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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라산 백록담 남벽 철쭉
옛날 섬 지방 사람들의 생활은 대부분 힘들었다. 주요 산물이 바다에서 잡는 고기를 위주로 하다 보니 잡을 수 있는 양도 하늘의 날씨에 달려있었다. 바다를 생업 터전으로 하다 보니 사고도 많았다. 그러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섬 지방 사람들은 신앙에 크게 의존했다. 그래서 제주에는 절(寺) 오백, 당(堂) 오백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토속신앙에 의지하는 마음들이 강했다.
봄철 한라산은 철쭉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 영실(靈室)에서 ‘윗세오름’으로 오르는 코스의 철쭉이 아름답다. 영실이라는 의미는 불교에서 ‘영혼의 위패를 두는 빈소’라는 뜻을 의미하고 있다. 영실은 그런 전설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영실에 있는 오백장군에 관한 전설도 자식을 키우는 어미의 지극 정성을 보는 듯 가슴을 아리게 한다. 오백 명의 아들을 키우던 홀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먹이려고 큰 가마솥에서 죽을 쑤다가 가마솥에 빠져 죽었다. 집으로 돌아온 자식들은 가마솥에 있는 죽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나중에 솥 바닥에 사람의 뼈가 나온 것을 보고 그것이 어머니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식 오백 명이 모두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 바위가 병풍바위 위에 나란히 도열해 있는 오백 개의 작은 암봉으로 사람들은 이를 오백장군이라 부르고 있다.
△ 한라산 병풍바위 조망
아름다운 병풍바위가 이런 슬픈 전설을 간직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영실코스를 오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백여 미터가 넘는 기암절벽의 병풍바위와 늦은 봄이면 피는 진한 연분홍색의 철쭉만 머리에 그리고 오르고 있다. 한라산은 많은 눈이 내린 겨울산도 아름답지만 지금처럼 신록이 우거진 계절에 조릿대 사이로 붉은 기염을 토해내는 철쭉도 한라산을 대표하는 명물로 손꼽히고 있다.
산행은 영실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산행입구인 영실까지 포장된 도로가 있지만 상부주차장이 좁아서 늦게 도착하면 하부주차장(시내버스 정류장)에 주차를 하고 2 킬로미터가 조금 넘는 거리를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이 거리만 운행하는 택시가 있다. 편도요금이 7천원이다. 네 명이 함께 이용하면 적은 비용으로 쉽게 등산로 입구까지 갈 수 있다. 그래도 이왕 산을 오르기로 했으면 걸어서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영실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사람들을 반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은 적송(赤松)이 궁궐건축에나 쓰일 법한 모양으로 미끈하게 자라고 있다. 나무에서 발생되는 각종 유익한 천연향을 눈과 코로 음미하면서 오르다보면 오른쪽으로 일 천 여 개나 되는 엄청난 높이의 돌기둥이 병풍바위가 되어 타원형 모양으로 자리잡고 있다. 병풍바위 위에는 오백장군이 한라산을 호위하는 듯한 모습으로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임무를 하는 듯 보인다.
△ 고사목과 철쭉
오르는 길은 힘들어도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모든 수고를 보상해 주고 있다. 한창 물이 오른 철쭉은 고사목 사이사이에서 그들이 못다 한 삶을 위로하듯이 붉은 꽃으로 감싸주고 있다. 자연이나 사람이나 상부상조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이런 모습을 보면 자연도 서로를 배려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라산 등산코스가 그러하듯 이곳 영실코스도 올라갈수록 경사도는 완만해지고 철쭉은 뚜렷한 자기 색깔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철쭉을 보고 모두들 탄성을 지르고 있다. 땀의 보상이 이런 것이다. 과정은 힘들지만 그 결과는 대만족이다.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꽃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매력이 있는가 보다.
△ 선작지왓 철쭉
‘선작지왓’이다. 제주 방언으로 ‘돌들이 널려있는 벌판’이라는 뜻이다. 해발 1,600m 정도 되는 높은 곳에 위치한 평평한 지역이다. 여기서부터 키 큰 나무는 볼 수가 없다. 바람이 워낙 세다 보니 나무가 자랄 수가 없다. 나무가 살아가는 방법을 인간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모든 것을 수용해야 한다. 그것이 자연이다. 나무가 자라야 할 자리에 조릿대와 철쭉이 차지하고 있다. 한라산에서 철쭉이 가장 많이 피고 있는 곳이다. 아직 잎이 자라지 않은 조릿대 사이사이로 자라고 있는 철쭉이 더욱 붉게 보인다. 이 지역은 한라산 특유의 부서지기 쉬운 흙과 식생대를 보호하기 위하여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걷기에도 좋다. ‘윗세족은오름’에는 몇 년 전까지 보이지 않던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조금만 수고를 하면 다녀올 수 있다. 높은 곳이라서 그런지 한라산 정상도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이곳 ‘선작지왓’이 얼마나 넓은 철쭉평원인지 전망대에 올라오면 직접 눈으로 느낄 수가 있다.
△ 한라산 조망
휴대한 물병이 바닥이 날 때가 되면 지리산 능선처럼 적당한 곳에 샘이 있다. 한라산 노루가 아침마다 이곳에 물을 먹으로 온다고 하는 ‘노루샘’이 기다리고 있다. 물 한 모금 마시니 모든 더위를 날려 보내는 듯 시원하다. ‘윗세오름’으로 오르는 데크 옆에는 자그마한 분홍색의 ‘설앵초’와 ‘흰구슬붕이’가 앙증맞게 피어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물(微物) 같은 꽃들은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데 손톱만 한 야생화를 찍으려고 일부러 이곳까지 연이틀 올라 왔다는 사람들도 만났다.
△ 겨울철에 더욱 사랑받는 ‘윗세오름’
‘윗세오름’이다. 해발 1,700미터라고 표기되어 있다. 넓은 나무데크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른 점심을 먹고 있다. 전에 많이 보이던 까마귀는 보이지 않는다. 대피소에서 판매하던 컵라면 판매를 중지하여 먹거리가 없어진 탓인지 다들 자취를 감추고 야생으로 돌아갔나 보다. 이곳에서 ‘돈내코계곡’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연결되어 있다. 한때는 자연휴식년제를 실시하면서 통제하던 곳인데 언제부터인가 해제되었다. 남벽분기점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처음 밟아보는 땅이다. 백록담 서벽과 남벽 절벽을 쳐다보면서 걷는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화산섬 특유의 검은 절벽이 모든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곳 또한 큰 나무는 거의 없고 조릿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이러다가 몇 년 후에는 조릿대만 살아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 넒게 분포한 조릿대와 구상나무
다시 ‘윗세오름’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좌측으로 하산하면 아침에 출발했던 ‘영실’이고 우측으로 하산하면 ‘어리목’이다. 나그네는 어리목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잠시 걷다 보면 ‘사제비동산’이 나타난다. 이 길 역시 좌우로 조릿대가 벌판을 뒤덮고 있다. 몇 년 전 누군가에 의한 실화로 오래전부터 자라고 있던 나무가 타 버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릿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한다. 인간의 조그만 부주의로 원래 식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 것이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인간의 실수와 욕심이 자연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인간의 이런 실수가 언젠가는 그 재앙을 인간이 되돌려 받을 것이다. 자연 앞에서는 늘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 ‘만세동산’의 철쭉
이곳에도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걷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다. 다만 그늘이 없다 보니 6월의 태양을 온전히 받아 가면서 내려가야 한다. 햇빛 차단제를 확실하게 준비하고 가야 할 산이다. 이곳 ‘만세동산’도 진분홍색 철쭉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철쭉은 독성이 있어서 동물들이 먹지 않는다. 그래서 번식력이 좋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무들은 동물들의 피해를 보지만 철쭉만은 유아독존 격으로 자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리산 바래봉의 철쭉이 그렇다.
‘사제비동산’ 샘이 보인다. 이곳 샘도 무척 시원하다. 파이프를 통해서 흘러내리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면 햇볕에 그을린 더위가 싹 가신다. 여기서부터 어리목 종점까지 나무 그늘 아래로 하산하기 때문에 시원한 길이다. 다만, 경사도가 있으니 조심해서 내려가야 무릎에 무리가 오지 않는다.
오늘 하루 진분홍색 철쭉과 초록색 나무들로 인해서 눈과 마음이 청결해진 하루였다. 매일 이런 날들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 일찍 영실에서 올라올 때는 언제 여기까지 올수 있을까 했는데 등산길 옆에 핀 철쭉을 보고 걷다 보면 그리 힘든 등산인 줄을 모르고 걷게 된다. 산길을 걷다 보면 비 오는 날도 있지만 오늘처럼 청명한 날도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도 그럴 것이다. 인생사는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는 법이다. 오늘 하루 산행을 마무리한다. 어리목주차장에 대기하는 승용차가 없다면 시내버스를 타고 제주 시내로 들어가야 한다. 어리목 주차장에서 1 킬로미터 정도 걸어서 내려가면 ‘어리목버스정류소’가 있다.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제주터미널까지 갈 수 있다. 피곤한 몸을 버스에 싣고 30분 정도 비몽사몽하다 보면 제주터미널에 도착한다.
제공 = 국내유일 산 전문채널 마운틴TV (명예기자 김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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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섬 지방 사람들의 생활은 대부분 힘들었다. 주요 산물이 바다에서 잡는 고기를 위주로 하다 보니 잡을 수 있는 양도 하늘의 날씨에 달려있었다. 바다를 생업 터전으로 하다 보니 사고도 많았다. 그러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섬 지방 사람들은 신앙에 크게 의존했다. 그래서 제주에는 절(寺) 오백, 당(堂) 오백이라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토속신앙에 의지하는 마음들이 강했다.
봄철 한라산은 철쭉으로 유명하다. 그 중에서 영실(靈室)에서 ‘윗세오름’으로 오르는 코스의 철쭉이 아름답다. 영실이라는 의미는 불교에서 ‘영혼의 위패를 두는 빈소’라는 뜻을 의미하고 있다. 영실은 그런 전설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영실에 있는 오백장군에 관한 전설도 자식을 키우는 어미의 지극 정성을 보는 듯 가슴을 아리게 한다. 오백 명의 아들을 키우던 홀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먹이려고 큰 가마솥에서 죽을 쑤다가 가마솥에 빠져 죽었다. 집으로 돌아온 자식들은 가마솥에 있는 죽을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나중에 솥 바닥에 사람의 뼈가 나온 것을 보고 그것이 어머니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자식 오백 명이 모두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 바위가 병풍바위 위에 나란히 도열해 있는 오백 개의 작은 암봉으로 사람들은 이를 오백장군이라 부르고 있다.
△ 한라산 병풍바위 조망
아름다운 병풍바위가 이런 슬픈 전설을 간직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영실코스를 오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백여 미터가 넘는 기암절벽의 병풍바위와 늦은 봄이면 피는 진한 연분홍색의 철쭉만 머리에 그리고 오르고 있다. 한라산은 많은 눈이 내린 겨울산도 아름답지만 지금처럼 신록이 우거진 계절에 조릿대 사이로 붉은 기염을 토해내는 철쭉도 한라산을 대표하는 명물로 손꼽히고 있다.
산행은 영실주차장에서 시작한다. 산행입구인 영실까지 포장된 도로가 있지만 상부주차장이 좁아서 늦게 도착하면 하부주차장(시내버스 정류장)에 주차를 하고 2 킬로미터가 조금 넘는 거리를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그런데 이 거리만 운행하는 택시가 있다. 편도요금이 7천원이다. 네 명이 함께 이용하면 적은 비용으로 쉽게 등산로 입구까지 갈 수 있다. 그래도 이왕 산을 오르기로 했으면 걸어서 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영실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사람들을 반긴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쭉쭉 뻗은 적송(赤松)이 궁궐건축에나 쓰일 법한 모양으로 미끈하게 자라고 있다. 나무에서 발생되는 각종 유익한 천연향을 눈과 코로 음미하면서 오르다보면 오른쪽으로 일 천 여 개나 되는 엄청난 높이의 돌기둥이 병풍바위가 되어 타원형 모양으로 자리잡고 있다. 병풍바위 위에는 오백장군이 한라산을 호위하는 듯한 모습으로 각자 자기의 위치에서 임무를 하는 듯 보인다.
△ 고사목과 철쭉
오르는 길은 힘들어도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이 모든 수고를 보상해 주고 있다. 한창 물이 오른 철쭉은 고사목 사이사이에서 그들이 못다 한 삶을 위로하듯이 붉은 꽃으로 감싸주고 있다. 자연이나 사람이나 상부상조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이런 모습을 보면 자연도 서로를 배려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라산 등산코스가 그러하듯 이곳 영실코스도 올라갈수록 경사도는 완만해지고 철쭉은 뚜렷한 자기 색깔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철쭉을 보고 모두들 탄성을 지르고 있다. 땀의 보상이 이런 것이다. 과정은 힘들지만 그 결과는 대만족이다. 사람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진다. 꽃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매력이 있는가 보다.
△ 선작지왓 철쭉
‘선작지왓’이다. 제주 방언으로 ‘돌들이 널려있는 벌판’이라는 뜻이다. 해발 1,600m 정도 되는 높은 곳에 위치한 평평한 지역이다. 여기서부터 키 큰 나무는 볼 수가 없다. 바람이 워낙 세다 보니 나무가 자랄 수가 없다. 나무가 살아가는 방법을 인간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모든 것을 수용해야 한다. 그것이 자연이다. 나무가 자라야 할 자리에 조릿대와 철쭉이 차지하고 있다. 한라산에서 철쭉이 가장 많이 피고 있는 곳이다. 아직 잎이 자라지 않은 조릿대 사이사이로 자라고 있는 철쭉이 더욱 붉게 보인다. 이 지역은 한라산 특유의 부서지기 쉬운 흙과 식생대를 보호하기 위하여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걷기에도 좋다. ‘윗세족은오름’에는 몇 년 전까지 보이지 않던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다. 조금만 수고를 하면 다녀올 수 있다. 높은 곳이라서 그런지 한라산 정상도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인다. 이곳 ‘선작지왓’이 얼마나 넓은 철쭉평원인지 전망대에 올라오면 직접 눈으로 느낄 수가 있다.
△ 한라산 조망
휴대한 물병이 바닥이 날 때가 되면 지리산 능선처럼 적당한 곳에 샘이 있다. 한라산 노루가 아침마다 이곳에 물을 먹으로 온다고 하는 ‘노루샘’이 기다리고 있다. 물 한 모금 마시니 모든 더위를 날려 보내는 듯 시원하다. ‘윗세오름’으로 오르는 데크 옆에는 자그마한 분홍색의 ‘설앵초’와 ‘흰구슬붕이’가 앙증맞게 피어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물(微物) 같은 꽃들은 보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데 손톱만 한 야생화를 찍으려고 일부러 이곳까지 연이틀 올라 왔다는 사람들도 만났다.
△ 겨울철에 더욱 사랑받는 ‘윗세오름’
‘윗세오름’이다. 해발 1,700미터라고 표기되어 있다. 넓은 나무데크에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른 점심을 먹고 있다. 전에 많이 보이던 까마귀는 보이지 않는다. 대피소에서 판매하던 컵라면 판매를 중지하여 먹거리가 없어진 탓인지 다들 자취를 감추고 야생으로 돌아갔나 보다. 이곳에서 ‘돈내코계곡’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연결되어 있다. 한때는 자연휴식년제를 실시하면서 통제하던 곳인데 언제부터인가 해제되었다. 남벽분기점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처음 밟아보는 땅이다. 백록담 서벽과 남벽 절벽을 쳐다보면서 걷는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화산섬 특유의 검은 절벽이 모든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곳 또한 큰 나무는 거의 없고 조릿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이러다가 몇 년 후에는 조릿대만 살아남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 넒게 분포한 조릿대와 구상나무
다시 ‘윗세오름’으로 돌아왔다. 여기서 좌측으로 하산하면 아침에 출발했던 ‘영실’이고 우측으로 하산하면 ‘어리목’이다. 나그네는 어리목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잠시 걷다 보면 ‘사제비동산’이 나타난다. 이 길 역시 좌우로 조릿대가 벌판을 뒤덮고 있다. 몇 년 전 누군가에 의한 실화로 오래전부터 자라고 있던 나무가 타 버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릿대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한다. 인간의 조그만 부주의로 원래 식생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 것이다. 자연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인간의 실수와 욕심이 자연을 멍들게 하고 있다. 인간의 이런 실수가 언젠가는 그 재앙을 인간이 되돌려 받을 것이다. 자연 앞에서는 늘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 ‘만세동산’의 철쭉
이곳에도 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걷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다. 다만 그늘이 없다 보니 6월의 태양을 온전히 받아 가면서 내려가야 한다. 햇빛 차단제를 확실하게 준비하고 가야 할 산이다. 이곳 ‘만세동산’도 진분홍색 철쭉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철쭉은 독성이 있어서 동물들이 먹지 않는다. 그래서 번식력이 좋다. 그러다 보니 다른 나무들은 동물들의 피해를 보지만 철쭉만은 유아독존 격으로 자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리산 바래봉의 철쭉이 그렇다.
‘사제비동산’ 샘이 보인다. 이곳 샘도 무척 시원하다. 파이프를 통해서 흘러내리는 물을 한 모금 마시면 햇볕에 그을린 더위가 싹 가신다. 여기서부터 어리목 종점까지 나무 그늘 아래로 하산하기 때문에 시원한 길이다. 다만, 경사도가 있으니 조심해서 내려가야 무릎에 무리가 오지 않는다.
오늘 하루 진분홍색 철쭉과 초록색 나무들로 인해서 눈과 마음이 청결해진 하루였다. 매일 이런 날들이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 일찍 영실에서 올라올 때는 언제 여기까지 올수 있을까 했는데 등산길 옆에 핀 철쭉을 보고 걷다 보면 그리 힘든 등산인 줄을 모르고 걷게 된다. 산길을 걷다 보면 비 오는 날도 있지만 오늘처럼 청명한 날도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과정도 그럴 것이다. 인생사는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서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는 법이다. 오늘 하루 산행을 마무리한다. 어리목주차장에 대기하는 승용차가 없다면 시내버스를 타고 제주 시내로 들어가야 한다. 어리목 주차장에서 1 킬로미터 정도 걸어서 내려가면 ‘어리목버스정류소’가 있다. 약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제주터미널까지 갈 수 있다. 피곤한 몸을 버스에 싣고 30분 정도 비몽사몽하다 보면 제주터미널에 도착한다.
제공 = 국내유일 산 전문채널 마운틴TV (명예기자 김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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