는데. 그래서 애간장을 태우면서 마지막 1분 남겨놓고 갑시다 해서 한 2분 전에 등장을 하셨거든요. 양시창 기자가 안에서 모시고 와서 힘들게 인터뷰를 했었고. 안에서 안세영 선수가 끝나고 금메달 따자마자 작심발언을 하고 폭탄발언을 했잖아요. 그 얘기가 전해지면서 저 인터뷰가 화제가 돼서 조회수가 지금 꽤 많이 나온 것으로 알려져서 저 인터뷰가 60만 이상, 화제가 됐던 인터뷰였고요. 부모님들 얘기 잘 해 주셨고, 특히 어머님이 많이 닮아서 댓글을 보니까. 저때 어머님이 얘기를 굉장히 잘해 주셨어요. 그래서 어머님에 대한 칭찬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앵커]
오상욱 선수부터 안세영 선수 부모님까지 정말 두 분의 수고 덕분에 좋은 소식들 많이 전해 들었는데. 이번에 우리 선수단이 최소 인원으로 역대 최다 금메달을 따기도 했잖아요. 현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어땠나요?

[기자]
저는 대회 전부터 체육회가 예상했던 금메달 5개, 이것은 훌쩍 뛰어넘을 것이라고 예상을 했었습니다. 사실 이번에 선수단이 144명이어서 1978년 이후 최소 규모라고 얘기를 하는데. 이게 구기 종목들이 빠진 영향이거든요. 축구만 해도 선수단 엔트리가 26명이죠. 10명, 20명씩 되는 구기 종목들을 빼면 사실 144명이 그렇게 적은 숫자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구기 종목 중에서 금메달이 유력한 종목들은 없었기 때문에 사실은 144명이라는 숫자가 굉장히 알짜배기 인원수다. 그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금메달 10개 정도는 딸 수 있겠다는 예상을 했었는데요. 특히 사격을 취재했을 때부터 저희가 조금 달랐던 게 굉장히 자신감에 차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거 예상과 다르게 다들 자신감이 차 있어서 과연 설마 했는데도 정말로 너무 좋은 결과를 냈고, 양궁도 아까 선배가 얘기하셨지만 저는 3개보다 사실은 더 많이, 5개도 잘하면 가능하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습니다. 태권도는 좀 제 기대 이상으로 나왔고요. 펜싱과 사격에서 금맥이 일찍 터뜨리니까 선수단 전체의 사기가 확산하는 것을 볼 수 있었고 메달을 따지 못한 다른 종목들도 옆에서 지켜보니까 어느 한 종목도 쉽게 지지 않았다. 허망하게 경기를 내주지 않았다는 면을 옆에서 보고 참 자부심이 느껴졌습니다.

[앵커]
이번 파리올림픽 특히나 완전히 개방된 올림픽을 표방했고, 굉장히 관광명소라고 할 수 있는 그런 곳들을 배경으로 경기가 치러졌는데 실제로 겪어보니까 어떠셨습니까?

[기자]
가장 파리답게 올림픽을 진행했다라고 결론을 맺을 수 있을 것 같고요. 올림픽 개최가 최근에는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많아요. 올림픽 개최에 너무나 천문학적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점점 개최를 안 하려고 하고, 그래서 이번 올림픽 같은 경우도 파리와 LA 두 도시가 신청해서 2024년, 2028년 이렇게 나눠서 개최를 하는 거거든요. 과연 올림픽이 이 시대에 계속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의문점이 굉장히 많았는데 파리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올림픽이 계속 지속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고요. 그중에 일단 비용적인 측면에서 기존에 도쿄올림픽이나 베이징올림픽의 3분의 1, 5분의 1밖에 들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또 올림픽을 계기로 파리 조직위원회가 미래세대를 공통으로 관통하는 가치를 제시했거든요. 그것이 환경, 남녀평등, 장애인, 비장애인 평등 이런 부분인데 그런 것들을 또 어느 정도 실현해 주면서 올림vlr이 시대에 의미가 있구나 이런 것을 보여줬던 부분이 저는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우리나라가 서울올림픽을 또 하려고 하거든요. 2036년에 개최를 준비하고 있는데. 이번 올림픽을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앵커]
올림픽 경기들도 재미있었지만 두 분의 이런 생생한 이야기도 계속 듣고 싶은데, 시간관계상 여기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이경재, 양시창 기자와 함께 파리올림픽 뒷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영상편집:신수정


YTN 양시창 (ysc08@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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