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무늬만 경찰' 오명에 이원화 시범...자치경찰 실험, 안전한가

[와이파일] '무늬만 경찰' 오명에 이원화 시범...자치경찰 실험, 안전한가

2023.04.14. 오전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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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자치경찰 사무 이원화 시범 지역으로
"자치경찰대장 추천 등 기초단체장 권한 검토"
시장·군수 유착 방지 대책 없어…"중립성 우려"
"지역 국가경찰 인력 69.6% 자치경찰로 이관받겠다"
전북경찰 "사전 논의 없이 갑자기 공표돼 당혹"
이원화 시범으로 '무늬만 자치경찰' 오명 벗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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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무실 꼬리표를 단 자치경찰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합니다. 국무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경찰제도발전위원회는 지난 11일 내년도 자치경찰 이원화 시범 시행 지역에 제주와 강원, 세종 외에 전북을 추가하는 안을 정부에 권고하기로 했습니다. 특별자치시·도인 이들 지역에서 어떤 성과를 거두느냐에 따라 2026년부터는 전국에서 전면 시행될 가능성도 큽니다.

자치경찰 이원화는 시·도 소속 조직과 인력으로 자치경찰 사무를 집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치경찰 사무란 경찰법 제4조에 따른 여성·청소년, 교통 분야 등을 뜻합니다. 지금의 자치경찰제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은 사무만 구분돼 있고 조직과 인력은 그대로 국가경찰에 속한, 일원화 모델입니다. 그래서 이번 시도는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을 완전히 분리하기 위한 사전 시뮬레이션으로 평가됩니다. 이원화 모델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합니다.


시범 도입이 사실상 확정된 이후 전북자치경찰위원회는 환영 입장을 내며 '전북형 자치경찰제' 시범모델안을 제시했습니다. 모델안은 다른 지자체 모델과 대체로 비슷한데 그중 몇 가지 실험적 시도가 눈에 띕니다. 3개 시·군을 공모 선정해 기초자치단체가 참여하는 자치경찰제를 시범 운용하겠다는 계획이 특히 그렇습니다.

지금의 경찰서 격인 자치경찰대가 시·군에 설치되는데, 이 자치경찰대의 주요정책과 업무계획, 예산편성까지 모두 단체장이 주관하는 자치경찰협의회의 심의를 거쳐야 합니다. 시장·군수는 자치경찰대장은 물론 전북자치경찰을 지휘·감독하는 전라북도자치경찰위원회 위원을 추천할 권한까지 갖습니다. 이형규 전라북도자치경찰위원장은 "허용 가능한 최대한의 범위까지 전북형 모델안에 반영했다"고 말했습니다.


아직 구체화가 덜 된 '안'에 불과하지만, 자치경찰제 도입 논의 당시부터 논란이 된 부분들이 어떤 개선 조처 없이 곳곳에서 읽히는 건 위험 신호입니다. 앞서 다룬 '기초단위 자치경찰제'에는 시장·군수와 자치경찰대의 유착을 견제할 장치에 대한 고민이 빠져 있습니다. 나아가 수사 등 국가경찰 사무의 초기대응까지 자치경찰이 한 뒤 국가경찰에 인계하게 했습니다.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을 위한다는 이유입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권한을 주는 건 좋은데 책임을 물을 방법, 견제하고 통제할 기능이 분명히 담보돼야만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자치경찰의 초동조치권에 대해서도 "도로 위 순경이 한 사안을 사건으로 보느냐 사고로 보느냐에 따라 수사의 성패가 갈리게 된다"며 우려했습니다.


자치경찰 사무를 위해 전북경찰청 인력 5,100여 명 중 3,500여 명(69.6%)을 이관받겠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지구대·파출소 소속 2,200여 명이 포함된 겁니다. 이런 중대한 변화를 논의하는 과정에 지역 경찰청의 입장이 배제된 건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전북경찰청 관계자는 "모델안이 나온 것을 확인하고서 이런 계획을 알았다"며 "지금껏 자치경찰위원회와 전북청 사이에 별다른 논의도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를 두고 이형규 전라북도자치경찰위원장은 "청장과 큰 틀을 이야기하던 중 언급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거듭 짚어볼 건 자치경찰 이원화의 핵심이 시·도 소속 조직과 인력으로 자치경찰 사무를 집행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직은 구성하면 되겠으나 문제는 인력입니다. 신규 채용은 사무 노하우 확보나 계급별 인력 분포 측면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이직을 희망하는 국가직 신분의 경찰관을 자치경찰로 받아들일 방침이지만, 핵심은 경찰관의 법 집행 권한 범위를 어디까지 보장하느냐가 될 거로 보입니다. 자체 인력 확보는 도지사의 인사권 행사 범위와 맞닿아 있는, 이원화 모델 도입 실효성의 관건일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 2006년 비교적 일찌감치 출범한 제주자치경찰단에서조차 지금껏 이런 신분전환 신청 사례는 고작 56건에 불과합니다. 부연하자면 제주자치경찰의 권한은 긴급체포나 압수 등이 필요한 상황을 마주하면 112에 신고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에 머물러있습니다. 수사권도 다른 지자체 특별사법경찰(특사경)의 사무 범위인 환경, 식품위생, 가축방역 등에 한합니다.

자치경찰제는 지난 2021년 7월 도입 후 3년째 '무늬만 자치경찰', 나아가 '무늬만 경찰'이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주자치경찰의 경우 18년째 그렇습니다. 여태 모호하기만 한 제도를 시범 도입을 통해 개선하려는 의도 자체는 평가할 만합니다. 다만 정부의 목표와 지자체의 의욕이 주민 혼란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남은 몇 달간 더 촘촘한 방안 검토가 필요한 건 분명해 보입니다.

YTN 김민성 (kimms0708@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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