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 "여기서 영원까지 Here to Eternity" 홍성용 러 에라르타 전시회

[와이파일] "여기서 영원까지 Here to Eternity" 홍성용 러 에라르타 전시회

2020.03.18. 오전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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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화면조정이 끝나면 시작되는 미지의 세계

1980년대, 편성된 방송이 모두 끝나고 나면 무지개 빛깔의 띠처럼 보이는 TV 화면조정 시간이 잠시 이어지다 ‘칙’하는 소리와 함께 흰색과 검정색 점이 가득 섞인 회색 화면이 나왔습니다. 정규방송이 끝나 더는 TV 프로그램이 없다는 걸 알려주는 '장면'이기도 했는데, 당시 어린 마음에 이러다 다시 총천연색 만화가 나오지 않을까 그 회색 화면을 몇 분이고 바라보고 앉아있었던 기억도 납니다. 마치 영화 <플레전트빌>속 흑백세계가 색깔을 찾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그 회색화면은 방송사로부터 TV가 아무런 전파도 수신하지 못하기 때문에 ‘백색 소음(white noise)’만 가득한 상태였던 거죠. 사진작가 출신의 홍성용 작가는 어릴 적부터 '이 TV속의 백색 소음 속 세상에는 무엇이 있을까' 상상력을 키워왔다고 합니다. 눈을 감았을 때 찰나의 짧은 시간 속에 보이는 형상이 TV속 백색 소음 화면과 비슷하게 보였던 것이죠. 홍 작가는 어쩌면 무의식의 세계는 그런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왔다고 합니다.

"존재의 시작과 끝, 근원적인 공간을 탐구"

“저는 생각했습니다. 엄마 배 속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볼까? 사람은 마지막 순간 무엇을 볼까? 어쩌면 우리가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공간이 우리가 있었던, 원래 존재하던 곳이었고, 노이즈와 같은 점들은 나, 또는 타인, 결국 우리의 조각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더 나아가 근원적인 공간은 결국 신의 일부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홍성용 작가의 작품은 모두 4개의 시리즈로 구성돼 있습니다. Noise, Darkness, Heuristic, Beyond 로 이어지는데요. 노이즈 시리즈는 근원적 공간에서 노이즈를 만나고, 노이즈를 통해 나를 깨우치는 과정인 다크니스 시리즈는 암흑의 형태를 상상으로 표현했습니다. 휴리스틱 시리즈에서는 영원한 삶을 원하는 인간이 무한을 마주했을 때를, 비욘드 시리즈는 근원의 공간에 신과 인간의 탄생을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설명합니다.
작품을 한 번 볼까요?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작품 속 추상적 형상이 움직입니다. 아니 소용돌이친다는 표현이 맞을 듯 합니다. 마치 평면 저 너머에 갇힌 용암이나 우주처럼, 손에 닿으면 언제라도 평면을 넘어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카메라속 노이즈를 재료로 한 뉴미디어'

작업과정을 직접 들여다봤습니다. 작품의 재료는 '노이즈'입니다. 그렇다면 소리로 뉴미디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일까요?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디지털 카메라의 전원을 켰을 때 이미지를 센서가 포착하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전자 노이즈를 모아 재료로 쓰는 겁니다. 수채화나 유화의 재료가 물감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디지털 카메라 렌즈를 막고 그곳에 흐르는 노이즈를 획득합니다. 이 노이즈를 위치에 따라 가상의 카메라 72대를 배치, 촬영해 여러 모양을 확보한 뒤, 그 위에 드로잉으로 터치한 노이즈 수십 장을 배치합니다. 그리고 사진 인화지로 프린트한 다음, 마지막으로 형상을 굴절되게 표현하는 특수재료 렌티큘러에 이 프린트를 붙이면 하나의 작품이 완성됩니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라르타(Erarta) 현대미술관 전시 (7월 19일까지)

추상과 구상의 이미지를 3D로 표현한 홍성용 작가의 시리즈가 3월 20일부터 7월 19일까지 러시아 에라르타 현대미술관(에서 초청 전시됩니다. Noise 1번, 휴리스틱 1-1번, 비욘드 1번 등 모두 42점이 전시되는데, 신진작가가 러시아의 대표적인 현대미술관에서 초대전을 갖는 건 이례적인 일입니다. 휴리스틱 1-1번 작품처럼 블랙홀을 연상하게 하는 작품이나 우주 속 은하처럼 추상적인 형상에서 인간의 얼굴이나 손과 발 등의 신체까지 작가가 담고자 하는 내용도 광활한 우주와 심연의 바다와 같은 존재의 근원에서 신과 인간으로 변화해 옵니다.
https://www.erarta.com/en/calendar/exhibitions/detail/241219/ (홍성용 에라르타 전시회 홈페이지)

"짧은 순간에 머무는 인간이지만, 결국 영원한 존재"

영상의 노이즈로 존재의 시작과 끝이 되는 근원적인 공간을 탐구하고 싶다는 홍성용 작가는 이번 전시의 의미에 대해 “눈을 감을 때 보이는 무언가에 대한 작은 호기심을 시작으로 인간과 신으로의 확장까지 작품의 큰 흐름을 볼 수 있는 전시입니다. 우리는 짧은 순간에 머물고 있는 유한한 인간이지만 결국 영원한 존재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습니다.” 라며 “이전에는 상업갤러리, 아트페어에서 작품을 선보였다면, 이번에는 현대미술을 선도하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하게 되는 것이라 작품의 예술성을 인정받았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러시아를 포함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들의 전시와 함께 개최되는 개인전이라 글로벌 경쟁력도 함께 인정받았다고 생각합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홍 작가는 이와 함께 “태초의 풍경 속에 공존하는 노이즈의 형태로 지금 어딘가에 머물고 있는 영원의 기억을 이야기를 하는 작품을 계획하고 있습니다.”라며 다음 시리즈를 예고했습니다. 영원의 기억은 어떤 형상으로 표현될 지 기대됩니다.

홍성용 작가
2020. SUNGYONG HONG.From Here to Eternity (St Petersburg Museum of Contemporary, 러시아)
2018. 홍성용전 (갤러리전, 대구)
2018. BEYOND-한계를 넘어 (Lynnfimeart갤러리, 서울)
2016. SUNGYONG HONG: A NEW KOREAN ARTIST (Beaux Arts갤러리, 런던)
2014. The Creation (이랜드스페이스, 서울)
2014. Heuristic (에이블 파인아트갤러리, 서울)
2013. Noise (갤러리 나우, 서울)
2010. 제 10회 핑야오국제사진페스티발 (중국)
한국국제아트페어, 화랑미술제, Miami-Scope등 국내,외 아트페어 참가.

홍상희 [san@ytn.co.kr]
촬영기자 우영택 [ytwoo@yt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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