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일만 터지면 군인 부르는 나라

[와이파일] 일만 터지면 군인 부르는 나라

2019.11.25.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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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 일만 터지면 군인 부르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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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실종자 수색과 구조, 의료지원에 군인 37만여 명이 투입됐습니다. 최근 5년 사이 대민지원에 가장 많은 군인이 투입된 사례입니다. 당연합니다. 사람 목숨을 구하는 일에 공무원인 군인이 발 벗고 나서야겠죠. 세월호는 재난이라 재난안전법에 근거도 있습니다.
군인권센터가 제공한 국방백서에 따르면, 최근 5년 동안 이뤄진 군인의 대민 지원은 24건이었습니다. 태풍이나 폭설, 가뭄 등 자연재해 복구를 위한 투입이 대다수였고요. 실종자 수색이나 구제역, AI 방제 등도 있습니다. 그런데 24건 가운데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1건이 눈에 띕니다. 철도·화물노조 파업 지원입니다. 노조 파업에 군인을 투입하는 것도 대민지원이라 할 수 있을까요?

지난 3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철도파업을 '재난에 준하는 비상사태'라는 가정 하에 군인을 투입한 건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시했습니다. 하지만 올해도 정부는 철도파업에 군인을 대체 인력으로 투입했습니다. 재난안전법이나 철도산업법상 재난이 아니라 해도 노동조합법에 따라 필수사업장에 대체 인력 투입이 가능하니 괜찮다는 겁니다. 근거 법령을 바꿨으니 문제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원래 노조법상 대체 인력 투입은 사용자 측이 하게 돼 있는데요. 과연 감독기관인 국토부도 사용자로 볼 것인가, 이 부분은 노조가 국토부 장관과 국방부 장관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했으니 사법부의 판단을 받아봐야 할 듯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습니다. 국토부도 철도 시설에 대체 인력 투입을 할 수 있다고 치죠. 그렇다 해도 여기서 말하는 대체 인력에 군인이 포함되는 걸까요? 재난이나 비상사태가 아닌데도 군인을 동원할 수 있는 걸까요? 법적 근거는 있을까요? 확인해봤더니 법은 없고 국방부 내부 훈령이 하나 있었습니다. 대민지원 활동 업무 훈령입니다. 국민의 편익을 위해 대민지원을 하도록 한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노사분규 현장에까지 군인을 지원할 수 있다는 명확한 근거는 없었습니다.

게다가 군 법무관 출신 변호사는 "훈령은 법규의 성질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국방부가 하급 기관 및 직원에 대하여 지휘하기 위한 것으로서 행정조직 내부의 명령에 불과하다. 다른 곳에 군 인력을 투입하려면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 고 말했습니다.
가정을 해볼까요? 서울 도심에서 집회가 벌어졌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서 도심 교통이 마비가 됐습니다. 집회 참가자들이 흥분했습니다. 경찰 만으로 통제가 잘 안 됩니다. 그래서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대민지원 차원에서 군인이 질서 유지에 나선다? 뭔가 꺼림칙하죠? 당연히 가정이고요. 안 될 일입니다. 계엄이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제외하곤 법적 근거도 없습니다. 군의 역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군의 외부 지원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합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군인 동원에 대한 논란은 계속될 거라며 이번 기회를 계기로 군인 동원은 어디까지 가능한지, 어떤 상황에서 가능한지 명확한 법률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정미 [smiling37@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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