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때리지 마세요"...바다의 무법자, 이제는 징역형

[와이파일]"때리지 마세요"...바다의 무법자, 이제는 징역형

2020.01.11.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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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때리지 마세요"...바다의 무법자, 이제는 징역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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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배에서 내립니다. 건너편의 다른 남자에게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갑자기 손을 들어 그 남자를 거세게 밀칩니다. 무방비였던 남자는 힘없이 뒤로 넘어집니다. 그리고선 더 맞지 않기 위해 황급히 자리를 피합니다.

※ 아래 기사에 당시 CCTV 영상 확인
'징역 10년 vs 벌금'...선박 안전 관리만 홀대?(2019년 7월 25일 YTN 기사)
https://www.ytn.co.kr/_ln/0103_201907250520209140

[와이파일]"때리지 마세요"...바다의 무법자, 이제는 징역형

왜 그랬을까요? 피해자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습니다. 피해자는 선박 운항관리사였습니다. (운항관리사는 배의 상태를 점검하고 운항계획을 분석하는 사람) 그는 폭행이 있기 직전, 가해자가 다른 선원을 위협했다고 말했습니다. 선원이 배에 올라탄 차량을 교통정리하고 있는데, 가해자가 차에 탄 채로 선원을 위협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운항관리자인 피해자가 '하지 말라'는 취지로 말했더니 '네가 뭔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폭행이 진행됐다는 설명이었습니다.
어떤 처벌 받았을까요? 벌금형이었습니다. 선원을 차로 위협하고, 다른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운항관리사를 때린 결과가 고작 벌금 100만 원이었습니다.
다른 교통수단이었다면 어땠을까요? 비행기 기장 등의 업무를 폭행이나 협박으로 방해해 안전을 해치면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폭행 같은 물리적 위협이 없어도 기장 등의 정당한 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항공보안법에 딱 나와 있습니다.

철도나 택시, 버스도 처벌 꽤 셉니다. 철도의 경우 폭행이나 협박으로 철도종사자의 직무집행을 방해하면 철도안전법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택시나 버스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 즉 특가법에 의해 5년 이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 벌금입니다.
그런데 선박은 그런 게 없습니다. 특가법에도, 해운법에도 가중 처벌 조항이 없습니다. 선장이나 선원 때리면 형법으로 처벌받을 뿐입니다. 여객선은 비행기나 철도, 택시, 버스처럼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고, 안전 관리자에 대한 위협은 곧 다른 승객 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이어질 수 있지만 일반 형사 사건과 똑같이 처벌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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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사고가 나도 처벌은 미미합니다. 2015년 목포 여객선에 탄 트럭 운전자가 먼저 내리지 못하게 했다며 하역 작업자를 그대로 들이받아 숨지게 했습니다. 운전자의 행동은 과실로 인정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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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선박 종사자들은 현행법에 구멍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길수 한국해양대 교수는 선박 종사자의 경우 많은 여객의 안전을 담당하고 있다면서, 배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 특가법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선박 종사자는 다른 교통수단의 경우 더 두터운 보호를 받는데 유독 선박 종사자만 사각지대에 있다며 어려움을 호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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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YTN은 지난해 7월 여객선 안전 관리 실태를 연속 보도하면서 이 같은 문제점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습니다. YTN 보도 당일 해양수산부는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해운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고요. YTN 기사를 토대로 윤준호 국회의원은 한 달 뒤 해운법 개정안을 대표발의 했습니다. 그리고 다섯 달 뒤인 올해 1월 9일, 관련 법안은 국회 문턱을 넘었습니다. 소관위와 법사위 심사를 넘어 본회의에서 가결된 거죠. 이제 국무회의를 거쳐 이르면 3주쯤 뒤 법이 공포되면, 실제 시행은 올해 하반기에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법안 내용은 간략합니다. 여객선 선장이나 선원, 안전감독관 등의 정당한 직무상 명령을 위반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합니다. 백만 원 이하의 과태료에서 최고 징역까지로 처벌이 세진 거죠. 법안을 발의한 윤준호 의원은 세월호 이후 안전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다 갖고 있었고,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안전의식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성과가 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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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백하자면 이 기사는 한 시청자 덕분입니다. 저희 취재진이 여객선 안전 관리 실태를 연속 보도하자, 기사를 본 어떤 업계 종사자분이 폭행 사실을 제게 알려주셨고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짚어주셨습니다. 현행법을 뒤져보고 사례를 찾아보니 그분의 주장은 사실이었습니다. 문제를 가장 깊게 아시는 업계 종사자, 시청자께서 결국 법을 만든 겁니다. (기자는 거들뿐..) 2020년 새해에도 YTN 제보의 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올해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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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 한동오 hdo86@ytn.co.kr
영상편집 윤용준
그래픽 이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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