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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검사가 있었습니다. 사시에 합격해 30살에 검사로 임관했습니다. 전국 검찰청을 돌면서 경험을 쌓아나갔습니다. '나쁜 놈'을 수사해서 재판에 넘기는 형사부에도 있었고요. 재판에서 피고인과 유무죄를 다투는 공판부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험과 능력보다 주목받았던 건 '배경'이었습니다. 국내 굴지의 금융그룹 회장 딸이었거든요.
문제가 터졌습니다. 이 검사에게 배당된 고소장이 사라진 겁니다. 2015년 11월 10일 부산지방검찰청에 접수된 고소장이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써 내려간 고소장이었는데, 그 억울함이 누구의 잘못 때문인지 가릴 핵심 자료가 사라진 셈입니다. 마치 영화처럼요. 실수로 잃어버린 건지, 일부러 파기한 건지조차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으니 '증발' 됐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가 커졌습니다. 그 검사가 고소인 몰래 고소장을 아예 새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부하 직원에게 고소인의 과거 다른 고소장들을 복사하도록 했습니다. 복사본들을 받아본 뒤에는 하나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지시했습니다. "사라진 고소장과 내용이 같은 것으로 기억난다. 그러니까 내용은 그대로 복사하고, 표지만 새로 만들어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와중에 경황이 없었는지, 치밀하지 못했는지 실수도 했습니다. 고소장 접수일이 11월 10일인데 11월 11일로 날짜 도장을 잘못 찍어서 나중에 파란색 펜으로 11을 10으로 슬쩍 바꾸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분실 사고는 '공문서 위조' 사건이 돼버렸습니다. 그 후 검사의 거짓말은 들통 났고요. 검사는 사표를 썼습니다. 검찰은 바로 사표를 수리했습니다. 징계는 없었습니다. 당시 검찰은 중징계 사안이 아닌 것으로 판단해 사표를 수리했다고 밝혔습니다. 검사 옷 벗었으면 된 거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직이나 파면 등의 중징계를 받으면 퇴직금 줄어들고 일정 기간 다른 공직에 가지 못합니다. 변호사 개업해도 불명예는 기록으로 남습니다. 시민단체는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 한 거 아니냐'며 검사를 고발했습니다.
그 후 3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검찰 업무가 너무나 과중해서인지, 고소장 위조 사건을 수사해 재판에 넘기는 데 무려 2년 2개월이 걸렸습니다. 재판은 8개월 동안 진행됐습니다. 지난 22일에는 결심 공판이 열렸습니다. 이제는 전직 검사가 된 이분은 최후 진술에서 "제가 미숙했다", "모든 분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다"라고 말하면서 울먹였습니다. 그렇게 잘못을 인정하는가 싶더니 중간부터는 말이 좀 묘해집니다. "고소 내용 자체가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었다", "고소인도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며 책임을 슬쩍 고소인에게 미룹니다. 또 "직접 보고를 안 드린 것은 제 잘못이다", "사건 표지가 문제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공문서 위조라는 범죄 혐의를 경험 부족이나 미숙함으로 축소합니다. 특히 "검사를 사임하면서 책임을 졌다"며 최종적으로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참고로 이 전직 검사를 변호하는 곳은 김앤장입니다.
임은정 부장 검사는 이 사건을 부실하게 처리한 혐의로 전·현직 검사장 4명을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임 검사는 검찰의 과거사를 반성하며 "제 부끄러움의 용량이 다 차, 더 이상 눌러 담을 수 없게 되어 넘쳐흐른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임 검사는 오는 31일 경찰에서 고발인 조사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언론은 이 사건을 '검경 수사권' 갈등 프레임 속에서 해석할 겁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건 자체로 너무 많은 의혹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소장 분실' 경위도 따져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의 '이유'입니다. 검찰이 사표만 받고 징계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사실관계가 명확하고 참고인들이 대부분 검찰청 직원이라 누구를 수배해서 찾을 일도 없는데 왜 2년 넘게 수사를 끌어온 건지 규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굴지의 그룹 회장이라는 아버지가 존재하는 건 아닌지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검찰의 힘은 '기소'가 아니라 '불기소'에 있습니다. '봐주기 수사'가 얼마나 많은 소모적인 논란과 사회적 자원의 낭비를 불러오는지는 '김학의 사건'과 '장자연 사건'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검찰의 봐주기는 반드시 내부자에게 작동합니다. 어쩌면 '검사 공문서 위조 사건'은 사실상의 치외 법권을 누리는 우리 사회 내부자들을 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YTN 이슈팀은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철저히 익명을 보장하겠습니다.
취재기자: 한동오 hdo86@ytn.co.kr
촬영기자: 김태형
VJ: 이경만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문제가 터졌습니다. 이 검사에게 배당된 고소장이 사라진 겁니다. 2015년 11월 10일 부산지방검찰청에 접수된 고소장이었습니다. 누군가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써 내려간 고소장이었는데, 그 억울함이 누구의 잘못 때문인지 가릴 핵심 자료가 사라진 셈입니다. 마치 영화처럼요. 실수로 잃어버린 건지, 일부러 파기한 건지조차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으니 '증발' 됐다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문제가 커졌습니다. 그 검사가 고소인 몰래 고소장을 아예 새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먼저 부하 직원에게 고소인의 과거 다른 고소장들을 복사하도록 했습니다. 복사본들을 받아본 뒤에는 하나를 골랐습니다. 그리고 지시했습니다. "사라진 고소장과 내용이 같은 것으로 기억난다. 그러니까 내용은 그대로 복사하고, 표지만 새로 만들어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와중에 경황이 없었는지, 치밀하지 못했는지 실수도 했습니다. 고소장 접수일이 11월 10일인데 11월 11일로 날짜 도장을 잘못 찍어서 나중에 파란색 펜으로 11을 10으로 슬쩍 바꾸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분실 사고는 '공문서 위조' 사건이 돼버렸습니다. 그 후 검사의 거짓말은 들통 났고요. 검사는 사표를 썼습니다. 검찰은 바로 사표를 수리했습니다. 징계는 없었습니다. 당시 검찰은 중징계 사안이 아닌 것으로 판단해 사표를 수리했다고 밝혔습니다. 검사 옷 벗었으면 된 거 아니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직이나 파면 등의 중징계를 받으면 퇴직금 줄어들고 일정 기간 다른 공직에 가지 못합니다. 변호사 개업해도 불명예는 기록으로 남습니다. 시민단체는 '검찰이 제 식구 감싸기 한 거 아니냐'며 검사를 고발했습니다.
그 후 3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검찰 업무가 너무나 과중해서인지, 고소장 위조 사건을 수사해 재판에 넘기는 데 무려 2년 2개월이 걸렸습니다. 재판은 8개월 동안 진행됐습니다. 지난 22일에는 결심 공판이 열렸습니다. 이제는 전직 검사가 된 이분은 최후 진술에서 "제가 미숙했다", "모든 분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다"라고 말하면서 울먹였습니다. 그렇게 잘못을 인정하는가 싶더니 중간부터는 말이 좀 묘해집니다. "고소 내용 자체가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었다", "고소인도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며 책임을 슬쩍 고소인에게 미룹니다. 또 "직접 보고를 안 드린 것은 제 잘못이다", "사건 표지가 문제 될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공문서 위조라는 범죄 혐의를 경험 부족이나 미숙함으로 축소합니다. 특히 "검사를 사임하면서 책임을 졌다"며 최종적으로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참고로 이 전직 검사를 변호하는 곳은 김앤장입니다.
임은정 부장 검사는 이 사건을 부실하게 처리한 혐의로 전·현직 검사장 4명을 경찰에 고발했습니다. 임 검사는 검찰의 과거사를 반성하며 "제 부끄러움의 용량이 다 차, 더 이상 눌러 담을 수 없게 되어 넘쳐흐른 것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임 검사는 오는 31일 경찰에서 고발인 조사를 받게 됩니다. 그러면 언론은 이 사건을 '검경 수사권' 갈등 프레임 속에서 해석할 겁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건 자체로 너무 많은 의혹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소장 분실' 경위도 따져야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의 '이유'입니다. 검찰이 사표만 받고 징계하지 않은 이유가 뭔지, 사실관계가 명확하고 참고인들이 대부분 검찰청 직원이라 누구를 수배해서 찾을 일도 없는데 왜 2년 넘게 수사를 끌어온 건지 규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모든 것의 배경에는 굴지의 그룹 회장이라는 아버지가 존재하는 건 아닌지 밝히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검찰의 힘은 '기소'가 아니라 '불기소'에 있습니다. '봐주기 수사'가 얼마나 많은 소모적인 논란과 사회적 자원의 낭비를 불러오는지는 '김학의 사건'과 '장자연 사건'을 통해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검찰의 봐주기는 반드시 내부자에게 작동합니다. 어쩌면 '검사 공문서 위조 사건'은 사실상의 치외 법권을 누리는 우리 사회 내부자들을 찾는 일이기도 합니다. YTN 이슈팀은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철저히 익명을 보장하겠습니다.
취재기자: 한동오 hdo86@ytn.co.kr
촬영기자: 김태형
VJ: 이경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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