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파일]성 소수자, 그리고 선거

[와이파일]성 소수자, 그리고 선거

2020.04.02. 오전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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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파일]성 소수자, 그리고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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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괴로워하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정상성이라는 틀에 자신을 억지로 맞추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긍정하고 사랑하며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레즈비언입니다."


- 2015년 11월 서울대 총학생회장 정책간담회 때 후보였던 김보미 씨 발언 (화면 출처: 서울대학교 방송 SUB)

[와이파일]성 소수자, 그리고 선거


[와이파일]성 소수자, 그리고 선거

2015년 11월, 서울대 총학생회장 선거에서 후보 김보미 씨는 커밍아웃을 했습니다. 며칠 뒤 보미 씨는 국내 대학 사상 최초로 커밍아웃한 성 소수자 총학생회장이 됐습니다.

2020년 2월, 보미 씨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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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커밍아웃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 동아리 선배가 '남자친구가 있냐?' 물어봤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 없었고 항상 애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 항상 솔로였던 거죠. 본인이 맺고 있는 모든 관계에서, 가족을 포함해서 친구, 모든 관계에서 직장 동료까지, 다 항상 거짓말로 점철된 삶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 커밍아웃 후 달라졌나요?

▶ 커밍아웃 뒤에는 저는 훨씬 더 제 자신다워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이제는 남자친구 있냐가 아니라 애인 있냐는 질문을 받고. 더 이상 저는 거짓말, 스토리텔링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거죠. 그런 것들이 생각보다 되게 큰 거 같아요.

◇ 언제 처음 알게 되셨나요?

▶ 저 같은 경우 제 성적 지향에 대해서 알게 된 게 중고등학교 때였는데요.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 친구들이 저한테 남자친구 있어? 물어봤을 때 대답을 하기 어렵고, 너는 왜 여성스러워? 남성스러운 모습을 갖고 있어? 물어볼 때도 할 수 있는 대답이 없는 거죠. 내가 남들과 다르다라는 걸 느꼈을 때의 박탈감, 거기서 파급될 수 있는 왕따 문제가 있었을 때도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사실 많지 않다라는 거. 학교에서 담임 선생님이 성 소수자 지식이 (있어서) 상담을 할 수 있느냐, 사실 그것도 어렵고요. 교과서나 교육과정에서도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어떤 지식을 얻거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부재하다.

취재진이 보미 씨를 찾아간 이유는 총선 때문이었습니다.

◇ 지난 20대 총선 때 성 소수자 공약이 있었는데 어떻게 보셨나요?

▶ 일부 정당에서 냈었죠. 그런데 그것도 사실 만들어지지 않았던 게 아쉬웠던 거 같아요. 계속 법안으로 올리려는 시도는 있었던 거 같은데 아직도 차별금지법은 제정되지 못했고.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의 발언이라던가,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던가, 중요한 정치인의 발언이라던가, 변희수 하사, 숙대 입학을 포기한 트랜스젠더분, 4년이 흐른 지금도 큰 변화가 없는 거 같아서 아쉬운 마음입니다.

◇ 이번 총선 때 바라는 공약은?

▶ (동성 간 성행위) 처벌을 하는 군형법 92조, 이건 위헌소송으로 가고 있는데요. 이런 내용은 당연히 폐지가 돼야 하고요. 평등을 지향하는,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 반드시 제정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각 정당에서 낼 수 있는 많은 정책이 있는데 그 부분에 대해서도 고려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성 소수자는 몇 명일까요? 정확한 수치를 집계한 정부기관 통계는 없습니다. 적지 않은 성 소수자가 자신을 숨기고 있어서입니다. 2015년 인권위 주최 실태조사에 따르면, 성 소수자 86%가 직장에서 자신을 숨긴 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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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사 대상 : 조사 시행 당시인 2014년 기준 최근 10년 동안 주로 한국에 거주한 성 소수자 948명(동성애/양성애자 858명, 트렌스젠더 90명))
※ 조사 시기: 2014년 12월
※ 조사 의뢰 기관: 국가인권위원회

추정할 수치들은 있습니다. 일본의 한 광고회사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일본의 성 소수자는 전체 인구의 7%입니다. 영국 통계청 조사를 보면, 영국 인구의 1.7%가 자신을 레즈비언이나 게이, 양성애자라고 밝혔습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미국 성인 가운데 2.3%가 동성애자나 양성애자라고 발표했습니다. 이런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성 소수자는 전체 인구의 1% 이상이거나 1% 내외라고 추정됩니다. 우리나라 총인구가 5천1백만 명이니, 성 소수자는 51만 명 이상이거나 안팎이겠죠. 참고로 지난해 6월,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주최 측이 밝힌 참가자 수는 10만 명 안팎입니다.
지난 2016년 20대 총선 때 주요 정당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새누리당, 국민의당은 성 소수자 공약이 없었습니다. 정의당은 주민등록법 등을 정비해 성별 변경 조건을 완화하고, 성 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혐오 범죄 발생 시 가중처벌하는 공약을 내놨습니다. 군대 내에서 이성 간 성행위는 징계를 받지만 동성 간 성행위는 징역형으로 범죄화해 처벌하는 현행 규정을 폐지하겠다는 공약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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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21대 총선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일부 정당은 성 소수자 공약을 검토하고 있지만, 대다수 정당은 검토하고 있지 않습니다. 2018년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은 '퀴어라운드(Queeround)', '당신의 주변(Around)에는 항상 우리 성 소수자(Queer)가 있습니다'였습니다.



취재기자 한동오 hdo86@ytn.co.kr
촬영기자 이상엽
그래픽 디자이너 지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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