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앤피플] ‘탱고를 이끄는 악기’ 반도네온 연주자 이어진 씨

[피플앤피플] ‘탱고를 이끄는 악기’ 반도네온 연주자 이어진 씨

2015.11.12. 오후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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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네온을 통해 남미의 매력을 온 몸으로 느낍니다”

악수를 청하는 그녀의 작은 손에서 뜨거운 열정이 느껴졌다. 맑은 눈빛의 반도네온 연주자 이어진 씨는 에너지가 넘쳤다.

이어진 씨는 대학원 재학 중 아르헨티나 탱고의 대표적인 악기로 불리는 ‘반도네온’을 처음 만난 뒤 소리에 매료돼 운명처럼 음악인의 길로 들어섰다고 말한다. 서울대에서 건축공학 박사 과정을 수료한 이색 경력을 지니고 있다.

이 씨는 지난 5월 악기를 배운지 3년 여 만에 독일에서 열린 ‘제52회 클링엔탈 국제 반도네온 콩쿠르’에서 솔로 부문 2위를 차지 해 화제가 됐다.

반도네온의 선율에 푹 빠졌던 세월의 결과였지만, 이 씨는 이제 뮤지션으로서 첫 걸음을 내딛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자신을 낮췄다.

탱고 불모지에 가깝던 한국에서 젊은 여성 반도네오니스트의 등장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이 씨는 탱고를 ‘하나의 심장, 네 개의 다리로 추는 춤’으로 묘사한다. 탱고를 추려면 상체를 밀착해야 하지만, 하체는 거리를 둔 채 리듬에 맞춰 빠르게 스텝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탱고의 이러한 열정적인 움직임에 환호한다.

아르헨티나 탱고의 대표적인 악기로 불리는 반도네온은 다소 어둡고 무거운 듯한 영혼의 고뇌를 강한 음색과 선율로 표현한다는 평을 받지만, 아직까지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아 생소하다.

이 씨는 반도네온을 아코디언에 비유하며 “아스트로 피아졸라(A.Piazzolla)의 말처럼 아코디언이 영롱하고 유쾌한 소리로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악기라면, 반도네온은 벨벳과 같은 종교적인 소리로 슬픈 음악에도 잘 어울리는 악기”라고 정의했다.

탱고는 토착 라틴 주민들의 노동자들로 부터 시작해 아프리카와 유럽 이주민 등 다양한 인종을 뛰어 넘어 발전한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일컬어진다.

다음은 이어진 씨와의 일문일답.

Q. 서울대에서 건축공학 박사를 수료하는 등 탱고 악기인 반도네온 연주자로서는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좋아하기는 했지만 한 번도 직업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음악인에 대한 동경은 갖고 있었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바라셨던 부모님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학교 때 우연히 처음 들은 피아졸라의 탱고음악에 깊은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날 이후 음악은 어려운 동경의 대상이 아닌 그 이상의 ‘동반자’와 같이 친숙하게 느껴졌습니다.

워낙 호기심이 많고 배우고 싶은 게 생기면 제대로 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 성향 탓에 음악을 깊게 공부해 보고 싶었지만 오래 공부한 건축도 쉽게 그만두기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보면 박사 수료는 부모님을 향한 제 나름의 중용의 도리였던 셈입니다.

하지만 대학원 재학 중, 진로의 최종 방향을 결정한 이후 적극적으로 반도네온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2009년 아르헨티나 현지에서 활동 중인 반도네오니스트 레오정 선생님을 운명처럼 만났고, 선생님께서 구해주신 반도네온으로 레슨을 시작하면서 탱고 음악인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Q.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반도네온’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반도네온은 생김새가 아코디언과 비슷합니다. 고음과 부드러운 중저음 음색을 모두 갖고 있는 동시에 무릎 위에 올려놓고 두 다리의 움직임에 의해 리듬감을 살리면서 악기 전체를 움직이며 연주합니다. 탱고 음악의 박력과 애수를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즉 탱고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악기죠.

반도네온은 19세기 초에 독일인 음악가 ‘칼 프리드리히 율리히’가 처음 만들었습니다. 아코디언의 음색과는 달리 반도네온만의 독특한 음색에 매료된 음악가 하인리히 반드가 기존의 반도네온을 개량하고 교재를 개발하는 등 상업화에 성공함으로써 유럽을 넘어 아메리카 대륙까지 전파된 것입니다.

버튼 배열의 카오스적인 배치 때문에 처음 배우기 어려워 별칭으로 ‘악마의 악기’라고 불리지만, 개인적으로 저는 다른 악기들처럼 충분한 연습을 통해 익숙해지면 어느 누구라도 본인이 원하는 음악을 아름답게 표현해낼 수 있는 ‘천사의 악기’라고 생각합니다.


Q. 많은 악기 중 ‘반도네온’을 선택한 이유는?

음악을 그저 감상하기만 했던 그 시절, 운명처럼 아르헨티나 탱고의 거장 ‘피아졸라’ 음악에 빠져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당시에는 그가 연주했던 악기를 저도 연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반도네온 특유의 매력적인 색깔과 표현법 등에 감동 받았고 반도네온이라는 악기와 평생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Q. 남들보다 늦게 악기를 시작한 편인데 힘든 점은 없었나요?

대게 음악인들은 어린 시절부터 악기를 배우게 됩니다. 이에 비해 저는 유년 시절을 시골에서 보냈고 쉽게 음악을 접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가 멜로디언을 갖고 노는 모습을 보신 어머니가 교회 피아노 학원에 보내주셨어요. 소리가 나는 하얗고 검은 건반들이 신기해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놀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클래식을 접하게 됐고, 고등학교 때는 클래식 기타를 보고는 바흐의 류트 모음곡이나 비발디 협주곡들에 빠져 지내기도 했습니다. 비교적 늦게 반도네온 공부를 시작했지만, 어찌 보면 어린 시절 부터 음악에 대한 잠재적인 관심도 있었던 것 같고 음악에 대한 질긴 인연의 끈이 계속 저를 이끌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지난 5월 ‘독일 클링엔탈 국제 반도네온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준우승을 하셨죠?

무척 기쁘고 감사한 순간이었습니다. 지난 3년 동안 레오정, 이네스 도희 길 두 분이 공동 설립하신 ‘한국 탱고 아카데미’에서만 반도네온과 탱고를 공부했습니다. 국내였지만 최고의 스승들 지도로 기본을 익히며 음악에 전념했습니다.

당시 주위의 격려를 받으며 열심히 반도네온을 배워가고는 있었지만, 사실 세계 무대에서는 제가 어느 정도 위치일지에 대한 궁금증과 갈증이 가슴 한 구석에 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레오정 선생님께서 더 넓은 세상에서 다른 나라 반도네오니스트들의 연주도 직접 듣고 느껴보라고 조언하시며 반도네온 국제 콩쿠르 참가를 권유하셨습니다.

생각보다 빠른 제안이기는 했지만 국제 콩쿠르 참가는 제 기량을 확인해보기 위해 피해 갈 수 없는 과정이자 도전이었습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그저 최선을 다한다는 일념으로 노력했는데 큰 상까지 받은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지요. 콩쿠르 참가를 결정한 이후 레오 정과 이네스 선생님께서 일 년 전액 수업료와 대회 참가를 위한 항공권, 체재비 전액을 한국 탱고 아카데미 장학금으로 지원해주셨습니다.

연습실에 가는 시간조차 아까워 방에 방음 부스를 설치해놓았고 선생님께 레슨 받으러 가는 시간 외에는 오직 콩쿠르 준비에 주력했습니다. 선생님들의 기대와 후원에 꼭 보답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비록 콩쿠르 무대 연주 중 악기가 고장이 나 갑자기 수리를 하느라 흐름이 깨져버렸고, 제 기량을 다 발휘하지 못해 아쉬웠어요. 0.06점 차이로 우승하지 못했지만 연주자로서의 삶에 큰 교훈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Q. 탱고 오케스트라 ‘로스 땅게로스’의 수석 연주자로서 지난 5일 YTN PLUS가 주최한 ‘코리아 탱고페스티벌’에 참여했습니다. 로스 땅게로스는 어떤 그룹인가요?

전통 탱고 오케스트라 ‘로스 땅게로스(Los tangueros)’는 스페인어로 ‘탱고인들’이라는 뜻으로 한국 탱고 아카데미 출신의 연주자들로 구성됐습니다. 지난 해 창단되어 지금까지 국내의 여러 탱고 페스티벌과 탱고 춤을 추는 공간을 일컫는 밀롱가 등에서 연주하고 있습니다.

한국 탱고 아카데미는 아르헨티나 국립 탱고 아카데미 출신의 레오정, 이네스 도희 길 두 분이 한국에 아르헨티나 탱고의 정수를 알려서 탱고를 하나의 독립적인 문화로 국내에 자리 잡게 하고자 설립한 탱고 전문 교육기관입니다.

Q. 반도네온을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 체력 소모가 클 것 같습니다. 평소 체력 관리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모든 연주자에게 체력은 중요하겠지만 반도네온도 마찬 가집니다. 특히 여성 반도네온 연주자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반도네온 연주 방법은 다양하지만 아르헨티나에서도 가장 인정받는 주법이 바로 ‘힘과 기술을 겸비한 연주법’입니다. 이 주법의 특성상 상체근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악기를 컨트롤 할 수 있어야 섬세하지만 깊은 울림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담이지만 레오정 선생님께 두 번째 레슨을 받던 날 팔굽혀펴기를 통해 상체 근력을 단련하는 법을 따로 가르쳐주셨어요. 여성 연주자가 힘을 써야하는 이유의 중요성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직접 시범까지 보여주셨죠. 당시 처음 레슨을 시작할 때에는 팔굽혀펴기를 단 한개도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바닥에 가슴이 닿는 정자세로 30개씩 4세트까지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반도네온 연주 기량이 향상된 것만큼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Q. 무대에서 자신만의 연주 노하우가 있나요?

무대에서 그동안 연습한 것을 100% 표현하자는 마음가짐을 갖고 있습니다.

관객에서 연주자가 되면서 예술을 대하는 태도가 능동적으로 전환됐어요. 제게 일어난 큰 변화 중 하나는 표현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드러내는 모든 사람들에게 제 모습을 투영해보는 습관이 생긴 것입니다.

음악인뿐만 아니라 배우나 화가, 운동선수, 언론인 나아가서는 사회적인 발언을 하는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적절하게 잘 표현하기 위해 어떤 준비와 노력을 해 왔을 지 고민해 봅니다. 또 그들의 표현 방식을 관찰하면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를 자유롭게 상상해보는 것이지요.


Q. 대중에게 추천하고 싶은 반도네온 곡은?

대학 시절 처음 듣고 엄청난 감흥을 느꼈던 곡인 ‘퀸텟 협주곡 (Concierto para quinteto)’을 들어보시라고 권하고 싶어요.

1971년 당시 피아졸라가 이끌던 퀸텟 멤버들을 위한 송가의 개념으로 발표한 곡이었죠. ‘퀸텟’은 5명의 연주자를 위한 실내악을 뜻하는데 처음 들었을 때는 각 악기들의 독특한 주법이 낯설었지만 이내 매료되어 피아졸라 음악에 빠져들게 된 데에는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또 1900년대 중반 아르헨티나 탱고의 황금기에 작곡, 연주되었던 탱고의 표본으로 누에보 탱고 이전의 ‘전통 탱고’ 음악을 듣길 원하는 분에게는 'El huracán (허리케인)’, 아르헨티나 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탱고곡인 'Quejas de bandoneón (반도네온의 탄식)’ 등을 추천합니다.


Q. 앞으로 활동 계획은?

현재 한국 탱고 아카데미에서 하는 ‘최고 연주자 과정’을 제대로 수료해 보다 심도 있게 반도네온을 공부할 계획입니다. 또 로스 땅게로스의 수석 연주 단원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탱고를 일반 대중들에게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요.

아직 국내에는 4대 이상의 반도네온과 전문 탱고 피아니스트, 탱고 주법의 바이올린과 콘트라베이스로 구성된 ‘탱고 오케스트라’를 낯설어 하는 음악 전문가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유럽이나 아르헨티나에는 춤과 감상을 위한 탱고 오케스트라가 이미 대중에게 친숙합니다.

앞으로 아르헨티나 탱고 거장들과 한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는 탱고 오케스트라로 발전시키고 많은 대중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으면서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꿈입니다.

▶ 반도네온 연주자 이어진 씨는 서울대 건축 구조 공학 박사를 수료한 후 국내 탱고 전문 교육 기관인 ‘한국 탱고 아카데미’에서 반도네오니스트 레오정으로부터 반도네온을 사사했다.

국내 유일의 전통 탱고 오케스트라인 ‘로스 땅게로스’의 반도네온 수석 연주자로 2014년과 2015년 '코리아 탱고 페스티벌' 초청 연주, 남이섬 탱고 페스티벌, 카이스트 문화 기술 대학원 초청 연주, 국내 밀롱가 라이브 연주, 클래식 연주자들과의 협연 등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YTN PLUS] 취재 공영주 / 사진 정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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