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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봉 전망대에서 본 산세
가끔 북한산을 바라보며 서울과 인근 수도권에서 북한산 자락을 붙잡고 사는 것을 행복하다 생각할 때가 있다. 북한산이 먼저 있었고 그 산을 중심으로 인간이 삶의 터전을 일구었을 텐데, 도시가 있고 나서 산이 생긴 것 마냥 대도시가 산을 안고 있는 형태가 되었다. 오늘도 사람들은 주말이건 평일이건 가리지 않고 북한산을 찾는다. 그만큼 현재의 북한산은 서울시민과 수도권 도시민들에게 일상이 된 듯 동화되어 있다.
△ 오래전 마찻길
북한산 둘레길은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 있는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기존의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서 만든 저지대의 수평 산책로이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걷는 길로 물길, 흙길, 숲길과 마을길 산책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 9월 7일에 서울특별시 구간과 우이령길을 포함한 45.7km 구간이 개통되고, 2011년 6월 30일에 나머지 구간이 개통됨에 따라 71.8km가 완전히 개통되었다. 1구간 소나무 숲길부터 21구간 우이령길까지 총 21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구간마다 자연, 역사와 문화, 생태체험에 맞게 특색 있는 테마길로 조성되어 있다. [출처-국립공원공단]
북한산(도봉산지구 포함)의 정상을 오르던 산행에서 북한산 둘레길을 걸어보게 된 것은 좋지않은 몸 상태 때문이었지만 한 구간 한 구간 걸을 때마다 왠지 빠져드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1구간 부터 20구간까지 모두가 전혀 다른 모습의 길이 호기심을 불러와 다음 구간을 기다리게 했다. 1구간 소나무 숲길을 3월초에 시작하여, 9주차 21구간 우이령길로 완주한다.
우이령길은 강북구 우이동에서 경기도 양주시 교현리까지의 6.8km의 고갯길을 말한다. 소의 귀를 닮은 바위 우이암에서 비롯되어 우이령(牛耳嶺)이라 불렸다고 한다. 오래전에는 마찻길로, 한국전쟁 때는 피난길로 이용되다 휴전 후 군사작전 도로로 이용했던 길이다. 1968년 1.21사태(무장공비 침투사건)로 우이령 길이 폐쇄되었다가 2009년 7월 자연 친화적으로 정비해 41년만에 개방한 생태탐방로이다.
△ 우이령길 탐방지원센터
우이령길은 우이동에 있는 우이령길 탐방안내소와 양주시 교현리에 있는 교현 탐방지원센터에서 각각 시작할 수 있다. 나는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우이역에서 내려 우이동에서 교현 탐방지원센터까지 걷기로 한다. 현재 우이령길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참고로 우이동 출발 500명, 교현출발 500명으로 1일 1,000명이 이용가능하다.
△ 좌우로 설치되어 있는 대전차 장애물
우이령길은 사람이 이용목적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비운의 역사를 갖고 있다. 오랜 옛날에는 마찻길로 서울에서 경기도 양주로 넘을 수 있는 교통로가 되었고, 6.25 사변에는 피난민의 생의 환로였다. 6.25를 거치면서 군사작전도로의 개념이 더욱 강해져 미군 공병대가 적의 전차 침략을 막는 대전차 장애물도 갖게 된다. 그러다 다시 길이 막히게 된 것은 1968년 1.21사태로 무장공비가 침투한 사건이다.
우이령 길이 다시 열린 것은 2009년 7월로 41년 만에 개방한 자연친화적 생태탐방로의 모습이다. 안쪽 길은 흙먼지가 풀풀 날리지만 우거진 수풀이 좋다. 오랫동안 폐쇄된 덕분인지 자연의 모습은 잘 보존되어 있고 나무들은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정원수의 모습이다. 아기자기 핀 야생화들을 보니 너무 반가워 꽃이름을 불러가며 인사하며 걷는다. 이제 우이령길은 사람이 편안한 여가를 즐기기 위해 이용하는 열린 길이 되었다.
△ 석굴암
오봉산 관음봉 중턱에 자리잡은 석굴암에 잠시들려 마음의 소원을 빌어본다. 석굴암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일반인들에게 잊혀질 뻔했다가 현재의 모습으로 회복되어 나한 기도하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석굴암을 찾아가는 길도 전쟁이란 참화에 닫혔다가 어렵게 열렸다. 예약제로 운영되지만 석굴암을 찾는 불교 신자들에겐 많은 제약을 두지 않아 길 찾아가기가 쉽다.
△ 우이령길
들머리가 우이동였으면 날머리는 교현리가 된다. 북한산 둘레길 21구간 완주의 순간이다.
교현 탐방지원센터에서 마지막 스탬프 도장을 받고 완주증 신청을 한다. 북한산 둘레길 완주증은 일주일 후 도착한다. 비록 A4용지 한 장이지만 왠지 완주증이란 글귀가 무엇을 이룬 듯한 뿌듯함을 준다.
봄이 막 시작될 즘 시작한 둘레길이 짧은 봄이 끝날 즘 마쳤다. 점점 녹음으로 짙어져가는 북한산을 보며 한번 더 둘레길을 돌고 싶어진다.
신록이 넘실거릴 여름 길, 단풍이 물들 가을 길, 흰눈이 내릴 겨울 길을 생각하니 벌써 설렌다.
제공 = 국내유일 산 전문채널 마운틴TV (명예기자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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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북한산을 바라보며 서울과 인근 수도권에서 북한산 자락을 붙잡고 사는 것을 행복하다 생각할 때가 있다. 북한산이 먼저 있었고 그 산을 중심으로 인간이 삶의 터전을 일구었을 텐데, 도시가 있고 나서 산이 생긴 것 마냥 대도시가 산을 안고 있는 형태가 되었다. 오늘도 사람들은 주말이건 평일이건 가리지 않고 북한산을 찾는다. 그만큼 현재의 북한산은 서울시민과 수도권 도시민들에게 일상이 된 듯 동화되어 있다.
△ 오래전 마찻길
북한산 둘레길은 서울과 경기도 지역에 있는 북한산 자락을 완만하게 걸을 수 있도록 기존의 샛길을 연결하고 다듬어서 만든 저지대의 수평 산책로이다.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걷는 길로 물길, 흙길, 숲길과 마을길 산책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2010년 9월 7일에 서울특별시 구간과 우이령길을 포함한 45.7km 구간이 개통되고, 2011년 6월 30일에 나머지 구간이 개통됨에 따라 71.8km가 완전히 개통되었다. 1구간 소나무 숲길부터 21구간 우이령길까지 총 21구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구간마다 자연, 역사와 문화, 생태체험에 맞게 특색 있는 테마길로 조성되어 있다. [출처-국립공원공단]
북한산(도봉산지구 포함)의 정상을 오르던 산행에서 북한산 둘레길을 걸어보게 된 것은 좋지않은 몸 상태 때문이었지만 한 구간 한 구간 걸을 때마다 왠지 빠져드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1구간 부터 20구간까지 모두가 전혀 다른 모습의 길이 호기심을 불러와 다음 구간을 기다리게 했다. 1구간 소나무 숲길을 3월초에 시작하여, 9주차 21구간 우이령길로 완주한다.
우이령길은 강북구 우이동에서 경기도 양주시 교현리까지의 6.8km의 고갯길을 말한다. 소의 귀를 닮은 바위 우이암에서 비롯되어 우이령(牛耳嶺)이라 불렸다고 한다. 오래전에는 마찻길로, 한국전쟁 때는 피난길로 이용되다 휴전 후 군사작전 도로로 이용했던 길이다. 1968년 1.21사태(무장공비 침투사건)로 우이령 길이 폐쇄되었다가 2009년 7월 자연 친화적으로 정비해 41년만에 개방한 생태탐방로이다.
△ 우이령길 탐방지원센터
우이령길은 우이동에 있는 우이령길 탐방안내소와 양주시 교현리에 있는 교현 탐방지원센터에서 각각 시작할 수 있다. 나는 탄소 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우이역에서 내려 우이동에서 교현 탐방지원센터까지 걷기로 한다. 현재 우이령길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참고로 우이동 출발 500명, 교현출발 500명으로 1일 1,000명이 이용가능하다.
△ 좌우로 설치되어 있는 대전차 장애물
우이령길은 사람이 이용목적에 따라 열리고 닫히는 비운의 역사를 갖고 있다. 오랜 옛날에는 마찻길로 서울에서 경기도 양주로 넘을 수 있는 교통로가 되었고, 6.25 사변에는 피난민의 생의 환로였다. 6.25를 거치면서 군사작전도로의 개념이 더욱 강해져 미군 공병대가 적의 전차 침략을 막는 대전차 장애물도 갖게 된다. 그러다 다시 길이 막히게 된 것은 1968년 1.21사태로 무장공비가 침투한 사건이다.
우이령 길이 다시 열린 것은 2009년 7월로 41년 만에 개방한 자연친화적 생태탐방로의 모습이다. 안쪽 길은 흙먼지가 풀풀 날리지만 우거진 수풀이 좋다. 오랫동안 폐쇄된 덕분인지 자연의 모습은 잘 보존되어 있고 나무들은 가지치기를 하지 않은 정원수의 모습이다. 아기자기 핀 야생화들을 보니 너무 반가워 꽃이름을 불러가며 인사하며 걷는다. 이제 우이령길은 사람이 편안한 여가를 즐기기 위해 이용하는 열린 길이 되었다.
△ 석굴암
오봉산 관음봉 중턱에 자리잡은 석굴암에 잠시들려 마음의 소원을 빌어본다. 석굴암은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일반인들에게 잊혀질 뻔했다가 현재의 모습으로 회복되어 나한 기도하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석굴암을 찾아가는 길도 전쟁이란 참화에 닫혔다가 어렵게 열렸다. 예약제로 운영되지만 석굴암을 찾는 불교 신자들에겐 많은 제약을 두지 않아 길 찾아가기가 쉽다.
△ 우이령길
들머리가 우이동였으면 날머리는 교현리가 된다. 북한산 둘레길 21구간 완주의 순간이다.
교현 탐방지원센터에서 마지막 스탬프 도장을 받고 완주증 신청을 한다. 북한산 둘레길 완주증은 일주일 후 도착한다. 비록 A4용지 한 장이지만 왠지 완주증이란 글귀가 무엇을 이룬 듯한 뿌듯함을 준다.
봄이 막 시작될 즘 시작한 둘레길이 짧은 봄이 끝날 즘 마쳤다. 점점 녹음으로 짙어져가는 북한산을 보며 한번 더 둘레길을 돌고 싶어진다.
신록이 넘실거릴 여름 길, 단풍이 물들 가을 길, 흰눈이 내릴 겨울 길을 생각하니 벌써 설렌다.
제공 = 국내유일 산 전문채널 마운틴TV (명예기자 오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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