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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다소 활동이 뜸해졌지만 한때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화제였다. 2017년 개설된 페이지에는 모든 음식을 '오이가 들어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오이가 들어간, 혹은 닿았던 음식은 더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다.
기자 역시 아주 어린 시절부터 오이를 싫어했다. 5살 무렵 어머니 친구댁에 초대받아 밥을 먹던 중 반찬 속 오이만 골라 몰래 식탁 아래에 던졌다가 등짝을 맞았던 기억이 있다.
오이를 좋아하는 사람들, 혹은 오이에 대해 별 생각이 없는 사람들은 내게 "대체 왜 오이가 싫으냐"고 묻지만, 그냥 보자마자 마음에 들지 않는 소개팅 상대처럼 본능적으로 싫을 뿐이라 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유타대학교 유전과학센터 연구진은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특정 유전자가 입맛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인간의 7번 염색체에 존재하는 TAS2R38 유전자는 쓴맛에 민감한 타입(PAV)과 둔한 타입(AVI)으로 나뉘는데 PAV 타입은 AVI보다 100~1,000배 정도 쓴 맛을 잘 느낀다는 것이다. 연구에서는 오이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PAV 타입일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싫모 회원으로서 이 연구가 오이를 싫어하는 이유를 모두 설명하지는 못했다고 본다. 오이의 쓴맛보다도 특유의 향을 더 싫어하는 사람도 많고, 어릴 적 트라우마나 개인의 경험 등 복합적인 이유로 특정 음식에 거부감을 가지는 경우도 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오이를 싫어하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폭이 많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사회인으로서 식사 예절이 중요한 자리에서 일일이 오이를 골라내기는 매우 어렵고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도 그리 좋지 않다. 이번 기회에 더 다채로운 식생활을 만들어보고자 당분간 무엇을 먹더라도 "오이를 빼 달라" 하지 않고 입맛을 바꾸는 도전을 해 보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 피클, 오이소박이, 오이가 들어간 냉면, 김밥, 샌드위치, 생 오이 먹기에 도전했다.
그나마 먹기 수월했던 음식은 피클과 오이소박이, 오이가 들어간 비빔냉면이었다. 그러나 물냉면, 김밥, 샌드위치, 생 오이 등 오이의 맛과 향이 살아있는 음식은 거의 먹을 수 없었다. 특히 생 오이는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전기 충격을 받은 듯한 강렬한 거부 반응과 함께 구토가 몰려왔다.
변기를 부여잡고 '지금 내가 왜 오이를 씹어먹고 있는 것일까, 과연 오장육부가 뒤집어지는 이러한 특정 음식에 대한 거부 반응을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것일까'와 같은 생각을 하며 인지부조화가 일어났고, 이 부조화를 극복하기로 마음 먹었다.
'재미있는 음식과 영양 이야기'(가나출판사, 현유랑)에 따르면 좋아하는 것만 골라 먹고 싫어하는 것은 먹지 않는 '편식'은 영양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편식에도 문제가 되는 편식과 문제없는 편식이 있다. 채소류를 모두 먹지 않거나 고기를 먹지 않는 등 특정 음식류를 거부하는 편식은 문제가 되는 편식이다.
하지만 다른 건 잘 먹는데 당근이나 오이만 싫다든지, 콩은 싫지만 두부는 먹는 것처럼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데에 큰 문제가 없는 편식은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저자는 "좋아하는 음식과 싫어하는 음식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좋아하는 색깔과 싫어하는 색깔이 있는 것처럼 그렇다"라며 "우유만 먹으면 설사를 하거나, 알레르기 때문에 음식을 못 먹는 경우가 있다. 한두 가지 음식만 안 먹는 것이기 때문에 영양소 섭취나 성장에 문제가 없다. 이런 경우에는 싫어하거나 못 먹는 음식을 억지로 먹을 필요는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 "문제없는 편식이라고 해도 스스로 꼭 습관을 고치고 싶다면 , 음식을 조금씩 먹어 보면서 익숙하게 만들고, 아주 배고플 때 싫어하는 음식을 먹어보거나 형태를 없애는 등 새로운 방법으로 요리해 보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성인 6천 6백여 명을 대상으로 8년 동안 추적 조사한 결과, 편식하는 사람들은 곡류와 고기 생선류, 채소류 등 여섯 가지 식품군을 골고루 먹는 사람들에 비해 복부비만이나 고혈압, 고지혈증 등 이른바 대사증후군에 걸릴 위험이 23%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바꿔 말하면, 특정 식품군을 모두 거부하는 건 문제가 되지만 특정 음식이나 재료 1~2개를 먹지 않는 것은 큰 문제는 되지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 세상에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영양소는 있지만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음식은 물 외에는 없다. 우리나라는 어릴 때부터 '편식하는 아이'를 문제아로 생각하고, 다 같이 우유를 먹이고 급식을 먹을 때 잔반을 남기지 못하게 하는 등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아이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주고 형벌을 내려 왔다.
하지만 '단체로 같은 음식을 남기지 않고' 먹기보다 식습관 균형과 각자의 음식 알러지 반응, 호불호를 반영해 음식을 먹는 게 오히려 건강한 식습관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로 기자는 앞으로 다시는, 굳이 오이를 찾아 먹지 않을 것이다.
YTN PLUS 정윤주 기자
(younju@ytn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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