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조선태형령' 등 차별적 형사 재판으로 조선인 탄압

일제, '조선태형령' 등 차별적 형사 재판으로 조선인 탄압

2018.02.26. 오후 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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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조선태형령'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일제 강점기 조선인에게만 적용된 대표적인 식민지 악법이었는데요.

3.1운동 99주년을 맞아 근대 사법제도와 일제강점기 형사 재판 자료 등을 모은 책자가 발간됐습니다.

권오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3.1운동 직후인 1919년 5월 8일.

경북 영천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으로 체포된 사람들에 대한 재판 자료입니다.

홍종현은 대구지방법원 1심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조병진과 조재복은 방조죄로 곤장 90대를 선고받았습니다.

이런 판결은 1912년 3월 일제가 제정한 '조선태형령'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식민지 질서에 대항하거나 순응하지 않는 조선인에게만 작은 곤장으로 볼기를 치는 태형을 시행할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식민지 악법으로 당시의 차별적 재판제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민족대표 33인으로 3.1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된 손병희 선생에 대한 경성지법 판결문입니다.

관할위, 즉 본 사건을 담당할 수 없어 결정을 고등법원으로 넘긴다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일제는 3.1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자 소요죄와 보안법 등을 총동원한 데 이어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을 제정해 종래 2년의 형량을 최대 10년까지 늘리는 등 조선인 탄압을 강화했습니다.

1894년 갑오개혁 이래 근대적 사법제도를 받아들여 재판소가 설치된 이후 나온 한성재판소의 형사 제1호 선고서.

현존 형사판결 선고서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술을 마시고 순검, 경찰을 다치게 한 한성부에 사는 피고에게 곤장 80대의 처벌을 내렸습니다.

국가기록원은 3.1운동 99주년을 맞아 1876년 조선 개항 이후 대한제국기까지 사법제도의 변화와 일제강점기 형사 재판 관련 법령과 절차 자료 등을 담은 책자를 발간했습니다.

YTN 권오진[kjh0516@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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