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키워드④] 콜로라도 ‘로열 고지’, 현기증 나는 다리

[미국 서부 키워드④] 콜로라도 ‘로열 고지’, 현기증 나는 다리

2017.02.08. 오전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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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 키워드④] 콜로라도 ‘로열 고지’, 현기증 나는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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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라는 타이틀에 대한 마케팅은 여행도 예외가 아니다. 아니 어쩌면 가장 경쟁이 심한 분야일지도 모른다.

뭐든지 최고여야 사람을 끌어당긴다.

달리 내세울게 없는 각 도시의 랜드마크는 초고층 건물로 대체되며, 바벨탑처럼 지어 올려도 해가 바뀌면 명단에서 빠른 속도로 뒤쳐져 간다.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31년 완공 당시 102층을 자랑하는 세계 최고 높이의 건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순위표에서 어디를 찾아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미국 서부 키워드④] 콜로라도 ‘로열 고지’, 현기증 나는 다리

미국에서 가장 높은 현수교인 로열 고지에 대한 얘기를 들은 건 덴버에서였다.

콜로라도의 관광에서 빠질 수 없는 명소라는 것.

하지만 제일 높은 다리라는 영광은 2000년 들어서면서 중국의 거친 돌진 앞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따라서 단순히 세상에서 제일 높은 다리를 보러 갈려면 중국으로 가야 한다.

그래도 그 오랜 시간 동안 가장 높은 다리라는 명예를 가졌으니, 영광은 충분했으리라.

[미국 서부 키워드④] 콜로라도 ‘로열 고지’, 현기증 나는 다리

재미있는 건 로열 고지도 1929년 완공이라는 것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완공되는 시점과 비슷하다.

게다가 이 아찔한 다리가 6개월만에 완공됐다고 하니 얼핏 이해하기 쉽지 않다.

[미국 서부 키워드④] 콜로라도 ‘로열 고지’, 현기증 나는 다리

로열 고지 입구의 마을에서 교도소로 보이는 건물이 지나간다. 로열 고지는 이 오래된 교도소의 죄수들이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는 연결을 목적으로 하지만, 이곳의 다리는 처음부터 관광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미국 서부 키워드④] 콜로라도 ‘로열 고지’, 현기증 나는 다리

다리가 완공된 1929년은 미국 대공황이 터진 시점인데, 6개월만에 공사를 완료했다는 건 죄수들의 값싼 노동력이 있어 가능했지 않나 라는 생각이다.

아칸소 강 위의 협곡에 올려진 이 다리의 양쪽은 딱히 마을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현재도 공원 내의 차를 제외하면 차량 통행도 없다. 위험천만한 공사지만 어쩌면 당시 죄수들은 영화 ‘쇼생크 탈출’ 에서 보았던 것처럼 야외작업에서 자유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미국 서부 키워드④] 콜로라도 ‘로열 고지’, 현기증 나는 다리

이처럼 여러 가지 볼거리와 생각할만한 것들이 있는 로열 고지 이지만, 의외로 덴버에 사는 한인들조차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꽤 있었다.

그 이유는 거리인 것 같다.

덴버에서 두 시간이 좀 넘게 걸린다. 느긋하게 다리 구경하고 돌아오려면 하루는 잡아야 할 거리.

[미국 서부 키워드④] 콜로라도 ‘로열 고지’, 현기증 나는 다리

관광용 다리임을 증명하듯 케이블카와 스카이 코스터가 321미터 상공을 날아간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다리를 건널 때 후덜덜한 느낌을 피할 수 없다.

[미국 서부 키워드④] 콜로라도 ‘로열 고지’, 현기증 나는 다리

특히나 다리위에서 차량이 지나가거나, 나무 판자 사이로 보이는 강물의 아득함이 느껴지는 순간 고개를 돌려야 한다.

강 옆을 따라 달리는 기차는 장난감보다 더 작아 보인다.

높이 321미터라는 숫자는 무의미하다. 그저 까마득하고 현기증이 일어날 정도여서 느낌만으론 몇 킬로미터 위에 있는 것 같다.

[미국 서부 키워드④] 콜로라도 ‘로열 고지’, 현기증 나는 다리

케이블 카로 다리를 건너가니 한줄기 소나기가 쏟아져 내린다.

주위에 마땅한 건물도 없고, 덩그러니 놓여있는 버스에 올라탄다.

온갖 인종의 관광객들이 버스 안을 가득 채운다. 비가 그칠 때까지 쉴새없이 떠들어대는 관광객들 속에서 비 내리는 로열 고지를 바라보았다.

쏟아지는 낯선 언어들 사이에서 ‘아 여기는 미국이구나’ 제대로 실감이 나는 순간이다.

트레블라이프=양혁진 anywhere@travellif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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