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포인트] 푸른 숲 맑은 계곡, 청계산

[산행 포인트] 푸른 숲 맑은 계곡, 청계산

2020.07.13. 오후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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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계산 흙길 등산로

한여름이 시작되면서 곧 장마철이 다가오는 계절이다. 무더운 여름은 어디를 가도 덥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이 있는 계곡의 시원한 그늘을 찾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그늘과 쉴 곳을 찾아가면서 벌써부터 휴일이면 전국의 도로는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대중교통인 버스를 이용하면 편안하게 갈 수 있지만, 시대적인 상황으로 서로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끼리 좁은 공간에서 앉아가는 버스는 피하려고 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승용차를 몰고 나들이를 가게 된다. 이러니 도로가 정체되고 차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진다. 좋은 시간을 보내려고 길을 나섰는데 차량의 지체 시간이 길어지면서 정신적으로 피곤하다. 그래서 교통체증도 피하고 시원한 그늘이 있는 가까운 근교 산을 찾게 되는 것이 요즘의 문화가 되고 있다.

서울은 주변에 북한산, 도봉산, 관악산과 같이 풍광이 수려한 산들이 많다. 우리나라처럼 수도 주변에 큰 강과 많은 산을 함께 가지고 있는 나라가 별로 없다. 그러니 산을 조금 다닌다 하면 하루 대 여섯 시간 정도의 산행은 이웃 마을가듯 갈 수 있는 것이 서울이다.

서울 주변의 산들 중에서 접근성이 가장 편리하고 등산 초보자도 크게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는 산이 청계산이다. 전철을 타고 ‘청계산입구역’에서 내려 이백여 미터만 가면 청계산 입구인 ‘원터골’이 나온다. 어떤 매체에서 인기 있는 산이 어떤 산인지 스마트폰 어플로 조사를 해보니 수도권 주변의 산들이 모두 10위권 안에 들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전체 인구의 과반수가 수도권에 집중해서 살고 있으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청계산 산행은 대부분 ‘원터골’에서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양재화물터미널’에서 시작해 보기로 했다. 전철 신분당선의 ‘양재역’이나 ‘양재시민의숲역’에서 과천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양재화물터미널에서 하차하면 된다. 아니면 양재역 4번 출구에서 마을버스 8번을 타고 추모공원 입구에서 내리면 막 바로 산행을 시작할 수 있어서 편리하다.


△ 피톤치드가 풍부한 등산로

이 코스는 우선 산행객이 거의 없는 길이다. 요즘처럼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인 시대에는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등산길이다. 청계산은 북한산이나 관악산처럼 바위로 이루어진 산이 아니고 흙이 많은 산이다. 그래서 나무들도 땅속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니 높이 자랄 수 있다. 자연스레 등산길은 숲속으로 걷게 된다. 그동안 마음껏 숨 쉬어보지 못한 기회를 여기서 입과 코를 크게 벌리고 ‘피톤치드’를 실컷 들이마실 수 있다. 그리고 흙길이다 보니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걸어도 좋은 길이다.


△ 옥녀봉 광장

혼자만의 사색에 젖어 걷다 보니 주변이 조금 어수선하다. 옥녀봉이다. 원터골에서 올라온 산행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다. 봉우리라고 하지만 헬기장처럼 넓고 평평한 곳이다. 서쪽으로 관악산이 보인다. 아마도 저곳에도 이곳처럼 많은 등산객들이 앉아서 쉬고 있을 것이다. 옥녀봉 아래에는 조선 후기 명필가인 추사 김정희의 생부 묘터와 그가 노후를 보냈던 유거지가 남아 있다. 추사의 생애는 파란만장했다. 큰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가서 문과에 급제하면서 벼슬길에 올랐으나 말년에는 각종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면서 제주도 대정과 함경도 북청으로 귀양을 가기도 했다. 유배에서 풀려난 추사는 과천 옥녀봉 아래에 과지초당(瓜地草堂)이라는 초옥(草屋)을 마련하고 노후를 보냈다. 긴 역사로 볼 때 사람이 태어나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과정은 눈 깜짝할 순간이지만 짧은 시간 속에서도 영욕의 순간이 수시로 교차하고 있다. 티끌만큼도 못한 조그마한 욕심에 모든 것을 그르치는 현실을 보면서 인간은 한 줌 흙으로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놓지 못하는 욕심이 인간의 본성인가 보다.


△ 정상으로 가는 계단

매봉 쪽으로 향한다. 잠시 내리막길이다가 원터골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된다. 여기서부터 1,450여 개가 되는 나무 계단을 모두 올라야 청계산 매봉(582m)에 도착할 수 있다. 합류 지점부터 갑자기 사람들이 숫자가 많아진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거친 숨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린다. 힘든 계단 길을 오르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 신체적인 반응이다. 어떤 산객은 왜 이리 계단이 많으냐고 투정을 한다. 우리의 삶이 이런 것이다. 좋은 일이 있으면 힘든 일도 있다. 산에 함께 가자고 했을 때에는 좋아했지만 힘든 고비에서는 내 탓보다 산에 가자고 제안한 친구를 원망한다. 그 원망이 사그라질 때쯤이면 평지길이 나타난다. 친구에게 투정을 부린 자신이 머쓱해진다. 흘린 땀방울만큼이나 마음속으로 얻은 것이 많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청계산 코스는 다른 산과 달리 친구모임, 직장모임, 가족모임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주변의 산들과 달리 힘들이지 않게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등산객들의 연령대가 젊어지는 특징이 있다. 등산복장도 전형적인 산행 복장보다는 청바지 차림에 운동화를 신은 모습도 종종 보인다. 거기에 더하여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레깅스 차림도 많다. 그래서 청계산 코스는 등산 코스라기보다는 뒷산으로 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문제는 이 코스에서 오르고 내리는 산행객이 많다보니 ‘사회적 거리두기’가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호흡이 가쁘니 마스크도 턱 밑으로 내리고 걷는 산행객들이 많다. 다만, 교행 할 때에는 가급적 서로 떨어져 걸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몸은 떨어져 걷더라도 마음은 가까워져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하루 빨리 이런 현상이 사라지길 바랄 뿐이다.


△ 돌문바위

‘돌문바위’가 보인다. 돌이 ‘ㅅ’자로 서로 의지하면서 대문을 만들었다. 돌문바위를 세 번만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위를 돌고 있다. 나그네도 마음속으로 소원을 주문하면서 돌문을 돌았다. 어떤 종교를 믿든 관계없이 이것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마음의 종교이다.
정상을 오르는 나무계단 옆 기둥에 ‘충혼비 가는 길’이라는 표지가 붙어있다. 청계산 정상 바로 아래에 충혼비가 세워져 있다.


△ 특전사 충혼비

1982년 6월 1일 공수특전사 소속 수송기가 훈련 도중에 기상악화로 추락하면서 장병 53명이 순직한 곳이다. 대부분 특전사 훈련병이었다. 그곳에 추모비가 세워졌고, 순직 장병 53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그곳에는 누군가가 가져다 놓은 꽃바구니가 있었고, 종이컵에는 술이 부어져 있었다. 당신 같은 이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은 영원할 것이다. 충혼비에서 다시 갔던 길을 되돌아 나온다.


△ 청계산 정상석

나무 계단이 끝날 무렵 청계산 매봉(582m)이라는 정상석이 보인다. 요즘 정상 부근에 데크공사를 하느라고 주변이 어수선하다. 공사로 인하여 정상석 부근이 좁지만 모처럼 올라 온 곳이라 인증사진을 찍느라 긴 줄이 생긴다. 대부분의 산행객들은 여기서 휴식을 취하면서 메고 온 간식을 먹고, 왔던 길을 되돌아서 원터골로 하산한다.

청계산 매봉에서 망경대로 가는 길이 조용하다. 정상까지 올라오던 분위기가 여기서부터 바뀐다. 등산객의 연령대가 갑자기 높아진다.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가 자연스럽게 지켜지게 된다. 청계산 매봉에서 망경대로 가는 길은 대부분 평지길이다. ‘혈흡재’에 도착한다. 혈흡재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조선 성종 때에 대학자인 ‘정여창’이 무오사화를 겪으면서 이곳 망경대로 오면서 피눈물을 흘리며 넘었다고 하여 혈흡재라고 부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사후에 갑자사화를 거치면서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이수봉 방향으로 가려면 전에는 오른쪽으로 가는 길이 있었으나 위험한 구간 때문에 지금은 폐쇄되었다. 대신 왼쪽으로 계단을 설치하여 안전하게 산행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청계산 정상은 원래 망경대(616m)인데 국가 보안시설이 설치되어 접근이 불가능하다. 대신 지나온 청계산 매봉이 청계산 주인 역할을 하고 있다. 망경대를 돌아 나오면 정상으로 가는 포장길이 나온다. 여기서 간이 화장실이 있는 뒤로 돌아서 조금만 올라가면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망경대(望景臺)’가 나온다. 망경대는 가파르고 높은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망경대는 옥녀봉 쪽에서 바라보면 육산으로 보이지만 대공원역에서 바라보면 바위로 이루어져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망경대에 올라서 서쪽을 바라보면 대공원, 경마장, 과학관이 눈 아래로 보이고, 멀리 관악산과 수리산 능선들이 보인다. 조망이 끝내주는 산이다.


△ 망경대에서 본 관악산

이곳 망경대는 고려가 멸망하자 고려의 충신이었던 조윤(趙胤)이 조선의 건국에 함께 참여해 달라는 태조 이성계의 청을 거절하고 청계산 정상에서 고려의 수도인 송악을 바라보면서 세상의 허망함을 탄식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예나 지금이나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고 했다. 그러나 길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기어이 걸으려고 하는 자는 그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인가 보다.


△ 광교산 조망

왔던 길을 다시 돌아서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이수봉, 국사봉, 그리고 서울외곽순환도로를 넘어 백운산, 광교산으로 이어진다. 일명 ‘청광(청계산~광교산) 종주길’이다. 오른쪽으로 가면 과천대공원이 나온다. 그 길을 잠시 가다가 왼쪽으로 내려서면 청계사가 나온다. 이 절 역시 고려의 충신들이 청계사를 중심으로 은거하며 지냈던 유서 깊은 절이기도 하다.

나그네는 오늘 일정을 청계산에서 마무리하려고 한다.


제공 = 국내유일 산 전문채널 마운틴TV (명예기자 김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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