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나절] 밤이 와야 안심하는 실내 동물원의 동물들

[반나절] 밤이 와야 안심하는 실내 동물원의 동물들

2019.08.31.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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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나절] 밤이 와야 안심하는 실내 동물원의 동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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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동물권'이라는 생소한 단어가 자주 화두에 오른다. 곧 개봉하는 영화 '동물, 원'이 동물권을 주제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다룬 영화라는 소식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영화는 사람이 동물을 가두어놓고 관람하는 '동물원'이 과연 정당한 공간인지 중립적인 시각에서 묻는다.

동물권이란 사람에게 인권이 있듯 동물 역시 생명권을 지니며 고통을 피하고 학대 당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는 견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동물원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을까? 지난 28일 평소 보기 어려운 다양한 동물을 볼 수 있다는 서울의 한 실내동물원을 찾았다. 평일 낮임에도 방문객 수가 적지 않았다. 주요 고객은 어린아이를 데려온 부모와 특별한 데이트를 하고 싶어 하는 연인들이다.

실내 동물원의 장점은 시외까지 가지 않고도 냉난방이 잘 돼 있는 쾌적한 실내에서 귀여운 동물들을 직접 만지고 먹이를 주는 등 체험과 교감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입장'에서 바라본 장점일 뿐이다.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테마파크 실내는 깨끗했고, 동물의 생활 환경을 고려해 우리를 만들고 물을 배치하는 등 개체의 습성에 맞추려고 노력한 모습도 엿보였다. 하지만 동물 복지적 측면에서 아쉬운 면이 엿보였다.

[반나절] 밤이 와야 안심하는 실내 동물원의 동물들

(1) 플라밍고

특별히 이 지점에 들어왔다고 홍보된 '플라밍고'는 사람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채 무리 지어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플라밍고는 시속 50~60㎞로 하룻밤에 500~600㎞를 날 수 있지만 작은 실내 공간에서는 날아오를 시도조차 하지 못한다.

직원에게 "플라밍고가 왜 구석에 모여있느냐"고 묻자 사람들을 무서워해서 그렇다는 대답이 되돌아온다. 플라밍고는 늘 구석에만 있는지 물었더니 "관람객이 모두 퇴장한 뒤부터 플라밍고가 돌아다닌다"고 설명한다. 동물원이 개장하는 아침 9시경부터 폐점하는 밤 10시경까지 극도의 긴장과 공포 상황에 노출돼 있다는 뜻이다.

[반나절] 밤이 와야 안심하는 실내 동물원의 동물들

(2) 사막여우

야행성인 사막여우는 낮에는 거의 잠을 잔다. 그러나 비싼 입장료를 내고 온 관객들은 숨은 동물이 달가울 리 없다. 쉬는 동물을 방해하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지만, 한 쌍의 남녀가 유리 벽 앞에 붙어서 소리를 내며 어떻게든 사막여우의 주의를 끌려 했다. 잠들었던 사막여우는 소리와 진동이 들려올 때마다 눈을 떴다 감기를 반복했다.

[반나절] 밤이 와야 안심하는 실내 동물원의 동물들

(3) 카나리아, 십자매

하늘을 날아야 할 새 수백 마리가 작은 공간 안에 갇혀 있다. 이 가운데 일부는 관람객이 나눠주는 먹이를 얻어먹기 위해 분주하게 관람객들의 발밑을 돌아다닌다. 도중에 한 어린이가 새를 밟을 뻔한 아찔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새 몇 마리는 푸른 하늘이 보이는 창에 붙어 의미 없는 날갯짓을 이어갔다.

[반나절] 밤이 와야 안심하는 실내 동물원의 동물들

(4) 카피바라

'온순한 동물'로 유명한 카피바라를 사육하려면 거대한 덩치에 걸맞은 넓은 공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실내에서 이를 충족하기란 쉽지 않다. 이 때문인지 카피바라 한 마리가 울타리를 넘어 방문객 사이를 돌아다녔다. 직원은 "카피바라가 탈출했다"며 다른 직원들에게 무전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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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펭귄

훔볼트 펭귄은 작은 크기와 온순한 성격 탓에 동물원에서 특히 인기가 높은 종이다. 남미에서 주로 서식하는 훔볼트 펭귄은 대부분의 시간을 바다에서 보내다가 강렬한 태양과 바람에 털을 말리며 휴식을 취한다. 그러나 바람과 태양이 없는 실내에서 살 경우 털을 제대로 말리기 어렵다.

물론 개중에는 수달이나 미어캣처럼 인간 친화적이고 사람과의 교류를 좋아하는 동물들도 있었다. 그러나 왈라비나 플라밍고 등 일부 동물은 사람과의 교류를 원하지 않아 구석으로 숨고 피하려는 행동을 계속했다.

지난달 개점을 앞두고 동물권 단체는 해당 업체가 입주한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실내체험동물원' 확산을 규탄했다. 단체는 실내동물원이 동물 복지를 훼손하고 감염병 확산 우려를 키운다고 비난했다.

이들은 "실내체험동물원이 동물 복지에 심각한 위해를 미친다"며 "동물들이 무분별한 접촉에 종일 노출되면서 심각한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최소한의 복지 기준도 없는 환경에서 사육돼 이상 행동을 보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현행 동물원수족관법이다. 이에 따르면 개인은 등록 기준만 갖추면 어디든 동물원 시설과 동물 카페 등을 만들 수 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실내 동물원과 각종 동물 체험 카페 등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관리 감독은 재량에 맡겨진다. 이 탓에 해당 업체가 폐업할 때마다 동물을 폐사, 방사하거나 무료 분양시키는 경우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비판을 의식한 듯 해당 실내 동물원은 홈페이지에 의견문을 게시해 "교감 시간은 교대로 하루 최대 2시간만 실시하고 동물병원과 연계해 정기적 예방 접종과 관리를 받고 있다"며 동물 복지를 신경쓰고 있다고 밝혔다.

업체는 "동물이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마련했으며 강제가 아닌 자연스러운 교감을 진행하고 있다"며 "현재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국제 야생 동식물 거래 협약 및 LAR(국제항공운송협회 생동물 규정)지침을 준수해 수입했으며, 야생 서식지에서 채집된 개체가 아닌 인공 증식된 동물들만 들여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비난의 목소리는 여전히 뜨겁다. 아무리 잘 관리된다고 한들 야생 동물이 좁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을까?

독일 라이프치히는 초원과 숲을 그대로 옮겨놓은 거대한 환경을 조성하고 우리를 없앤 동물원을 만드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방문객들은 라이프치히 동물원에서 동물을 찾아보기가 더 어려워졌음에도 오히려 다른 동물원에서보다 훨씬 큰 만족감을 나타냈다. 실제로 관람객 수도 다른 동물원보다 압도적으로 늘었다. 관람객들이 갇힌 동물이 아닌 '자연을 즐기는 동물'을 만나기를 원한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선진국의 경우 '동물을 만지는 체험'도 제한된다. 샌프란시스코 동물 체험관은 살아있는 동물이 아닌 죽은 거북이의 등딱지와 벗어놓은 뱀의 허물 등을 만지는 방법으로 자연을 느끼게 한다. 모두 동물의 스트레스를 덜어주고 생명의 소중함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이다. 그러나 동물 복지의 개념조차 생소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갈 길이 먼 환경이다.

지난해 한정애·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동물원이 아닌 시설에서 야생동물을 전시하는 행위 금지와 야생동물 판매 허가제 도입 및 통신판매 금지 등을 골자로 한 '야생동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YTN PLUS 정윤주 기자
(younju@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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