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끊어 나랏빚 갚자"...경주에서도 국채보상운동

"담배 끊어 나랏빚 갚자"...경주에서도 국채보상운동

2020.01.19. 오전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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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일본에서 도입한 차관 1,300만 원을 갚아 주권을 지키자는 '국채보상운동'.

1907년 대구에서 시작해 서울과 부산 등으로 퍼져나갔는데요.

경북 경주에서도 조직을 갖춘 국채보상운동이 체계적으로 이뤄졌다는 기록이 처음 확인됐습니다.

이윤재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경상북도 경주군 금연회사 취지서'라고 적힌 옛 문서.

문서에는 지금 나랏빚이 천300만 원에 이르고, 이를 갚지 않으면 땅이 없어지고, 땅이 없어지면 나라가 없어진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러면서 1원, 2원을 모아 나라 기초를 회복하자고 호소합니다.

담배를 끊어 자금을 모으자는 뜻으로 단체 이름을 '단연회'라고 지었습니다.

소소한 시작이지만 나라를 구하자는 뜻을 품은 단체답게 회장과 재무 등 임원진도 꾸렸고, 때마다 광고문도 붙였습니다.

1907년 경북 경주에서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국채보상운동이 이뤄졌다는 기록이 문서로 처음 확인된 겁니다.

[한상구 / 역사디자인연구소 이사장 : 전통적인 유림 세력이 이 지역을 상당히 잘 조직적으로 통제하면서 상당히 어려운 상황에서도 긴 시간 동안 국채 보상운동을 꾸준하게 (이어갔습니다.)]

경주 국채보상운동의 중심에는 최부잣집이 있었습니다.

독립운동에 전 재산을 바친 것으로 알려진 최 준 선생의 아버지인 최현식 선생이 '단연회' 회장을 맡았고 가장 많은 금액을 내놓았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일본의 방해로 끝내 무산됐지만, 당시 경주에서는 최 부자를 시작으로 5천여 명이 3천300원을 모았습니다.

[최창호 / 경주최부자민족정신선양회 이사 : 11대 되는 분(최현식 선생)이 회장을 맡으면서 굉장히 활발히 움직입니다. 그래서 결과가 보면 경주 지역에서 5천 명이 넘는 인원이 다 의연금을 내고 참여하게 되죠.]

발견된 문서도 모두 최부잣집에서 찾았습니다.

이 기록들은 유네스코 기록유산인 대구 국채보상운동 기록보다 더 자세하고 체계적이라는 평가입니다.

창고에 묻혀있던 경주 국채보상운동 기록이 발견되면서 일제에 저항하고 주권을 지키려 했던 지역 사회의 희생과 노력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YTN 이윤재[lyj1025@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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