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코로나19 지라시 추적기...그 가글액은 왜 나왔을까?

[와이파일]코로나19 지라시 추적기...그 가글액은 왜 나왔을까?

2020.03.01. 오전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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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코로나19 지라시 추적기...그 가글액은 왜 나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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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라시를 받았습니다.

"우한연구소로 파견되는 XXX의 미국친구의 글입니다. 꼭 많이 전달해주십시오.
그는 우한 폐렴 바이러스 연구로 가고 있습니다. 방금 전화를 걸어 - 감기에 걸렸을 때는 콧물과 가래가 있으며, 코로나 바이러스 폐렴은 콧물이 없는 마른 기침이므로 새로운 유형의 코로나 바이러스 폐렴이다. 이것이 가장 간단한 식별 방법이다."

코로나19와 일반 감기를 구별할 수 있다니… 솔깃합니다. 친절하게 예방법도 알려줍니다.

"우한 바이러스는 내열성이 아니며 26-27도의 온도에서 죽습니다. 따라서 따뜻한 물을 많이 마신다. 더운 물을 마시도록 하면 예방할 수 있다.
……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의사의 조언
예방에 관하여:
베XX 가글로 양치질을 하여 목구멍에 있는 동안 세균을 제거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사실이라면 대박입니다. 따뜻한 물을 마시고 베XX 가글하면 코로나19를 예방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이 지라시가 신빙성 있는지부터 알아봐야겠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XXX 씨는 단서를 갖고 있지 않을까요? 그를 찾아봤습니다.

[와이파일]코로나19 지라시 추적기...그 가글액은 왜 나왔을까?


찾았습니다. 취재진의 노하우와 약간의 우연이 겹쳐서 XXX 씨를 찾았습니다. 그가 진짜 '우한연구소로 파견'되는지 물었습니다.

기자: (선생님께서) 우한 연구소로 파견되시지는 않으셨죠?
XXX: 그건 아니고. 미국에서 내가 친구한테 (해당 글을) 받은 건데 그거를 번역하다 보니까…. 내 친구라고 이름을 밝혀버렸어요.

XXX 씨는 우한 연구소로 파견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그 '미국친구'는 우한 연구소로 파견된 걸까요?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미국친구'는 진짜 그냥 미국에 사는 XXX 씨의 친구였습니다. 의사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이 이 글을 작성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미국에서 떠돌던 영어로 된 글을 XXX 씨한테 전해준 것뿐이었습니다. 이후 XXX 씨는 영어 글을 한국어로 번역해 지인들에게 보냈고요. 그날부터 국내에서 한글 지라시는 급속히 퍼졌습니다. 실제로 제가 인터넷에 남은 흔적을 찾아보니, XXX 씨가 지인들에게 돌렸다는 2월 21일부터 한글 지라시는 인터넷 카페, 블로그 등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XXX 씨는 본의(?) 아니게 국내 최초 유포자가 된 겁니다.

기자: 이거를 번역만 해주신 거예요?
XXX: 그렇죠. 네네.
기자: 이걸 맨 처음에 작성하신 분은 누구세요?
XXX: 모르겠어요. (글을 보낸) 친구도 미국에서 돌아다니는 글 속에, 초창기에 그런 게 한 번 돌았지 싶어요. 다른 데서 돌아다니는 걸 받아서 나한테 보내준 거지, 그 친구가 직접 작성했고 이런 건 아니에요.

XXX 씨도, '미국친구'도 작성한 게 아니라는 지라시. 대체 누가 만든 걸까요? 지라시 영어 원문을 검색해봤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중국,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싱가포르 등 전 세계에서 해당 지라시가 발견됐습니다. 자신의 SNS로 공유하거나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퍼나르는 식으로 말입니다. 퍼진 시점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한글 지라시는 2월 21일부터 퍼졌지만 영어 지라시는 1월 말부터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원문은 그대로인데 소개 문구만 조금씩 다릅니다. '화학 전문가인 친구한테 받았다', '사스 예방 연구소에 있는 홍콩 의사한테 받았다' 등 대부분 전문가의 권위에 기대고 있습니다. 하지만 취재진이 확인한 어떤 글에서도 '우한 바이러스 연구소 사람'이 맞는지, 근거가 적혀 있거나 검증된 건 없었습니다.
심지어 이 지라시는 국내 일부 언론에서 기사로 썼습니다. '코로나에 관한 의사의 조언'이라는 제목으로 그냥 지라시를 기사에 '복붙'(복사+붙여넣기) 했습니다. 기사에 의사 사진도 있어서 '오, 이 의사가 말한 건가?' 싶기도 한데 그것도 아닙니다. 사진 속 의사 가운에 있는 이름과 병원 마크를 토대로 찾아봤더니, 실존 인물은 맞는데 정형외과 의사였습니다. 코로나19와 관련된 감염외과 전문의가 아닌 겁니다. 그분은 이런 기사에 자기 얼굴이 쓰였는지 알까요?

결국 지라시의 기원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미 전 세계에 퍼져 있고, 퍼진 시간도 한 달이 넘었기 때문입니다. 지라시 작성자 본인이 실토하지 않는 한, 영영 미스테리로 남을 가능성이 큽니다. 취재진은 국내 최초 유포자를 찾은 것으로 위안을 삼았습니다.
그런데 지라시 마지막 문장에는 눈에 띄는 점이 있습니다. 특정 업체 제품입니다. '베○○ 가글액으로 양치하면 코로나를 예방할 수 있다'는 취지의 문장인데요. 인터넷을 뒤져보니 실제로 이 회사 제품이 코로나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홍보 글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해당 가글 제품은 해외 직구로만 살 수 있어 일반 소비자가 사는 건 쉽지 않습니다. 대신 같은 회사, 같은 성분의 스프레이 제품은 국내에서 살 수 있습니다.

해당 제품의 한국 판매를 맡은 업체의 홍보 대행사 측은 지라시 유포 의혹에 대해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지라시에 나온 가글 제품은 국내에 팔고 있지도 않고, 스프레이 제품 역시 코로나19에 효과가 있다고 밝힌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겁니다. 다른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임상 데이터가 있지만 이번 코로나19에 대해서는 전혀 임상 데이터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보도자료를 낸 적도 없다는 건데요. 업체 측은 이런 코로나 혼란 속에서 돈 벌자고 하는 회사가 전혀 아니라며, 마케팅으로 돈 버는 회사처럼 비춰지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했습니다.

지난달 30일 이 업체가 뿌린 보도자료 제목입니다.

[와이파일]코로나19 지라시 추적기...그 가글액은 왜 나왔을까?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항바이러스 효과 입증된 'XXXXXX'로 적극적인 위생 관리 필수"

그리고 나온 기사 제목들입니다.

"한국XXXX "코로나 예방에 XXX 스프레이 도움""
"'XXXXXX'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에 효과"
"'빨간약' XXXXXX,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에 효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XXXXXX’가 도움 될까"
"빨간약 XXXXXX 목에 칙칙 뿌리면 감염병 예방?"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코로나19에 이 회사 제품이 효과가 있네?' 오인될 수 있는 기사들입니다. 하지만 확인된 사실만 놓고 보면 이 회사 제품은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전혀 입증되지 않았습니다. 보도자료 뒷부분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와이파일]코로나19 지라시 추적기...그 가글액은 왜 나왔을까?

"현재까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뚜렷한 치료법이나 예방 백신이 없는 상황에서 앞선 사스 및 메르스 등의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 사태에서 입증된 저농도 XXXXXX의 항바이러스 효과는 이와 유사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예방을 위한 개인 위생 관리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라시를 이 업체가 뿌렸다는 건 현재로선 전혀 확인되지 않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비상시국에 '마케팅으로 돈 버는 회사가 아니다'라는 업체 해명은 고개가 갸웃합니다. 1월 30일 보도자료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해 항바이러스 효과 입증된 ‘XXX XXX’로 적극적인 위생 관리 필수', 2월 11일 보도자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산 속 XXXXXX 제품 주목, XXXXXX XXX 인후스프레이 매출 600% 이상 급증'이라는 보도자료로 자사 제품을 홍보한 건 팩트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일반 시민들이 저 홍보 자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와이파일]코로나19 지라시 추적기...그 가글액은 왜 나왔을까?

전문가들은 해당 제품을 써도 코로나19 예방 효과가 미미하다고 선을 긋습니다. 이 제품이 호흡기 일부에만 닿기 때문인데요. 가글이나 인후(목구멍) 스프레이는 입과 목구멍에 닿는 반면,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코에도 있고 코 뒤쪽 점막에는 등 호흡기 전반에 퍼져 있습니다. 단순히 입, 목에 있는 바이러스를 줄인다고 해서 코로나19를 예방하거나 치료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입, 목에 있는 바이러스를 일시적으로 줄인다고 해도 다른 호흡기에 있는 바이러스가 옮겨갈 수 있는 거죠.

박홍준 / 서울특별시의사회 회장
"가글 용액이 닿는 부위가 구강하고 인후(목구멍)는 닿지만, 코 속이나 코 뒤쪽에 있는 점막에는 가글이 닿지 않기 때문에 그것으로써 모든 호흡기 부분을 막아낼 수는 없다."


결국 이 '無근본'·'無근거' 지라시는 코로나19 불안감을 등에 업고 전 세계에 퍼진 사실상의 가짜뉴스입니다. 혼란 속에 웃는 곳은 어디인지, 우리가 끊임없이 의심하고 검증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와이파일]코로나19 지라시 추적기...그 가글액은 왜 나왔을까?

※ 코로나19 팩트체크

■ 일반 감기는 콧물 나는데 코로나19는 콧물 없는 마른 기침?

-> 거짓. 증상을 보고 코로나19와 일반 감기를 구분하는 건 현재로써는 불가능. 중앙임상위원회가 초기 코로나19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코로나19 환자도 콧물 증상은 있었음.

신형식 / 국립중앙의료원 감염병센터장
"최근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환자들 보면 자세히 물어보면 콧물 증상이 초반에 있단 말이죠."
박홍준 / 서울특별시의사회 회장
"감기하고 코로나는 지금 현재 명확하게 증상으로 구분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 따뜻한 물 마시면 코로나19 예방?

-> 근거 희박. 예방 의학 차원에서 면역력 유지에는 찬물보다 따뜻한 물이 좋음. 그러나 바이러스 감염을 막는데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는 못함

박홍준 / 서울시 의사회 회장
"물은 뜨거울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신체 온도가 전체적으로 올라간다거나 바이러스가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저해하지는 않습니다. 뜨거운 물을 먹었다고 체온이 올라가지 않기 때문에 전혀 근거가 없는 얘기입니다."



취재기자 한동오 hdo86@ytn.co.kr
촬영기자 김현미
그래픽 디자이너 이정택
인턴기자 김미화 3gracepeac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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